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자유다>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국제적 동향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국제적 동향

– TRIPs 협정과 WIPO 조약을 중심으로.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IPLeft)

1. 국제적 동향을 파악할 필요성

이제 한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의 제 현상들은 단지 국내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하기 힘들게 되었다. 자본의 전 세계적 확장은 각 국의 국내 경제를 세계 경제로 편입시켰으며, 단일한 제도, 문화, 삶의 양식을 세계 각 곳에 심어놓았다. 지적재산권 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측면에서는 다자간, 쌍무간 협상을 통한 압력을 통해서, 다른 한 측면에서는 일종의 모델 제시를 통해서 각 국의 제도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애초에 지적재산권 제도가 자리를 잡게 된 것도 국내의 자연스러운 요구로부터 발생했다기 보다는 일본과 미국의 강압적인 압력의 결과였다. 초국적 자본은 쌍무협상을 통한 압력이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과 같은 다자간 협상을 통해, 각 국의 국내적인 필요에 상관없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제도를 강제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국제 협정은 국내적인 상황에 맞는 정책 결정을 상당부분 제약하게된다. 예를 들어, 인구의 10%가 에이즈에 감염된 남아공 정부는 강제실시권을 통해 에이즈 치료약을 대량생산하려고 했으나,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남아공 정부를 특허법 위반으로 제소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TRIPs 협정에 근거를 둔 것이다.

국내 자본이 자신의 요구를 세계적인 추세라는 \’정언명령\’으로 은폐하고자 하기도 한다. 지적재산권의 제도 개편에 대한 연구와 정책 제시를 보면, 국제협정이나 해외 사례, 특히 지적재산권 강화를 선도해나가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모델로 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어떠한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해외의 경험들을 참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정책 결정과정에 있어서 국내적인 필요에 대한 충분한 연구없이, 국제적인 추세가 이러하므로 우리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국제적인 동향이 국내 법제 개편을 위한 강력한 근거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대한 특허청의 입장을 보면,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을 비롯한 국제적인 추세를 국내에서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허용해야 한다는 근거로 제시할 뿐,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인터넷 이용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는 볼 수 없다.

인터넷의 발전도 문제를 세계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저작물의 문제, 상표권과 도메인을 둘러싼 분쟁, 전자상거래 등 최근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문제들은 인터넷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데, 인터넷 환경에서 국경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상에서의 여러 분쟁들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발생할 수도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룰이 필요하다. 이러한 국제적인 룰을 정하는 과정에는, 제1세계와 제3세계의 대립, 그리고 국가, 초국적 기업, 사회운동 사이의 대립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제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과 투쟁 역시 국내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적인 흐름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90년대 전세계적인 지적재산권 강화를 가져온 두 가지 국제적인 흐름, 즉 우루과이라운드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 협정)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신조약(저작권 조약, 실연음반조약)의 주요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로 한다. TRIPs 협정은 전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의 보호규범을 강화하는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으며, WIPO 신조약은 정보의 디지털화에 따른 환경의 변화에 대응한 저작권의 강화이다.

2.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 협정)

1) TRIPs 협정의 경과와 의미

1986년에 시작되었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은 1994년 4월, 세계무역기구(WTO)를 출범시키며 막을 내렸다. UR 협상 출범 당시만 해도, 각국 협상대표들은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에 대한 소폭의 개정과 추가적인 확대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자유무역질서를 형성하려는 미국의 적극적인 공세로 논의의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WTO 체제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외무부 자료에 의하면, UR 협상은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포괄적인 다자간 무역협상이며, 자유무역을 향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외무부 [UR협상 결과 및 평가])

WTO의 부속협정인 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TRIPs 협정)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위조상품의 무역규제를 목표로 하였으나,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어 저작권, 상표권, 특허권 등 전반적인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포괄적인 무역규범을 제정\’하게 되었다. 원래 WTO 이전의 GATT 체제에서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규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관할아래 특허에 관한 파리협약, 저작권에 관한 베른협약, 저작인접권에 관한 로마협약 등 국제협정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TRIPs 협정은 기존의 관련 국제협약을 최저 보호수준으로 하여 이를 보다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하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은 기존의 국제협약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보호와, 그것을 실행할 의무의 부과, 그리고 국제규범이 준수되지 않았을 경우 강제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분쟁해결절차나 제재조치를 원하였다. 왜냐하면, 선진국들은 문화, 서비스, 정보산업 등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역에서 지적생산물과 지적재산권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TRIPs 협정은 이러한 선진국들의 요구가 대부분 관철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다자간 국제규범이 마련되었다.

