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정보접근권, 현실 정보사회
- 열린 정보접근권 운동을 위하여 -
홍 성 태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1. 저작권의 형성
‘소리바다’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의 이용방식, 특히 저작권의 영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홍성태, 2003). 그런데 저작권은 언제 만들어졌으며, 어떤 구실을 하고 있나? 이 문제는 근대 사회의 형성과 변화라는 더 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은 영어의 ‘COPYRIGHT’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그대로 옮기자면 저작권이 아니라 ‘복제권’ 또는 ‘복사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또한 저작권이라는 용어보다는 ‘판권’이라는 용어가 귀에 더 익숙한 사람도 많을텐데, 이 용어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踰吉)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19세기 말에 저작권법이 제정되면서 ‘판권’은 법률용어로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판권’도 ‘출판의 특권’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COPYRIGHT’라는 영어의 본래 뜻에 가깝게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이라는 용어는 무엇보다 저작물에 관한 권리를 뜻하는 데, 이 권리는 저작물의 복제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만들어졌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저작권보다는 ‘복제권’이나 ‘판권’이 역사적 상황을 더욱 명확하게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저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된 복제물에 관한 권리의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저작자의 권리와 복제자의 권리를 구분해서 보호하여 저작과 복제를 동시에 촉진할 필요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작권이라는 새로운 권리의 모태는 바로 ‘구텐베르크 혁명’이었다.
좁은 의미에서 ‘구텐베르크 혁명’이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50년에 발명한 활판 인쇄술을 가리킨다. 이것은 미리 주물로 떠놓은 금속활자들을 판 위에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인쇄하는 기술이다. 이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손으로 한 자씩 써서 책을 만들거나 목판이나 금속판으로 책의 판을 만들어서 찍어야 했다. 구텐베르크는 이 인쇄술을 이용해서 1454년에 라틴어 성경을 찍었다. 그리고 1500년 무렵에는 유럽에 천 곳이 넘는 인쇄소가 생겨나서 성경이며 각종 고전문헌들을 값싸게 찍어서 널리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각종 책들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소수의 특권층이나 수도사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책을 이제는 일반인들도 이전에 비해 훨씬 손쉽게 구해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당연하게도 그 결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구텐베르크 혁명’은 이처럼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서 ‘사회의 민주화’를 촉진하게 된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근대 사회는 이러한 기술-사회적 변화를 통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순탄하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금서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많은 책들이 권력에 의해 엄중하게 통제되었다(주명철, 1990). 이를 위해서 물리력만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496년에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출판특허제도’가 그것이다. 이 제도는 형식적으로 저작권법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무렵에는 아직 ‘저작자의 권리’라는 개념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 제도는 기존의 권위에 비판적인 저작물의 출판을 금지하는 동시에 특허수수료를 챙기려는 봉건 군주의 정치적 및 경제적 속셈과 저작물의 출판을 독점해서 이익을 보려는 출판자의 경제적 속셈이 야합해서 만들어졌다.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근대적 저작권법은 1710년에 제정된 영국의 ‘앤 여왕법’으로 출발하였다. 계몽주의가 성숙하면서 봉건 군주의 검열이 약화되고 저작자의 권리의식이 싹트면서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요컨대 근대적 저작권법은 봉건 군주가 몰락하고 근대 사회가 나타나면서 저작자와 출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법은 서구에서도 각 나라의 발전 정도에 따라 시기를 달리 하며 나타나게 되었다. 예컨대 미국은 1790년에, 프랑스는 1793년에, 그리고 독일은 1871년에 저작권법을 제정하게 된다.
