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제도에 나타난 독점과 기술확산의 관계
윤 성 식 (cmhope@nownuri.net)
1. 들어가는 글
특허제도를 포함한 지적재산권 제도는 무형의 지식을 정형화된 제도를 통해 구체화시키고, 여기에 독점·배타권(이하 \’독점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독점권은 인위적인 독점에 반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규정이다. 그리고 이런 예외성은 독점의 효과와 정당성과 관련하여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을 일으켜왔다. 특히 지식기반사회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특성에 따라 경제활동에 있어서 지식의 역할이 점차 증대하였고, 그 결과 지적재산권을 통한 독점이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본 글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지적재산에 대한 독점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찾아보기 위해 특허제도를 중심으로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기존 논의를 살펴보려 한다. 이를 위해 특허제도의 사회·경제적 특성, 특허제도의 역사적 발전과정, 그리고 특허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지식의 독점과 확산의 측면에서 정리하였다.
2. 특허제도의 사회적 특성
2.1 특허제도의 강화 배경
지적재산권 제도가 본격적으로 세상의 관심을 이끌어낸 것은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선진국의 주장에 따라 지적재산권의 범세계적 통일화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지적재산권 제도 강화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미국의 경우에도 1970년대 말까지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한 독점의 정당성과 효과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지적재산권인 특허는 이 당시 미국에서 발명의 권리를 보호하기에 비효율적이며, 약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 결과 특허를 통해 발명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으려는 사람들은 현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한 특허제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반독점법과 충돌하였으며, 실제 특허활동 중 많은 부분이 반독점적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 미국 대법원은 잇따른 판결을 통해 독점권이 특허부여의 목적이며, 특허와 이를 통해 독점적 이윤을 얻으려는 노력은 반독점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회는 특허제도를 강화시키기 위한 각종 법들을 승인하였으며, 각 주마다 다르게 적용되던 특허제도의 통일화를 이루어갔다.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면서 미국에서의 특허활동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주1.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 때문에 1980년대 초부터 특허제도를 강화하는 것으로 자국의 정책을 변경하였을까?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본 글에서는 이런 변화의 원인을 미국의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생각하려 한다. 미국은 1970년대 초까지 경상수지에 있어서 지속적인 흑자를 유지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 계속되는 무역적자를 경험하였으며, 1987년에는 총 1,596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런 경제상황 속에서 미국은 자국이 경쟁력을 갖춘 지적재산을 무역의 새로운 무기로 등장시켰다. 즉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전환되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서 지식과 자본의 연계를 통해 미래에도 자국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원했던 것을 특허제도 변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미국 등 서구선진국들은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으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TRIPs 등 지적재산과 관련된 무역협정에 가입토록 하였고, 이 과정에서 미국 등 서구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지적재산권 제도의 기준이 다른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선진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 대하여 자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변화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현실과 제도를 둘러싼 여러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같은 제도이지만 이것을 운영하는 주체와 환경이 다른데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통일화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2.2.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특허제도
지적재산권은 독점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과연 누가, 어떤 근거로, 무엇을 위해 지식의 권리자를 선별하여 독점권을 부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권리객체로서 지식은 물건이나 토지와 같은 유체물과 달리 권리내용과 범위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다. 그 결과 보이지 않으며, 사용에 의해 소멸되지 않기에 다수의 주체에 의해 공유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권리는 오직 인간의 양심에 의존하여 판별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국가는 제도를 만들어 일정한 형식을 갖춘 자에게 지식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 제도의 틀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지식을 구체화시킨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은 다른 소유권과 달리 국가가 권리실체와 범위를 보장해주는 인위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이런 인위성은 지적재산권이 제도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회, 경제 및 문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성립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적재산권 성립의 인위성과 함께 제도를 통해 지적재산의 권리자에게 부여되는 권리가 가지는 독점, 배타적인 효과 때문에 지적재산권의 성립에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려가 중요해진다. 