UR 협상 당시에 국내에서는 농산물 문제만이 크게 이슈화되었을 뿐,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문제는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 시민사회운동 차원에서는 거의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으며, 자본의 입장에서는 큰 방향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4년 외무부에서 제출한 [UR 협상 결과 및 평가]의 내용을 보면, \’우리의 장기적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고, \’미국, EC 등 주요국과의 양자협상을 통해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TRIPs 협정이 \’법, 제도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1999년 말 시애틀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 제3세계 국가들이 "추가적인 자유화협상에 앞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의 이행문제 및 기존 협정 자체의 결함에 대한 검토,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국내에서도 당시의 판단이 옳았는지 다시 평가해봐야 할 것이다. 더욱이 IMF 위기가 자본의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자본의 세계화를 획기적으로 강화시킨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해봐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지적재산권 문제에 있어서,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는 늦게나마 TRIPs 협정의 주요 내용과 그 의미에 대해서 검토하고,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TRIPs 협정의 주요 내용

TRIPs 협정은 총 7부, 73개조로 구성되어있다. 여기서는 지적재산권의 강화에 관련된 몇 가지 조항만 살펴보기로 한다.

– TRIPs 협정에서는 \’제3부 지적재산권의 시행\’과 \’제5부 분쟁의 방지 및 해결\’의 제 규정을 통해서, 협정의 내용이 회원국 내에서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분쟁발생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제41조 1항에서는 \’회원국은 침해 방지를 위한 신속한 구제 및 추가 침해를 억제하는 구제를 포함, 이 협정에서 다루고 있는 지적재산권 침해행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조치가 허용되도록 하기 위하여 이 부에서 명기된 바와 같이 시행 절차가 자기 나라의 법률에 따라 이용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어 침해금지명령이나 손해배상 등에 관한 민사적·행정적 절차의 마련, 침해발생의 방지나 증거보전을 위한 잠정조치, 침해상품에 대한 국경조치, 형사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제63조에서는 관계법령을 자국 내에서 공표 또는 공개하고,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위원회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64조에서는 분쟁해결에 있어서 WTO의 분쟁해결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 즉, 이러한 규정들을 통해서 우선 각국이 TRIPs 협정을 시행하도록 의무화하고, 분쟁해결에도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 \’제2부 지적재산권의 취득 가능성, 범위 및 사용에 관한 기준\’에서는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상표, 지리적 표시, 의장, 특허, 집적회로 배치설계, 미공개 정보의 보호, 사용허가 계약에 있어서 반경쟁 관행의 통제 등 제반 실체법에 있어서의 보호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저작권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 및 데이터베이스 등의 자료 편집물도 저작물로 보호대상에 포함하고 있다(제10조). 저작권법은 원래 문학, 학술 및 예술 작품의 보호를 위한 것인데, 컴퓨터 프로그램 및 데이터베이스 등도 보호함으로써, 그 범위를 확대하였다.

저작인접권에서는 음반에 대한 소급보호를 인정하였다. 제14조 6항에서 저작권의 소급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베른협약 제18조를 준용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기존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던 음반들도 보호기간(이 협정에서는 음반 제작자 및 실연가의 저작인접권을 50년간 보호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이 지나지 않았다면, 저작인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상표에 대한 규정에서는 \’이러한 표지, 특히 성명을 포함하는 단어, 문자, 숫자, 도형과 색채의 조합 및 이러한 표지의 결합은 상표로서 등록될 수 있다\'(제15조 1항)고 함으로써, 상표에 대한 최초의 국제적으로 합의된 정의를 제공하였다. 또한 파리협약 제6조의 2에 따라 등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널리 알려진 유명상표는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제16조 2항, 3항) 유명상표를 가지고 있는 기업, 즉 이미 시장에서 권력적 위치에 있는 기업에게 그 기득권을 더욱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특허에 관련하여 제3세계와 선진국들간에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생명특허\’ 부분이다. 제27조 3항에서는 특허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으로 \’미생물 이외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비생물학적 및 미생물학적 제법과는 다른 본질적으로 생물학적인 식물 또는 동물의 생산을 위한 제법\’을 규정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현재 동식물이 특허 배제될 수 있는 조항에 대해서, 모두 특허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은 모든 생명특허가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는 풍부한 생물다양성자원을 가지고 있는 제3세계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간의 이해관계의 차이가 깔려있다.