2. 저작권과 현실 정보사회
서구의 각 나라가 저작권법을 제정하게 되자 이제는 나라마다 다른 저작권법을 국제적으로 관리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결과 1886년에 ‘문학․예술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1892년에는 1883년에 체결된 산업재산권에 관한 ‘파리협약’과 ‘베른협약’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지적재산권 보호 국제합동사무국’이 설치되었다. 그 뒤 1967년에 파리협약과 베른협약이 개정되면서 관련된 새로운 국제기구의 설립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에 따라 1970년에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설치되었다. 다시 1990년대에 들어와서 1994년에 ‘세계무역기구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최종협약안’(WTO/TRIPs)이 성립하고, 이어서 1996년에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저작권조약’과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실연․음반조약’이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1990년대에 이루어진 변화이다. 특히 WTO/TRIPs는 종래에 특수한 영역으로 다루어지던 지적재산권을 일반무역의 의제로 다루기 시작한 것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무역을 하지 않고 완전한 자립경제를 이루고 살아간다면 혹시 모를까, 이제 무역을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도 이 협약의 틀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 바탕에는 이른바 ‘정보사회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정보사회는 단순히 정보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사회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지는 정보사회화는 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갈수록 커지는 사회적 변화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지배 아래 놓인 현실 정보사회에서는 정보의 독점적 사용을 보장하는 지적재산권이 갈수록 강화된다(홍성태, 2002). 정보의 독점적 사용을 법이라는 강제적 규범을 통해 보장하지 않는다면 정보의 경제적 가치는 쉽게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래 정보는 사용해도 줄어들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거래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를테면 누구나 쉽게 ‘복제’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흔히 말하듯이 정보는 ‘무한’하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정보는 경제적 거래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무한’한 것을 누가 돈을 주고 사겠는가? 그러나 ‘정보의 무한성’은 사실 ‘정보 복제의 무한성’을 뜻한다. 따라서 아무나 함부로 복제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면, 정보는 더 이상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이 되어 버린다.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지적재산권은 국가의 강제력을 이용해서 ‘정보의 무한성’을 인위적으로 없애서 이처럼 정보를 경제적 거래의 대상으로 만드는 제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 ‘정보의 소유자’에게 막대한 독점이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적 자산을 풍부하게 해서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이 이처럼 ‘공익’을 강조하는 것은 정보의 사회적 특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보의 물리적 특성이 그 ‘무한성’에 있다면, 그 사회적 특성은 이 세상의 어떤 정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역사성’에 있다. 모든 새로운 정보는 언제나 다른 정보와 연관해서 만들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자’라도 무에서 유를 낳는 ‘창조자’가 아니라 유에서 유를 낳는 ‘혼합자’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창작자’에게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정보’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그가 이용한 ‘낡은 정보’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까지도 제공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나아가 그는 ‘낡은 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의 ‘새로운 것’을 이용해서 또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사회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지적재산권에는 일반적인 소유권과는 달리 ‘권리의 연한’이 있고, ‘공정이용권’과 같은 ‘권리의 제한’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들은 모두 ‘창작자’에게 일시적으로 독점이윤을 제공한다는 지적재산권의 수단을 그 목적보다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부터 이미 많은 문제들이 빚어지고 있다. 특허권과 관련해서는 예컨대 에이즈 치료제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싼 논란에서 잘 드러났듯이, 이런 약의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초국적기업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가난한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로부터 ‘특허를 통한 살인’이라는 비난마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는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문제가 저작권과 관련해서도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문제의 초점은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할 무렵에 이미 인터넷은 저작권과 관련해서 논란의 초점이 되었다. 한편에서 ‘정보의 바다’로 인터넷의 가능성을 높이 사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해적의 천국’이 될 수 있다면 인터넷의 미래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빌 게이츠는 그의 유명한 <미래로 가는 길>라는 책에서 인터넷의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빌 게이츠, 1995). 빌 게이츠의 이런 주장은 소프트웨어를 비롯해서 모든 저작물의 디지털화가 촉진되면서 산업계로부터 더욱 더 강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1993년에 이른바 ‘정보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하고 추진할 때부터 이에 대한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대책의 요지는 기존의 저작권을 모든 디지털 저작물로, 그리고 그것을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으로 확대해서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저작물의 ‘복제’는 무엇보다 ‘불법복제’라는 관점에서 파악되기 시작했고,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기에 앞서서 ‘해적의 천국’이라는 관점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입법 활동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맞서서 미국 정부는 우선 1996년에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통해 국제협약을 강화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렇게 강화된 국제협약을 미국이 받아들인다는 방식으로 1998년에 이른바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이라는 우스꽝스런 이름의 새로운 저작권법을 제정하여 디지털 저작물에 대한 보호와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크게 강화하였다.
3. 한국과 현실 정보사회
자본주의는 이중의 확장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첫째는 지리적 확장이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서구에서 태어나서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사회주의 세계체계의 등장으로 한동안 지구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했으나, 사회주의 세계체계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는 명실상부하게 지구화되었다. 둘째는 정보적 확장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물질재의 생산과 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물질자본주의’로 시작되었으나, 지적재산권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정보재의 중요성이 계속 커졌으며, 1990년대부터는 정보재의 생산과 교환이 본격적인 무역의 의제가 될 정도로 ‘정보자본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정보자본주의 사회’로서 ‘현실 정보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홍성태, 2002). 이에 따라 정보재의 생산과 교환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변화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제적 규범인 법의 변화이다. 특히 미국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저작권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이루어졌다. 물론 그 방향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저작물의 생산과 교환에서 저작권 또는 복제권의 보호를 크게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불가피한 변화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도 정보는 사용해도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떤 정보도 완전히 무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정보의 본래적인 특수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저작권 또는 복제권의 보호를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최근에 이루어진 저작권법의 변화를 통해 이 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957년 1월에 제정된 한국의 저작권법은 1986년에 처음 개정되었으며 2003년의 개정은 열한번째에 해당된다. 1, 2년 사이를 두고 저작권법은 계속 개정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개정’이었던 1986년 12월에 이루어진 첫개정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文化의 발달에 따라 著作權의 내용과 그 이용관계가 複雜 多樣하여졌으나, 현행 著作權法은 1957年 1月 28日 制定․公布된 후 그대로 施行되고 있어 法의 解釋 및 適用上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을 뿐 아니라 著作權者 및 著作物利用者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도 미흡한 사항이 많아, 著作權關係 國際條約의 加入을 전제로, 國際的으로 인정되고 있는 制度를 도입하여 著作權者의 權益을 보호․伸張하면서 그 權利의 행사를 公共의 利益과 調和시킴으로써 文化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全面的으로 整備하려는 것임.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개정이유는 ‘문화의 발달’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중요한 개정이유는 ‘저작권 관계 국제조약의 가입’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무렵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지적재산권의 강화를 통해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무역상대국들에게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홍성태, 2002).
