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어떻게 변해왔나?
홍 성 태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소리바다\’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의 이용방식, 특히 저작권의 영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작권은 언제 만들어졌으며, 어떤 구실을 하고 있나? 이 문제는 근대 사회의 형성과 변화라는 더 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은 영어의 \’COPYRIGHT\’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사실 그대로 옮기자면 저작권이 아니라 \’복제권\’ 또는 \’복사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또한 저작권이라는 용어보다는 \’판권\’이라는 용어가 귀에 더 익숙한 사람도 많을텐데, 이 용어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19세기 말에 저작권법이 제정되면서 \’판권\’은 법률용어로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판권\’도 \’출판의 특권\’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COPYRIGHT\’라는 영어의 본래 뜻에 가깝게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이라는 용어는 무엇보다 저작물에 관한 권리를 뜻하는 데, 이 권리는 저작물의 복제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만들어졌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저작권보다는 \’복제권\’이나 \’판권\’이 역사적 상황을 더욱 명확하게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저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된 복제물에 관한 권리의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구텐베르크 혁명이 이 새로운 권리의 모태였던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구텐베르크 혁명\’이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50년에 발명한 활판 인쇄술을 가리킨다. 이것은 미리 주물로 떠놓은 금속활자들을 판 위에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인쇄하는 기술이다. 이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손으로 한 자씩 써서 책을 만들거나 목판이나 금속판으로 책의 판을 만들어서 찍어야 했다. 구텐베르크는 이 인쇄술을 이용해서 1454년에 라틴어 성경을 찍었다. 그리고 1500년 무렵에는 유럽에 천 곳이 넘는 인쇄소가 생겨나서 성경이며 각종 고전문헌들을 값싸게 찍어서 널리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각종 책들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소수의 특권층이나 수도사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책을 이제는 일반인들도 손쉽게 구해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당연하게도 그 결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구텐베르크 혁명\’은 이처럼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근대 사회는 이러한 기술-사회적 변화를 통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순탄하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금서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많은 책들이 권력에 의해 엄중하게 통제되었다. 이를 위해서 물리력만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496년에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출판특허제도\’가 그것이다. 이 제도는 형식적으로 저작권법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무렵에는 아직 저작자의 권리라는 개념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 제도는 기존의 권위에 비판적인 저작물의 출판을 금지하는 동시에 특허수수료를 챙기려는 봉건 군주의 정치적 및 경제적 속셈과 저작물의 출판을 독점해서 이익을 보려는 출판자의 경제적 속셈이 야합해서 만들어졌다.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근대적 저작권법은 1710년에 제정된 영국의 \’앤 여왕법\’으로 출발하였다. 계몽주의가 성숙하면서 봉건 군주의 검열이 약화되고 저작자의 권리의식이 싹트면서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요컨대 근대적 저작권법은 봉건 군주가 몰락하고 근대 사회가 나타나면서 저작자와 출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법은 서구에서도 각 나라의 발전 정도에 따라 시기를 달리 하며 나타나게 되었다. 예컨대 미국은 1790년에, 프랑스는 1793년에, 그리고 독일은 1871년에 저작권법을 제정하게 된다.
서구의 각 나라가 저작권법을 제정하게 되자 이제는 나라마다 다른 저작권법을 국제적으로 관리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결과 1886년에 \’문학․예술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 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1892년에는 1883년에 체결된 산업재산권에 관한 \’파리협약\’과 \’베른협약\’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지적재산권 보호 국제합동사무국\’이 설치되었다. 그뒤 1967년에 파리협약과 베른협약이 개정되면서 관련된 새로운 국제기구의 설립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에 따라 1970년에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설치되었다. 다시 1990년대에 들어와서 1994년에 \’세계무역기구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최종협약안\'(WTO/TRIPs)이 성립하고, 이어서 1996년에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저작권조약\’과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실연․음반조약\’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서 19세기 말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저작권 관련 국제협약은 그로부터 100여년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전세계를 아우르는 국제협약으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이런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1990년대에 이루어진 변화이다. 특히 WTO/TRIPs는 종래에 특수한 영역으로 다루어지던 지적재산권을 일반무역의 의제로 다루기 시작한 것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무역을 하지 않고 완전한 자립경제를 이루고 살아간다면 혹시 모를까, 이제 무역을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도 이 협약의 틀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 바탕에는 이른바 정보사회화 현상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정보사회는 단순히 정보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사회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지는 정보사회화는 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갈수록 커지는 사회적 변화를 뜻하기도 한다.