강제실시권(제31조 권리자의 승인 없는 기타 사용)은 제3세계에 유리한 규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도 선진국의 주장에 따라 발동요건이 강화되었다. 즉,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상업적 조건하에 권리자로부터 승인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고, 이러한 노력이 합리적인 기간 내에 성공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승인이 필요없는 경우는 \’국가 비상사태, 극도의 긴급상황 또는 공공의 비상업적 사용의 경우\’이다. 이렇게 된다면, 각 국 정부는 공공의 목적이나 국내 산업정책상 필요한 정책을 운용하는데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남아공의 사례처럼,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지도 문제이다. 인구의 10%가 에이즈로 죽어가는 상황조차, 자본의 입장에서는 긴급상황이 아닌 모양이다.

– 이밖에 기존의 지적재산권 관련 협약에서는 최혜국대우 규정이 없었는데, TRIPs 협정에서는 1부 일반규정 및 기본원칙의 4조에 최혜국대우 규정을 두고 있다. 이 역시 보호를 강화한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6조의 권리소진에 관한 조항은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지적재산권의 소진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사용되지 아니한다\’고 함으로써, 선진국과 제3세계가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권리소진이란 상품이 양도 후에는 자기 권리를 다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3세계 국가는 권리소진을 원하고, 선진국은 1국 1특허원칙을 선호하는데, 각 국에서 자유결정 하도록 타협을 본 것이다.

3) 국내법에의 영향

TRIPs 협정에 의해 국내에서도 전반적으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었다. TRIPs 협정 이후, 바로 국내 관련법의 개정작업에 착수하였는데, 그 결과, 95년에 저작권,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특허, 상표, 실용신안, 의장, 종자산업법, 농약관리 등 지적재산권 관련 8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TRIPs 협정이 베른조약을 기반으로 함으로써, 저작권법과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에는 베른협약에 따른 소급보호 규정이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이전에는 87년 이전의 해외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이 되지 않았으나, 법의 개정으로 57년 이후에 발행, 공표된 저작물까지 소급해서 보호하게 된 것이다. 이에 의해, 국내 출판업계 등에 큰 타격을 주게된다. 특허에는 조기출원공개제도가 도입되고, 존속기간이 20년으로 연장되었다. 실용신안법도 15년으로 보호기간이 연장되었으며, 상표법은 색체상표를 새롭게 인정하게 된다.

4) TRIPs 협정에 대한 재평가

앞서 언급했듯이, TRIPs 협정은 기존의 지적재산권 관련 국제협약보다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제3세계에 있어서 TRIPs 협정은 재앙으로 다가온다. 필리핀대 사회학 교수인 왈든 펠로(Walden Bello)는 TRIPs 협정이 "제3세계에 대한 기술 이전 및 확산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초국적기업의 기술독점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제3세계의 어떤 기업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터 조립품을 혁신시키고자 할 때, 그 기업은 필연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초국적기업에 의해 이미 \’특허된\’ 몇몇 디자인이나 공정들을 \’로열티를 지불하고\’ 통합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한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경우, 특허청은 TRIPs 협정을 근거로 국내 상황에 맞는 개정이 불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만일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된다면, 이미 제1세계의 초국적 기업이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선점한 상태에서 제3세계의 기업들이 특허권을 피해서 어떠한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는 국가간 경제 격차와 지배 구조를 심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싫어도 벗어날 수 없다니, 이 무슨 불합리한 구조인가?

