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초고가 신약 대응은 특허법 개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국회는 의약품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제도의 남용을 제한하기 위한 특허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지난 12일 정일영의원 등 18인이 발의한 ‘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특허법 개정안)’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되었다. 이번 개정법률안은 다른 제품과 달리 의약품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허가 등에 따른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제도(이하 존속기간 연장제도)’의 남용을 제한하기 위하여 연장가능한 특허권을 1개로 제한하고, 허가 등에 따른 연장과 등록지연에 따른 연장을 중복적용하지 않게 하며, 의약품 특허권 존속기간도 14년으로 상한을 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특허법에서는 특허권의 존속기간을 특허권 설정 등록한 날로부터 특허출원일 후 20년이 되는 날까지로 둔다. 하지만 의약품 특허의 경우 다른 제품과 달리 예외적으로 허가·등록 등을 받는 과정에서 소요된 기간을 특별히 5년 이내에 연장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를 존속기간 연장제도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존속기간 연장제도를 운영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미국, 유럽 등 주요국들과 달리 제도의 남용을 막기 위한 제한을 특별히 마련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특허법 개정안에서 존속기간 연장을 주요국 수준으로 일정부분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특허법 개정안은 초국적 제약사의 무소불위 특허독점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우리는 개정안 발의와 상정을 환영하며, 국회가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요구한다.

최근 신약들의 독점을 통한 가격인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거대 B세포 림프종 치료제인 노바티스社의 ‘킴리아 주’는 약값만 3억 6천만원을 넘어섰고, 척추성근위축증 치료제인 노바티스社의 ‘졸겐스마 주’는 무려 19억 8천만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인 노바티스社의 ‘럭스터나 주’ 가격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제약회사는 눈 한쪽당 10억원에 달하는 약값을 요구했다고 한다.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이처럼 치료제들에 엄청난 약값을 매길 수 있는 이유는 특허를 통해 독점되는 기간 동안 아무리 비싼 가격을 불러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의약품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 가족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약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강보험공단이 급여 등재를 통해 구매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연간 10~20%씩 증가하는 항암제 및 희귀의약품 지출부담을 지속적으로 떠안기 힘든 상황이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도 지불하기 힘들 정도의 초고가 의약품 가격은 결국 특허가 만료되기 전까지 국가차원에서 가격을 견제할 장치는 많지 않다. 결국 약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특허 존속기간이 만료되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의약품들의 특허독점은 결코 짧지 않다. 정일영의원실이 특허청을 통해 지난 12년 동안(2011~2022년) 허가된 230개의 특허독점 신약들을 조사한 결과, 신약들이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은 후 특허독점이 만료될 때까지 평균(예상)기간은 11년 9개월이었다. 또한 식약처 허가 후 14년 이상 특허 독점을 유지한 의약품은 총 52개(22.6%)나 되었으며, 이 중 존속기간 연장제도로 증가한 평균 기간은 2년 8개월(982일), 평균 독점 유지 기간은 15년 3개월에 달했다. 다시말해서 신약 4개 중 1개는 의약품 허가 이후에 독점기간이 14년을 초과했으며, 존속기간 연장제도로 982일 동안이나 추가로 초고가 약값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국적 제약사의 독점적 지위는 무소불위인 상황으로,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국제 사회에서도 무수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정부들은 이미 제약사들의 독점 약값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논의들을 시작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과시켜 그동안 제한하였던 메디케어의 처방약 가격협상 권한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재정에 부담을 주는 약값을 낮추는 방법들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바이오의약품의 자료보호제도에 따른 독점기간을 단축하자는 논의도 연방거래위원회(FTC)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유럽도 유럽집행위원회에서 ‘EU 의약품법’개정안 초안을 20년만에 발표하였다. 개정안은 신약의 자료보호기간을 사실상 단축하고, 신약의 R&D 비용 일부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등 무소불위의 제약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처럼 주요국들은 제약산업이 독점을 무기로 신약의 가격을 높이는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사회는 특허 독점을 통해 높아지는 약값에 대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랜 기간 저출산이 동반된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령인구의 의료비 및 약제비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한-미 및 한-EU FTA를 통해 신약에 부여하는 독점적 인센티브는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유럽과 유사한 수준의 장치를 마련하는 이번 개정안은 제약산업의 독점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는 미약하다. 한국은 미국, 유럽보다 동일한 약의 허가 시점이 2년 정도 늦기 때문에 14년이라는 연장제도 상한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임상시험이나 허가신청에서 소요된 기간을 단순 합산하는 존속기간 연장 산정방식도 추가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특허법 개정안은 초국적 제약사의 독점을 일부 제한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정안은 4월 6일 정일영의원이 대표발의 하였지만 상정되는데 3개월이나 지체되었다. 국회는 이번에 산자위에 상정된 것을 계기로 하루속히 개정안을 통과시켜, 나날이 높아지는 약값과 무소불위의 초국적 제약사들의 독점을 멈추기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또한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초고가 신약에 대한 대응이 국민건강보험 수준의 개혁으로 달성될 수 없으며, 결국 독점적 약값을 견제하기 위한 특허법 개정 등 구조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에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년 7월 19일

더나은 의약품 생산체제를 위한 시민사회연대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시민건강연구소, IPLeft정보공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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