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RCEP 지적재산권 협상 – 반인권적, 비윤리적 정책 밀어붙이는 한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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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on’t trade our lives away

지난 6월 10부터 18일까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하 RCEP) 13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인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대규모 자유무역협정(FTA)이다. RCEP에서도 지적재산권은 주요 협상 분야의 하나다. 지난 2016년 4월 19일, Knowledge Ecology International(KEI)라는 시민사회 단체는 RCEP의 IP 챕터 유출본(2015년 10월 15일 버전)을 공개하였는데, 이를 통해 지적재산권 챕터의 각 세부조항에 대한 각 협상국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1]

그런데 이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인터넷 접근권과 자유를 위축시킬 저작권 삼진아웃제를 혼자 제안하는가 하면, 세계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권 보호를 위한 트립스(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 유연성 조항에는 반대하는 등 반인권적,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협상 관료들은 지적재산권 보유자들의 독점적 이익을 옹호할 뿐, 지적재산권 체제가 인권 및 공익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RCEP 지적재산권 협상에서도 국제적인 지적재산권 협정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배타적 권리만을 강화하는 독소 조항들이 다소 포함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은 한국과 일본 정부가 제안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에 대한 집행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은 미래의 침해를 예방할 수 있기에 충분한 정도의 법정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 “상업적 규모”의 저작권 혹은 상표권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극장에서 영상 녹화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형사 처벌 등을 제안하고 있으며, 특허와 관련해서도 의약품 승인 절차 지연이나 특허청 심사 지연에 따른 특허 기간 연장 등 주로 권리자의 독점적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반면, 배타적 권리를 제한하여 공익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공정 이용이나 강제 실시와 관련된 내용은 배제되어 있다.

특히,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도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되어 왔던 ‘저작권 삼진아웃제’를 포함시킬 것을 혼자 제안하고 있다. 국내에서 저작권 삼진아웃제는 반복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정부가 판단한 이용자 및 게시판에 대해 법원의 사법적인 판단도 없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최대 6개월 동안 이용자 계정 및 게시판의 운영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유출된 RCEP 협정문에서는 “인터넷 등에서 저작권 및 인접권의 반복적인 침해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저작권 삼진아웃제와 유사한 조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graduated response”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용자의 기본권과 기업의 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아직 어떠한 국제 저작권 협정에서도 도입된 바가 없다. 지난 2011년에는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연례보고서에서 저작권 삼진아웃제와 같은 “인터넷 접속을 차단시킨다는 제안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2]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런 반인권적 제도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공중 보건을 위한 트립스 유연성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충격적이다. 1996년 발표된 트립스(TRIPs)는 WTO 부속협정의 하나로, WTO 회원국이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지적재산권 보호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트립스 협정과 관련된 최대 쟁점은 의약품특허와 관련된다. 선진국은 트립스 협정을 통해 전 세계적인 의약품 특허의 강화를 요구했는데, 특허 독점으로 인한 의약품의 가격 폭등은 특히 제3세계 민중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의 결과 2001년 11월, WTO 각료회의에서 “도하선언문”이 채택되게 되는데, 이 선언문은 지적재산권에 관한 트립스 협정이 공중보건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음을 주된 내용으로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 강제실시를 적시하고 있다. 이어 WTO 일반이사회는 2003년 8월,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허용하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RCEP에서도, 위와 같은 결정들에 따라 강제 실시를 부여할 권리를 각 국이 가지고 있음을 표명하는 조항이 제안 되었는데, 한국은 이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는 제3세계 민중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외면하는 비윤리적 태도일 뿐 아니라, 특허권과 건강권에 대한 한국 정부의 편향적 관점은 한국 국민으로서도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저작권, 특허권과 같은 공공 정책이 통상 협상을 통해 밀실에서 정해지는 것에 우려한다. 민주 사회에서 공공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투명한 절차를 통해 결정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미 FTA를 비롯하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위조및불법복제방지 협정(ACTA), RCEP 등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양자간, 다자간 통상 협정들은 밀실에서 소수의 협상관계자들이 공공정책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관련된 협상 문서도 공개되지 않고,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도 제한된다. 국회 비준 절차에서 세부적인 조항을 논의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국 정부는 현재의 협상 과정과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협상과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하게 수렴해야 한다. 또한, 지적재산권 정책에 무지하고 편향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협상 담당자를 교체해야 한다.

2016년 6월 17일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1] KEI는 사회적 정의, 사회적 약자의 보호, 인권에 기반한 지식 생태계를 추구하며, 현재의 편향된 지적재산권 체제를 비판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는 국제 시민사회단체이다. 유출된 RCEP의 IP 챕 (2015년 10월 15일 버전)는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http://keionline.org/node/2472

[2] http://act.jinbo.net/drupal/node/6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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