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자유다>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저작권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저작권

김영식

몇 년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폭탄 테러범 \’유나바머\’를 기억할 것이다. 한때 버클리 대학 수학교수이기도 하였던 유나바머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53)는 1978년 노스웨스턴대학의 한 공학박사를 상대로 폭탄테러를 시작한 이후 15번이나 계속된 폭탄테러로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입혔다. 그는 체포되기 전 유나바머 선언문(The Unabomber\’s Manifesto)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 선언문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의 박탈하는 뉴 테크놀러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선언하에 "현대 기술 산업사회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박탈하며 자연을 파괴한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혁명뿐이다. 혁명의 목표는 정부의 전복이 아니라 현존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테크놀러지를 제거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이 담겨있다. 이외에도 선언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선언문의 참고문헌 16번에 "만약 저작권법이 문제가 되어 게재가 불가능할 때는 다음 요약문으로 대체하라"라고 친절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 테러범이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문화 발전을 위해서 이렇게 \’친절한\’ 배려를 한 것일까? 카진스키는 이 선언문을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지에 공개된다면 폭탄테러를 중지할 것이라고 정부와 타협하였고, 그 결과로 두 신문에 원문 그대로 공개하였다. 그는 폭탄테러를 무기로 자신의 주장을 뉴스위크지에 게재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그의 주장을 펴기 위해 폭탄테러라는 강력한 무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저작권법에 의해 자신의 글이 실리지 못할 것을 우려하였던 것이다. 저작권법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에게 있어 폭탄 테러 이상의 위력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사례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테러를 선택한 범죄자마저도 저작권법에 의해 자신의 표현이 제약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보가 점점 디지털화 되면서 이러한 사례는 아주 \’일반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보통의 상품의 경우 시장이 먼저 형성되면서 그것의 유지에 필요한 제도가 마련되는 형태를 취하지만, 디지털 정보 상품의 경우 제도의 마련 없이는 아예 시장 자체의 형성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은 디지털 정보를 둘러싸고 많은 부분들이 정치영역에서의 대립관계로 표출된다. 저작권은 그러한 역할의 한 부분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제 그 사례를 살펴보자.

 

1999년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DVD 복제 제어 연맹(이하 제어 연맹)은 DVD 컨텐츠 스크램블 시스템(이하 DVD-CSS)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거나 그 사이트를 링크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DVD기술의 리버스엔지니어링 이 불법 해킹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어연맹은 설사 합법적으로 리버스엔지니어링 되었다 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의 소스를 공개하고 토론하는 것 혹은 단지 다른 사이트에서 공개된 것과 토론된 것을 링크만 시키는 행위는 그들의 영업비밀과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제어연맹에 의해 고발당한 이용자들은 DVD-CSS를 복제하거나 제어연맹의 영업 비밀문건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토론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취득한 지식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작권법 자체는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보호하는 법체계이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토론을 하는 것은 저작권법 테두리 내에서도 침해사항이 아니다. 또한 영업비밀 측면에서도 그 비밀을 과거에 들었던 사람이거나 그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다른 일반 사람들이 스스로 취득한 지식에 대해서 영업비밀을 적용하는 것은 역시 논리의 비약이며 과도한 법적용인 것이다.

 

아울러 제어연맹은 이들 게시판에서 만들어진 "DeCSS"라는 프로그램이 DVD의 불법복제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나 그들의 지적과는 다르게 DeCSS는 아직까지 상업적으로 리눅스 시스템에서 DVD를 볼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용자들 스스로 DeCSS라는 리눅스용 DVD 구동기로 개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DVD는 이미 다른 방법으로 복제가 용이하기 때문에 DeCSS를 이용하여 복제하는 사람은 전무하다. 또한 에릭 레이몬드 와 같은 프로그램 전문가도 그들이 개발한 DVD-CSS 자체도 해킹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함을 증명함으로써 DeCSS가 불법복제를 유발한다는 주장을 더욱 근거 없게 만들었다. 제어연맹은 window 나 Mac용 DVD구동기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저작권법을 빌미로 해서 그 구동기를 자발적으로 제작하여 공유하는 이용자들을 저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는 약간 다르게 유명한 사이트의 이름이나 로고를 풍자적인 의미로 약간 바꾼 패러디 사이트에 대해서도 저작권 문제가 발생했다. 세계적인 컴퓨터 마이크로 칩 제조회사 인텔이 자신의 컴퓨터 칩의 오류를 자세히 파헤쳐 놓은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로버트 콜린이란 컴퓨터 칩 디자이너는 95년부터 인터넷에 \’인텔의 비밀 : 인텔이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들(http://www.x86.org)이란 제목의 사이트를 만들었다. 콜린이 주로 올리는 내용은 인텔칩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오류 사항들과 그에 따른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법들이다. 그러나 정작 인텔쪽에서 가장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사이트의 내용이 아니라 콜린이 \’intel\’의 가운데 글자 \’e\’만을 뒤집은 인텔 로고를 홈페이지 곳곳에서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의 \’e\’자가 아래로 내려오게 그려져 있고 로고는 단순한 회사 이름이 아닌 예술 작품이기에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인텔과 콜린의 합의에 의해 이 사이트를 폐쇄시켰지만 유사한 사례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1999년 포드 자동차의 한 노동자는 이용자들에게 매우 위험한 불량을 회사쪽에서는 알고 있는데 포드자동차에 대해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밀 문서를 입수하여 내용을 웹사이트에 게재하였다. 이에 포드 자동차는 ISP에 저작권 위반혐의로 항의했고, ISP는 사이트를 폐쇄했다 고 한다.

