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P2P를 둘러싼 복수개의 위기들 (2005.7.31)

P2P를 둘러싼 복수개의 위기들

 

조덕환 (정보공유연대 IPLeft 활동가)

 

P2P 전쟁의 현 지형들

P2P를 둘러싼 최근의 국내외 정치지형은 이용자들 입장에서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다. 최근 미국 대법원의 그록스터 판결에서 보여진 것처럼 P2P 서비스 제공자들에 대해 잇달아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는 한편 P2P 서비스를 이용하여 파일들을 주고받은 네티즌들에 대한 감시와 고발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저작권법 또한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며, DRM과 불법콘텐츠추적시스템 (핑거프린팅)과 같은 저작권 보호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공정이용의 범위는 축소되고 있다. P2P 서비스 제공자들은 필터링 소프트웨어 설치를 강요받거나 아예 냅스터나 아이메쉬처럼 압력에 못 이겨 유료 서비스로 전환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들은 언뜻 보기에 음반사를 포함한 거대 미디어 기업들의 P2P기술에 대한 승리로, P2P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파일들을 주고받던 이용자들의 위기로만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최근의 상황들은 미디어 자본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미디어 자본 자신들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P2P를 둘러싼 다양한 위기들을 직시하기 위해 우리는 P2P에 의해 잃는 것만이 아니라 P2P에 의해 얻어진 소중한 가치 또한 온전하게 볼 수 있어야 하며, 미디어 자본들의 P2P에 대해 선포한 전쟁에 의해 진정 보호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때문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또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P2P의 기술적 특징이나 소리바다 사건을 포함한 개별 P2P 서비스에 대한 소송에 대한 법률적 고찰과 변호보다는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P2P를 둘러싼 위기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짚어보는 것으로 하겠다.

 

미디어기업의 위기? : P2P전쟁에서 그들이 얻은 것

P2P 전쟁에서 미디어 자본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P2P서비스를 통한 이용자들의 해적행위 때문에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이 침해되고 있으며, 음반 산업 등 미디어 산업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인과관계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껏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속사정 또한 이와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음반업계의 경우 P2P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많은 문화비평가들은 음반시장의 퇴조의 이유를 몇몇 내적 요인들, 즉 대형음반회사 중심의 독점 구조와 소수 스타급 가수에 대한 높은 의존도, 천편일률적인 댄스뮤직, 창조력의 고갈 및 실험정신의 부족, 단조로운 배급망, 높은 광고비용과 비효율적 음반 생산 및 유통 구조에 따른 음반의 고가화 등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고들을 무시하고,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기존의 제작 및 배급 방식을 고집하다가 스스로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던 중 P2P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띄면서 음반업계의 모든 위기의 원인은 갑자기 인터넷과 P2P로 둔갑했다. 이 때부터 미디어 자본은 P2P 서비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서비스를 중지시키기 위한 법적, 물리적, 기술적 조치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의 와중에 그들은 인터넷과 P2P가 사라져야 할 무엇이 아닌, 자신들의 위기의 원인이 아닌 불황이라는 자신의 위기를 탈출하게 해줄 생명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율적으로 조직화되고 빠르게 증식되는 P2P의 자유로운 해적들이 잘만하면 자신들의 새로운 잠재적 소비자들이 될 수 있음을, P2P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한계에 달한 오프라인 시장을 보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자 유용한 광고 채널이 될 수 있음을 터득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제 적은 P2P 일반이 아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P2P들인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모든 P2P의 폐쇄가 아닌 P2P를 자신의 통제 하에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되었고, 이를 위해 인터넷과 P2P를 지적재산권을 중심으로 한 상업적 질서로 재구조화하기 위해 법적, 행정적, 기술적 방안을 동원하여 기존 인터넷 문화의 역동성을 철저히 파괴시키며 자율적으로 구성된 P2P 공동체를 변형시키기 시작했으며, 앞서 살펴보았듯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자, 그럼 이제 그들은 P2P 기술도 살리고, 자신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여전히 앞서 말한 자신들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들이 P2P를 자신에 맞게 변형하는 순간 P2P 고유의 역동성은 파괴되어 그들이 상업적 P2P에 기대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더 큰 문제는 미디어 기업들이 벌여놓은 P2P에 대한 전쟁이 그들의 바람과 달리 오히려 자신들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우리사회의 ‘문화’의 위기를 초래하여 모든 사람들을 위기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이용자들과 문화의 위기 : P2P 전쟁에서 우리가 잃은 것

