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와 같은 의견을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에 전달하였습니다. 주석을 포함한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문화연대 | 미디액트 | 정보공유연대 IPLeft | 지식연구소 공방 | 진보네트워크센터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위 단체와 연구소는 헌법 개정 조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의견을 드립니다.
- 서론
국제인권규범에서 인정되고 있는 정보문화향유권 및 과학·문화권이 우리 헌법에도 반영되어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저희들이 제안드리는 개정 조문은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2018년 1월 보고서의 시안을 토대로 하였습니다.
- 제안 조문
현행 | 개헌특위 시안 | 제안 조문 |
제22조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
제127조 ①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
제27조 ① 모든 사람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 보호한다.
제28조 ③ 모든 사람은 정보문화향유권을 가진다.
제33조 ⑤ 모든 사람은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
제27조 ① 모든 사람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 모든 사람은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③ 모든 사람은 과학의 진보와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④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저자인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28조 (개헌특위 시안의 제3항을 삭제하고, 제4항을 제3항으로 변경)
제33조 (제5항은 제27조 제3항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삭제하거나, 중첩 보호하는 의미에서 그대로 두는 안 둘 다 가능) |
- 제안 조문 설명
3-1. 조문 체계 수정
개헌특위 시안은 정보문화향유권을 유엔 사회권 규약 제15조가 보장하는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와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정보기본권 조항 제28조에 제3항을 추가하는 형식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권 규약 제15조는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와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뿐만 아니라, ‘저자의 권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인 ‘과학과 문화에 대한 권리’(right to science and culture)(이하, “과학·문화권”)에 관한 조항입니다.
이처럼 정보문화향유권이 과학·문화권의 하위 개념으로 규정하는 구조는 세계인권선언 제27조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3개의 권리가 통합된 개념인 ‘과학·문화권’에서 일부만 따로 떼어 정보문화향유권으로 신설하자는 개헌특위 시안은 ‘과학·문화권’의 성격에 비추어볼 때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한, 정보문화향유권은 그 대상을 정보나 문화로 삼고 있어서, 사회권 규약이나 세계인권선언의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보문화향유권을 저자의 권리와 과학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하도록 ‘과학·문화권’으로 확대하여야 하는데, 이 경우 과학·문화권을 어떻게 조문화할지가 문제입니다.
조문화를 위해 사회권 규약과 현행 헌법을 비교해보면,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1항의 ‘저자의 권리’에 대응하는 현행 헌법 규정은 제22조 제2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3항은 “이 규약의 당사국은 과학적 연구와 창조적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자유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고 하여 ‘연구와 창작의 자유 존중 의무’도 과학·문화권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3항의 ‘연구와 창작의 자유’에 대응하는 현행 헌법 규정은 제22조 제1항입니다. 따라서 현행 헌법 제22조(개헌특위 시안 제27조)를 수정하여 정보문화향유권보다 더 넓은 개념인 ‘과학·문화권’을 규정하는 형식이 가장 적절합니다.
이 안을 따를 경우 정보기본권은 개헌특위 시안 제28조와 제27조, 2개의 조항을 통해 신설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2. ‘과학·문화권’의 개념
‘과학·문화권’은 세계인권선언 제27조와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1항의 권리를 일컫는 용어로 Shaver & Sgana가 2009년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유엔 공식문서와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과학·문화권’은 국제인권규범에 포함된 이후 약 반세기 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에서 지적재산권에 관한 부속협정인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Trade 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이하, “트립스 협정”)이 체결된 이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1999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은 세계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 연구를 통해 나온 첫 번째 보고서(트립스 협정과 공중보건, 2001년)에서 ‘과학·문화권’을 검토하였고, 같은 해 유엔 사회권 위원회도 인권과 지재권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면서 ‘과학·문화권’을 다룬 바 있습니다.
그 후 2010년부터 과학·문화권에 관한 논의가 유엔기구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학술논문과 단행본을 통한 학자들의 연구결과도 쏟아졌습니다. 또한 유엔 사회권 위원회의 일반 논평과 문화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통해 과학·문화권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 전단,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1항(a); 일반 논평 제21호.
-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 후단,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1항(b); 일반 논평 없음, 베니스 선언문.