단 하나의 주체에게만 권리가 인정되는 독점적인 권리인 동시에 타인의 권리 침해를 강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배타적인 권리인 지적재산권은 지식을 사용하는 다른 사회구성원과 자신의 지식에 대한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적재산에 대한 소유관계가 명확히 규명되기 어렵고, 그 결과 지적재산에 대한 권리 취득 과정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적재산에 대한 권리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독점의 영향을 받게 되는 다른 사회구성원들과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지적재산권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대변자 역할을 수행하여 지적재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 이와 관련 특허제도에서는 이런 사회적 합의 정신을 반영하여 공개적인 특허이의신청 제도를 마련하여 공개된 특허출원에 대해 누구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즉 지적재산권의 성립은 새로운 지식이라는 사실과 함께 장차 독점의 영향을 받게되는 모든 주체들의 권리성립에 대한 인정과 합의를 전제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지적재산권에 베어있는 인위적 성격과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은 지적재산권이 각 지역이 사회, 경제, 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가속되고 있는 전세계적인 지적재산권 제도의 통일화는 사회적 합의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각 국가의 경제, 사회 및 문화적 기준이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선진국에서 사용되는 기준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서구선진국은 각종 무역협정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된 지식에 대한 권리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정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개발도상국 또는 후진국의 경우 사회적 합의를 외부로부터 강요당하는 모순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적재산권 제도에 적용되는 사회적 합의와 실제 지적재산권 제도가 운영되는 국가의 사회적 합의간의 차이는 양자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 충돌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처음에는 국가와 국가간 충돌이 나타났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의 대립구도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해관계가 충돌하였으며, 이제는 점차 국가를 넘어서는 권력을 가지게 된 다국적기업과 국가, 다른 기업 그리고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간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과 제도의 관계에 있어서 제도는 기술보다 늦게 변화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불일치에 대한 연구에서 몇몇 학자들은 기술변화와 제도변화가 일치하지 못할 경우에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거시적인 경제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만, 다른 사회현상에서도 여기서 제기된 \’침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침체는 제도가 기술변화에 적합하게 변하는 경우에 생기지만 반대로 제도가 기술변화 보다 빠르게 나타날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서구선진국에서의 제도와 기술변화에 대한 연구에서는 제도가 천천히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현재의 세계적 상황에서는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의 경우 기술보다는 제도변화가 더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 관련된 각종 특허에 대한 논란이나 유전자 복제 등 생명공학과 관련된 특허, 소트웨어, 반도체 등 새로운 기술영역에 대한 특허에서는 이 충돌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서구선진국의 지적재산권 선정기준을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적용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충돌은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충돌이 우리 사회에서 폭넓은 \’침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래의 글에서는 특허제도를 중심으로 이런 충돌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와 함께 특허제도의 변화과정에서 가능한 우리 사회가 겪었고, 겪어야 할 침체의 구체적인 모습도 상상해 보도록 하겠다.
2.3. 특허제도의 목적
특허법은 공익과 사익의 충돌 속에서 양자의 이익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특허법에 나타난 공익은 발명의 보호를 통해 기술의 공개를 유인하고 이를 통해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며, 사익은 발명가 또는 발명기업이 발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특허제도를 통해 얻어지는 사익은 크게 자연권설과 산업정책설로 설명된다. 자연권설은 인간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연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의 지적 노동을 통한 지적산물의 소유권을 긍정하는 입장이고, 산업정책설은 특허제도가 일반 대중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경제적 원리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정책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허제도를 어떤 관점을 통해 바라보는가에 따라 이후에 볼 특허제도와 관련된 논의는 크게 달라진다. 자연권설을 강조할 경우 과학기술을 인류의 공통자원이라 생각하는 개도국이나 후진국의 입장이 약화되는 반면, 산업정책설을 강조할 경우, 발명가의 권리는 각국의 산업 상황에 따라 다르게 된다. 특허제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서는 주로 각국이 기술도입과 확산을 통한 국가 또는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 특허제도를 도입했다. 따라서 특허권은 자연권보다는 일종의 보상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산업정책설로 설명이 된다. 하지만 특허제도를 자연권설이나 산업정책설중 어느 한가지로 고정시켜 설명하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발명에는 분명 개인의 정당한 노력이 포함되어 있고, 이 결과의 사용과 확산에 대한 보상은 이런 노력의 대가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위 지식기반경제, 지식사회 등 지식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변화 추세는 두가지 가정을 적절히 보완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즉 기존 지식을 사용한 발명 작업에 투입된 발명가의 노력에서 어떤 부분이 기존 지식이고, 어떤 부분이 새로운 지식인지를 구분하는 제도적 정교함이 요구된다.
따라서 특허제도에는 발명에 대한 자연적인 소유권과 기술확산을 위한 정부의 산업정책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특허제도는 발명가에게 독점권을 부여하여 발명의 공개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개발과 기술확산을 유인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만일 발명가에게 부여되는 독점이 기술확산 또는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유인효과를 가지지 못한다면 특허제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두 축 중 하나인 정부의 정책적 측면에서 특허제도에 대한 정당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4. 독점의 효과에 대한 논의
1930년대 들어 슘페터는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성장을 설명하였다. 그는 경제성장은 잉여이익을 구하는 기업가의 기술혁신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고, 이런 잉여이익은 각각의 기술혁신에 부여되는 일시적인 독점적 지위로부터 생겨, 혁신된 기술에 대한 모방자가 시장에 들어올 때까지 지속된다고 하였다. 슘페터는 기업이 독점을 통해 시장에서 과점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기술혁신을 위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슘페터의 입장에서 특허제도는 발명가의 독점적 지위를 제도적으로 강화하여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을 일으키는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채택된다.
