디지털 저작물과 이용자의 권리 / 남희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주관 \’디지털 저작물과 이용자의 권리에 관한 정책토론회\’ 발제문

 

디지털 저작물과 이용자의 권리

 

남 희 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1. 서론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자 또는 이에 인접한 권리자와 이용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은 저작권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갈등은 2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저작권 환경과 구별된다. 첫째,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행위는 더 이상 저작물 소비자로서의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적의 출판 행위와 같은 저작물의 생산 행위와 대등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기존의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그들이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의 행위가 이용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둘째, 저작권의 보호와 행사가 일상적인 저작물 이용행위와 충돌하게 된다. 예컨대, 인터넷에서 음악을 듣는 행위가 저작물의 복제와 전송을 수반하게 되어 이에 대해 저작권의 규제가 미치게 되면, 이용자들에게는 그들이 수용하기 힘든 수준으로 저작권의 보호가 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용인할 수 없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저작권자와 이용자 간의 충돌은 ‘디지털 딜레마’라는 난제로 다가온다.

 

이 글은 정보공유운동의 관점에서 이용자의 권리를 얘기하고자 한다. 저작물을 둘러싼 사회주체들 사이의 대립을 자본주의의 정보적 확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면 사적 소유에 기초한 정보의 생산 및 이용 방식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시정하고 좀 더 자유롭고 효율적인 정보의 생산과 이용 방식을 확립하려는 문화운동으로서의 정보공유 운동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아날로그형 매체의 규율을 근간으로 하는 저작권의 활동 영역을 디지털 환경에까지 확대하는 경우 권리와 과보호 문제가 더욱 왜곡․심화된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면, 이를 계기로 저작권 제도 자체의 변용에 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정보공유론을 사회운동 차원에서 얘기하자면 정보나 지식의 사적 소유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나타나 발전된 일련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정보공유론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정보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정보생산 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와 정보생산자인 노동자 간의 계급 문제로 보고 정보상품의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거나 공유화하는 것을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회주의적 입장과, 정보 자체의 공공재적 성격에 착목하여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이 그것이다. 한편, 법제도 차원에서 정보공유론에 접근한다면 그 논의는 지적재산의 생산자와 일반 공중의 이익 사이의 균형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이 균형의 문제는 국제인권법에도 잘 나타나 있고 우리 저작권법이나 특허법에서 권리자의 보호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문화의 향상 발전, 발명의 이용, 기술의 발전 등을 제도적 목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사익과 공익 간의 균형을 모색한다는 한계를 설정해 두고, 그 테두리 내에서 이용자의 권리를 얘기한다면 이것은 기왕에 이루어져왔던 저작권 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일터인데, 이를 두고 거창하게 정보공유운동이란 용어까지 동원한 것은 지금까지의 저작권 제도 변화가 권리의 보호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왔고 이것이 사회구성원 중 어느 일방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2. 저작권자와 이용자 권리 사이의 불균형

 

‘오늘날의 자본에게 불법복제, 불법사용의 위협은 지난날 파업의 위협을 대신하는 것이다’는 말은 인터넷 환경으로 인한 저작권의 위기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은 정보나 지식이 ‘0’과 ‘1’의 조합으로 비트화되고 이러한 비트 정보가 컴퓨터로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거의 무한대로 유통될 수 있는 네트화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저작권법의 기본적인 통제방식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다. 디 지털화된 정보는 이제 유형물에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통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가 유통되고 복제되는 범위와 내용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저작권 제도는 과거에 복사기나 팩스기, VCR, TV와 같은 새로운 매체 기술이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우리 저작권법도 2003년에 이르러 소위 ‘디지털 의제’들을 저작권자의 권리 강화 형태로 포섭한 법개정을 달성하였다. 2000년 개정된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권에 전송권을 신설하였는데, 당시 개정이유로 입법자는 ‘컴퓨터 통신 등이 급속히 발전됨에 따라 컴퓨터 통신 등에 의하여 저작물을 전송하는 경우에도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저작자의 저작재산권에 전송권을 추가함으로써 컴퓨터 통신 등에 의한 전송으로부터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작권법에 전송권이 신설될 것은, 복제 중심으로 규정된 저작권법 체계가 이용 중심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또한, 2003년에 개정된 저작권법은 창작성이 없는 데이터베이스를 보호되도록 하고, 저작권 등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력화를 주목적으로 하는 기술․서비스․장치 등이나 그 주요 부품을 제공․제조․수입․양도․대여․전송하는 행위를 저작권 등의 침해 행위로 의제하고, 저작권 등의 권리의 침해를 유발 또는 은닉한다는 사실을 알거나 과실로 알지 못하면서 전자적 형태의 권리관리 정보를 제거․변경하는 행위 등을 저작권 침해행위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저작권법 개정은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것인데, 입법자가 밝히고 있는 개정 취지는 다음과 같다.

