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와 지적재산권, 새롭고 강한 기준에 관한 강박증

[ TPP와 지적재산권, 새롭고 강한 기준에 관한 강박증 ]

강성국(정보공유연대IPLeft 운영위원)

 

한국은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인해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전세계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진행상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현재 TPP는 북미부터 동아시아까지 12개국을 포괄하는 광범위 자유무역협정이며 참여하는 국가들의 무역규모를 단순하게 합산하면 전 세계 무역의 40%를 차지하고 더욱이 자유무역협정 자체가 정치적 관계 역시 포괄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사실만으로 TPP는 단순히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한 축을 넘어 세계화 전략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TPP의 진행상황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오바마 행정부 및 미 무역대표부(US trade representative)는 현재 의회로부터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TPA)이 부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협상을 비공개 하에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TPP가 올해 안에 타결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난 지난 8월의 브루나이 협상은 이런 미국의 소망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조급한 미국에게 위로거리가 있다면 협정에서 미국과 이해를 함께할 일본이 올해 TPP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최우방인 대만과 한국이 TPP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다.

TPP 협상이 이렇게 지지부진 한 이유에는 지적재산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사실 무역협정에 있어서 지적재산권은 언제나 가장 첨예한 문젯거리였다.

지적재산권이 처음으로 무역협정에 핵심요소로 등장한 1994년의 WTO(세계무역기구) TRIPs(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부터 그랬다. 1982년 시작된 우르과이 라운드 준비회의부터 시작하면 1994년 WTO 출범까지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다자간 협상이 이처럼 길어진 것에 대해서 지적재산권에 관한 논쟁도 한 몫을 차지했다. 농업부분과 함께 선진국과 저개발국가들 사이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일어난 것이 지적재산권 분야였다.

지적재산권이 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 핵심적인 난제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선진국과 저개발국가들은 지적재산권을 무역협정에 포함시키느냐의 문제, 그리고 불법복제와 해적질(piracy)에 대한 규제의 문제에 대해 서로 간 타협지점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TPP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적재산권은 기본적으로 저작권과 특허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 무형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상법(mercantile law)으로 응고시켜 사유화 하고 적절한 준독점(quasi-monopoly)을 형성하는 절차를 통해 상품화 한다.

이는 자본주의 형성의 싹이 움트던 영국의 1623년 특허법과 저작권법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1710년 앤여왕법(Statute of Anne)부터 이어지게 되는데 자본주의의 태동을 내포했던 영국 및 서유럽, 그리고 미국의 독특한 지식과 정보의 매개와 분배 방법이었다.

이것이 지구상 대부분 사회 전반의 지식활동과 창작활동으로 확대되고 법률이 팽창하게 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50년 전후이니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이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이런 식의 방법은 국제정치경제의 측면에서는 기술이전과 그로 인한 경제 발전을 더디게 하는 효과 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동력 외에 별다른 생산기술과 문화자본이 없는 저개발 국가들이 지적재산권을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거나 저개발 국가들의 요구와는 달리 20세기의 끄트머리에 TRIPs는 WTO 가입의 선결조건이 되는 부속서로 채택되었고 이를 통해 무역협정에 포함되게 된다. 그 뒤로부터 미국은 참여하는 모든 무역협정에 지적재산권 조항을 집어넣었고, 협정이 거듭될 때마다 지적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기준은 상향조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게 다자간 무역협정이든(TRIPs, NAFTA, FTAA 등) 양자간 무역협정이든(BIT, FTA 등) 상관없이 그렇다.

TRIPs 이후로 지난 20년간 지적재산권의 보호규제들은 단 한 번도 약해지지 않고 강화 되어왔다. 그리고 이런 국제적 기준의 강화는 지난 10년 사이에 더욱 급진적이었다. 최근 몇 년 간은 두 개의 협정이 그런 기준 역할을 해냈는데, 바로 한미 FTA와 ACTA(위조품거래 방지에 관한 협정)가 그것이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TPP의 지적재산권 조항들은 한미 FTA와 ACTA를 기초로 하고 있다.