첫 개정 뒤에 계속 이어진 저작권법의 개정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2000년과 2003년의 개정이다. 예컨대 2000년 개정에 바로 앞선 개정이었던 1997년의 개정은 행정절차법의 개정에 따라 기존의 저작권법을 약간 다듬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와 달리 2000년의 개정에서는 기술발달의 영향을 받아들여 저작권의 보호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디지털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複寫機器의 보급확대로 인하여 著作者의 權利侵害가 날로 증가함에 따라 著作者의 權利保護를 강화하고 著作物의 이용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著作權의 不法侵害로부터 著作者를 보호하기 위하여 著作權侵害에 대한 罰則을 강화하여 著作權 보호의 실효성을 높임으로써 급변하는 國內外의 著作權 환경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는 것임.
요컨대 컴퓨터와 인터넷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디지털 저작물의 유통이 급속히 늘어나게 된 현실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또한 1986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미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는데, 1998년에 제정된 미국의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을 따라서 저작권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처럼 기존의 저작권을 새로운 디지털 기술환경에도 적용해서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한다는 원칙이 법으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2000년의 개정은 사실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편에서 컴퓨터통신을 통한 전송에 대한 저작권자의 ‘전송권’을 새롭게 인정하는 한편, 도서관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저작물을 도서관 밖으로 전송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이러한 불일치는 곧 조정되었다. 2001년 11월에 국회에 제출된 새로운 개정안은 저작권의 보호를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술의 발달과 저작권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돌파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크게 반발했다(정보공유연대 외, 2002). 그러나 시민사회의 반발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2003년 5월 27일자로 개정된 저작권법이 공포되었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개정 저작권법의 개정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식정보사회의 진전으로 데이터베이스․디지털콘텐츠 등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데이터베이스의 제작 등에 드는 투자노력을 보호하고, 저작권자 등이 불법복제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행하는 기술적 보호조치 및 저작물에 관한 권리관리정보를 다른 사람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등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저작권보호를 강화하며, 인터넷을 통한 제3자의 저작권 침해 시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면책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그 책임범위를 명확히 하여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그밖에 현행 제도의 운영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임.
개정이유에서부터 개정 저작권법의 문제는 명확하게 드러나는 데, 예컨대 ‘데이터베이스의 제작 등에 드는 투자노력을 보호’하는 것은 저작권의 보호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개정이유는 현실 정보사회의 제도적 강화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하겠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정부가 제시한 여덟 가지의 개정된 주요 내용을 통해 개정 저작권법의 문제를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가. 종전에는 창작성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한하여 권리로서 보호를 하였으나, 앞으로는 창작성의 유무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하거나 그 갱신․검증 또는 보충을 위하여 상당한 투자를 한 자에 대하여는 일정기간 당해 데이터베이스의 복제․배포․방송 및 전송권을 부여하도록 함(법 제2조제12호의5 및 제73조의2 내지 제73조의9 신설).
나. 도서관 등이 도서 등을 도서관 간에 열람목적으로 전송하거나 디지털 도서 등을 복제하는 경우에 문화관광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보상금을 지급하거나 이를 공탁하도록 하고, 당해 도서관 관내에서의 열람을 위한 복제․전송의 경우에는 보관하고 있는 도서 등의 부수 범위 내에서 저작권자 등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여도 가능하도록 함(법 제28조).
다. 시각장애인 등의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당해 시설의 장을 포함한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시각장애인 등의 이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공표된 어문저작물을 시각장애인등 전용 기록방식으로 복제․배포 또는 전송할 수 있도록 함(법 제30조).
라.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보호기간은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하거나 갱신 등을 한 때부터 5년으로 함(법 제73조의6 신설).
마.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저작물이나 실연․음반․방송 또는 데이터베이스의 복제․전송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 의한 이들 권리의 침해사실을 알고서 당해 복제․전송을 중단시킨 경우에는 그 다른 사람에 의한 권리침해행위와 관련되는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도록 하는 등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면책요건 등을 정함(법 제77조 신설).