좀 더 근본적인 비판으로 우리는 과연 WTO 체제 안에 과연 지적재산권 협정을 둘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적재산권은 이미 여러 국제협약과 그것을 포괄하는 국제기구인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두고 있다. 그런데, WTO 체제안에 별도로 TRIPs 협정을 두는 것은 무역과 연계시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강제하려는 선진국의 의도로볼 수 밖에 없다. TRIPs 협정은 제8조(원칙)에서 각 국이 공중보건 및 영양상태를 보호하고, 사회 경제적 및 기술적인 발전에 매우 중요한 분야의 공공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조차 \’협정의 규정과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다자간투자협정이나 WTO 등을 통해서, 각 국이 공공정책을 펼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하고, 노동이나 환경정책까지도 무력화시키려는 자본의 의도가 TRIPs 협정을 통해서 지적재산권 영역에서도 관철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지적생산물에 대한 정책이 단지 무역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수립될 수는 없다. 한 나라의 지식기반은 단지 경제적 관점에서만 판단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각 국은 자국의 역사적인 상황이나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맞게 고유한 정책을 최대한 자율적으로 유지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는 물론 일국 내의 자율적인 공동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지적재산권 제도는 각 지적생산물 영역의 고유한 가치와 운영원리를 파괴하고, \’상품성\’이라는 단일한 가치로 모든 것을 환원해버린다. 왜냐하면, 지적재산권 제도는 시장원리에 의한 지식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과 결부되어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의 위기, 반대로 공학의 융성이 \’상품성\’이 지배하는 사회논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비판과 정책 대안은 단지 지적재산권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각 지식, 문화 영역에서 \’상품성\’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각 영역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운영원리를 정립하는 것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이 지적생산물의 생산과 유통을 규정하기 위한 법규라면, 지적재산권 협정을 WTO 내에서 제외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농산물이나, 문화의 영역이 예외를 주장하는 것처럼.

TRIPs 협정에 대한 대응은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1999년 말에 개최된 WTO 각료회담을 보면, 이제 제3세계 국가들이 강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WTO 체제가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북반구 국가들의 이익만을 극대화시켰을 뿐, 개도국에 대해서는 어떠한 혜택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농업, 섬유, 지적재산권협정 등 기존 협정에 대한 검토와 개정을 주장하였다.

국내에서도 TRIPs 협정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 적어도 정부는 어떠한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국내 상황에 입각한 충분한 연구와 의견수렴을 통하여 국내적 입장을 정해야 한다. 국제적인 추세는 참고자료일 뿐, 국내 정책 수립을 위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국제적인 추세가 국내적인 정책과 맞지 않다면, 국제적으로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3.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저작권 조약과 실연, 음반조약

1) WIPO 신조약의 경과와 의미

디지털 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이 디지털 혁명은 인류의 지식과 문화의 생산·공유, 그리고 상호 소통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오히려 지적재산의 \’소유권자\’에게는 자신의 소유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느껴졌다. 이에 대한 국제적인 차원의 대응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체결된 두 개의 신조약이다.

WIPO는 1991년부터 6년동안 전문가위원회 회의를 진행하였으며, 1996년 12월 2일에서 20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3주간 외교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세계 120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WIPO 저작권 조약 및 실연·음반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WIPO 신조약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저작권 보호에 관련된 \’베른협약의 제 원칙이 적용됨을 확인함\’과 동시에 신기술 발달에 따른 몇 가지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신설하였다. 이를 주도한 것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국내법의 정비에 앞서서 국제적인 입법을 주도했는데, 이는 국경을 초월한 인터넷 환경의 대두 때문이다.

2) 신조약의 주요 내용

– 공중전달권 : 베른협약 및 TRIPs 협정에서는 몇몇 유형의 저작물에만 인정되었던 \’공중전달권\'(Right of communication to the public)이 모든 유형의 저작물에 확대되었다. WIPO 저작권조약 제8조는 공중전달권을 \’공중의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장소와 시간에 저작물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중이 이용할 수 있도록 유선 또는 무선의 수단에 의하여 저작물을 공중에 전달하는 것을 허락할 배타적인 권리\’로 규정한다. 비동시적, 유무선, 쌍방향, 주문형 송신도 공중전달권의 대상이 된다. 즉, PC 통신이나 인터넷의 게시판에 자료를 올려놓거나 내려받는 것도 저작권자의 배타적인 권리로 선언한 것이다.

– 기술보호조치 : 저작권조약 제11조, 실연·음반조약 제18조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보호한다. 즉,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설정한 기술 조치에 대해서, 이것을 우회하려는 장치를 수입, 제조, 배포하는 것을 금지한다. 예를 들어, 암호를 깨는 기술이라든가, 리버스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기술 등이 이에 해당한다.