 

지식정보사회의 진전으로 데이터베이스․디지털 콘텐츠 등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데이터베이스의 제작 등에 드는 투자 노력을 보호하고, 저작권자 등이 불법복제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행하는 기술적 보호조치 및 저작물에 관한 권리관리정보를 다른 사람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며 …

 

디지털과 네트워크 기술로 초래된 저작권 환경 변화가 저작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권리 사이에 새로운 패러다임 설정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용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법제도가 이렇게 변천된 데에는 미국의 압력이나 국제조약에 따른 강제적인 요인도 있지만, 그 동안 저작권과 관련된 정책 논의가 권리자를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협상에 의해 주로 해결되어 일반 공중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데에 기인한다.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는 부처간의 영역다툼으로 기형적인 형태의 법률이 나타나기도 한다. 2002. 1. 14. 법률 제6603호로 제정된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이하 ‘온라인디콘법’이라 함)이 그것인데, 온라인디콘법에서 말하는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는 그것의 저작물성이나 편집물성을 불문하고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모든 형태의 디지털 정보를 다 포괄한다. 애초 국회에 상정된 법안에서는 ‘정당한 권한없이 타인이 제작한 온라인콘텐츠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 또는 전송하는 방법으로 경쟁행위를 함으로써 온라인콘텐츠제작자의 영업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 행위로 규정하였다가, 국회 논의과정에서 ’상당한 노력으로 제작한 콘텐츠‘, ’제작자의 표시 의무 부과‘ 등의 요건이 한정되었다. 애초의 법안은 디지털 형태의 모든 데이터에 대해 그 제작자가 배타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어서 법률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국회에서 수정된 내용은 그 범위가 제한되었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애초의 법안 내용이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이 또한 매우 기형적인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즉, 정보통신부에서 ’온라인디콘법‘을 입법하려고 하자, 저작권법의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창작성이 없는 데이터베이스를 저작권법에 수용하려는 저작권법 개정안 작업을 추진하였다. 양 부처간의 이견이 계속되던 차에 2001. 7. 13.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양 부처가 역할을 분담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는데, 그 내용은 ’상당한 투자를 한 데이터베이스의 제작에 대한 투자는 문화부가 정통부와 협의하에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보호하고, 상당한 투자를 하지 않은 디지털 콘텐츠의 보호에 대하여는 부정경쟁방지 법리에 따라 정보통신부가 법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저작권법으로 보호가 되지 않던 창작성없는 데이터에 대한 보호를 ’상당한 투자’를 기준으로 정통부와 문화부 양 부처에서 나누어 가지기로 했는데, 국회 논의과정에서 부처간 합의가 무의미해지는 형태로 온라인디콘법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저작권 등 법률의 대응은 권리의 균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공공영역의 축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독창성이 없는 데이터베이스나 디지털 콘텐츠의 보호 입법과 같이 위헌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23조와 별도로 창작자(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제22조2항은 지적재산권의 헌법적 근거 규정인데, 이것은 권리부여의 전제로 창작성을 필요로 한다. 즉, 공공재로서 비배타적․비경쟁적 속성을 갖는 정보를 사적 독점할 수 있는 권리 부여의 정당화 근거는 ‘창작성’이란 요건이다. 따라서, 창작성을 묻지 않고 데이터베이스 또는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였다는 조건만으로 그 제작자에게 물권에 준하는 권리를 창설하는 것은 헌법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편, 온라인디콘법은 권리부여 방식이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과 같이 행위규정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새로운 권리를 창설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가 특허권이나 저작권과 같은 지적재산권을 소유권과 비슷한 독점권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특허법이나 저작권법과 같은 특정 법률을 통해 권리자가 독점할 수 있는 행위유형을 특정하고, 권리자에게 침해행위를 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 예컨대, 방해배제청구권이나 방해예방청구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물건에 대해 특허권이 존재할 때, 제3자가 그 물건을 찍은 사진을 배포하는 행위가 특허권의 침해인가 아닌가는 법률에 명확한 규정이 없으면 알기 어렵다. 이것은 지적재산권의 대상이 가지는 무체물적 성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적재산권과 달리 소유권이란 유형의 물건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말하기 때문에, 소유권 침해에 대한 원상회복으로서의 전형적인 수단은 반환청구가 된다. 이에 대해서 무체물에는 반환청구가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은 권리 침해에 대한 원상회복으로서 실시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침해자의 실시 행위를 중지시킬 수 있다면 독점성은 회복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온라인디콘법은 제18조에서 “누구든지 정당한 권한없이 타인이 상당한 노력으로 제작하여 표시한 온라인콘텐츠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 또는 전송하는 …”를 금지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제19조에서는 온라인콘텐츠 제작자가 “제18조의 위반행위의 중지나 예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2조6호에서 “온라인디지털콘텐츠제작자"를 정의하면서 ‘온라인디지털콘텐츠 제작에 있어 그 전체를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자를 말하며 이들로부터 적법하게 그 지위를 양수한 자를 포함한다’라고 하여, 온라인 콘텐츠 제작자의 지위를 양도 가능한 것으로 하여, 겉으로는 행위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온라인 콘텐츠 제작자에게 준물권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3. 저작권자와 이용자의 권리 균형

