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정보공유연대 기획강좌 3: 괴물 같은 특허 혹은 특허괴물

2013년 정보공유연대 기획강좌 <우리 이웃의 괴물, 특허와 저작권> 자료

 

 강좌3: 괴물 같은 특허 혹은 특허괴물

허민호 / 정보공유연대 활동가

 

우리의 몸, 건강, 생명은 생물학적/의학적 지식을 통해 진단되고 분할되고 통합되는 객관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몸이란 우리의 인식 외부에 있는 자명한 실체로서의 몸이라기보다는 혈압수치, 콜레스트롤 수치, 심박수, 간수치, 비만도, 혈당치 등의 온갖 지표들을 통해 표상되는 의학적 현실로서의 몸이다. 이 몸은 자연의 질서 이전에 진료실의 의사 앞에 놓인 스크린에 쓰여진 숫자들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런저런 지표들로 표상되는 의학적 현실은 경험적이고, 물질적인 직접적인 몸과는 다른 하나의 추상들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의 몸을 구성한다는 점에서(혹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인식하고 사유하고, 나아가 개입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의 몸으로 직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추상의 과정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실적 추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온갖 종류의 건강 수치들과 나란히 사망률, 출산율, 질병률, 평균수명, 인구 만명당 의사수 및 병원 침대수와 같은 지표들과 마주한다.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통계들은 개인이 아닌 민족국가라는 범주에 기초해 등장한다. 이때 국가는 물리적인 지리적 영역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 집단으로서의 인구와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조건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통계들은 곧바로 평균 수명 증가 및 출산율 저하에 따른 경제 활동 인구 감소 등의 경제적 현실로 이어진다. 요컨대 인간의 몸은 의학적 사실을 통해 확인되는 생물학적 개체라기보다는, 특정한 표상의 장치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임무를 부여받는 현실적 추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인식가능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개입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의학적 표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런 물음에 응답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21세기가 시작되고 첫 1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은 거대 제약회사 화이자에서 만든 콜레스트롤 저하제 리피토였다. 사람들에게 콜레스트롤 수치 관리는 가장 중요한 건강관리 요건 중 하나이다. 고콜레스토롤이 심장발작과 뇌졸증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콜레스트롤은 그렇게 중요한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콜레스트롤 자체는 신체에 치명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생명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위험은 혈중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아질 때 발생한다. 하지만 아직 위험할 정도로 높은 콜레스트롤 수치가 어느정도인지는 정확히 밝혀진바가 없다. 다만 일종의 콜레스트롤 수치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1990년대부터 발간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콜레스트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당시 스타틴 계열의 콜로스트롤 저하제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미국인은 1천3백만 명이었지만, 2001년에 새로운 전문위원회가 가이드라인을 수정하면서 그 수는 3천 6백만명으로 증가되었다. 2004년에는 또 다시 새로운 전문위원회가 구성되었고, 4천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콜레스트롤 저하제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군이 되었다. 2001년에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데 참여한 전문가 14명 중 5명은 콜레스트롤 저하제 제조 회사와 금전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2004년에는 그 비율이 더 확대되어 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 9명 중 8명이 거대 제약회사와 금전적 유착관계를 맺고 있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역시 마찬가지이다. 1950년대 진단 범주로 출현한 ADHD는 어린 아이에게만, 그 중에서도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25-50만명 사이로 추정되던 해당자들이 최근에는 4-8백만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또한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던 ADHD는 1987년 DSM의 개정판에서 청소년과 성인에게도 해당할 수 있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에는 ‘월경전 불쾌 장애’라는 새로운 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월경과 월경 전 발생하는 여성들의 심리적, 신체적 징후들을 질병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1930년대 그것은 월경 전 긴장(pre-menstrual tension)으로 불렸었는데, 1960년대에 월경 전 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으로, 그리고 1980년대가 되면 월경전 불쾌 장애(PMD, 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로 불리게 된다. 이런 용어의 정착과 질병화 과정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의 진단통계편람(DSM)에 수록됨으로써 완성되었다. 월경전 불쾌 장애는 1987년에 개정된 DSM-Ⅲ-R에서 부록으로 등재되었으며, 1994년에 개정된 DSM-Ⅳ에서 정식으로 본문 목록에 등재된다. 이로써 그것은 공식적으로 (보험과 의료서비스 등에서 활용될 수 있는) 상품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 간단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일상생활의 의료화라는 흐름이 단지 과학연구를 통한 의학적 지식의 확장과는 다른 경로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제약산업이나 보험회사와 같은 의료 산업과 국립보건원이나 식품의약국과 같은 정부 기관, 그리고 전문 지식을 만들어내는 의학자들의 합작품이다. 