미디어기업이 네티즌들을 범죄자 취급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 바로 그 지적재산권은 다른 재산권과는 다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상’의 차원에서 주어지는 권리이며, 그 목적은 보상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창조성’의 고양과 문화의 발전이다. 사회적 창조력을 높이기 위해, 문화의 진보를 보장하기 위해 개별 창작자에게 일정한 ‘보상’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보상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사회의 창조성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선에서이다. 다른 재산권들과 달리 지적재산권은 남한테 자신의 몫을 무작정 주장할 수 있는, 자신에게 이미 정해져 있는 보상의 양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범위와 한계는 사회적인 문화생산시스템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보상’이 이러한 창조성을 오히려 억압하고 해하지 않는 선에서 창작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재산 ‘보상’체계와 함께 잠재적 창작자인 이용자들이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한 사회의 창조성과 문화의 발전의 필수조건이다. 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진정한 문화 혁신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원칙은 현 저작권법 제1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 또한 다양한 사상과 문화적 산물들이 모든 사람의 작품 및 의미 생산행위를 위해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한 사회가 미래의 혁신과 발전을 보장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 상식들을 무시한 채 ‘보상’의 명목으로 ‘자유로운 이용’을 심각하게 제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통제 불능의 카오스라고 여겼던 온라인 공간이 DRM, 워터마킹 등 기술 조치의 발전으로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가질 수 없었던 수준의 강력한 통제가 가능해지면서, 그들의 호들갑과는 달리 그들의 통제력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유사 이래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었다. 기술적, 물리적 한계에 의해 불가피하게 일정 정도의 ‘공정이용’이 보장되었던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의 ‘코드’에 의한 통제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용자들의 ‘공정이용’의 범위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축소되었다. 문화의 혁신과 창조성을 보장하기 위한 저작권시스템의 양대 기둥인 ‘보상’과 ‘공정이용’의 불균형이 지금처럼 심화된 적은 없었다. 이렇듯 지금 문제의 본질은 저작권자들의 말과는 달리 저작권자들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이용자들의 위기이며, 이용권과 저작권의 심각한 불균형에서 오는 창조성과 문화의 퇴보이다. 기본적으로 나눌수록 더욱 풍부해질 수 있는 지적산물까지 사유화하고 독점하여 사람들로부터 빼앗고 번성중인 온라인 문화를 파괴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적질에 다름 아니다. 기본적인 상식과 문화 생산 원리를 뒤엎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해적들인 그들이야말로 다시 교육받고 홍보하고 계도되어야 할 주요 대상이다. P2P에 대한 전쟁에서 그들이 거둬들인 금전적 이익의 대가로 우리 사회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기업들의 심화된 위기 : P2P 전쟁에서 우리가 얻은 것