 

저작권법은 제1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작권법은 2가지 수단을 채택하고 있는데,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한가지 수단이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것이 또 다른 수단이다. 여기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이란 일반공중에 의한 저작물의 이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작권법은 저작권자 개인의 사익과 저작물의 이용자인 공중의 이익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저작권 제도에서 ‘저자’라는 개념이 출판업자의 독점을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면,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자와 그 인접권자의 독점적 권리가 강화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저작권법이 본래 추구하고 있는 균형과 조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권리‘를 새롭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용자의 권리’는 이른바 문화기본법이라고 하는 저작권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한데, 이를 위해 저작권의 성립 과정을 통해 저작권이 기술의 변화에 따른 자연적으로 성립된 권리가 아니라 서구 유럽의 특정한 시대적 상황에 의해 탄생된 인위적인 권리라는 점을 살펴본 후, 국제인권법 및 그 연혁적 고찰을 통해 도출되는 권리자와 이용자 사이의 균형, 저작재산권의 제한과 공정이용 법리 및 저작권 환경 변화를 통해 이용자의 권리를 좀 더 적극적인 권리로 구성할 근거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가. 저작권 제도의 성립과정과 그 함의

 

저작권이 성립된 계기에 대해 ‘인쇄술의 발명’ 즉, 기술의 변화에서 그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Patterson은 1476년 윌리엄 삭스톤(William Caxton)이 출판기기를 영국에 소개하면서 저작권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재산권 탄생은 필연적이었다고 하며, Leaffer는 저작권법의 전개는 인간의 표현을 복제하고 전파하는 새로운 기술이 초래한 도전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으로 보며, 최초의 성문 저작권법은 15세기의 새로운 기술 ‘출판기기(printing press)’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한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NII (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백서에서도 ‘지적재산권은 기술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복잡하고 난해한 법의 영역’이라고 하면서, 미국 저작권법의 기초가 된 영국 저작권법은 출판기기 발명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적고 있다. 물론 인쇄술의 발명이 서구 유럽에서 저작권이 싹트게 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인쇄술의 발명이 곧바로 저작권의 성립으로 이어진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기술결정론의 오류를 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 인쇄술이 발명된 후 200년이 지나서야 앤 여왕법이 성립되었다는 점과, (2) 서구 유럽에 비해 인쇄술이 먼저 발명되었던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20세기가 될 때까지지 저작권의 개념이 생기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최초의 저작권법이라고 부르는 앤 여왕법은 실제로는 출판업자 길드(Satationer\’s Guild)가 출판특권의 통제와 서적 무역을 통해 획득하고 있었던 독점력에 대한 대응이었다. 요컨대, 저작권 제도는 서구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에서 생성된 독특한 것이다. 카톨릭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상인계급의 등장은 출판기기에 의한 경제적 변동만큼이나 저작권의 성립과 관계가 있다. 실제로 초기의 저작권법은 출판업자 길드와 출판특권을 통해 누리고 있던 출판업자의 독점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구텐베르그가 1450년 자신의 첫번째 출판물을 독일에 소개한 이후 인쇄기술은 유럽의 서적 무역의 중심지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1470년에는 19개의 도시에 출판소가 생겼고, 로마와 파리는 각각 4개의 출판소를 가지게 되었다. 1500년이 되면 인쇄기술은 250여개의 도시로 확산된다. 인쇄기술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가장 먼저 출판독점(printing privileges)을 허용한 곳은 베니스였고 이 출판독점은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채용하게 된다. 이처럼 인쇄술의 발명과 보급으로 영국이나 유럽대륙에서 저작물을 값싸게 대량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자 통치자와 성직자들은 이것이 갖는 정치적․종교적 영향력을 인식하게 되어, 특정 출판업자만 출판을 할 수 있도록 출판특권을 부여하였다. 