앞선 연재에서 의약품 특허에 관한 논의를 이미 진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TPP 지적재산권 조항들 중에서 저작권과 관련되어 특히 중요한 내용 몇 가지를 TRIPs와 비교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TPP의 새로운 지적재산권들을 TRIPs와 비교하는 까닭은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으며 ACTA의 회원국도 아닌데 이들 국가들이 TPP 지적재산권 조항들로부터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Stuart Trew’s blog

 

1. 일시적 복제(Temporary Copies)

일시적 복제는 한미 FTA 당시도 논쟁이 되었던 조항이다. 컴퓨터가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 메모리, 즉 램(RAM)에 일시적으로 파일이 저장되며 상시적인 복제를 행하는데 이를 저작권 상의 ‘복제’에 포함시킨다는 것 자체가 논쟁이 되었다. 즉 이용자의 의사 여부(또는 저작권 침해 의사 여부)와 관계없이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작용이라는 것이 문제다.

일시적 복제에 대한 권리는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의 저작권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1996년 WIPO에서 처음 제기되었기 때문에 TRIPs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다. 일시적 복제에 대해서는 이용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과 소프트웨어 사용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2. 병행수입(Parallel Imports)

병행수입은 다수의 수입업자들이 적법한 관세 절차를 거쳐 수입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제도는 독점계약을 체결한 수입업자들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견제하는 기능을 해왔는데, TPP의 병행수입 조항은 권리자에게 병행수입을 금지시킬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제공한다.

본래 저작권과 상표권은 불법복제와 위조품을 금지하고 그에 따라 권리를 보호받기 위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TPP의 병행수입 조항은 재산권의 범위를 기존보다 확장시키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내에서는 첫 번째 판매가 이뤄짐으로써 저작권 또는 상표권이 소멸되는 최초판매에 따른 권리소진(first-sale doctrine, exhaustion doctrine)이 인정되고 있으나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에 한정시키고 있다. TRIPs에서는 이와 같은 권리소진에 대해서는 각 국가들의 제도와 법률에 따라 위임하고 있다. TPP의 병행수입 조항은 기존의 국제적인 보호 수준보다 지나치게 권리자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3. 저작권 보호기간(Copyright Terms)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은 저작권의 보호가 이용자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나면 무형의 상품이거나 사유재산이었던 창작물은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의 영역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러지 못하도록 보호기간을 연장하니 가장 직접적으로 이용자들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

TRIPs에서는 저작권을 창작자 사후 50년까지 보호하고 있는데 한미 FTA 당시 미국이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을 주장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이는 미키마우스 조항(당시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거의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불리며 한미 FTA 협상 당시에도 많은 반대를 가지고 왔었다.

TPP에서도 한미 FTA와 동일한 수준인 저작자 사후 70년(창작자 미상의 경우, 인접권자에게 출판일로부터 95년, 창작일로부터 120년)까지 저작권이 인정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TPP에 참가를 결정하며 협상 참여 이전에 저작권 보호기간을 자발적으로 연장했다.

4. 민사집행(Civil Enforcement)

지금까지 드러난 TPP의 지적재산권 조항이 위험한 것은 단순히 보호가 확장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는 절차와 위반에 따른 처벌들이 강화되는 것에 있다.

