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와 저작권

"시네마錢쟁ⓩ 인디플러그, 불법업체에 선전포고," 스포츠칸, 2010.7.22.
"독립영화, 불법 다운로드와 전쟁선포 ‘민형사 고소’," 머니투데이, 2010.7.22.

며칠 전에 위 두 기사를 보았다. 너무 황당해서 트위터에 ‘충격과 실망’이라고 썼다. 동조하는 리트윗도 있었고, 이런 반응이 ‘충격과 실망’이라는 리트윗도 있었다.

국내 메이저 영화업계에서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했을 것이다. (물론 저작권이나 불법복제에 대한 영화업계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충격을 받고, 실망을 한 이유는 그 발언의 주체가 독립영화의 온라인 유통을 하고 있는 ‘인디플러그‘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디플러그는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이지만, 독립영화를 하시는 분이 만들었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일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영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독립영화의 저작권 문제에 대한 토론회나 모임에 몇 번 참여한 적은 있지만, 난 독립영화’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태준식 감독 등 저작권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알기는 하지만, 다른 독립영화인들이 저작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어쩌면 지금까지 저작권 문제가 독립영화의 제작이나 배포 등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그래서 이에 대한 많은 고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워낭소리’나 ‘똥파리’ 등 일부 독립영화가 소위 히트를 치고, 독립영화의 디지털 배급이 본격화되는 지금이 독립영화의 저작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쨌든 ‘충격과 실망’이라는 표현에 드러나듯, 현행 저작권 체제와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정체성은 양립하기 힘든 것이었다. (최근 이 이슈와 관련하여 정보공유연대 허민호씨가 미디어스에 컬럼을 기고하였다. 정보공유연대 내에서 일정하게 토론이 있었고, 내 입장은 허민호씨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허민호의 평범한 발작] 인디플러그의 활동과 독립영화계의 침묵 – 독립영화는 무엇으로부터 독립했는가?, 미디어스, 2010.8.13.)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가 기존 권력체제에 비판적인 영화라면, 저작권 체제는 독립영화가 비판적으로 다뤄야할, 정보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한 지배체제이다. 정보공유연대와 진보넷의 그간 활동을 통해 현행 저작권 체제의 문제에 대해 수없이 지적해왔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자세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는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 제도가 선진 자본주의 제국이 7~80년대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초과이윤 착취를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제도적 기반이며, 이제 지적재산권 제도는 창작자, 혁신가를 보호한다기 보다는 지적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초국적 제약, 문화 자본은 국제기구 및 국내 권력기관에의 로비를 통해 지적재산권 제도를 계속적으로 강화시켜온 과정에 대해서는 내 블로그에서 한번 소개한 <초국적 기업에 의한 법의 지배 – 지재권의 세계화>라는 책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가 인권과 문화 다양성을 위한 영상운동이라면, 저작권 체제는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에 대한 접근권과 문화향유권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가능해진 다양한 문화 창작을 제약함으로써 문화 다양성을 억압한다. 예컨데, 디지털 도서관이 저작권때문에 무력화되고, 불멸의 이순신 팬카페에 올라온 동영상 클립과 사진이 삭제되는가 하면, 미쳤어를 따라부른 아이의 동영상을 올리는 것조차 제재당하고 있다. 불법복제 단속으로 청소년이 자살하는가 하면,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계정이 정지되거나 게시판이 폐쇄될 수도 있다. (저작권 삼진아웃제)

독립영화인들에게 저작권이 도움이 될 지도 의문이다. (이는 대다수의 비영리 창작자들에게 마찬가지다.) 특히, 어문 저작물의 경우 인용 등이 공정이용으로 인정되는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반면, 영상물의 경우 타인의 음악이나 영상을 이용하는 것이 저작권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다. 많은 영상 클립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다큐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일일이 이용허락을 얻거나 로열티를 지불하기 힘든 독립영화인이나 비영리 창작자들에게 저작권 체제는 새로운 창작을 위축시키는 매우 중대한 제도적 제약이 된다.

