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저작권법의 문제와 공정이용의 보장 / 오병일

이 글은 2005년도 2월에 열린 민주노동당 주최 저작권법 토론회의 발제문으로 작성되었다. 


현행 저작권법의 문제와 공정이용의 보장

 

오 병 일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1. 현행 저작권법은 개인적 이용과 문화적 교류를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

 

- 비영리적인 시, 소설, 음악, 사진, 영화 등의 동호회 혹은 블로그 등에서 특정한 저작물에 대해 비평하거나 토론할 때마다 관련 저작물을 올리지 말라는 것 혹은 저작자의 허락을 맡으라는 것은 무리이다.

- 비영리적 단체, 기관, 공동체 등에서 관련 기사를 퍼다가 공유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 (이미 국회의원이나 공공기관조차 기사 스크랩을 하고 있다)

- 자신이 구매한 CD에서 MP3 파일을 뽑아내어 블로그의 배경음악으로 이용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이용자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 (CD를 판매한 것이 복제권, 전송권을 판매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은 추상적 법논리일 뿐이다.)

 

문화는 비단 개별적으로 구매해서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다. 문화는 그것에 대해 비평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을 전제로 한다.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기본권인 문화적 권리․표현의 자유․커뮤니케이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 또한, 저작물 이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지식․문화의 이용 및 확산을 저해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의 문화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2. 문제의 핵심은 사적 이용의 범위이다.

 

현행 저작권법에 대한 비판을 저작권법 전체에 대한 부정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불법 복제의 심각성만을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도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있지 못하다. 저작권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보호만을 주장하는 것은 논쟁의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티즌들이나 사회단체들 역시 저작권 제도를 인정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며, 음악 서비스 등의 유료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작권의 보호가 개인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할 정도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행 저작권법에 대한 비판은 저작권에 대한 과도한 보호에 의해 공정 이용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3. 디지털 환경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현행 \’전송권\’은 일반 공중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타인의 저작물을 올려놓는 것을 무조건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공중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타인의 저작물을 올려놓았다고 시장에 심대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음악 비평을 하면서 올린 음악을 일상적 감상용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 동호회에 시 몇 개가 올려있다고 시집 판매가 저하될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

 

설사 시장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인터넷 환경에서 공정 이용의 범위는 확대되어야 한다. 인터넷 환경은 복제, 전송을 기반으로 한다. 오프라인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교류(시나 음악을 들으면서 비평․토론하는 것)가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똑같은 행위(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가 온라인에서는 복제와 전송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복제․전송의 권한을 저작(인접)권자에게 부여하고 사적 이용의 범위를 기존과 같이 제한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기본적 커뮤니케이션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현행 저작권법은 사적 복제의 범위를 \’가정내에 준하는 한정된 장소\’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터넷 환경에서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인터넷은 사적인 공간이자 공적인 공간이다. 내 미니홈피는 나와 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임의의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의의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통을 제한한다면, 사적인 커뮤니케이션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행 법은 단지 \’복제\’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는 적용될 수 없다. 현행 저작권법은 디지털 환경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4. 효율적으로 이용허락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용자가 저작물에 대한 이용허락을 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권리자 단체에서 포털 등을 통해 서비스한다고 하더라도 포털 등을 이용하고 있지 않은 이용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 포털을 동시에 이용하는 이용자는 중복 과금해야 하는가? 이용자들이 저작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선의의 범죄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설사 단속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용자들의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하는 것은 이용자들의 행위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5. 근본적으로 저작권법이 문제다.

 

모든 창작자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블로그 등 1인 미디어가 등장하고, 디지털카메라 등 개인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창작 도구들이 대중화되어 누구나 지식․문화의 소비자이자 창작자가 되는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물 창작 즉시 저작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저작물 이용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일일이 창작자를 찾아 허락을 맡아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때로는 창작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는 특히 비영리적 라디오 방송국이나 영상 제작자 등이 겪는 고충이다. 따라서, 디지털 환경에서의 공정 이용 문제와 함께 근본적으로는 저작권 등록제 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국제 협약 때문에 국내 저작권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행 국제협약은 각 국의 자율적인 문화 정책 수립을 가로막고 있으며, 이는 국제협약이 비판받고 있는 지점이다) 그래서 단기적인 대안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국내 정책 결정자들이 국제 협약을 변경불가능한 환경으로 규정한 채, 이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적 시스템에 대한 상상력이 부재하다는 것에 있다. 국제적인 역학 관계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진정 대안적 시스템은 무엇인지 저작권법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라도 올바른 입장을 관철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6. 문화는 문화산업이 아니다.

 

사실 디지털 환경의 저작권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디지털 환경은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정보의 복제․전송을 용이하게 하였다. 이는 지식 유통의 한계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반면 저작권은 허락없는 복제․전송을 금지한다. 따라서 디지털 환경은 저작권과 근본적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제기되었던 \’원격접근이 불가능한 디지털 도서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저작물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적은 창작자(일반 시민들, 아마추어, 비주류 예술가들)에게 인터넷은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기존의 진입하기 힘들었던 유통망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시킬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만일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는 저작물이 풍부해진다면 현재의 저작권 논란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문화 산업 외의 영역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컨텐츠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활성화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1차적으로는 시민들 자신의 책임이다. 자율적인 참여로 이러한 공유 컨텐츠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 국가 차원의 문화 전략은 단지 문화 산업에 대한 전략일 수는 없다. 또한 문화 정책이 저작권 정책에 국한될 수는 없다. 정부는 비영리적 문화 생산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반 대중들에게 영상 제작 교육을 하고 고가의 장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미디어센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7. 몇 가지 결론적 제안

 

- 현행 저작권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개인의 비영리적 이용은 공정한 이용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 권리자 및 사업자는 단속의 강화보다는 이용자들이 쉽고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먼저 노력해야 한다.

- 저작권이 무시되어도 안되겠지만, 저작권은 소유권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교육 및 캠페인의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와 함께 공정한 이용의 권리 역시 균형있게 소개되어야 한다.

- 문화관광부는 저작권법 내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입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 산업 및 비영리 문화의 진흥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 이용자와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을 (일부라도) 인터넷에 공개하여 사회적으로 공유 저작물을 확대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정보공유라이선스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저작권 제도의 근본적인 체제(권리 부여 방식, 보호 기간 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되어야 하며, 관련된 외교적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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