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II 총론
II 총론
정보와 지식을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편입시키며 형성된 ‘현실 정보사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냅스터(http://www.napster.com) 를 둘러싼 분쟁, 생명체 특허에 대한 선진국과 제3세계의 갈등 등에서 보듯 수많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특허권, 저작권, 상표권 등 지적재산권 법, 제도는 그 모순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지적재산권은 현실 정보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정보와 지식의 생산과 분배를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및 교환 시스템으로 편입시켜 그 소유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독점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설정되었기 때문에, 정보와 지식이라는 사회적 자산에 대해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 이로 인해 정보와 지식의 독점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문제, 재산권 보호를 위한 기본권 침해의 문제, 제3세계의 전통지식과 자원에 대한 선진국의 약탈 문제 등을 낳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과 네트워크 기술이 가져온 풍부한 생산력 역시 재산권의 보장을 위해 제약되고 있다. 이것은 현재의 지적재산권 법, 제도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적재산권이라는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모순’ 때문이다.
우 리는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누구나 이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으며, 사회적인 기여에 대한 적절한 인정(또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이라는 현실의 시스템―’정보와 지식’은 ‘사유재산’이 되고, ‘경쟁’을 통해서만 ‘생산과 발전’이 가능하다 여기며, 오직 시장에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스템―은 그러한 사회의 기반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현재의 지적재산권 시스템을 비판하고, 나아가 새로운 대안적인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대 안적인 사회는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의 정보와 지식이 아닌, 인류공동의 사회적 자산으로서 누구에게나 생산과 이용에 제한이 없는 공공재로서의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정보와 지식의 생산은 ‘돈’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고 나누는 기쁨 자체가 동력이 된다. 어떠한 지적 생산물도 사회의 축적된 지식기반과 타인과의 공유없이 생산될 수 없으므로, 정보와 지식의 공유는 대안적인 사회에서 생산의 추동력인 동시에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된다. 이 사회에서는 지적재산권 체제가 강요하는 배타와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와 지식은 ‘사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사회환경’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적’재산권’은 현실 정보사회의 모순을 반영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공유적 내용으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인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현실 사회로 끌고 들어올 때 몇 가지 딜레마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첫 째, ‘무임승차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무임승차를 배제하고자 하는 합리성과 배타적 소유욕과는 얼마의 거리가 있는가?’라고 반문하고자 한다. 즉 우리는 지적 생산물에 대한 배타적 소유욕(무한 이윤추구의 욕망)과 무임승차의 욕구가 사실 현 자본주의 체제가 재생산하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보와 지식에 대한 배타적 소유욕을 보장하는 체제에서 무임승차의 문제는 영구히 계속될 것이며, 무임승차자를 배제한다는 명분아래 보장되는 배타적 소유권과 정보의 공유적 특성 사이의 모순 역시 계속될 것이다.
둘 째, ‘생산(또는 투자)에 대한 동기 부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현재의 지적재산권 제도가 지적 생산에 대한 합리적인 동기부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지적 생산에 대한 동기부여는 창작과 발명에 대한 ‘보상’이라는 소박함이 아니라, ‘독점적 무한 이윤’에의 ‘무한 욕망’에 대한 동기부여가 아닌가? 그누/리눅스(GNU/Linux) 시스템의 예에서도 보듯이 독점적 이윤을 보장하지 않더라도 창작과 발명에 대한 동기부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셋 째, 그렇다면 우리에게 구체적인 대안이 있는가? 또는 근본적인 대안과 현실에서의 쟁점은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우리는 대안적인 사회가 저 너머 어디에 존재하는 구체화된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 지적재산권 체제에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그 대안은 우리의 상상력을 ‘현실적 투쟁’으로 녹여내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래의 각론 역시 근본적 변혁에 대한 욕망과 현실적 상황의 고려 속에서 아슬아슬한 타협안으로 마련된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아직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만족스럽게 내놓은 것은 아니다. 또 이 선언문에서는 주로 현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지적재산권 법, 제도를 개선 또는 개혁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적재산권은 단지 법, 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사회의식과 경제체제를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에 관한 대안적인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실의 운동은 현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정책 제시, 대안적인 사회를 향한 새로운 실험과 실천,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현 지적재산권 시스템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모든 실천에 경의를 표하며, 그들과 함께 연대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