이 제도의 목적은 저작물을 통제․검열하고 출판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출판특권제도는 16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는데, 출판업자는 기간에 제한없이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해 존 로크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은 17세기 내내 이러한 독점권의 제한을 주장해왔고, 출판업자의 독점으로 인하여 이용할 수 있는 서적의 수가 줄어든다고 불평하였다. 1710년 4월 10일에 성립된 앤 여왕법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출판특권의 기간을 신간에 대해서는 14년, 이미 출판된 책은 21년으로 제한하고, 저자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저작물도 출판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앤 여왕법에서 ‘저자‘의 권리를 강조하고 권리의 기간을 한정한 것은 출판업자의 독점을 깨기 위한 의도적인 조치였다. 독점은 너무 오랫동안 강고하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근거의 변화 없이는 깨기 힘들었다. 변화를 위한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근거는 바로 ’저자‘였다. ’저자’는 독점에 맞서는 무기를 주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저자 개념이 강조되면서, 과거 저자의 지위를 결정짓던 후원제도의 몰락과 독립적인 직업인으로서 저자의 부상을 촉진하게 되는데, 한편으로 이것은 지식체제의 구조적 변동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18세기 이전까지 텍스트는 오늘날과 달리 하나의 고정된 사물(thing)이 아니라 행동(action)으로 이해되었고, 저자는 지식의 창조자보다는 전달자(reteller)로서 간주되었다. 즉, 저자의 가치는 얼마나 독창적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에 의존했다. 전근대적 지식체제에서 저자가 가진 이러한 논리적, 제도적 위치로 인해 18세기 이전까지 저자는 저작권의 당사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앤 여왕법을 계기로 한 근대적 저작권의 형성은 전근대적 후원체제의 붕괴와 저자의 자립화라는 지식체제의 구조변동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 추동력은 군주와 귀족 중심의 구질서의 붕괴와 근대적 시민사회의 출현, 그리고 계몽주의의 등장이었다. 독립된 저자의 등장은 인쇄기술 혁명과 더불어, ‘책‘이라고 하는 유형물을 통해 지식 자체의 상품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저작권 성립 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저작권은 출판독점을 제한하기 위한 18세기 유럽에서 사회세력간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로 탄생된 것이다. 또한, 저작권자에게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모든 역사와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논리필연적인 이유에 기인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하나의 지식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많은 지식을 전제로 한다‘는 지식의 사회성과 역사성이 보편타당한 명제라 할 것이다.

 

나. 국제인권법의 연혁적 고찰을 통한 권리자와 이용자의 균형 모색

 

저작권이 인권과 관계를 맺는 지점은 매우 다양하다. 저작권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정보자원은 단순한 재산권의 객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사상, 신앙, 양심, 문화 등의 인간의 정신적 영역과도 관련이 있고 정보자원의 유통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기본권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저작권과 인권의 관계를 모두 고찰하지는 않고, 주로 문화적 권리와의 균형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국제인권법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지적재산권과 인권을 주제로 한 실질적인 논의는 1998년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와 UN 인권 고등판무관실이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 처음 있은 후, 2001년 UN의 ‘경제사회이사회’에서 건강권과 특허권을 중심으로 TRIPS 협정과 인권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 바 있고, 2001년 유네스코의 저작권 회보에서 지적재산권을 인권 차원에서 접근한 본격적인 논문이 발표되었다. 국내에서는 2001년 6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개최한 ‘과학기술과 인권 워크숍’에서 지적재산권과 인권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 국제인권법의 지적재산권 조항

 

지적재산권의 인권적 배경을 찾아볼 수 있는 국제인권법으로는 1948. 12. 10.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1966년 12월, 이하 ’A 규약‘)이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제2항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된 지적재산권에 관한 보호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권리들은 인권보장의 기본법에 해당하는 A 규약에 더욱 완전하게 규정되어 있다.