그런데 정보통신의 발전에 따라 인터넷과 같이 사회, 경제 주체들을 연결하는 고도로 분화된 네트워크가 등장함에 따라 특허제도 운영에 정당성을 부여해 왔던 독점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슘페터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주체들이 가지는 \’규모\’가 경제성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규모의 경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 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충분한 이윤을 얻을 때까지 다른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도로 분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사회, 경제구조가 등장함에 따라 슘페터가 전제하고 있는 안정에 대한 생각은 중요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정보의 확산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환경변화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나타나는 기업이나 개인의 지속적인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지식의 확산속도가 더디게 이루어질 때는 특정한 지식을 소유하고 이를 통해 생산규모를 크게 하여 새로운 지식이 나타날 때까지 독점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지만 지식의 확산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식의 독점보다는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여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물론 특허제도 또한 발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대신 특허와 관련된 지식을 사회에 공개토록 하여 지식의 공유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인위적인 정보의 공개를 유도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구조적 특성에 따라 지식의 공유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독점의 효과와 관련하여 현대에서 발명가의 독점적 지위는 주로 대기업을 통해 획득된다. 그리고 대기업은 산업에 대한 독점권 행사를 위해 더 많은 특허를 모으고 이를 통해 산업에 대한 신규진입자를 제지하고, 이 결과 산업에서 개인 발명자 또는 중소기업에 의한 새로운 기술의 창작이 방해받을 수 있다. 그리고 특허에 의한 독점의 강화가 이후의 후속 기술개발에 장애가 된다면 이는 특허제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허제도는 단순히 발명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이를 통해 기술의 확산을 촉진하여 또 다른 기술혁신이 일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특허제도는 본래적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던져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부터는 이런 논의의 근본적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특허제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이를 통해 앞서 제기한 특허제도의 특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특허제도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3. 특허제도의 역사적 발전과정
3.1 특허제도의 기원
중세시대에는 자연에 대한 비밀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아닌 그것을 알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고, 그 결과 과학혁명 이전까지 과학기술은 특정인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되었다. 이후 16세기와 17세기에 들어 인쇄, 과학탐구를 위한 협력제도, 특허와 같은 발명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메커니즘이 만들어지고, 과학기술은 점차 폐쇄된 지식에서 공공적 지식 개념으로 바뀌어 갔다. 특허제도 또한 이런 흐름과 함께 변화했다. 특허의 기원에서 발전과정에 이르기까지 특허제도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 경제 그리고 대중의 인식을 반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변화했다. 특허 개념은 15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기술자들은 자신의 발명이 공개될 경우 발명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다. 그 결과 발명의 기술적 내용은 암호 등의 일반화되지 않은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발명이 비밀로 숨겨져 있는 한 기술 등 지식의 발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장되었다주2.
그리고 이런 인식의 변화는 15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지방을 중심으로 발명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주3. 최초의 공식적인 특허법은 1474년 베니스 지방에서 제정되었으며주4, 이 당시 베니스 특허법은 현대 특허제도가 가지고 있는 발명에 대한 조건인 새롭고, 유용하며, 고안된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요구했고, 특허의 보호기간을 10년으로 하여, 누구든지 이 기간 동안은 특허 받은 발명을 모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주5.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베니스 지방에서 최초의 특허가 나타난 것은 당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인들을 외부로부터 끌어 모아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경제정책의 일부였다주6. 이렇게 시작된 특허제도는 이후 16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유리제조업자를 중심으로 일반화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유리제조업자들은 자신의 기술이 가지는 재산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 가치를 이탈리아 지역을 너머 다른 지역에서도 보호받기 원했다. 그 결과 베니스 유리제조업자들의 활발한 무역활동을 통해 전 유럽에 베니스 특허법이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주7.
3.2 특허제도의 변화과정
16세기에 유럽전역으로 확장된 특허제도는 이후 18세기에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 제도가 변화하는 과도기를 맞이한다. 1852년까지 영국에서는 16세기에 제정된 특허제도가 거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영국은 16세기에 유럽대륙에 있는 기술자들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므로 대륙의 기술을 영국으로 도입하기 위해 특허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이런 목적과 달리 영국의 특허제도는 이후 17세기와 18세기초까지 특권층이 사적이익을 충당하는 도구로 전락하였다. 그 결과 이후 독점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을 제한하는 \’독점에 관한 법\’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특허권은 몇 가지 제한을 가진 독점권으로 변하였다.