바. 저작권 등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력화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기술․서비스․장치 등이나 그 주요부품을 제공․제조․수입․양도․대여․전송하는 행위는 이를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행위로 보고, 동 위반행위자에 대하여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법 제92조제2항 및 제98조제5호 신설).
사. 저작권 등 권리의 침해를 유발 또는 은닉한다는 사실을 알거나 과실로 알지 못하면서 전자적 형태의 권리관리정보를 제거․변경하는 행위 등은 이를 저작권 등의 권리침해행위로 보고, 동 위반행위자에 대하여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법 제92조제3항 및 제98조제6호 신설).
아. 종전에는 손해액에 관하여 부정복제물의 부수 등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이를 출판물의 경우 5천부, 음반의 경우 1만매로 추징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앞으로는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함(법 제94조).
본래 저작권은 ‘창작’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직접적인 목적은 ‘독창적인 창작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정 저작권법은 데이타베이스 제작을 무차별적으로 보호하기로 하면서 저작권법을 ‘투자보호법’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또한 도서관 간의 저작물 전송을 규제함으로써 디지털 도서관 정책을 크게 위축시키고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었다. 이른바 불법복제에 대한 규제도 저작권자의 주장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이렇듯 개정 저작권법은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한다면서 저작권의 헌법적 의미를 훼손하고 이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를 크게 안고 있다.
현실 정보사회는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과 이용을 제약함으로써 결국 정보의 풍부한 생산이 저해되어 사회불평등이 심각하게 악화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개정 저작권법은 이런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저작권법은 다시금 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물론 저작권의 헌법적 의미를 지키고 이용권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4. 열린 정보접근권운동
저작권과 관련된 논란은 크게 두 가지 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저작권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용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둘 사이의 조화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현실의 실태를 보면, 두 가지 축 내부에도 여러 흐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저작권을 강조하는 축에는 실제 창작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쪽과 그것을 인수받은 유통업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쪽이 있다. 다음에 이용권을 강조하는 쪽에도 모든 지적재산권을 부정하는 흐름이 있는가 하면 지적재산권의 일방적인 강화에 반대하는 흐름이 있다.
그러나 2003년의 개정 저작권법은 이런 조화의 원칙을 사실상 무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개정 저작권법의 문제를 드러내고 다시금 저작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법은 강제적 규범이라는 점에서 저작권법의 개정은 무엇보다 중요한 실천적 목표이다. 둘째,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저작물을 늘리는 것이다. 현실 정보사회에서 저작권법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요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이에 대한 저항이 현실 정보사회의 중요한 특징이기는 하지만, 이런 점에서 현실 정보사회는 완전히 안정된 사회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지배적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저작권법의 강화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은 새로운 대안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무임승차’를 훌쩍 넘어선 정보공유운동의 전개로 나타나야 한다(홍성태, 2001).
정보공유운동은 소프트웨어와 컨텐츠 분야로 크게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정보공유운동은 크게 네가지 부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 셈이다. 다음의 표는 이것을 간단히 나타낸 것이다.
<표> 정보공유운동의 영역
사적 영역
공적 영역
소프트웨어 분야
컨텐츠 분야
정보공유의 공익성에 비추어 보자면, 분야의 차이를 떠나서 공적 영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 영역은, 예컨대 정부는 사적 영역의 반발 때문에 공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사적 영역의 자발적 활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적 영역은 기업으로 대표되는 영리영역과 NGO로 대표되는 비영리영역으로 나뉜다. 이렇게 나누어 놓고 보면, 비영리영역의 정보공유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분야는 그누(GNU)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리눅스운동에 이르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컨텐츠분야는 이와 달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프트웨어와 관련해서 정보공유운동은 나름대로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컨텐츠분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이다. 1990년대 말부터 컨텐츠분야에서 정보공유운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미약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을 뚫고나가기 위해 2002년 3월부터 정보공유연대는 정보접근권의 확보를 중심으로 한 여러 움직임들을 찾아보고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크게 일반 컨텐츠분야와 과학 컨텐츠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정보공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정보접근권의 확보가 그 핵심적 요소라는 것을 또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정보공유는 확실한 정보공개와 자유로운 정보접근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저작권의 강화는 일반적으로 정보공유를 저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결과 사회의 발전이 심각하게 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정보공유는 사회의 발전을 위한 기본적 조건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정보공개와 정보접근은 당연하게도 사회의 발전을 위한 핵심적 요건이 된다. 어떻게 해서 그런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인가? 정보공유연대의 작업은 우리가 어떤 길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놓여 있는 길을 어떻게 바꿀 수 있으며, 나아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첨부 파일http://www.ipleft.or.kr/bbs/data/ipleft_5/2/저작권_정보접근권_현실정보사회.pdf과거 URL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