– 권리관리정보 : 저작권조약 제12조, 실연·음반조약 제19조는 권리관리정보를 보호한다. 권리관리정보란 저작자의 식별이나 이용의 조건에 관계된 정보를 말한다. 위 조항에서는 권리관리정보를 제거하거나, 변경하는 행위, 혹은 권리관리정보가 권한없이 제거되거나 변경된 것을 알면서, 권한없이 배포, 수입, 방송하거나 공중에 전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 \’복제\’의 개념 : 조항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메모리에의 저장을 포함한, 여하한 디지털 형태로의 저장도 \’복제\’라는 성명을 채택하였다. 다만, 일과적이고 부수적인(transient and/or incidental) 복제에 대해서는 예외가 인정된다는 양해가 성립하였다. 예를 들어, PC 에서 웹사이트를 검색하기 위해서 파일을 읽어들이는 것도 저작권법상 \’복제\’에 해당하나, 저작권 침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예외로 인정한 것이다.

– 창작성이 없는 데이터베이스의 보호 : 창작성이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편집저작물로 저작권에 의해서 보호된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의 창작성을 불문하고, 데이터베이스의 \’제작자\’에게 독자적인 보호체계를 제공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즉,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하기 위한 \’투자\’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자는 것이다. 이 안은 조약 체결에는 실패했으나, 국내외적으로 계속 논의가 되고 있는 사안이다.

– 이 밖에 WIPO 저작권조약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창작성있는 데이터베이스의 보호 조항, 베른협약 및 TRIPs 협정상 영상저작물에만 명시적으로 부여되었던 배포권(right of distribution)을 모든 저작물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조항 등이 포함되었다. WIPO 실연·음반조약에는 실연자의 \’인격권\’ 인정, 미고정 실연의 방송과 공중전달을 승인할 배타적 권리,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의 배포권 등이 포함되었다.

3) 국내법에의 영향

1999년에 개정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과 저작권법을 보면, 디지털화에 따른 환경의 변화와 WIPO 신조약 등의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한 측면이 있지만, 저작권을 강화하겠다는 독자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선 WIPO 조약의 \’공중전달권\’과 비슷한 \’전송권\’을 신설하여, PC 통신 등에서 전송되는 저작물의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저작권에 기반한 저작물 유통의 합리화를 위하여 법정허락 및 등록업무를 저작권 전문기관인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이양하도록 하였다. 저작권을 강화하려는 독자적인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저작권 침해시 벌칙을 강화한 점(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 고의없는 침해의 경우에도 그 침해에 과실이 있도록 추정하도록 한 점, 그리고 프로그램의 불법복제를 단속하기 위해서 정통부 관계 공무원에게 단속권을 부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선진국의 압력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의 정부와 자본의 입장도 선진국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4) WIPO 신조약에 대한 비판

WIPO 신조약의 핵심은 결국 \’디지털 시대에도 기존의 저작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에 대한 확인이다. 기술보호조치나 권리관리정보 등의 디지털 이슈는 이를 확실히 보장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적재산권 추세는 점차 강화되고 있는 방향인데, 두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정보, 문화 산업이 전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해짐에 따라서, 그 사회적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게 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기존에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지 못하던 것들이 새로운 보호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생명특허, 영업비밀, 반도체 집적회로 배치설계 등이 이미 지적재산권의 보호대상으로 포함되었으며, 창작성이 없는 데이타베이스, 링크의 저작권 문제 등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강화가 그 사회적 영향력 만큼이나 충분히 검토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는 정보가 생산, 유통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는데, 복제의 용이성, 서로 다른 매체간의 용이한 융합, 정보와 매체의 분리, 2차 저작물 생산의 용이성, 거리개념의 소멸, 소통의 이시성(異時性) 등이 그것이다. WIPO 신조약이 이러한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를 반영했다고 하나, 정보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인쇄매체 시대의 저작권 개념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이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지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막연한 가정\’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재의 저작권 제도를 그대로 인터넷 환경에 적용했을 때,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가 개인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반면, 저작권의 강화는 이러한 접근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저작권이 저작물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왜 그러한지 명확하지 않다.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과 \’배타적 소유권\’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접근권의 제한은 사회의 중요정보에 대한 개개인의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사회적 논의와 정치참여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 또한 저작권은 정보에 대한 접근을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서 차별화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저작물 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는 사람들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력의 격차가 정보의 격차로 재생산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미 국내, 국제적으로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이런 맥락에서 \’정보에 접근할 권리(right to information)를 인간의 근원적인 권리로 보아 정보의 이용을 일반적인 규범으로 하고 이의 제한을 예외적인 것으로 하는, 다시 말해서 법적으로 모든 이용은 정당한 이용이라는 법적 가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접근권의 제한은 개인들이 새로운 저작물을 생산할 수 있기 위한 기반을 협소화시킴으로써, 정보의 소유권 강화가 또 다른 정보의 생산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더구나, 정보의 디지털화는 정보의 변형, 수정, 융합 등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2차 저작물의 생산을 무척 용이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2차 저작물도 개인적, 사회적으로 무척 가치있는 생산물일 수가 있는데, 저작권의 강화는 이러한 2차 저작물의 생산을 억압하게 될 것이다. 사실 광의의 의미에서 모든 저작물은 2차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허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우려가 나타나는데, 소프트웨어 특허와 사업 방식에 대한 특허가 그것이다.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의 표현대로, "음악에 특허를 인정해서, 수많은 악기의 조합, 멜로디, 화음 각각에 특허를 인정한다면, 누가 특허 침해로 고소당할 각오를 하지 않고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겠는가."