이후 크롬엘 정부가 들어서자 특허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이의가 제기되었고, 이에 따른 특허제도의 변화 이후 실제적인 특허제도의 이용은 제한되었다. 제한의 주된 원인은 특허권을 통해 일정기간 독점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일정한 요금을 내야하는 조항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국의 특허제도는 프랑스에 비해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고 있었다. 영국의 경우 특허출원자의 발명내용에 대한 엄격한 사전 조사가 없었다. 대신 특허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에만 특허의 내용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였다. 반면 나폴레옹 시기와 혁명기를 거치면서 국가 개입주의가 강화된 프랑스는 특허 전 특허내용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졌다주8. 특허심사는 프랑스의 파리 아카데미에 의해 진행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이런 관행은 제도화되었고, 파리 아카데미에 의한 발명 내용의 사전 조사는 특허권을 부여받기 전에 발명의 내용을 공공화 시키는 효과를 가졌다. 이외에 프랑스는 영국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프랑스의 특허제도는 특허권을 가진 발명가에게 다른 사람이 그 발명을 발명하기 전까지 발명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영국 특허법에도 16세기와 17세기에 이런 조항이 종종 보였지만 18세기 영국 특허법은 특허권자가 영국에 거주하거나 또는 그의 특허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운 특허조건에 대한 우려가 영국 내에서 커지자 이후 강제사용허락 조항(1883)과 강제실시권 조항(1907)이 각각 영국 특허법에 삽입되었다. 이런 영국 특허법의 특성은 당시 자유로운 사회분위기의 영향과 함께 상당한 산업화를 초기에 이룬 영국이 가진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 반면 프랑스는 영국에 비쳐 뒤쳐진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영국내 기술자들과 제조업자들이 프랑스에 정착하도록 도왔으며, 이런 산업정책이 특허에도 반영되어, 특허의 권리화보다는 이의 사용과 이를 통한 기술확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영국 특허법의 자유로운 모습은 프랑스 특허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는 1844년 특허제도 갱신을 통해 특허에 대한 면밀한 사전 조사보다는 단순한 등록을 통해 특허를 취득하는 영국의 관행에 가깝게 변하였다. 이는 국가의 지나친 간섭으로 자국내 기술자들이 프랑스보다는 영국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상업화하기 원했던 것에 대응한 조치였다주9.
3.3 산업혁명기의 특허제도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17-18세기에 미비하게 존재했던 특허제도에 다시 한번 관심이 모아졌다. 산업혁명과 이후의 변화과정을 통해 과학기술의 경제적 가치와 산업에 사용되는 과학기술의 내용이 크게 변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특허제도에도 영향을 미쳐, 산업혁명 시기의 특허제도는 이전과 달리 특허권자에게 자신의 발명을 명확하고, 완전하게 기술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중대한 변화로 특허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변했음을 의미했다. 이전까지 특허제도를 통한 사회적 이익은 새로운 기술이 발명가의 이주나 발명 완성품의 공개 또는 사용허락을 통해 자국 시장에 도입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발명의 내용이 점차 복잡해지자 18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발명을 통한 중요한 이익이 발명가에 대한 특허 이면에 놓인 기술적 노하우에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특허의 경제적 역할은 생산된 제품을 시장으로 도입하는 것에서 기술에 대한 새롭고 유용한 정보를 도입하는 것으로 변하였고, 이 기술적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허내용에 대한 자세한 기술을 요구하게 되었다주10.
영국의 경우 1734년부터 특허권자에게 발명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설명이 적힌 특허명세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18세기 중반까지는 발명의 상세한 설명에 대해 엄격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특허에 대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법원에서 특허명세서를 면밀히 검토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후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특허심사에서 특허명세서를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확산의 측면에서 특허명세서의 역할은 제한되었다. 이는 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특허명세서의 공개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1794년부터 제한적으로 전체 특허명세서중 일부분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였다. 누군가 특허명세서를 요구한다면 특정 기술에 대한 전체 명세서를 구입할 수는 없었고 단지 일부분의 복사본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 분량은 전체 특허명세서 중 약 1/4정도에 해당되었지만 그나마 전체 내용 중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한정하였기에 특허명세서 공개의 기술적 효과는 적었다. 더욱이 프랑스의 경우 명백한 규정으로 특허명세서의 공개를 금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특허제도를 통한 기술의 확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허명세서는 당대가 아닌 후대의 기술적 참고 자료 역할을 하고 있었다주11. 특허제도를 기술확산에서 특허명세서의 역할은 이후에도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된다. 기술을 통한 완제품이 아닌 기술 자체에 대한 정보에 대한 요구로 특허명세서에 대한 규정이 바뀌었지만, 모든 기술에 대한 지식이 특허명세서를 통해 표현될 수 없기에 그러하다.
3.4 19세기 미국의 특허제도
19세기 미국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한 기업과 사적재산권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었다. 경제적 가치가 법에 반영되어, 유용성을 법 해석과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법이 가지는 최상의 가치는 기업이 법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었다. 법 또한 경제성장을 일으키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미국은 1640년에서 1776년까지 영국의 특허법 개념을 받아들였지만, 19세기초만 하더라도 미국의 특허법은 미비하게 운영되었다. 18세기에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발명의 사용에 무관심했으며, 최신 기술을 사용하기 꺼렸다. 이 당시 미국인들은 미국의 번영에 있어 발명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기술에 대한 이런 인식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기술의 가치가 낮게 인식되는 당시 상황에서 판사들은 특허심사의 기본 요건이 되는 유용성을 비도덕적인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생각했다주12. 인간 삶의 도덕적 가치를 통해 특허 여부를 결정했던 당시 상황에
서 새로운 기술은 전통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발명이 경제발전을 도울 수 있고, 법이 경제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라났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점차 확산됨에 따라, 1826년 판결(Earle v. Sawyer, 4 Mason 6, 1826)에서 "발명은 반드시 유용해야 한다. 이는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아닌 좋은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로 유용성이 다시 해석되었다. 그리고 유용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특허는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재산권으로 자리잡아 갔다. 많은 미국인들이 특허가 기술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1832년 대법원 판결(Raymond, 31 U.S.,6 Pet. 218, 1832)을 통해 특허법의 이익을 "이 법의 중요한 목적은 개인의 발견으로부터 나오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라 하여 특허법의 목적을 명확히 하였다. 하지만 1836년 미국 특허법의 개정 이전까지 특허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익 측면을 강조한 결과 많은 발명가들이 특허제도를 통해 돈을 벌기는 힘들었다. 1836은 특허법 개정은 특허침해에 대한 소송을 용이하게 하고, 특허의 매매를 간단히 하는 등 발명가의 이익 부분을 강조하였다주13. 그리고 이 개정 이후 미국의 특허제도는 급격하게 성장하였다주14.
