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창작, 저작권
허민호(정보공유연대IPLeft 운영위원)
최근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가 그야말로 빵 하고 터졌다. 엄청난 양의 기사들이 쏟아졌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소설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사석에서 한번쯤 거론하고 넘어갔을게다. 그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건 지루한 일이다.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보자. 이 문제의 핵심은 문단이라 알려진 하나의 세계에 자리 잡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다만 그걸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게 했던 문단의 권력이 문제였다. 공론화를 막았던 것은 외부의 압력이었을 수도 있고, 그 권력을 내면화한 문단에 몸 담고 있는 자들의 자기검열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은 협소하기 짝이 없는 한국문단의 구조적 폐단의 문제였다.
* 문단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자 했던 시도는 다음의 토론회를 참조해볼 수 있겠다 : 최근표절사태와 한국문화권력의 현재 토론회 자료집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은 좀 달랐던 것 같다. 폐쇄적인 한국문단의 구조를 드러내기보다는 창작자의 표절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룬다. 자세히 보면 신경숙이라는 한국의 대표작가에 대한 비난이기는 하지만, 그런 개인에 대한 비난은 말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과 논리를 미천하게 만들 뿐이니, 그런 방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대표성과 해외 수상경력 등을 들먹이며 나라망신이라는 식의 애국주의적 호소나, 신경숙으로 대표되는 창작자의 윤리적 자질에 대한 비난으로 우회된다. 국가나 윤리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그것은 신경숙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닌 보다 큰 명분을 가진 비판으로 포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는 그 창작자의 윤리적 자질이라는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표절이라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니.
표절이라는 말이 판단기준의 모호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지는 말자. 그건 남의 창작물을 베끼는 거다. 그런 행위는 복제, 모방, 표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는 표절이라는 말만 나오면 무조건 인상부터 찌푸린다. 남의 창작물을 가져다가 무단으로 쓰는 것, 여기에 마치 그것이 나의 순수한 창작물인 것마냥 뻔뻔하게 버티는 태도까지 곁들여지면 윤리적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윤리적 비난의 근거는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행위는 (제대로된) 창작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윤리적 비난의 근거가 합당하냐는 거다. 그런 윤리적 판단에 창작이라는 행위의 순수성에 대한 맹목, 창작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같은 것들이 담겨져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런 맹목과 기대가 우리가 저작권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데올로기적 근간은 아닐까. 신경숙 사태로 돌아가 반복하자면 신경숙 작가의 표절을 둘러싼 사건에서 문제는 문단의 권력구조이지 표절이라는 행위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표절이라는 것은 무조건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공론화시켜 논의해봐야 할 대상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려 하기보다는, 이미-벌써 그것을 규정하고 판단하고 재단해 버린 것 같다. 내 생각에 그것이야말로 순진하고 단순한 편견이다.
* 이런 질문에 관심이 있다면 지난 4월에 있었던 키스 니거스(Keith Negus)의 강연을 참조해볼 수 있겠다 : 저작권과 진정성 이후 독창성의 도전, 강연 후기
지난 4월에 있었던 강의에서 키스 니거스는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카피했고, 존 레논이 척 베리를 카피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베토벤과 달리 존 레논은 카피 때문에 법정에 서야했다고 이야기한다. 베토벤과 존 레논의 차이는 음악적 차이만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는 저작권이라는 새로운 법이 놓여 있다. 우리는 문학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 보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학가라고 한다면 단연 셰익스피어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문학적 성취로만 유명한 건 아니다. 그는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금의 기준으로 따지면) 표절을 했던 작가다. 여기서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표절한 인물로 유명했던 토마스 더피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거 같다.
1688년 제라르 랭배인(Gerard Langbaine)은 당시에 출판되던 작품들을 살피고, 표절된 작품의 기원을 명시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랭배인은 ‘출처사냥(Source-hunting)’의 시조가 되었다. 토마스 더피(Thomas D’Urfey)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의 표절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17,8세기 영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돈만을 위해서 펜대를 놀린 매문가의 대표’로 꼽힌다. 랭배인의 최초의 출처사냥은 더피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더피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더피 이전에도 수많은 표절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역시 더피와 마찬가지로 다른 작가의 작품에 나온 구절을 인용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랭베인의 책에는 “셰익스피어가 다른 작가로부터 빌려온 내역을 수록한 부분은 더피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랭배인에 따르면 타인의 작품에서 구절을 빌려오고 출처를 표기하지 않는 일이 17세기 이전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랭배인은 더피와 달리 셰익스피어를 표절자로 매도하지 않았다. 그의 표절 선정은 오로지 “동시대의 작가”에게만 적용되었으며, 셰익스피어는 자기 시대의 “통상적인 예를 따라 입수 가능한 선조들의 텍스트를 일종의 공공재산으로 간주하여 활용”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에게 선대의 텍스트들은 일종의 ‘공동 기금’과 같았고, 다른 이가 먼저 다루었던 제재를 다시 다루더라도 그것은 도둑질이 아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당연히 공동체의 몫으로 돌린 것과 마찬가지로 선대의 업적들 중 잘된 것을 당연히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의 것으로 간주”했다. 말하자면 당시에 쓰여진 모든 텍스트들은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공적 영역에 속하던 것들이 18세기에 들어 ‘저자’의 탄생과 더불어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 토마스 더피와 셰익스피어의 표절문제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살펴보고 싶다면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이현석. 1997. ‘저작권, 독창성, 문학’. <안과 밖: 영미문학연구>
베토벤이나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는 지금과는 달리 창작 과정에 대한 맹신도 없었고, 창작자에 대한 기대도 우리와는 달랐던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창작자와 창작 과정에 대한 관념은 낭만주의라 불리는 예술사조를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편견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편견을 이데올로기적 근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작권법이다. 실제로 현대의 저작권법의 형성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가?’는 대단히 첨예한 논쟁거리였다(물론 이건 지금까지도 논쟁 중이다). 거기서 저자와 소유권의 관계를 연결 짓는 핵심적인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던 것이 낭만주의자들의 만들어낸 낭만적 천재라는 저자상이었다. 저자라는 개념은 물론,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재산권으로서의 소유권이라는 개념도 극히 최근에 만들어진 현대의 발명품이다. 그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데올로기적 몸짓일 것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자체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턱대고 비난할 생각도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나치게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한국문단의 권력 구조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동시에 표절이라는 것이 창작과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그것이 저작권이라는 문제적 법 체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사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 둘(문단의 권력 구조와 표절)이 무관한 것이라 이야기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의미에서 비난받을 대상도 아니다.
*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글의 목적은 표절이 창작의 계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를 통해 저작권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지반을 다지려는 것이다. 표절이 가진 문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표절은 산업의 논리 안에서 거대 자본이 영세한 창작자들을 착취하는 아주 손쉬운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 표절과 저작권 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