 

A 규약 제15조1항은 다음과 같다.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c)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

 

(2) 국제인권법의 지적재산권 조항의 연혁적 고찰

 

이처럼 세계인권선언과 A 규약은 모두 창작자 개인의 정신적․물질적 권리를 인정함과 동시에,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과학의 진보로부터 혜택을 볼 권리도 함께 인정하고 있다. 요컨대, 국제인권법은 인권으로서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면서 이것이 공중의 이익과 균형을 맞추어야 함을 내재적 한계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인권적 배경을 인정할 때, 창작자 개인의 사익과 이를 둘러싼 공중의 이익 사이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된다. 지적재산권을 중심으로 한 권리자와 이용자 사이의 균형 문제를 좀 더 실천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이나 A 규약에 지적재산권 조항이 들어가게 된 경위를 연혁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의의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2001년 12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UN 위원회에서는 지적재산권과 인권 논의를 통해 성명서를 채택하였는데, 이 성명서는 “지적재산권법의 시행과 해석에 국제인권 규범이 융화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지식에 대한 사적 이익과 공공이익의 보호 사이의 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창작과 혁신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노력에는 사적 이익이 과도하게 충족되도록 해서는 아니되며, 새로운 지식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을 향유할 공중의 이익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이 성명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주요 이행의무로, 체약국이 A 규약에 규정된 의무 특히, 건강과 식량, 교육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더 어렵도록 만드는 어떠한 지적재산권 제도도 법적으로 구속되는 체약국의 이행의무에 위반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UN 위원회의 위 성명서에는 지적재산권을 보편적 인권과는 다르게 보는 시각이 발견되는데, 인권과 지적재산권의 차이점에 대하여, ‘인권은 개인 또는 개인으로 구성된 공동체에 속하는 기본적으로 양도될 수 없으며 보편적으로 부여됨에 비해, 지적재산권은 발명이나 창작을 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이로부터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적 권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이 전통적으로는 개인으로서의 저자 또는 창작자를 보호하였으나, 기업의 이해와 투자를 보호하는 쪽에 점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A 규약 15조에서 규정하는 저자의 물질적․정신적 보호의 범위는 현행 개별 국가법이나 국제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적재산권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성명서에서 기본적 인권과 지적재산권의 차이점을 강조한 것은, 세계인권선언이나 A 규약에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조항이 들어가게 된 연혁적 고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1년 인권고등판무관실(High Commissioner)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권 차원의 접근에는 2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첫째 A 규약 15조에서 말하는 공익과 사익의 균형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주목적을 두어야 하고, 둘째 저작권이나 특허권 또는 상표권과 같은 지적재산권과 문화적 권리로서의 인권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첫번째 권고는, 지적재산권도 인권이라고 볼 때, 인권은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 목적으로 두어야 한다고 말한 셈이다. 이것은 지적재산권과 보편적 인권의 본질적인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두 번째 권고로부터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바, 지적재산권은 특권으로서의 성격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즉, 인권고등판무관실의 권고에 기초가 된 세계인권선언과 A 규약의 협상과정자료를 검토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인권선언과 A 규약을 논의할 당시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해 협상참여자(drafter)들은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기껏해야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창작과 발명에 접근할 공중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에 더 많은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협상참여자들 대부분은 저자의 정신적․물질적 이익 즉, 저작권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특허권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더 적었다. 또한, 협상참여자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부터 공중이 얻게 되는 이익을 저작권이나 특허권이 국제적 차원에서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인식하지 못했고 지적재산권의 주요 역할이 무역이나 개발, 식품 또는 건강 분야로 이동할 것임을 인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A 규약 15조에서 말하는 지적재산권은 개인으로서의 저자에 대한 권리만 염두에 두었고, 기업이 소유하는 특허권이나 업무상 창작한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소결

 

지금까지 살펴본 국제인권법의 지적재산권 조항의 연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i) 지적재산권은 보편적 인권과는 달리 특권적 성격이 강하다.