이런 합작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 정신의학의 성서라 불리는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DSM)이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행하는 국제질병분류표(ICD) 같은 것일 게다. DSM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병원을 위한 통계편람(Statistical Manual for the institutions for the insane)이 1918년 발행되었을 때, 진단범주는 단 22개에 불과했다. 그후 1952년 DSM-Ⅰ에서 진단범주는 102개로 확장되었고, DSM-Ⅱ(1968)에서는 182개로, DSM-Ⅲ(1980)에서는 265개로 증가했으며, DSM-Ⅲ의 개정판인 DSM-Ⅲ-R(1987)에서는 292개로, 1994년에 발간된 DSM-Ⅳ에서는 297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2000년에 DSM-Ⅳ의 개정판인 DSM-Ⅳ-TR을 거쳐 내년에는 DSM-Ⅴ가 나올 예정이며, 이런 증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진단 범주의 확장은 기존 정신 질환의 대상 확장과도 동시에 일어난다. 확장된 기준에 따르면 미국인의 반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나타난다. 질병의 공식화는 질병 조건에 대한 의학적 개입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제약산업이나 보험산업의 시장을 확대시키며, 질병 관련 국가 기구의 지원과 승인을 요구한다. 당연히 이런 과정은 사후적으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질병의 공식화 과정 자체에 경제적, 정치적 힘들이 혼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의학적 표상의 체계는 산업의 로비와 정부관료의 부패, 그리고 의학자들의 비윤리성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일시적인 오류의 체계인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정부 관료의 투명성과 의학자들의 의료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적 일화로 끝나는 문제도 주관적 판단과 실천의 효과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이 필연적인 객관적 조건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며, 새로운 지식 생산 체계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특허가 개입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특허는 흔히 특정한 지식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발명자가 보상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 발명과 과학 연구를 활성화 하는 체계라고 간주된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보상체계에 머무르는게 아니라 지식의 생산, 소비, 유통을 통제하여 특정한 지식 생산 체계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1980년 이후, 미국에서 ‘대학및중소기업특허절차법’(일명 베이-돌 법)과 ‘약가경쟁및특허기간연장법’(일명 해치-왁스만 법)과 같은 법들이 확립된 이후, 특허는 지식 독점에 기초한 산업 성장 체계를 만들어냈다. 그 법안들은 공적 자금이 투여된 대학 연구를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과학 지식의 독점이 학문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괴이한 논리를 현실화 시키고, 그렇게 얻어진 지식의 독점력을 확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체계의 끝자락에서 특허괴물과 마주하게 된다. 특허 괴물이란 특허를 활용하지도 않고, 활용할 의사도 없으면서 특허를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그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특허 괴물은 중립적인 의미에서 혹은 특허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실시회사(Non-Practicing Entities,NPEs)라고도 불리지만, 다르게는 특허해적, 특허파파라치, 특허사냥꾼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특허권 이외의 자산이라고 할만한 것을 보유하지도 않고, 제품 생산활동도 하지 않으며, 회사조직의 주축이 특허 변호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송을 통해 로열티를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허괴물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90년대 초반이지만, 대중화된 것은 후반 즈음이다. 90년대 후반 Intel은 테크서치라는 회사에 특허기술 도용혐으로 고소 당했고, 당시 인텔 측 변호사였던 피터 뎃킨이 테크서치를 특허괴물이라고 비난하면서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소송에 깊이 관여했던 피터 뎃킨과 인텔은 그것이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고, 곧 피해자 코스프레를 걷어치우고 스스로 특허괴물이 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표적인 특허괴물 회사인 인텔렉츄얼 벤쳐스를 창업한다. 그 이름 옆에서 우리는 NTP, 인터디지털, 아카시아 리서치와 같은 기업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아무런 생산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특허 제도의 주위에서 유령처럼 배회하며 수익을 얻는 특허괴물들이 활개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이 기이한 논리에 문제의식을 가지기보다, 오히려 그것들을 찬양하며 그것이 마치 새로운 세계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리키며 신경제, 신성장 동력, 지식기반경제, 창의 경제, 창조적 인적자원과 같은 수사들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몸의 확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온갖 매체들을 가로지르며 우리 삶에 개입하고 있는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선언된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 서커스를 이제는 박수치며 바라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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