- 저자의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2항,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1항(c); 일반논평 제17호.
3-3. 제안 조문 제27조 설명
(1) 제안 조문 제27조 제1항은 현행 헌법 제22조 제1항과 동일합니다.
(2) 제안 조문 제27조 제2항과 제3항은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1항(a), (b)를 수용한 것입니다. 사회권 규약은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과 달리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생활로 한정하지 않고 넓게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과학의 진보에 관해서도 좀 더 적극적인 표현(“share in” 대신 “enjoy the benefits”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서 세계인권선언보다는 사회권 규약의 문구를 수용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3) 제안 조문 제27조 제4항은 이른바 ‘저자의 권리 조항’(Author Clause)으로 현행 헌법 제22조 제2항을 대체하면서 권리의 내용을 구체화하자는 것입니다. 이 조항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현행 헌법 제22조 제2항을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현행 헌법 제22조 제2항(“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은 지적재산권 제도의 헌법적 근거 조항이라고 합니다. 헌법재판소도 “헌법 제22조 제2항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과학기술자의 특별보호를 명시하고 있으나 이는 과학·기술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연구개발을 촉진하여 이론과 실제 양면에 있어서 그 연구와 소산(所産)을 보호함으로써 문화창달을 제고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며 이에 의한 하위법률로써 저작권법, 발명보호법, 특허법, 과학기술진흥법, 국가기술자격법 등이 있는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 헌법 제22조 제2항이 모든 지적재산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고 ‘창작’을 전제로 인정되는 권리 즉, 저작권과 특허권은 대상으로 하는 반면 상표권이 부정경쟁방지법의 상품표지, 영업표지 등은 그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리고 헌법 제22조 제2항은 창작법의 권리 주체인 발명가, 저작자 외에 과학기술자와 예술가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적재산권만의 근거 조항은 아닙니다. 가령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한 기술자격검증을 거쳐 기술자격면허를 받은 기술사도 헌법 제22조 제2항의 대상이 됩니다.
지적재산권 보장에 관하여 헌법에 규정을 둔 입법례는 많지 않은데,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는 미국 헌법 제1조 제8항 제8호,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 제158조, 구소련 헌법 제47조, 구동독 헌법 제11조 등이며, 우리 헌법 제22조 제2항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아르헨티나 헌법 제17조, 리투아니아 헌법 제42조, 엘살바도르 공화국 헌법 제103조 제2항, 태국 헌법 제86조 제2항에도 지재권 조항이 있습니다.
현행 헌법 제22조 제2항은 창작 행위의 주체로 볼 수 있는 발명가와 저작자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만 하여 권리의 한계에 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행 저작권법이나 특허법에서 인정하는 모든 권리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오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사회권 규약에서 인정하는 저자의 권리와 현행 지재권의 관계에 대해 그 동안 유엔 인권기구는 양자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수차례 반복적으로 환기시켜 왔다는 점에서 현행 헌법이 초래할 수 있는 오해는 명문 규정을 통해 해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권 규약 제15조의 문구를 차용하여 자신이 저자인 창작물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이익을 권리의 내용으로 규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한편 제안조문에서 “자신이 저자인”으로 한정하여 저작물이 아닌 발명에 대한 권리는 제외된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이란 문구에서 과학적 창작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발명에 대한 권리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엔 인권기구도 이런 해석론을 취하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도 이와 같은 입장입니다.
(4) 제안조문처럼 학문과 예술의 자유, 문화생활 참여, 과학 진보의 이익 향유, 저자 권리를 하나의 조항에 두어 이들이 통합된 개념의 권리로 이해할 경우, 이들의 균형을 통해 한편으로는 창작을 장려하면서 창작의 성과를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헌법적 기초가 마련될 수 있습니다.
(5) 한편, 제안 조문을 따를 경우 현행 헌법 제22조 제2항에서 열거하고 있는 직업군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는 삭제되는 결과가 되지만, 그 취지는 과학기술자나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직업군 외의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의 권리도 동등하게 인정하여야 한다는 점, 과학기술자든 예술가든 일반 사람이든 자신이 저자로서 창작한 창작물에 대해 동일한 보호를 하면 충분하다는 점 때문에 특정 직업군을 나열하는 방식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