 

(ii) 지적재산권은 다른 권리 즉, 문화 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과학적 진보로부터 혜택을 향유할 권리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즉, 저자의 권리는 그 자체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자유와 과학적 진보에 접근하고 참여하며 그로부터 혜택을 볼 권리의 전제 조건으로 인정된다.

 

(iii) 지적재산권 제도에서 저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식에는 인권의 고려가 조건으로 부여된다. 즉, 저자나 창작자의 권리는 과학적 진보에 접근하고 문화 생활에 참여할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장려하는 방식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iv) 국제인권규범의 지적재산권 조항은 그 자체로 권리의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지 못한다. 즉, 초안 작성자들은 저자 권리의 범위와 제한을 서술하지 않았고, 논의의 초점은 지재권 조항의 포함 여부에만 있었으며, 이것의 본질과 함의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내용과 범위에 대해서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에는 현행 지적재산권 제도가 위에서 말한 권리 균형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TRIPS 협정 제8조(원칙)는 사익과 공익의 균형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체약국은 공중의 보건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사회경제적 및 기술적 발전에 극히 중요한 분야에서 공공의 이익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국내법의 제정 또는 개정으로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단서를 달아 ‘다만 그러한 조치는 TRIPS 협정의 규정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제한을 두었다. ‘협정의 규정과 일치하는 경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TRIPS의 규정 대부분은 권리자의 보호 확대와 권리침해의 구제 절차에 대한 규정이므로, TRIPS가 채택한 원칙은 지식에 대한 공공영역을 사적영역에 비해 덜 중요하게 취급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TRIPS 협정 제9조 제1항 단서 조항에 따르면, TRIPS 협정 체약국은 베른협약 제6조의 2 규정에 기초하여 부여되는 권리(저작인격권) 또는 이로부터 파생되는 권리에 대해서는 권리 또는 의무를 갖지 아니한다. TRIPS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가 기존의 지적재산권 협정(저작권의 경우, 베른협정)을 원용한 것인데 창작자 고유의 권리로 인식되는 저작인격권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저작자의 재산적 권리는 전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인격권에 대한 이러한 조항을 두게 된 것은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겉으로는 TRIPS 협정은 지적재산권의 무역 관련 측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저작권의 경제적 권리가 아닌 저작인격권을 협정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된 실질적인 배경은 기존의 판례 질서를 전제로 하여 형성된 저작물의 편집 관행에 변경을 강요하는 것을 염려한 미국내 영화산업과 출판업계가 저작인격권의 TRIPS 삽입을 절대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TRIPS 협정은 지식의 생산보다 소유에 더 중심을 두고, 지식자본가의 권리가 지식생산자의 권리보다 더 존중을 받는 체계라 할 수 있다.

 

다. 저작권 환경의 변화와 저작권의 제한 및 저작물의 공정 이용

 

(1) 저작권 환경의 변화 – 관심의 경제학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매체들을 통합하는 ‘멀티미디어’로 인하여 매체는 움직이지 않고 저작이 스스로 움직이는 ‘매체의 유통에서 저작의 유통’으로 바뀌는 새로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책이라는 매체를 통제하던 기존의 저작권 제도에서 이용자의 권리를 변화된 환경에 맞게 재해석하고 새롭게 구성할 필요가 없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이용자가 저작권자에게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불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관심(attention)을 저작권자에게 지불함으로써 저작물의 가치가 높아지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이용자가 저작권자에게 경제적인 보상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관심과 시간을 이용자가 지불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의 관점에서 공정한 이용이란 차별가격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이용자는 자신의 관심을 지불함으로써, 네트워크 효과와 잠금 효과를 통해 저작물의 가치가 높아지는 데에 기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정보의 특성과 소유권 개념의 재해석으로부터 이용자의 권리를 새긴다면, 공정이용을 차별가격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것과 더불어 ‘접속의 시대’로 표현되는 상호의존성이 높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의 형태는 ‘사회 전체의 누적된 생산 자원을 이용하거나 여기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라는 사실 즉, ‘배제 당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인터넷 환경에서는 저작물이란 그 자체로 소유권을 행사하여 경제적 보상을 구하는 대상물이 아니라, 이용자들과 관계를 맺는 도구나 수단으로 변용하여 파악할 필요가 있다.

