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사는 문제에 대한 단상 : 존엄사와 푸제온 강제실시 불허 판결

지난달 23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존엄사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존엄사가 시행된 지 1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모 할머니는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김모 할머니의 존엄사는 의학적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외부적 소생기술의 도움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학적 판단이 존엄사 시행의 중요한 법적 근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논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존엄사가 시행될 때, 인공적 소생기술이 제거된다 해도 심장박동이 멈추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인공적 소생기술이 제거된 이후에 길게는 10여년을 넘게 스스로 생명을 유지한 사례들이 수차례 보고 된 바 있다.

문제는 존엄사 자체가 실질적 죽음과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현대 정치에서 중요한 어떤 지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둘러 이야기하자면 존엄사라는 개념은 생명을 가진 주체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 생명의 죽음을 타자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언급된 타자란 법적 절차에 따라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주권의 차원을 말한다.

법은 체계화된 의학적 지식에 준거하여 생명을 유지할 것인지 말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의학적 지식이 (과학적 객관적 진리처럼 여겨지지만) 죽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혼수상태(코마)는 보통 ① 의식, 운동성, 감각과 같은 외부적 관계기능의 상실 ② 호흡, 혈액순환, 체온 조절과 같은 식물 상태의 생명 기능들의 중단 ③ 관계 기능들이 잔여된 각성코마 그리고 ④ 인공호흡이나 아드레날린 정맥 주사를 통한 심장 혈액 순환의 유지, 체온 조절 기술과 같은 새로운 소생기술이 중단되면 생명이 멈추는 심층코마로 분류된다고 한다.

여기서 네 번째로 언급된 심층코마는 1950년대 이후에 의학계에 도입된 개념으로, 심장박동의 중단과 호흡기능의 정지라는 (의학 기술의 발달 이전까지 죽음의 기준이 된) 사망 판단의 기준을 무효화 시킨다. 기존의 죽음에 이르는 신체 상태가 의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자인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이것이 단지 소생기술의 과학적 문제가 아닌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짐에 따라 1968년 하버드 의과대학의 특별위원회는 뇌사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게 되는데, 이 보고서에는 “회복 불가능한 코마를 새로운 사망 기준으로 정의”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차 목표”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뇌사는 지금까지 거의 유일한 사망판단의 기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뇌는 이식할 수 없는 유일한 장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망 판단의 기준은 죽음을 명확히 하기보다는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뇌사와 심장박동의 중단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뿐아니라, 의학 기술의 발달을 통한 뇌 이식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존엄사는 법적 판단에 기반한 권력과 그것의 준거가 되는 의학적 지식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는 정치적 장의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된다. 특히 생명과 죽음에 대한 문제들이 의학적 지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대 정치의 핵심에 기입되어 있다는 점은 프랑스의 철학자인 푸코(Michel Foucault)가 끊임없이 주장해 왔던 바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정치는 생명에 대한 관리에 기반하고 있다. 과거의 권력이 생명의 단축(죽음, 즉 생명에 대한 위협)에 기반하고 있다면, 현대의 권력은 생명의 연장(생명에 대한 관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학이나 사회보장제도, 도시환경 정비 등이 독특하게 현대적인 현상이라는 점은 권력의 통치 기술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생명에 대한 위협이 아닌 관리에 기반한 정치가 생명에 대한 지식을 필연적으로 요청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좀 더 나아가 21세기 생명과학이 지닌 정치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생명과학이 지닌 정치성을 아직 이해할 수 없다면,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태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었다. 거기에는 의학적 발견에 대한 희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언어들, 즉 국부, 국위선양, 출산율, 희생, 믿음, 여성, 교육과 같은 정치적 언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허는 로슈에게 무엇을 주었나?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의약품이다. 의약품을 통해 유지 및 관리되는 것은 특정한 신체 상태만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 자체를 관리하거나 연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전과 약국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는 보통의 상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특수한 과정을 거쳐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은 의약품의 생산 및 유통 과정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푸제온은 감염인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의약품이다. 그러나 이 의약품은 아직 우리나라에 공급되지 않고 있다. 푸제온을 만든 초국적 제약회사인 로슈(Roche)가 이 의약품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슈에서 제시한 약가는 연간 2200만원에 이른다.)