3.5 반특허운동
19세기 말에는 당시에 일어났던 자유무역운동에 힘입어 인위적인 독점을 반대하는 반특허운동이 1850년에서 1873년 사이에 유럽지역에서 일어났다. 이 운동은 특허의 경제적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그 결과 네델란드(1869-1912)와 스위스(1850-1907)는 이 기간 이후 상당 기간 특허제도를 폐지하거나 초보 수준의 특허제도를 유지하였다주15. 하지만 독점에 대한 반대는 19세기말의 공리주의적 견해를 통해 지적재산권 보호를 합리화하는 주장과 이후 일어난 공황과 이것에 수반된 보호무역주의 및 민족주의의 대두로 말미암아 곧 사라지게 되고 대부분의 국가가 특허 등 지적재산권 제도를 제도화하게 되었다주16. 이 당시 일어난 반특허운동이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의 공공화\’에 대한 개념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유럽 각국의 산업화 정도가 다른 상황에서 선진공업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여야만 했던 유럽의 후발공업국들은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반특허운동을 일으켰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는 다른 면에서는 유럽에서 이미 상당한 정도로 특허를 통한 기술의 권리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3.6 현대의 특허제도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한 특허제도의 발전과 확산은 이후 국가간 각종 협약이 체결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1883년에는 산업재산권에 관한 파리협약주17이 체결되었고, 1886년에는 저작권에 관한 베른협약이 만들어졌다. 이후 1892년에는 스위스 연방정부의 감독하에 있던 이 두 협약을 관리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통합하여, 지적재산권 보호 국제합동사무국(BIRPI)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후 1967년 파리협약과 베른협약 등이 개정될 때 세계적 수준에서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촉진할 목적으로 한 국제기구의 설립조약이 체결되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였다. WIPO는 UN과의 협정을 통해 1974년부터 UN의 전문기관으로 인정되었다. WIPO 국제사무국은 BIRPI의 후계기관이 되었으며, 파리협약과 베른협약 이외에 여러 협약에 대한 효율적 관리를 맡게 되었다. 이후 UR협정을 통해 지적재산권의 국제화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그 결과 맺어진 WTO체제 내의 TRIPs협정(1994)이 오늘날 전세계적인 지적재산권에 대한 규범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TRIPs협정은 기존 규범(파리협약, 베른협약 등)을 수용하여 지적재산권 제도를 국제화시키려는 선진공업국의 오랜 노력의 결과였다.
TRIPs협정 중 특허권에 대한 내용에서는 협정 회원국들이 어떠한 기술분야를 특허의 대상으로부터 전반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주18과 일단 특허권에 권리가 부여되었을 경우 발명의 장소에 따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두었다. 이는 이전까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각국마다 독립된 특허제도를 운영했던 것에서 점차 통일된 특허제도를 이루어 가는 큰 전환점이 되었고주19, 그 결과 선진국의 발명가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발명에 대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전까지는 각국에 따라 특허를 허용할 것인가의 여부가 문제가 되었지만, TRIPs협정 아래에서는 특허에 대한 보호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의 보호강도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TRIPs협정은 지적재산권에 관해 분쟁이 생겼을 경우 협정에 명기된 분쟁해결 방법에 따라 무역보복방법 등으로 분쟁을 해결하도록 하여, 실제적인 문제해결 방식의 권한을 선진국에 부여하게 되었다주20.
특허제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서 특허제도는 발명자의 권리 보호보다는 국가의 경제 정책적인 측면에서 도입, 운영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특허제도의 기원에서 현재까지 특허제도가 경제정책의 한 도구가 된다면, 전세계적인 특허제도의 통일화는 결국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로의 통합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특허제도를 비롯한 지적재산권 제도의 통일화를 추구하는 서구선진국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를 주장하는 것일까? 지적재산권 제도의 강화와 관련된 몇 가지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4. 특허제도에 나타난 다양한 충돌
4.1 특허제도에 대한 다양한 입장 : 선진국과 후진국의 입장
선진공업국은 후진국에 대해 다양한 수단을 통해 특허제도의 강화를 요구해 왔다. 특허제도는 이미 국가와 국가간 무역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후진국에 특허제도의 강화를 요구하는 선진국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주21.