첫번째로 TPP는 민사집행절차에서 법정손해배상체계를 강제하게 되어 있다. 나아가 이 절차에서 배상규모가 단순히 실제 피해액이 아니라 미래의 저작권 침해를 억제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히 높은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은 최근의 ACTA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실질적으로 한미 FTA 발효 이후 법무법인들이 저작권 침해 합의 협박이나 막무가내 소송이 급증한 것을 미루어 볼 때 TPP가 체결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저작권 체계가 견고하지 않은 국가들에게 그 효과가 파괴적일 수 있다. 참고로 미국의 저작권법에서는 법정손해배상을 강제하지만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침해위험에 대한 억제력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TRIPs 협정에서는 법정손해배상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5. 형사집행(Criminal Enforcement)

국가가 특정 법률의 위반을 형사처벌로 규정한다는 것은 그 법률이 국가가 지향하는 가장 명확한 규범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적재산권에 침해에 따른 형사집행에 관한 조항은 TRIPs 협정문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무역협정들이 늘어나며 형사처벌을 적용하는 침해행위를 확대하고 그 절차들도 보다 조밀하고 구체적으로 무역협정 속에 포함되고 추세다.

TPP의 경우 “금전적 이득의 발생”을 포함하는 “의도적인 상업적 규모의 침해행위”, “직·간접적인 금전 이득이 없더라도 중대한 의도적 침해행위”에 형사처벌의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 조항의 내용은 실질적으로 한미 FTA의 형사절차 조항과 동일한데, 금전적 이득, 상업적 규모, 중대한 침해행위라는 규정들이 워낙 모호하기 때문에 실제로 모든 침해행위에 형사고소나 기소가 가능하다.

TRIPs에서는 “고의”로 침해했는지 의도 여부와 “상업적 규모”라는 두 가지만을 명시하고 있다. 즉 고의성과 상업적 규모 두 가지 조건을 충족되어야 형사처벌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TRIPs 또한 상업적 규모라는 규정이 모호했다. 하지만 2010년 미-중 WTO 제소사건에서 침해상품을 특정시장을 대상으로 상행위를 했을 경우 형사처벌을 적용한다고 결정이 내려짐으로 상업적 규모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했다.

앞서 주장했다시피 미국이 형성해온 무역협정들을 통해 지적재산권의 보호수준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TPP는 미국이 선행한 한미 FTA와 ACTA를 통해 관철한 지적재산권, 즉 저작권과 특허의 강력한 보호수준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지적재산권이 무역협정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미국이 무역협정을 체결 할 때마다 항상 보다 강한 보호규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미 무역대표부가 지적재산권 관련 산업(영화, 음반, 소프트웨어, 종자산업, 제약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을 비롯한 행정부도 미국 전체 수출경제에서 비중이 현저하게 높아진 로열티 산업들이 제시하는 현란한 통계수치 때문에 자신들의 지적재산권 제도를 무역협정들을 통해 저개발국가들에게 이식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효과를 가져 오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지난해 9월 5일 미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은 TPP에 관한 의견서를 통해 TPP가 추진하는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국제적인 기준보다 지나치게 강화되어 있다는 점과 행정부가 의회와 협의 없이 TPP에 대해 적용된 바가 없는 무역촉진권한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협상을 비공개로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고 공화당과 민주당 양 당의 의원들에게 강력한 비판과 개선을 요구 받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와 지적재산권 관련 산업들이 무역협정 협상 때 마다 증세를 보이는 새롭고 강한 기준에 관한 강박증을 견제하는 목소리가 미국 의회 내에서도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법률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규범이다. 따라서 결국에는 그 사회의 필요와 합의에 따라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지적재산권 제도가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가령 어떤 국가에 지적재산권 제도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느슨한 정도라고 해도 각각의 사회마다 지식과 정보, 문화가 생산되고 구성원들 간에 공유되는 독특한 방법들이 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지적재산권은 각 국가마다 적절한 보호수준이 있다. 하지만 TPP와 같이 무역협정에 포함되어 있는 지적재산권 협정은 획일적이고 이질적인 기준들이 법제화를 통해 갑작스레 이식되는 절차를 동반한다. 이럴 경우 저작권의 영역에서는 그 동안 자연스러운 지식과 정보의 흐름과 공유, 문화의 향유가 단절되는 역효과가 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저개발국가들의 산업 발전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레디앙: TPP와 지적재산권, 새롭고 강한 기준에 대한 강박증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