내가 인디플러그의 굿다운로드 캠페인 동참에 실망한 것은 독립영화와 저작권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다. 굿다운로드 캠페인은 불법복제 단속의 또 다른 얼굴이며, 영화의 발전이란 명분으로, 사실상 영화자본의 이익을 위해,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털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저작권에 의해 침해받고 있는 이용자들의 권리와 또 다른 창작의 위축은 은폐한다. 물론 현행 저작권 체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거나, 독립영화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관점을 달리할 것이다.

만일 인디플러그는 독립영화를 취급품목으로 할 뿐, 여느 영화업체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그건 내가 오해한 것이니 앞으로 인디플러그에 대해서 특별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다만, 독립영화인들이 저작권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며, 그래서 이 논의는 인디플러그가 계기가 되긴 했지만, 사실은 독립영화계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혹자는 현행 저작권이 ‘과도’할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창작 과정에서는 저작권이 독립영화계에 제약이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현실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유료로 서비스되고 있는 독립영화의 입장에서는 불법복제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입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이용자도 아니고 독립영화 불법복제로 이익을 얻고 있는 웹하드 업체에 대한 고소, 고발이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문제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를 통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불법복제 단속을 강화하고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독립영화 역시 기존 주류 영화의 제작-유통-소비 시스템에 포섭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작품의 관점에서는 이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바람직한 저작물 생산-유통-향유 시스템인지에 대해서는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현행 저작권 체제가 과연 문화의 향상, 발전을 촉진하는 제도인가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일부 독립영화는 수익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독립영화가 기존 저작권 시스템을 수용하는 것이 과연 독립영화(및 비영리 영상물) 전반의 창작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여기서 ‘불법복제’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통상적으로 유통되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일 뿐이며, 무엇이 ‘불법’인가하는 문제 역시 이슈이다. 예컨데, 나는 개인의 비영리적 복제/다운로드는 공정이용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행 법상으로도 허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정부는 이를 불법화하려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나는 현재 인디플러그가 채택하고 있는 사업모델(유료 다운로드 서비스)이 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인디플러그를 책임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디플러그 구성원들이 현실적인 조건, 가능성과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채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영화의 협력자로서 현행 저작권 체제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갖고 있다면, 저작물의 불법(?) 다운로드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굿다운로드 캠페인에 결합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만이 아니라 (그것을 버리지 않더라도) 좀 더 대안적인 사업모델도 함께 실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영화의 배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독립영화의 입장에서 온라인은 새로운 기회일 것이다. 그래서, 인디플러그도 만들어졌을 것이고. 불법 다운로드라고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다운로드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영화가 배급되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냅스터나 소리바다가 이슈가 될 때에도 있었던 전통적인 논쟁인데, 냅스터나 소리바다를 통해 음악의 향유층이 확대되어 오히려 음반 판매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었다는 것) 오히려 독립영화의 자발적인 유통과 배포를 막는 것보다는 그렇게 확대된 독립영화의 대중들을 어떻게 독립영화 생산자에 대한 지원이나 독립영화 생산의 활성화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예스맨 프로젝트(The Yes Men Fix the World)>를 P2P를 통해 배포한 보도(http://vodo.net/)의 경우, 매월 영화를 P2P로 배포하고 다운로더의 후원을 유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컨텐츠 자체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되, 다른 방식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내고자 하는 것은 (운동권의 공허한 이상이 아니라) 심지어 웹2.0 시대의 자본의 전략이기도 하다. 예컨데, 유튜브는 저작권이 있는 영상물에 대해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보여주고 그 수익을 저작권자와 나눈다. 독립영화라면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해진 영상물의 유통과 이용을 제약하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수용자들의 참여와 지지를 새로운 창작 기반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대안적 사업 모델을 고민하는 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계기를 통해 독립영화와 저작권 문제에 대해 독립영화 창작자들의, 그리고 독립영화를 아끼는 사람들의 토론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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