선진국은 특허제도가 강화되면, "첫째, 개발도상국 기업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증가할 것이다. 둘째, 선진국으로부터 개발도상국으로의 특허를 통한 기술확산이 촉진 될 것이다. 셋째, 개발도상국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창출하여 개발도상국의 산업 및 기술발전을 일으킬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은 지적재산권의 강화가 전세계적인 경제 후생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지적재산권 강화에 대한 요구는 1993년에 타결된 TRIPs협정을 통해 구체화되고,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지적재산권 제도를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 이에 반하여 개발도상국 또는 기술후진국은 특허제도의 약화를 주장한다.
개도국과 후진국의 주장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면주22, 첫째, 지적재산권 관련 협정은 선진국에게는 공평하지만 이를 조약 체결 전부터 기술력에 차이가 있는 개발도상국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불평등이다. 둘째, 선진국은 개도국과 후진국에 출원한 특허를 사용하여 독점적 지위만을 누릴 뿐 기술확산의 파급효과를 일으키지 않는다. 셋째, 일정한 기술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상 후진국에서 특허발명을 사용하여도 선진국의 노하우를 얻을 수 없기에 기술의 국산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도국 또는 후진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중요한 지표로서 특허된 기술의 실시율이 있다. 많은 개도국 또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의 특허가 독점적 지위만을 가지고 이의 실시를 하지 않거나, 실시를 하여도 법적 실시 유형중 하나인 \’수입\’을 통한 실시를 하므로 실제적인 기술의 사용에 의한 학습과 이전, 확산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개도국과 후진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제실시권을 통해 선진국의 특허를 실시하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협약인 파리조약에서는 일정기간내 강제실시권의 발동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이런 실시율과 관한 기존 연구에서는 1980년대초까지 개발도상국에 등록된 특허의 84%는 선진국이 소유하고 있고 이중 약 5-10%만이 개발도상국의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주23. 그리고 이와 관련 앞서 언급한 강제실시권과 함께 개발도상국은 개발도상국에서의 \’배타적 강제실시권\’을 제안하여, 특허권자 자신의 기술사용 자체도 배제하여 특허권자는 저가의 기술임대료만을 얻도록 하려 했으나 선진국의 반대로 타결되지 못했다.
4.2 발명에 대한 사회적 인정
과학기술의 공유적 성격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권리가 어디에 귀속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과학기술 자체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너머 과학기술의 성격이 점차 복잡해지는 현대에서 하나의 과학기술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과학기술 생성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발명은 보이지 않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명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결과 특허 등 지적재산권의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판단하는 문제가 어려워지고, 이는 국가간, 기업간, 기업과 대학간의 협동연구가 일반화되는 시점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현재는 이에 대한 판단을 획일화 하여 한국, 일본 등은 먼저 특허출원을 하는 자를 발명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실제적인 선발명자를 발명자로 인정하고 있다 특허에 대한 권리는 독점권으로 보호되기에 이에 대한 다른 기여자의 권리는 무시될 수 있다. 또한 선출원자를 보호하는 한국과 같은 제도하에서는 발명자에 대한 명확한 구분 기존은 있지만 실제적인 발명자가 아닌 자가 특허권자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리고 이의 간접적인 영향은 상업화 단계에 있는 협동연구와 이 협동연구에 대한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제한하므로 결과적으로 과학기술의 확산을 제한하는 부분이다. 물론 이는 과학기술의 상업화 자체가 주는 영향이지만 과학기술의 성과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영향요소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과학기술 성과에 대한 권리귀속 문제는 더욱 확장되어, 후진국의 농업 관련 부분으로 옮겨질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이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키는 가운데 후진국에 이전부터 있어 왔던 고유한 농업기술을 자신의 특허권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이는 다국적 기업은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농업기술에 대한 주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약간의 변형 또는 응용과 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통해 이미 오랜 시간 사용되고 있던 농업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에 대한 권리가 제도화된 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것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즉 서구의 기술문화와 함께 시작된 특허제도는 자신의 방식으로 과학기술에 대해 인식하지 않는 방법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고유한 창의력 등은 인정되지 못한다.
