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조은 활동가가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4월, 시민들의 정보접근권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에게 무료로 대출하는 책에 대해 이용료를 산정해 저작권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공공대출보상권으로 불리는 이 제도를 발의한 쪽에서는 “저작권 이용자는 저작재산권자로부터 이용 허락을 받거나 정당한 보상을 하고 있지만, 공공도서관 소장 도서 등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대출 또는 열람됨에 따라 저작자와 출판계는 도서 판매의 기회를 잃어 불가피하게 재산적 손실을 보고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공공에서 무료로 책을 빌려주는 것이 저작권자들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최근 몇 년간 출판업계와 저작권자 단체를 필두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출판산업 개혁’을 주장하며 양대 후보에게 수업 목적으로 복사배포하는 교재에 대한 보상금과 공공대출권 등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고, 두 후보가 이에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해왔음을 밝힌 바 있다. 李·尹 출판개혁에 찬성…저작인접권·수업목적보상금·공공대출권 적극 검토
하지만 공공의 저작물 이용과 저작자들의 권익을 정면으로 대치시키고 저작권을 강화해 출판산업을 개혁하겠다는 업계의 주장은 실증적인 근거도 빈약할 뿐더러, 공공도서관의 활동을 위축시켜 시민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정보기본권 및 문화생활을 축소시킬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도서 대출에 저작권 보상하는 공공대출보상권 추진에 우려
출판업계는 ‘공공대출보상권’이 해묵은 과제라며 빠른 입법을 주장하고 있지만, 도서관 대출이 저작권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전제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2017년부터 공공대출보상제도 도입과 관련한 연구조사가 수차례 진행된 바 있지만, 공공도서관의 대출이 도서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다.
한국도서관협회는 이번 개정 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2019년에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발간한 ‘도서관 이용자의 도서관 이용 및 도서 구매 실태 설문조사’를 인용하면서, 도서관 이용자들이 1년간 평균 60권의 도서를 대출했고, 20권을 구입하고 있어 도서 대출이 많아질수록 도서의 구매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수많은 사서들이 호소하듯 한국의 도서관은 ‘누구나 책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책을 큐레이팅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역할도 도맡고 있다. 저자를 초대하고 몰랐던 책을 소개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인데 홍보를 통해 도서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다.
대출보상권을 주장하는 일부 저작자들은 도서관에서의 무료이용과 책 판매량의 상관관계가 없고 돌아오는 보상금의 액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공공대출에 대한 보상 문제가 본인들의 저작재산권에 대한 ‘인정의 문제’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생각을 마주할 때마다 한국에서 저작권제도가 얼마나 ‘지식재산권’ 옹호의 입장에서 편향적으로 이해되어 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저작권법은 지식과 문화적 창작물이 상품으로서 판매되고 유통될 때 그 수익 분배에서 저작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많은 부분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저작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한국 저작권법 제 1조에서 명시하듯이, 저작권법의 목적은 저작권자를 보호하면서도 공정한 이용을 활성화해 한 사회의 지식과 문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며, 모든 나라의 저작권법은 저작권 보호와 지식문화에 대한 대중의 접근권을 조화시킬 수 있는 ‘예외 및 제한’ 조항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저작권법은 교육을 위한 학교 교육 목적을 위한 이용과 도서관에서의 복제, 비영리적 이용 등을 ‘공정 이용’으로 명시하고, 저작권으로 인해 정보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해왔다. 이렇게 ‘공정 이용’을 규정하는 이유는 모두가 지식과 정보에 소외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때, 교육과 문화가 한 층 발전하고 보다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이 도서 판매 줄인다? 시민의 정보접근권 중시해야
지식과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활성화되는지 생각해보자. 하나의 정보와 지식은 또 다른 지식 생산의 토대가 되고, 널리 공유될 때에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된다. 현재의 다양화되고 고도화된 지식과 문화, 기술들은 전 인류가 역사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축적해온 결과물이지,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저작자들이 저술 활동과 출판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시민 누구나 문화를 향유하고, 학습을 통해 소양을 기르고, 스스로 문화적인 활동에 참여함으로 총체적인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지식 생산의 생태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데 우려스럽게도 현대사회에서 지식과 정보의 상품화가 심화될수록, 새로운 지식 창출을 위해 후속 세대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점점 커지고 있다. 때문에 유엔(UN) 등 국제사회에서는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과학적 진보 및 그 응용으로부터의 이익을 누릴 권리’ 등을 포함한 ‘과학문화권’의 개념을 도입하는 등, 저작권과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 제도를 ‘접근권’의 방향에서 재위치 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우리 사회의 지식생태계를 고려할 때, 창작자들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작가와 출판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방법은 ‘저작권 강화’가 아니라 시민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면서 창작자들에 대해서도 보편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출 횟수에 따라 보상을 받는 시장주의적 방식으로는 소수 인기 있는 책의 저작자들에게만 그 혜택이 몰릴 수밖에 없다. 인기가 없어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공유되어야 할 학술, 전문 지식을 생산하는 저작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것이고, 이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저술과 출판 활동을 더욱 장려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창작자의 권리’란 작업물에 창조적인 시각을 부여한 인간 저자의 권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을 강화하는 것이 곧 창작자와 창작 활동을 보호하는 것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직업 작가든 아마추어 작가든, 인기가 있는 작가든 아니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그래서 다양한 지식이 세상 밖으로 나와 공유되고 누구나 이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이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인정과 공동체를 번영시키는 ‘문화 창달’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