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P/UNAIDS, “공중보건에 대한 FTA의 잠재적 영향” 발표]
UNDP/UNAIDS에서 “공중보건에 대한 FTA의 잠재적 영향(The Potential Impact of Free Trade Agreements on Public Health)”이란 제목의 Issue Brief를 발표했다. UN과 그 산하기구에서 의약품접근권과 지적재산권의 관련성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이다. UN과 산하기구는 현재의 지적재산권체제가 크게 두가지 문제를 갖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지적재산권체제가 의약품 연구개발에 있어 필요(need)에 근거하지 않고 시장이윤을 좇아 이뤄지도록 했다는 점과 두 번째는 지적재산권으로 인한 독점으로 비싼 약값이 유지되면서 개발도상국의 수많은 이들이 의약품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는 세계보건기구(WHO)차원에서 의약품연구개발조약(MRDT)에 대한 논의가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호를 기다려주세요).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 UNDP/UNAIDS의 발표는 FTA가 의약품접근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구체적 사례를 들고 TRIPS-Plus조항을 포함하는 FTA를 체결하지 말 것을 권고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95년 TRIPS협정의 발효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절감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브라질 정부 등은 WTO와 UN에 문제제기를 했다. 시작은 ‘TRIPS와 인권’이란 주제로 접근했다. 2001년 2월에 미국정부가 브라질의 특허법, 특히 강제실시 조항이 TRIPS에 부합하는지 WTO 분쟁 패널에 제소하자 브라질 정부는 2001년 4월에 UN Human Rights Commission에서 에이즈와 같은 감염병이 확산되었을 때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의약품접근권을 확립할 것을 제안하는 결의안을 제출하여 채택되었다. 그러자 미국정부는 WTO에 제소한 것을 취하했다. TRIPS협정과 현재 지적재산권체계에 대해 정면비판을 하지 않고 ‘건강권은 국가의 우선적 책임’임을 강조하면서 공공의 이익과 사적이익간의 균형을 이뤄야한다는 것이 주내용이었지만 건강권(의약품접근권)과 지적재산권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TRIPS협정을 초국적제약자본의 이해에 근거하여 해석하는데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2001년 6월 UN 총회에서 ‘에이즈에 대한 선언문(Declaration on HIV/AIDS)’이 채택되었다. 선언문은 HIV감염인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원칙의 일부로 수립하였고, 각 국가가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공급하는데 영향을 주는 다양한 장애를 극복하기위한 국가적 전략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11월에 열린 WTO각료회의를 앞두고 초국적제약회사의 횡포에 대해, 에이즈를 비롯한 질병으로 사회유지자체를 위협당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TRIPS협정에 대한 해석을 다시 할 것을 제기하였다. 결국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WTO각료회의에서는 ‘TRIPS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 선언문’을 채택하게 되었다. 도하 선언문은 “TRIPS협정 중 그 어떠한 것도 WTO회원국들이 각국의 공중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각 회원국은 강제실시를 허여(許與)할 권리가 있고, 강제실시가 허여되는 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의약품접근권 확보를 비롯한 공공의 건강보호가 특허권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즉 TRIPS협정이 초국적제약회사에게 전 세계적으로 독점적 생산지위를 보장해줌으로써 발생하는 건강권의 심각한 침해를 막기위한 TRIPS협정상의 ‘유연성’을 활용할 권한을 재확인한 것이다.
2011년 3월에 WHO/UNDP/UNAIDS는 “에이즈치료접근을 향상시키기위해 TRIPS 유연성 활용하기(Using TRIPS flexibilities to improve access to HIV treatment)”란 제목으로 Joint policy Brief를 발표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강제실시, 병행수입, 최빈국에 대한 유예기간, 볼라조항 등의 TRIPS협정상의 유연성을 잘 활용하여 제네릭 경쟁을 촉진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2001년 도하선언이후 WHO가 도하선언의 내용을 적극 옹호한 것은 아니다. 2007년초에 태국정부가 에이즈치료제와 항암제 등에 강제실시를 발동했을 때 마가렛 창 WHO사무총장은 태국정부의 강제실시는 합법적이지 않은 절차로 진행되었다고 초국적제약회사와 같은 비판을 하여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활동가와 보건의료활동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WHO/UNDP/UNAIDS가 TRIPS 유연성을 잘 활용하라고 발표했던 배경은 2000년대들어 브라질과 인도에서 제네릭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10년간 1차 에이즈치료제의 가격이 약 1/100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였다는 점, 하지만 2차, 3차 에이즈치료제는 여전히 고가여서 개발도상국의 환자들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는 점, 도하선언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초국적제약회사는 개발도상국에서 TRIPS협정상의 유연성을 활용하려고 할 때마다 무역제제와 압력, 소송으로 방해를 하였지만 태국(강제실시), 브라질(약가협상과 강제실시), 남아공(반경쟁법), 르완다(수출을 위한 강제실시), 인도(특허자격의 범위를 엄격히 규정한 특허법 Section3(d)) 등 몇가지 성공한 예가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FTA에 대한 언급은 아주 일부분이며 구체적이지 않다. 즉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과 FTA를 체결할 때 도하선언의 원칙에 부응하도록 하고, 개발도상국의 의회는 새로운 무역협정이 도하선언에 반하지 않도록 하라는 정도이다.