4.3 특허제도를 통한 기술확산의 가능성
특허제도를 통한 기술확산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 기술임대 또는 로열티를 받고 특허된 기술의 상업적 사용을 허락하는 것이고 둘째, 특허명세서 등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 기술정보로 활용되는 것이며 셋째, 특허내용을 자국내에서 사용하여 기술에 대한 학습효과로 기술확산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의 문제는 높은 임대료 등으로 그 확산이 제한될 수 있으며, 세 번째의 경우 앞서 본것과 같이 낮은 실시율이 문제가 된다. 두 번째 기술확산의 방법으로 특허명세서의 경우는 개발도상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중요한 기술정보의 원천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과학기술 지식이 기호화될 수 없기에 새로운 발명에 관련된 노하우 등의 암묵적 지식은 숨겨져 있다. 따라서 개도국의 기업이 자체의 기술능력으로 그 노하우를 찾아내지 못할 경우 기술의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기술확산의 방법론 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 기술정보가 특허되고, 이를 통해 확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학, 제약 산업의 경우 기업의 발명을 특허화하는 비율이 높지만, 전자 산업 등은 낮은 특허 비율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내 12개 산업분야의 100개 회사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의약품 65%, 화학 30%, 석유화학 18%, 기계 15%로 특허 보호가 발명의 보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주24. 이는 화학, 제약 등의 경우 발명의 완성품을 통해 발명의 기술적 정보가 쉽게 파악될 수 있는 반면 기계 산업에서는 완성품을 통한 기술정보의 획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다시 생각하면 특허출원되는 기술분야는 특허제도를 통해 기술정보가 공개되지 않더라도 그 내용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기에 빠른 특허화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한편, 기계산업의 경우 기술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 특허가 아닌 비밀의 방식으로도 자사의 기술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에 택하는 전략일 것이다. 따라서 독점의 대가로서 기술확산을 유도하는 특허제도가 특허외에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가능한 기술확산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과연 여기에 독점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할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650개 주요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한 선행연구에서는(Levin, 1987) 특허명세서를 통한 신기술습득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제법에서는 7가지 기술획득 방법중 5위를 제품에서는 7가지 방법중 6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4.4 특허권의 보호 범위
TRIPs협정 등을 통해 특허 등 지적재산권의 침해에 대한 조치는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제는 어떤 발명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보다는 특허를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해 진다. 즉 각국이 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의 운영방법과 특허제도에 대한 정책에 따라 보호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특허분쟁에서 나타나는 특허침해범위에 대한 판단에서 나타난다. 한국과 일본 등 자국의 기초과학에 근거하여 산업발전을 이룬 것이 아닌 외국의 기술을 모방, 개량하여 산업발전을 이룬 나라는 산업정책상 특허권을 약하게 보호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 특허 청구범위를 좁게 해석한다. 반면 미국과 같은 나라는 특허 청구범위를 넓게 해석한다. 한국, 일본 등 전자의 경우에서는 특허청구항과 같은 내용만을 보호대상으로 하지만, 미국 등 후자의 경우는 특허청구항과 같은 가치를 가지는 대상도 특허의 보호대상으로 하여, 전자와 후자의 국가에서 같은 발명에 동시에 같은 내용으로 특허가 부여되어도 실제적인 특허권의 범위는 다르게 된다. 그리고 특허 침해 여부가 이 특허청구항에 의해 결정되기에, 특허에 관한 분쟁이 생겼을 경우 어느 지역에서 이에 대한 재판이 열렸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일본과 한국 등에서는 피고가 침해판결을 받을 확률이 큰 반면 미국은 이와 반대이다주25.
5. 마치는 글 : 특허제도의 새로운 역할
이상에서 간단히 특허제도를 중심으로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한 지식의 독점과 확산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특허제도의 경우 15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현재까지 과거에 사용되었던 원칙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원칙은 독점을 통해 기술의 사회적 공개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지식의 사회적 확산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적재산권은 분명 진정한 지식창조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를 통한 사회, 경제의 전반적인 발전을 꾀하는 정책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책적인 측면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기본원칙은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에 맞추어 조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식기반사회라 불리는 현대 사회의 특징은 고도로 분화된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의 교류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의 교류는 사회, 경제 전반의 급속한 변화를 유도하여 독점의 효과를 감소시키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 나타나는 지식 자체의 급격한 변화는 지적재산권 제도와 지식의 부정합성을 만들어 양자의 충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인 측면과 함께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다국적기업 그리고 선진공업국의 입장은 많은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으로 하여금 지식사회로의 전환을 가로막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네트워크의 한편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되는 지식을 가로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즉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 경제, 과학기술적 주체간의 상호작용을 가로막아 국가 또는 기업의 변화를 방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특허제도를 비롯한 지적재산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지적재산권이 새로운 사회 구조 속에서 더욱 강조되는 지식의 확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의 문제이다. 그리고 만일 지적재산권 제도가 지식의 공개와 확산을 통한 사회 전반의 발전 없이 독점의 효과만을 누린다면 비록 지식창자자의 권리보호라는 다른 중요한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 제도의 궁극적인 존립 근거는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 Jaffe, Adam, B.(2000) "The U.S. patent system in transition : policy innovation and the innovation process", Research Policy 29, pp.532-533
2) Eamon, W.,(1990) "From the Secrets of nature to public knowledge", L.indberg, D., C., and Robert Westman, S., R. (eds.), Reappraisals of the Scienctific Revolution, Ch.8.,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334-339.
3) Long, P., O.(1991) "Invention, Authorship, "Intellectual Property and the Origin of Patents: Note toward a Conceptual History", Technology and Culture Vol 32, No.4, October 1991, p.874 ; 동 글에서 15세기 이후 유리제조업자 사이에 나타난 발달된 기술에 대한 다툼과 경쟁을 통해 지식이 재산권으로 인식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4) 최초의 특허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Eamon, W.과 Long, P., O 사이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Eamon을 비롯해 대부분의 책에서는 플로렌스 의회의 특허를 최초의 특허로 소개하고 있는 반면 Long은 13세기에 베니스 지방에 몇가지 특허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특허의 기원에 대한 논의가 부적절한 문헌과 지나친 일반화 그리고 경제사와 기술사적인 맥락에서 특허를 연구하지 못하기에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5) Eamon, W.의 같은 책 pp.338-340
6) 이에 대해 어떤 역사가들은 최초의 베니스 특허제도는 장인들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현재 지방정부가 가지는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책이라고 해석한다.