이에 로슈의 횡포에 반기를 든 국내 의약품 운동 단체들은 지난해 12월 국가를 상대로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강제실시는 제약회사가 공급하지 않는 의약품을 환자들을 위해 강제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이다. 그러나 특허청은 2주전 강제실시 불허 판정을 내렸다. 현대 정치의 핵심에 자리잡은 생명과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판결은 최소한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의 독점이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들에 의해 강제실시가 청구되자, 지난 몇 년간 약가 협상에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던 로슈가 갑자기 푸제온을 무상공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로슈는 정상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까지 푸제온을 무상공급하겠다고 먼저 제안해 온 것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나온 조처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상공급을 할 수 있을 때까지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는 점과 제안이 나온 시점이 강제실시 청구가 들어간 직후라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인도주의적 조치에 대한 아무런 언론 홍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의 정황을 놓고 본다면, 로슈의 제안이 강제실시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로슈는 푸제온을 무상공급하면서까지 환자에 대한 의약품 통제권을 가지려 했던 것이다. 요컨대 로슈는 환자의 생명권을 환자로부터 박탈하고, 타인의 생명을 통제할 권리를 자신들에게 귀속시킴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사례를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태국정부가 글리벡에 대해 강제실시를 발동하자 초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연간 소득 5천만원 이하의 태국민에게 글리벡을 무상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바티스 역시 무상공급이라는 카드를 꺼내어 강제실시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생명에 대한 관리를 자신들의 권력의 기반으로 삼기 위해서는 특허제도를 매개로 의약품 개발과 관련된 지식을 독점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사실 푸제온은 로슈 자체의 연구 개발을 토대로 만들어진 의약품이 아니다. 푸제온과 관련된 기술의 최초 개발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은 듀크대의 연구팀에 의해 이루어졌다. 듀크대 연구팀은 레이건 정부 시절 미 상원을 통과한 베이-돌 법(Bayh-Dole Law, 이 법은 공적 자금이 투여된 성과물을 사유화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에 의거해 바이오 기업인 트리메리스(Trimeris)를 설립하고 푸제온 관련 기술에 특허를 출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대 제약회사인 로슈와의 계약을 통해 특허 기술을 판매함으로써 이익을 남겼다. 로슈가 연구개발에 기여한 것은 2002년 7월에 발표된 제3상 임상시험-임상시험은 전임상, 제1상, 제2상, 제3상으로 이뤄진다-을 지원한 것이 전부였다. 다시 말해 푸제온은 공적 자금을 투여해 개발된 지식을 사유화하고, 다른 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로슈에게 독점적 권리를 안겨준 의약품인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권력은 ‘생명에 대한 관리’와 그것의 기반이 되는 ‘지식에 대한 정치적 방향성을 부여하는(혹은 은폐하는) 담론 투쟁’ 속에서 형성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행위의 규범이 되는 특정 지식을 부여함으로써 개인들을 규율하고, 건강과 수명에 대한 관리를 통해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구조적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권력의 직접적인 원천인 자본이나 폭력의 수단을 획득한다. 나아가 현대의 권력은 생명과 지식을 통제함으로써 현 사회의 지배체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 그 자체를 발명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은 개별자들의 신체와 생명을 관리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경제적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푸제온을 둘러싼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은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적 권력이 준거하는 지점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그것은 로슈에게 의약품 판매를 통해 직접적 이윤을 취할 수 있도록 해줌과 동시에 지식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과 타인의 생명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조건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

* 미디어스 기고 글(7월 초)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