2011년 6월에 ‘에이즈에 관한 유엔고위급회의(UN general assembly high level meeting on HIV/AIDS)가 열렸다. 2001년 에이즈에 대한 선언문이후 10년만에 향후 10년을 대비하기위한 새로운 선언문인 ’에이즈에 대한 정치선언문(Political Declaration on HIV/AIDS: Intensifying our Efforts to Eliminate HIV/AIDS)‘이 채택되었다. 채택과정에서 최대의 쟁점은 FTA였다. 에이즈감염인그룹과 미국, 유럽연합, 일본정부간에 에이즈대응의 목표와 그 목표를 실현하기위한 방법에 대해 정면 대립하였다. 유엔은 2015년까지 1500만명의 에이즈감염인에게 에이즈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목표, 일명 15by15를 세웠지만( 제네릭 경쟁으로 약값이 인하되어 2010년 말 현재 저/중간소득 국가에서 에이즈치료를 받고 있는 에이즈감염인은 약 660만명으로 늘었지만, 치료가 필요한 900만명의 에이즈감염인이 여전히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기때문), 의약품접근권을 훼손하는 원인으로써 지적재산권과 FTA의 폐해를 명백히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15by15를 달성하기위한 방법으로는 트립스유연성을 활용하라는 선언에 그침으로 FTA 및 위조방지무역협정(ACTA)을 추진하는 정부와 초국적제약자본에게 물어야 할 책임을 회피했다. 세계 각국의 에이즈감염인단체와 사회운동단체는 유엔고위급회의를 앞두고 모든 FTA과 트립스플러스(TRIPs-plus)조치들에 모라토리움을 촉구하고, 의약품접근권을 훼손하는 원인으로써 지적재산권과 FTA의 폐해를 부정하는 미국, 유럽, 일본정부의 입장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지만 무시되었다.
-[논평] 유엔의 에이즈선언문에 우려를 표하며: FTA와 유엔의 에이즈대응목표(15by15)는 공존불가!
이러한 흐름속에서 2012년 5월 31일 UNDP/UNAIDS가 발표한 “공중보건에 대한 FTA의 잠재적 영향(The Potential Impact of Free Trade Agreements on Public Health)”은 실행여부는 미지수이나 FTA가 의약품접근권에 미치는 폐해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미-콜롬비아FTA로 인해 2020년까지 의약품지출이 9억1900만달러까지 증가하거나 의약품소비가 40%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하였고, 미-요르단FTA로 인해 외국인투자가 증가하거나 발명이 증가하는 등의 이득은 거의 없다고 평가하였다. 수많은 FTA가 TRIPS협정보다 강력한 지적재산권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TRIPS-plus조항으로 ①특허자격 완화(Broadening Patentability), ②특허반대신청 제한(Restricting Patent Oppositions), ③특허기간확대(Extending Patent Duration), ④자료독점권(Test Data Exclusivity)과 허가-특허연계(Patent-Registration Linkage), ⑤ 집행(IP Enforcement Requirements)을 적시했다. TRIPS협정상의 유연성의 혜택을 유지하기위해 FTA에 TRIPS-plus조항이 포함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에 맞춰 5월 31일에 UNDP/UNAIDS와 아시아태평양에이즈감염인네트워크(APN+)는 공동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유엔과 보건의료활동가들이 주최한 고위급회의가 방콕에서 열렸는데, 9개국(캄보디아,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서 온 정부기관, 유엔, 시민사회, 학계에서 참여하였고 지적재산권과 FTA가 에이즈치료제 접근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론했다. 2006년이래 아태지역에서 에이즈치료를 받는 에이즈감염인의 수는 값싼 제네릭으로 인해 2010년말까지 약 100만명에 이르러 3배이상 증가했지만 치료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60%이상이 여전히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UNDP/UNAIDS와 아시아태평양에이즈감염인네트워크(APN+)는 아시아국가들이 에이즈치료 접근권을 향상시키기위해 지적재산권과 무역에 대한 새로운 전진을 해야한다며 특히 인도-EU FTA, 인도-EFTA 투자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UNDP/UNAIDS: The Potential Impact of Free Trade Agreements on Public Health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UN과 산하기구에서의 논의는 진일보한 면이 있지만 몇가지 한계가 있다. 첫 번째는 TRIPS와 FTA의 본질에 대해서는 평가를 회피한 채 지적재산권과 건강권간의 균형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 둘째는 더 강력한 지적재산권체계를 요구하는 선진국에 대한 평가와 요구는 회피하고 있다는 점, 셋째는 이런 상황에서 개도국에게만 TRIPS유연성을 활용하고 TRIPS-plus를 받아들이지말라고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TRIPS-plus조항을 포함한 FTA와 TRIPS협정이 개도국뿐만아니라 선진국의 민중들에게도 건강권(의약품접근권)을 박탈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FTA를 통해 노리는 것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세계규칙의 변화’라는 점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