7) Long, P., O.의 같은 책, pp.879-880.
8) MacLeod, C.의 같은 논문 pp.889-890, pp.894-898에 정리된 내용과 Liliane Hilaire-Perez, "Invention and the State in 18th-Century France", Technology and Culture Vol 32, No.4, October 1991, pp.911-932.에 프랑스 특허제도의 모습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9) MacLeod, C.(1991) "The Paradoxes of Patenting: Invention and Its Diffusion in 18th and 19th Century Britain, France, and North America", Technology and Culture, Vol 32, No.4, October 1991, pp.885-888.에 나타난 내용. 저자는 18세기와 19세기를 통해 영국과 프랑스, 미국의 지적재산권법에 어떤 특징이 나타났고, 이 특징이 발명의 상업화와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고 있다.
10) Robert P. Merges et al(1997), "Patent law, historical background", in Intellectual Property in the new technology age, Ch.3., Aspen Law & Business Press, pp.123-127
11) 특허명세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MacLeod, C.의 같은 논문 pp.895-898에 정리되어 있다. 이외에 Dood, K., J.의 "Pursuing the Essence of Innovations:Reissuing Patents in the 19th Century", Technology and Culture, Vol 32, No.4 pp.999-1017 서는 19세기에 특허권의 기술적 권리범위를 나타내는 특허명세서가 특허출원중 임의로 수정되어 다시 출간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12) Lowell v. Lewis, 1 Mason 186(1817), Bedford v. Hunt, 1 Mason 303(1817) 등에서 언급된 내용
13) Lubar, S.(1991) "The Transformation of Antebellum Patent Law", 『Technology and Culture』 Vol 32, No.4, October 1991, pp.932-959 에서는 미국의 특허법이 19세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발명과 특허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시작하여 산업화 과정 가운데 중요하게 등장한 기술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4) Robert. P. Merges et al (1997), pp.123-127
15) Robert P. Merges et al(1997), pp.126-127에 정리된 내용. 당시 유럽지역의 반특허운동에 대해서는 Schiff, E.(1971) "Industrialization without National Patents : The Netherlands 1869-1912 : Switzerland 1850-1907" 인용. 이 책의 내용을 통한 설명에서 저자는 네델란드와 스웨덴에서 특허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면 그 당시와 같은 산업성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16) 이미현(1985) 『개발도상국의 기술도입과 특허제도』", 서울대학교 법학과 석사학위 논문
17) 187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회의를 통해 산업재산권의 국제 통일 기준의 필요성이 논의되었고, 이어 개최된 1883년 파리회의에서 각국의 산업재산권제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재산권을 국제적으로 통일 보호하기 위한 방침을 세운 것이 파리협약이다. 1884년 11개국에 의해 비준되어 발효된 파리협약은 내외국인평등 원칙, 각국 특허독립의 원칙, 우선권 주장의 원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황종환,특허법,1996,pp.75-77;산업재산권조약해설,1992,pp41-60) 파리협약은 산업재산권 관련 최초의 다자간 협정으로, 이런 다자간 협정에 대한 필요는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TRIPs협정에까지 이르게 된다.
18) TRIPs(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협정 제 27조 1항, 우리 나라 특허법 26조는 이와 관련 특허에 관하여 조약에 특허법과 다른 규정이 있을 경우, 그 규정을 따른다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다.
19) OECD의 1997년 연구보고서인 Patents and Innovation in the International Context에 서 OECD는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기술의 확산과 지속적인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서 특허제도의 더 많은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일화와 관련하여 국제협력연구, 외국인 직접투자와 무역이 증대하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특허제도가 다른 것이 기술수용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국제기술협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하였다.
20) 이기수 외 공저(1996), 지적재산권법, pp.31-44와 김용일(1995), WTO, 세계무역기구협정해설 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음.
21) 이대희(1996), 『특허분쟁에대한 경제학적 접근』,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박사학위 논문, pp.104-105
22) 이대희(1996) pp.103-104
23) 坂 井昭夫(1994), "日美 ハイテク摩擦と知的所有權", 有斐閣, pp.203-205, 이대희(1996), p.103 에서 재인용
24) Mansfield(1986) ;Levin et al, 1987과 Arundel et al, 1995 의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에 대한 연구에서 매우 효율적을 5, 전혀 효율적이지 않음을 1로 구분하여 특허제도를 통한 기술정보 보호의 효율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약품, 플라스틱 재료나 제품에서 효율적에서 매우 효율적인 것으로 통신장비, 항공산업, 제지산업에서 비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Keith Pavitt,1997,p.7).
25) 이대희(1996) pp.98-99
첨부 파일과거 URL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