본래 정보는 사용해도 줄어들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거래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를테면 누구나 쉽게 \’복제\’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정보는 \’무한\’하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정보는 경제적 거래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무한\’한 것을 누가 돈을 주고 사겠는가? 그러나 \’정보의 무한성\’은 사실 \’정보 복제의 무한성\’을 뜻한다. 따라서 아무나 함부로 복제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면, 정보는 더 이상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이 되어 버린다.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지적재산권은 국가의 강제력을 이용해서 \’정보의 무한성\’을 인위적으로 없애서 이처럼 정보를 경제적 거래의 대상으로 만드는 제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 \’정보의 소유자\’에게 막대한 독점이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적 자산을 풍부하게 해서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이 이처럼 \’공익\’을 강조하는 것은 정보의 사회적 특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보의 물리적 특성이 그 \’무한성\’에 있다면, 그 사회적 특성은 이 세상의 어떤 정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역사성\’에 있다. 모든 새로운 정보는 언제나 다른 정보와 연관해서 만들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자\’라도 무에서 유를 낳는 \’창조자\’가 아니라 유에서 유를 낳는 \’혼합자\’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창작자\’에게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정보\’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그가 이용한 \’낡은 정보\’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까지도 제공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나아가 그는 \’낡은 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의 \’새로운 것\’을 이용해서 또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사회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지적재산권에는 일반적인 소유권과는 달리 \’권리의 연한\’이 있고, \’공정이용권\’과 같은 \’권리의 제한\’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들은 모두 \’창작자\’에게 독점이윤을 제공한다는 지적재산권의 수단을 그 목적보다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부터 이미 많은 문제들이 빚어지고 있다. 특허권과 관련해서는 예컨대 에이즈 치료제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싼 논란에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이런 약의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초국적기업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가난한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로부터 \’특허를 통한 살인\’이라는 비난마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는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문제가 저작권과 관련해서도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문제의 촛점은 다름아닌 인터넷이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할 무렵에 이미 인터넷은 저작권과 관련해서 논란의 촛점이 되었다. 한편에서 \’정보의 바다\’로 인터넷의 가능성을 높이 사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해적의 천국\’이 될 수 있다면 인터넷의 미래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빌 게이츠는 그의 유명한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 인터넷의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빌 게이츠의 이런 주장은 소프트웨어를 비롯해서 모든 저작물의 디지털화가 촉진되면서 산업계로부터 더욱 더 강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1990년대 초에 이른바 \’정보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하고 추진할 때부터 이에 대한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대책의 요지는 기존의 저작권을 모든 디지털 저작물로, 그리고 그것을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으로 확대해서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저작물의 \’복제\’는 무엇보다 \’불법복제\’라는 관점에서 파악되기 시작했고,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기에 앞서서 \’해적의 천국\’이라는 관점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1998년에 미국 정부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를 통해 국제협약을 우선 강화하고 그렇게 강화된 국제협약을 미국이 받아들인다는 방식으로 이른바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이라는 우스꽝스런 이름의 새로운 저작권법을 제정하였다. 19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불법복제\’ 단속이 크게 강화된 것은 이런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자본주의는 이중의 확장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첫째는 지리적 확장이다. 그것은 서구에서 태동해서 결국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둘째는 정보적 확장이다. 그것은 물질재를 중심으로 하는 \’물질자본주의\’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정보재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자본주의\’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정보사회\’는 바로 이러한 \’정보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러나 정보의 \’무한성\’과 \’역사성\’에 비추어 보자면, \’현실 정보사회\’는 내적으로 깊은 모순을 안고 있는 사회이다. \’특허에 의한 살인\’과 같은 반인륜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P2P\’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 모순을 그냥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