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저작권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무지와 편향을 그대로 보여준 문화체육관광부

[논평] 저작권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무지와 편향을 그대로 보여준 문화체육관광부
- ‘저작권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의견서’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회신 비판

2008년 7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입법예고한 저작권법 개정 법률안에 대해 정보공유연대 IPLeft와 진보네트워크센터(이하 단체)는 2008년 8월 7일 의견서를 발송하였고, 문화부는 2008년 10월 15일 회신을 보내왔다. 그러나 문화부의 답변은 단체가 제기한 문제제기에 대해 직접적인 반박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어서 무척 실망스럽다.

단체는 의견서를 통해 소위 “삼진아웃제”라 불리는 제133조의2(정보통신망을 통한 불법 복제물의 삭제명령 등) 조항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해당 조항이 불분명한 사유를 들어 사법적인 절차도 없이 문화부 장관의 직권으로 과도한 처벌을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33조의2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이메일,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P2P등을 제공하는)에게 불법복제물 등의 복제·전송자에 대한 경고 (제1항제1호)

2.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불법복제물 등의 삭제 또는 전송 중단 (제1항제2호)

3.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1)에 따라 경고를 받은 복제·전송자가 반복적으로 불법복제물 등을 전송한 경우에 해당 복제·전송자 의 계정(해당 복제·전송자의 다른 계정도 포함)을 정지 또는 해지 (제2항)

4.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2)에 따른 명령을 3회 이상 받은 게시판의 폐지 (제3항)

5.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중에 제104조제1항 (불법복제물 필터링 기술 조치 의무)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2회 받고 다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경우 또는 2), 3), 또는 4)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과태로 처분을 3회 받고 다시 명령의 대상이 된 경우에 해당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정보통신망에 대한 접속 차단 (제4항)

문화부는 회신을 통해 제133조의2에서 위에서 열거한 내용을 모두 유지하되, 다만 3)과 5)에서 이용자 계정의 정지 또는 해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접속 차단은 ‘일정한 기간’을 설정하여 정지 또는 차단하는 것으로 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문화부 주최의 공청회에서도 제기된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문화부가 일부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일정 기간 정지 또는 차단 만으로도 개별 이용자의 온라인 활동이나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서비스 제공에는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 이용자 권리에 대한 부당한 침해의 소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 사법적 판단이 없는 자의적 정부 검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볼 때, 이 법안에 제기되었던 핵심적인 문제는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문화부는 회신에서 1) 및 2)와 관련하여 “온라인을 통한 불법복제물 유통으로 문화산업이 존폐의 위기에 있”고, “경고·삭제 명령은 필요 최소한의 조치로서 신속하게 내려야 하므로 요건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모든 침해행위를 검색하여 삭제 요청을 하는 것은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법복제물 때문에 문화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라는 것은 지난 수년 동안 정부가 저작권을 강화할 때 항상 동원하던 ‘전가의 보도’다. 그 논리만 동원하면, 어떠한 과잉 규제도 합리화될 수 있는가? 불법복제물 때문에 문화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도 위기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일 뿐더러, 저작권법 강화로 정보의 유통과 이용이 제약을 받고 이로 인해 2차적 창작(특히 비영리적 영역에서)이 ‘존폐의 위기’에 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는다.
문화부는 ‘저작자의 의도에 명시적으로 반하지 않는 한, 저작물의 복제, 전송을 불온시할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권장되어야할 것’이며, 따라서 정부가 저작권자의 요청도 없이 ‘자의적으로’ 삭제를 하는 것은 \’정보 유통에 대한 과도한 규제이며,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또한, 저작권자가 모든 침해행위에 대해서 삭제 요청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문화부는 가능하다는 것인가?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문화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투여할 것인가? 제103조에서 규정한 소위 “노티스앤테이크다운(notice and take-down)”과 같이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단이 이미 존재하는 저작권자의 편의는 보장하면서, 이용자 입장에서는 사법적인 절차도 없이 부당하게 정부 유통을 제약당할 수 있는 정부의 행위를 위해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되어야 하는 어떠한 근거가 있는가?

3)과 4)의 명령에 따른 이용자 계정의 정지 또는 해지와 게시판의 폐지의 경우, 기간 설정 정지로 규정하겠다는 것은 전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단체는 불법복제물과 관련된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이와는 관련 없는 이용자의 온라인 활동 전반을 규제하는 것과 게시판에서 불법복제물이 아닌 다른 정당한 게시물까지 규제하게 되는 불합리성을 제기한 바 있다. 계정 정지나 게시판 폐지에 일정 기간을 설정한다고 해서, 이와 같이 부당한 규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상식 수준에서 판단할 수 있지 않은가? 오히려 이러한 규제는 불법복제와 관련된 이용자나 게시판보다 그렇지 않은 이용자나 게시판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불법복제와 관련된 이용자나 게시판은 불법복제를 주목적으로 특정 게시판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다, 이런 명령을 받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계정 정지와 게시판 폐지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침해행위에 연관된 이용자나 게시판의 합법적인 이용자가 받는 피해는 크다. 따라서 문화부가 주장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5)의 사이트 차단에 대한 문화부의 회신 내용은 문화부가 이러한 명령 권한을 가졌을 때, 얼마나 자의적으로 법 적용을 할 것인지를 오히려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문화부는 회신에서 “기술조치 이행여부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형태, 복제물의 양 등의 주관적인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내려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단체가 제기한 것은 ‘저작권 침해 여부는 판단이 애매한 경우도 많고, 해당 서비스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사업자가 저작권 침해 방지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등에 대한 고도의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고, ‘권리자의 주장뿐만이 아니라, 이용자나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주장도 균형있게 고려되어야’하며, ‘효율성과 더불어 더욱 중요한 것은 공정한 절차’이기 때문에, 행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사법부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이트 폐쇄에 이르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주관적인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을 해야 할 곳은 문화부나 저작권위원회가 아니라, 사법부라는 것이다. 문화부의 회신은 누가 보아도 문화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제133조의2에 담긴 과잉 규제에 대한 단체들의 우려는 단지 국내 단체의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연합 각국의 대표들이 모인 유럽의회도 이러한 우려에 공감하고 있음을 다음에서 일부 인용한 “유럽 문화산업에 관한 2008년 4 월 10일 유럽의회 결의문(European Parliament resolution of 10 April 2008 on cultural industries in Europe)”에서도 볼 수 있다.

  “의회는 집행위와 회원국들이 인터넷은 정보 사회를 통해 세대를 하나로
  모음으로써 문화적 표현, 지식에의 접근, 그리고 유럽의 창의성에 있어
  민주주의적 참여를 위한 광대한 플랫폼임을 인식할 것을 요청하는 수정안
  을 근소한 다수로 채택하였다. 의원(MEP)들은 집행위와 회원국들에게 ‘
  인터넷 접속 중단(interruption)과 같은‘ 시민권적 자유와 인권 그리
  고 비례성, 효과성과 만류성(dissuasiveness)의 원칙과 충돌하는 조치를
  채택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문화부는 이러한 내용없는 회신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 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비용-단순히 문화부의 단속과 명령에 따른 비용만이 아니라 온라인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가 져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을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무릅쓰고 유독 저작권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할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문화부가 진정 문화산업의 위기를 걱정한다면, 불법복제와 문화산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문화의 창조와 향유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복리를 문화라는 큰 틀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지원할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을 우선하기 바란다. 그 비용과 효과를 포함한 문화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판단은 물론, 이미 도입된 규제의 영향에 대한 검토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규제를 자판기 커피 뽑듯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8년 10월 23일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첨부 파일과거 URL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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