 

(2) 저작권의 제한과 공정 이용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저작물의 모든 이용형태가 저작권에 의해 무제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원활한 이용을 방해하지 아니하고 문화발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하도록 하여 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것은 저작자가 창작한 저작물은 선인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유산의 토대 위에서 창작된 것이므로 가능한 많은 사람에 의하여 널리 이용되는 것이 문화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은 저작물이란 공공재(public goods)의 속성을 지닌 공적영역(public domain)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저작물이 공적영역에 속해 있다는 근거는 첫째, 저작물 창작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호텍스트성, 둘째, 일반 재화와 달리 저작물은 생산단계와 소비단계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 점, 셋째, 지적생산물은 물리적으로 거의 마모되지 않는 무형재산의 성격을 가지므로 유형재산에 부여하는 것처럼 영구적인 재산권을 부여한다면 독점과 같은 비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저작물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저작권법은 저작권의 기간을 제한하거나, 저작권자의 절대권을 제한하는 법정허락(또는 강제허락)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특정한 사용에 대해서 저작재산권의 제한을 두어 사용자가 저작권자의 허락이나 권리행사를 염려하지 않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유로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의 제한으로 재판절차에서의 복제(제22조), 학교교육 목적 등의 이용(제23조), 시사보도를 위한 이용(제24조),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제25조),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공연․방송(제26조),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제27조), 도서관 등에서의 복제(제28조), 시험문제로서의 복제(제29조), 점자에 의한 복제(제30조), 방송사업자의 일시적 녹음․녹화(제31조), 미술저작물 등의 전시 또는 복제(제32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저작권의 제한 가운데 사적복제와 같은 자유이용 또는 공정이용을 이해하는 대립된 시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사적복제란 침해 주장에 대한 방어에 불과한 소극적 권리일 뿐이며, 이러한 자유이용 영역을 허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이 권리자에게 부여한 권리(저작물의 복제를 허락할 수 있는 배타적인 권리)나 경제적 이익을 사적 복제가 크게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쪽 입장은 사적인 복제와 같은 자유이용 영역은 특정한 상황에서 후개발자가 가지는 적극적인 권리라고 본다. 이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시장결함론(Market failure theory)에 근거를 둔다. 즉, 저작권자에게 저작물의 사용 허락을 받기 위해 협상하는 데에 들어가는 거래 비용이 저작물의 사용 가치를 초과하는 상황에서는 자유이용과 같은 공정사용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저작물의 가치 있는 사용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 보다 좀 더 진보적인 입장은 권리자를 쉽게 찾을 수 있고 그들과 사용허락을 위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경우에도 공정사용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클릭(click)하는 행위만으로도 사용허락이 가능한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전통적인 시장결함론은 설득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만약, 사적복제를 소극적인 권리라고 본다면, 가령, 음반사가 음반에 설치한 암호를 사적 복제를 위해 해제하는 것은 불법이 될 수 있지만, 사적복제가 적극적인 권리라면 암호를 푸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우리 저작권법은 이용자의 권리를 저작재산권의 제한 형태로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공정사용은 저작권 침해에 대한 항변으로만 취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작권이 사회적인 대가로 주어지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용자의 권리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4. 결론

 

디지털 환경의 저작권 문제에는 일반 이용자, 저작권자, 음반 제작자 사이의 갈등,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문제, 프로그램 개발자의 권리 문제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이것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들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을 조화시키는 것이 과연 법률이라는 제도뿐인가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특히, 독점배타적 권리를 법률로 부여하는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실현가능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인터넷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인터넷의 지적재산권 문제 또한 더 이상 법률가들만 고민해야 할 문제이거나 저작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을 살아가는 생활의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률적 시각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기술적 관점, 경제적 측면, 사회학, 철학, 정책적 시각이 모두 종합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저작권법의 개정은 주로 법률적 시각과 영리적 이해관계를 가진 자의 의사만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이용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저작권법을 근본적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첨부 파일 http://www.ipleft.or.kr/bbs/data/ipleft_5/4/디지털저작물과이용자의권리.pdf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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