일반적으로 상품 불량에 대한 정보는 이용자들이 정당하게 알아야할 권리에 해당한다. 이러한 권리를 통해 이용자들은 올바르게 상품을 선택할 자유를 갖게 되는 것이며, 생산자들은 새로운 기술 개발의 동기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저작권은 이러한 권리를 아주 쉽게 차단하는 구실로 작용한다.

최근 포항제철(이하 포철)은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안티포스코 홈페이지(http:// antiposco.nodong.net)가 포스코 홈페이지(http://www.posco.co.kr)의 디자인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라며, 이 홈페이지 운영자를 상대로 도안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법원에 냈다. 이 가처분신청에서 "피신청인은 포스코 로고와 포스코 빌딩 배경화면 등을 사용해선 안 된다"며 부분인정 결정이 내려졌다.

 

삼미특수강은 1997년 포철의 자회사인 창원특수강에 인수될 때 약 245명의 삼미 노동자들을 해고하였다. 안티포스코 홈페이지는 이에 항의하고 재고용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포철쪽은 가처분 신청서에서 “안티 포스코 홈페이지에 담겨 있는 내용이 올바른지 여부와 상관없이 회사 홈페이지 디자인을 모방한 만큼 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저작권은 영업상의 불이익이 있거나 경쟁관계에 놓여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때 적용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안티 포스코 사이트처럼 비영리 목적인 사이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의 패러디는 일반적인 표현형태 인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기 위해 저작권을 적용한 예는 종교계에서도 일어났다. 얼라이어스라는 사람이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 창시자의 저작물을 인용하여 비평을 작성하고 이를 사설 BBS와 네트컴이라는 인터넷 서비스업체를 통해서 유즈넷 뉴스그룹에 게재한 사건이 있었다. 사이언톨로지 창시자의 저작권을 가진 종교기술센터(Religious Technology Center; 이하 RTC)는 네트컴사에 대해 저작권침해 혐의로 고발하였다. 이 소송에서 RTC는 패소하였지만 네트컴사가 RTC에 저작권침해를 입증하는 자료를 요청하였을 때, 요청을 들어주었다면 네트컴사는 기여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여 저작권 침해로 표현의 자유가 차단될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보통 미국 법정에서는 교회의 내부 문건이 교회 반대자들에게 의해 공개되었을 때, 그 반대자들은 저작권을 위반했다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건이 법률 회보에 실렸을 때 혹은 법정 소송에서 사용했을 때는 법원은 공개가 타당하다고 판정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은 상이한 내용이지만, 일반적으로 저작권법의 논리상 비판이나 토론을 목적으로 인용하는 행위는 저작권에 예외조항으로 이용자들의 \’공정한 이용(fair use)의 영역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무시한 법 집행의 남발로 인해 저작권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억제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 알권리, 창작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저항의 목소리들이 사회 내에 존재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시민단체들이 많이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유주의적 시민단체들은 저작권에 의해 인간의 기본권리를 침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바로 저작권은 재산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보다 우월한 사유재산 보호의 측면에서 보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속에서 힘 관계가 이러하기 때문에 저작권은 현재 더욱 확장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 알권리 등 다양한 민주주의 요소들이 저작권에 의해 축소 조정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터넷 한쪽에서는 창작자이자 생산자인 노동자들과 정보 이용자들의 개입은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EPIC(the Electronic Privacy Information Center), HRW(Human Rights Watch) 및 여러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전지구적 인터넷 자유 운동\'(Global Internet Liberty Campaign)을 구성하여 인터넷에서 이러한 DVD-CSS를 저작권을 이용한 표현의 자유 침해행위로 간주하여 이에 반대하는 사이트를 개설하여 전 지구적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안티 포스코 홈페이지에 대해서는 2000년 4월 이래로 국제 진보통신연합(APC)의 주도로 미러사이트를 개설하기 시작하여 현재(2000년 7월) 8개국에서 10개의 사이트를 개설하여 노동탄압 도구로 이용되는 저작권에 반대하고 삼미 노동자들에 대해 연대의 정을 표하고 있으며, 서명운동 역시 국제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안티 포스코와 유사한 패러디 사이트가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저작권의 영역은 경제적 영역에서 점차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창작자와 생산자인 노동자와 이용자들의 인권까지 침해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생산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초례하고 있는 저작권이 왜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유지되는 것일까? 그 비밀은 저작권이 생산자와 이용자들의 공적 소유가 아니라 자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정보가 디지털화되면서 정보의 공유가 확장될 것이라는 이전의 논리를 무색하게 하며, 아울러 쌍방향적 네트워크를 저작권 보호를 위해 감시하는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저작권에 대한 다양한 저항들이 비단 저작권 즉 재산권문제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 삶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인권보호을 위한 투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보의 사유화에 반대하고 최종적으로 사회화를 이루기 위한 투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뜻한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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