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자유다> 머리말

 

머리말

인터넷의 성장으로 저작권이나 특허권과 같은 전통적 지적재산권 체제는 한동안 도전 받는 듯 보였다. 인터넷으로 접근가능한 정보는 복제가 쉽다. 복제 비용이 낮고 또한 익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단\’복제를 \’단속\’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자 출판업자나 거대기업들은 현행 지적재산권을 보다 공격적으로 집행하는 쪽으로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에 보호되지 않던 컨텐트, 새로운 매체, 새로운 정보접근 형태가 지적재산권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의 확장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 결과 한때 고전하는 듯 보였던 지적재산권 체제는 이제, 더욱 공고하고 안정된 위치로 옮겨가고 있다. 그야 말로 전화위복이 따로 없다.

1998년 미국 의회와 정부는 온라인 저작권을 강화하고 이를 방해하는 기술 개발을 불법화하는 내용의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을 통과시켰다. 지적재산권의 강력한 보호 쪽으로 편향된 각국 법원의 판례도 속출하고 있다. 글이나 프로그램을 온라인에 무단으로 업로드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소위 해적판 글이 올라와 있는 웹사이트를 연결시켜 놓은 웹사이트의 운영자까지 저작권 위반 혐의로 처벌하고 있다. 1999년 미국 유타주의 지방법원은 몰몬교회칙편람 내용을 무단으로 전재한 웹사이트의 주소를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게시한 탠너부부의 행위를 저작권 \’기여침해\’로 판시했다. 네티즌간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해왔던 정보 공유와 토론 활성화를 위한 행위들, 예컨데 온라인 상에서 글을 \’퍼나르는 행위\’도 최근 국내 검찰에 기소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서 저작물을 다운로드 받아 \’퍼온 글\’이라는 형식으로 무단 게재하는 것은 모두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두 사례는 몇 가지 의미심장한 결론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 지적재산권이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 탠너부부의 판례는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막기 위한 의도적 소송이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다. 본래 탠너부부는 수년간 몰몬교 비판 웹사이트를 운영해 왔었다. 몰몬교측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 판결에 따르면 탠너부부는 그들의 웹사이트를 폐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포스코 웹사이트\’ 사례도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삼미특수강 노동조합에서 포스코의 웹사이트를 패러디하여 포스코를 비판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는데, 이를 저작권 및 상표권 위반 혐의로 포스코 측에서 고발한 사건이었다. 삼미특수강 노조는 웹사이트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작권이 표현의 자유에 우선할 수는 없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그들의 지적자산이 보호되어야 한다면, 그와 적어도 동일한 수준에서, 또는 그 이상의 수준으로 그들과 우리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작권 보호의 사회적 정당성을 아주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둘째, 지적재산권의 최근 강화 경향은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 공동체의 문화, 디지털 정보의 특수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전통적인 지적재산권 체제를 넘어서는 강력한 기준으로 네티즌을 압박하고 있다. \’링크\’까지 저작권 침해 행위로 간주한 미국 법원의 판례는 이런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다. 어떤 게시물이 해적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링크만으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면, 링크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판례는 인터넷 활성화를 크게 해치는 것이다. 인터넷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웹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웹은 서로 간의 링크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글을 퍼나르는 문화는 적어도 한국 네티즌들에게는 아주 일상화되어 있는 문화이다. 이를 지적재산권의 측면에서만 봐서 \’해적질\’로 가치절하해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의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는 소위 \’해적질을 일삼는 이들\’에 의해 성장해 왔고 한편으로 풍요로와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데 \’퍼나름\’의 문화와 \’링크\’는 큰 몫을 차지했다. 이러한 기여를 무시한 채, 지적재산권과 정보공유의 문화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대신 마녀사냥식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상과 같은 지적재산권 분쟁이 기존의 인터넷 문화와 지적재산권 사이의 충돌이라면, 이와 맥락을 달리하는 또다른 인터넷 지적재산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도메인 네임과 상표권의 충돌이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다. 전자상거래의 성장 흐름을 타고 인터넷은 하루가 다르게 상업적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인터넷을 선점하지 못한 기업에게는 미래도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존의 유명상표나 등록된 상표와 동일한 도메인 네임의 경제적 가치가 하늘로 치솟았다. 상표의 소유자가 도메인 네임을 선점하지 못했을 때, 도메인 네임 등록자로부터 천문학적 돈을 주고 사는 사례도 생겼다. 그러나 상표권자들은 돈을 주고 사오는 대신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상표와 동일한 도메인 네임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 부정경쟁이나 상표권 희석화 등을 이유로 보다 강력한 상표권 보호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의 판례는 상표권자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특허는 또다른 쟁점이다. 비즈니스 모델이란, 하나의 사업 방식을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데이터 처리 과정으로서의 프로세스 모델과 결합시킨 것을 의미한다. 가령, 원격교육, 인터넷 경매 등이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본래 특허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래 특허제도는 기술확산과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비즈니스 특허는 그다지 진보적이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광범위하게 보호함으로써, 오히려 기술확산을 저해하고 인터넷에서의 독점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와 도메인 네임은 인터넷의 상업화에 따른 결과지만, 그 영향이 항상 상업적인 영역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가령 사회 봉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넷 교육사업도 관련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의해 저지될 수 있다. 또한 거대기업을 비판하는 웹사이트의 도메인 네임 (가령, MS-watch, IBM-sucks, Monsantowatch 등)은 거대기업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에 휘발릴 수 있다.

인터넷이 점점 성장할수록 그것에 대한 기대도 비대해지고 있다. 그러나 기대는 기존의 법 체계와의 충돌을 넘어서야 한다. 가장 큰 것이 현재로서는 지적재산권 분쟁이다. 이 산맥을 어떻게 넘어가는냐에 따라, 인터넷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자유로운 정보 공유의 장이냐, 아니면 상업적 이윤이 판치고 우선시 되는 또다른 시장이 될 것이냐, 이 문제는 현행 지적재산권 제도를 어떤 식으로 조정하는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우려에서 기획되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업적 이윤만이 우선시 되어, 인터넷 관련 정책이 결정되고 있다. 우리는 그 논쟁의 장으로 상업적 이윤에 대응하는 시장 밖의 목소리를 불어넣고자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 부에서는 특허나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권이 정보사회에 있어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지적재산권의 역사적 정당성은 무엇인지를 제기한다. 제2부는 지금까지 소개한 지적재산권 현안을 집중 분석한다. 지적재산권 제도가 세계적으로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 도메인 네임과 상표권, 비즈니스 모델 특허, 링크 및 데이터베이스 저작권,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 등을 각 주제별로 현재의 쟁점을 소개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보다 자유로운 인터넷을 꿈꾸는 세계적인 시도인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소개하고, 그 함의를 평가한다. 또한 지적재산권 논쟁을 민중적 관점에서 재편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한다.

어떤 학자가 이르기를, 하수들이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천방지축 까부는 것은 무협소설이나 학계나 비슷하다고 했다.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해 전문가라고 하기엔 약간씩 부족한 필자들이 지적재산권 제도의 \’재편\’을 이야기 하는 것을 두고 혹자는 \’천방지축 까부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적재산권 논쟁의 현황을 이해할만큼의 고수라면, 간단한 몇마디로 잘라 이 책을 평가하기보다는 함께 토론하는 길을 택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이 책을 내면서, 리처드 스톨만이 만든 그누자유문서라이센스(GFDL)를 채택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우리의 바램 때문이다.첨부 파일과거 URL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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