P2P전쟁에서 그들은 항상 모든 저작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마치 자신들이 모든 저작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저작물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이용자들을 창작자들의 적들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사회의 문화생산 회로에서 완전한 이용자와 완전한 창작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창작자들은 실제로 가장 활발한 이용자이기도 하고, 잠재적 창작자인 이용자들 또한 다른 저작자들의 저작물에 다양한 의미와 평가들을 ‘생산’해냄으로써 문화의 질과 양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러한 창작자-이용자의 이분법은 허구에 불과하며, 실제로 창작자들과 이용자들은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또 하나 이번 P2P 전쟁의 가장 큰 의미 중의 하나는 바로 그들이 내세우는 ‘창작자’가 단일한 집단이 아니며 다양한 욕망을 가진 복합적 주체들이라는 것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그들이 말하던 창작자 ‘일반’과는 달리 돈에 의한 보상이 아닌 다른 대안적 보상에 의해, 혹은 아무런 대가없이 남과 나눈다는 것 자체만으로 창작의 의미를 삼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보상을 ‘상식적’ 수준에서 보장받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창조적 행위를 위해 사회의 문화생산 체인으로 다시 환원시키려는 다양한 대안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창작자들이 존재했다. 냅스터, 소리바다 등의 싸움을 거치면서 자신의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고 모든 네티즌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음반회사와 미디어기업들에 맞서 저작물을 바라보는 태도, 창작자와 사회의 상호작용, 사회에서의 생산과정에 대한 태도, ‘보상’에 대한 생각 등에서 미디어기업들과 생각을 달리하고 이용자들과 문화의 편에 섰던 창작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 이것이 바로 P2P전쟁을 통해 우리가 얻은 값진 성과이다. 이와 더불어 실제 많은 창작자들은 거대 미디어 기업들과의 부당한 계약 등에 의해 실제 저작권의 혜택으로 멀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결국 창작자 일반의 이익을 내세워 미디어기업들의 벌이고 있는 P2P전쟁은 실제로는 해적행위를 하는 이용자들로부터 창작자 일반의 권리를 보호하는 성전이 아니라, 단지 소수의 미디어 기업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창작자-이용자들과 벌인 추한 전쟁임이 명백해졌다. 지금 P2P전쟁은 창작자와 이용자들 사이에서 창조성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이 아니라, 소수 미디어기업들과 창작자-이용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벌어지는 전쟁에 불과하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창작자이자 이용자들인 우리들로부터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며, 창조성의 원동력 역할을 해왔던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이용마저 막아버리고 단지 문화상품의 소비자의 지위로만 가둬놓는다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창조성을 질식시키고 고사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소수 미디어 기업들의 매출 이익의 벡터 값이 절대로 한 사회의 문화 발전의 지표가 될 수 없는 한, 이용자-창작자들 입장에서 이 전쟁은 문화의 퇴보를 막고 창조성을 옹호하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P2P가 우리에게 열어놓은 가능성은 미디어기업의 말처럼 ‘공짜’ 물건 가득한 암시장이 아니라, 나눔의 즐거움을 아는 생산자와 이용자의 광장이자 공동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화생산자-소비자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개인의 역능이 사회적으로 소통되고 확장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창출을 의미한다. 또한 P2P를 둘러싼 일련의 싸움에서 지적 재산을 사유화하고 독점하는데 반대하는 많은 네티즌들이 서로 만나 조직화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며, 이렇게 모인 이용자-창작자들은 자신들을 죄인 취급하는 저작권법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자신의 생각과 창작물들을 사회에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실험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나 Creative Commons와 같은 국제적 차원의 정보공유운동에서부터 거대 음반사나 기획사 같은 미디어 기업을 통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성과물을 공개하고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대안적 생산, 소통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미디어 자본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불법 소프트웨어보다 거대소프트웨어 기업에 손실을 준 것이 자유소프트웨어공동체나 오픈소스공동체였던 것처럼, 그들이 P2P에서 우려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mp3 몇 개를 훔쳐가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자본 외부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적인 공동체와 대안적인 소통방식이 등장하는 것이다. 해적행위가 아닌 이러한 대안적 생산방식과 소통방식들은 이미 거대 독점 소프트웨어기업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비합리와 고비용의 내적 모순들로 곪아터져 있는 미디어 기업들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이익에도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기업들의 진짜 위기인 것이며, 그것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위기의 심화가 그들이 몇몇 법정에서의 전투의 승리를 통해 얻은 것이며, 이것이 바로 P2P 전쟁의 모순적 진실인 것이다.

 

결론 : 위기를 극복하는 길

결국 지금의 위기는 결국 미디어기업의 사욕에 의해 만들어진 이용자-창작자들의 위기이며, 문화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바로 미디어 자본 스스로에 의해 초래된 자신들의 위기이다. 그렇다면 P2P 전쟁이 몰고 가고 있는 이러한 총체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이러한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미디어기업의 위기의 해법은 바로 근본원인의 해결이다. 앞서 말했던 오프라인에서 관행처럼 진행되어 온 비효율적 생산 및 유통, 홍보방식에 의해 오랫동안 불거져온 위기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위기는 온라인 시장의 확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으며, 오직 자신들의 불필요하거나 썩어버린 부위들을 도려내는 작업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유지하고 디지털환경에서의 상식에 기반하여 많은 네티즌들의 비영리적 이용과 공정이용을 자유롭게 보장하면서도 진정으로 창작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창작 및 유통 방식들에 대한 새로운 실험들을 이용자들과 함께 다양하게 벌여나가야 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합의와 균형을 찾아나가기 위한 길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것만이 자신의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인식해야 한다. 문화의 발전이 곧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초임을 깨닫고 진정 문화를 위하는 길을 찾기 위해 스스로 적극 나서야 한다. 이용자-창작자들 또한 한 사회의 문화적 진보를 보장할 수 있는 균형은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생물학적 시스템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균형’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때그때의 사회적 역관계에 의해 항상 가변적이라는 것, 또한 그것은 형식적인 저작권법에 의해서는 절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정보공유라이선스와 Creative Commons와 같은 광범위한 정보공유운동과 기존 상업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대안적 문화 생산 및 소통 시스템의 실험을 통해 광범위한 이용자-창작자들의 자율적 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미디어기업의 독점과 폭주를 막아내고 그들의 변화를 강제해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P2P를 둘러싼 이 전쟁의 현재는 이용자-창작자가 많이 불리한 상황이지만 이제 고작 몇 차례의 소규모 전투만이 끝났을 뿐이다. P2P와 인터넷의 통제권을 둘러싸고 앞으로도 계속될 이 싸움에서는 앞으로 눈앞의 이익이 아닌 문화의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자신을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시키는 쪽만이 최종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임을 양쪽 다 명심해야 한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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