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0/11/27 본보-김홍신의원 조사 “헌혈받은 혈액 멋대로 팔린다” 헌혈된 피가 엉뚱하게 상업용으로 팔리고 있다. 위급환자의 치료를 위해 국민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피를 대한적십자사가 수혈목적이 아닌 연구용 등 다른 용도로 팔아 넘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그 중에는 벤처기업에 연구용으로 제공되는 경우도 많아 헌혈자의 유전자 정보가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출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동아일보 취재팀과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이 96년 이후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관리 실태를 종합 점검한 결과다. ▼매혈(賣血)실태▼ 적십자사는 96년 이후 무려 1만4391명분(1명분은 평균 320㏄)의 혈액을 수혈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외부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96년 약 900건, 97∼99년 평균 2000건에 머물렀던 연구용 혈액 제공은 올해 상반기에만 7217건을 기록,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또 이 중 검체(적혈구 혈소판 등 피의 주요 요소를 빼고 남은 부분) 7003명분은 무상으로 제공됐지만 정상 혈액 7388명분은 1명분당 1만8480∼3만820원씩 받고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혈액관리법 시행령 제6조는 ‘정상혈액이 아닌 부적격 혈액만을 의학 연구 및 의약품 조제에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자체적으로 ‘연구용 혈액 수급관리 지침’이라는 것을 만들어 정상혈액을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지침에서조차 ‘혈액을 가져가는 기관은 연구 목적 등을 상세히 밝힐 의무가 있으며 연구가 끝나면 혈액을 안전하게 폐기했다는 증명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기관들은 간단한 형식적 절차만 거친 채 혈액을 구입해간 것으로 드러났다. ▼유전자정보 유출우려▼ 혈액을 가져간 기관들의 성격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들 기관 중 책임소재가 분명하고 정부의 감시를 받는 국공립기관으로 건네진 혈액은 1840명 분으로 전체의 12.7%에 불과했다. 반면 대학이 가져간 혈액은 2348명분(16.3%)이었고 벤처기업이나 제약회사 등 민간 기업에 건네진 혈액이 무려 1만203건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했다. 이들 중에는 DNA칩 개발이나 유전자 연구를 하는 이른바 ‘바이오 벤처 회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개인의 유전자 정보 유출 우려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측은 “외국에서도 돈을 받고 혈액을 파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또 혈액 이외에 개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개인의 유전자 정보 유출 우려는 절대 로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金東煜)박사는 “선진국의 경우 혈액 제공자에게 연구 내용과 목적을 반드시 알려야 하며, 또 제공자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혈액을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며 “개인의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 혈액을 이처럼 허술하게 민간기업에 제공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동아일보 2000/11/27 [연구용 혈액유출]”피 구하는데 공문 한장이면 OK” 《‘연구 목적 계획서, 혈액을 연구목적 외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각서, 연구 후 혈액을 안전하게 폐기하겠다는 각서, 안전하게 폐기했다는 증빙 서류.’ 일반 기관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연구용으로 혈액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서류들이다. 겉보기에는 나름대로 연구용 혈액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어느 정도 갖춰진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 연구용 혈액이 사고 팔리는 과정은 이런 규정과 달리 너무도 허술했다. 연구용 혈액이 어떤 절차를 거쳐 일반 기관에 제공되는지, 그리고 사용 후 폐기된 혈액은 어떻게 관리되는지를 집중 취재했다.》 ▼허술한 사전검증▼ 중금속을 취급하는 근로자의 혈중 중금속 분석을 연구하는 S연구소. 이 연구소는 97년부터 6차례에 걸쳐 적십자사로부터 혈액을 구입했다. 연구소측은 “구입한 혈액은 혈중 중금속 농도 분석을 위한 실험에 사용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S연구소측이 적십자사에 제출한 연구계획서에는 이런 설명이 전혀 없었다. 계획서에는 ‘본 연구소에서는 연구에 필요한 혈액을 귀 혈액원에서 아래와 같이 구매하고자 합니다. ―아래― 필요한 혈액량:10pints. 끝’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S연구소 관계자는 “간단한 공문만 보내면 항상 혈액을 쉽게 살 수 있었고 그쪽에서 ‘왜 피가 필요하냐’고 물어온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적혈구 농축액 등을 연구용으로 구입한 벤처기업 A사의 연구 목적은 ‘DNA, RNA 추출 실험’이었다. 목적에서도 나타났듯이 A사는 유전자 연구를 하는 이른바 바이오 벤처 회사였다. 그런데 정작 피를 제공한 적십자사는 이런 종류의 연구에 헌혈된 피를 제공해도 되는지 여부를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비록 헌혈자의 개인정보 없이 혈액만을 판매한다고는 하나 구입자가 유전자 정보를 연구하는 민간기업인 이상 좀 더 철저한 검증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연구 목적에 대한 특별한 심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심의 자체가 너무 형식적이었다”고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허술한 사후관리▼ 적십자사의 지침에는 기관들이 혈액을 연구용으로 쓴 후 반드시 이를 폐기해야 하며 폐기했다는 증명도 서류로 제출토록 돼있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지난해까지 한 번도 폐기 증명 서류를 요구하지 않았다. 최근 김홍신의원과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 문제를 제기하자 허겁지겁 올해 제공된 혈액에 대해서만 증명서류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또 실제로 제공된 혈액이 연구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혹은 안전하게 폐기 됐는지에 대한 점검도 없었다. 한 연구소 관계자는 “연구가 끝난 피는 쓰레기통에 쌓아두고 있다가 통이 차면 위생처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가 가져가서 처리한다. 혈액이 쓰레기통에 넘칠 때까지 그냥 담아두며 따로 폐기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폐기됐다는 피는 사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퍼갈 수 있도록 방치된 실정이라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국 서건치(徐建治)국장은 “그동안 폐기 혈액에 대해 철저히 감독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적십자사에서 제공된 혈액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체계를 크게 보강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전문가 지적 “혈액사용목적 헌혈자 동의받아야”▼ 적십자 혈액원의 헌혈 판매사례와 관련,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행 혈액관리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헌혈된 피를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동의 과정이 부족했다”며 “선진국처럼 혈액 제공자에게 피가 연구용으로 쓰일 것인지, 수혈용으로 쓰일 것인지를 알려주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용 혈액의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혈액관리법을 재정비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김홍신의원은 “혈액관리법의 내용이 혈액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법에만 치중돼 있어 ‘혈액의 사용’에 대한 언급 자체가 부족하다”며 “혈액의 연구와 관리를 균형 있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헌혈액의 정보는 바코드로 처리돼 있어 개인 신분이 철저히 보호된다”는 대한적십자사의 주장에도 유전자 정보유출에 대한 우려는 줄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박상증(朴相增) 공동대표는 “개인정보가 담긴 혈액을 통해 얻는 유전자 샘플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 정보를 얻어내려고 할 일부 민간기업들의 부당행위를 막기 위해 ‘유전자정보보호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첨부 파일과거 URL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102
헌혈받은 혈액 멋대로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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