저작권에 대한 기술보호조치도 남용되지 않도록 규정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과도하게 적용될 경우, 암호화 기술의 개발이나,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한 기술의 발전을 제약을 할 수 있다. 또한, 기술보호조치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는 자동으로 해제되도록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용자의 정당한 \’읽을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된다. 또한, 이러한 기술 조치가 이용자에 대한 감시의 역할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작물에 변경이 가해질 때, 자동으로 저작권자에게 그 사실이 통지되도록 한다면, 저작권의 보호를 위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국내에서도 통신프로그램인 \’이야기\’를 제작한 (주)큰사람이, \’이야기\’ 설치 시 자동으로 전송되는 사용자 정보를 저작권 침해 소송에 사용하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저작권 옹호론자들은 서비스 제공자가 네트워크 상에서 이루어지는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에게 책임을 지운다면, 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들의 사용 행태를 감시해야 할 것이고, 이는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어떠한 행위를 할 것을 강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저작권의 보호가 이용자의 정보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이러한 사항이 저작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권리의 \’주체\’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저작권의 소유자가 저작자 개인이었던 시기로부터, 법인(기업)이 저작권의 실 주체가 되는 시기로 이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의 법의식 안에서는 저작권법을 논의할 때, 저작자 개인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현대사회에서 (특히 경제적으로 가치있는) 저작권의 대부분은 기업, 특히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으며, 실제 저작물의 생산자는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저작권법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혹은 저작권법에 반영하는 것이 옳바른가? 현재 저작권법의 흐름은 저작자 개인을 상정한 \’창작의욕의 고취\’를 여전히 명분으로 유지하면서, 실제적으로는 기업의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 보호대상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는 듯 하다. 컴퓨터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신지적재산권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생산물들이 저작권법으로 수용된 것은 저작권 본래의 의미보다는 기업의 \’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인다. \’기업 투자의 보호가 사회의 발전과 일치하는가\’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기업 투자의 보호를 저작권의 틀 내에서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이는 권리 주체와 권리 대상에 대한 재검토를 포함한다-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저작자 개인\'(혹은 발명가 개인)의 보호 명분이 기업으로 확장됨으로써, 사회적 필요에 의한 기업 활동의 제한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며, 둘째, 저작권법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에 비해, 기업에게 적용될 때 그 사회적인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 보호기간 50년은 개인의 창작물에 적용되더라도 큰 사회적 영향은 없는 만면, 기업에게 적용될 때 특정 기업으로 하여금 거의 영구적으로 특정 지식을 독점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저작권을 50년 동안 인정하는 것은, 소프트웨어 발전 속도로 볼 때 거의 \’영구히\’ 보장하는 것이며, 저작권 만료 후 공적 지식으로 환원되는 이익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기업의 투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항상 사회구성원 개인의 권리나 사회공공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대 80의 사회\’라는 말이 유행하듯, 오히려 그것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필리핀 녹색당(Philippine Greens)의 로베르토 베르졸라(Reberto Verzola)는 디지털 정보의 특성으로부터 저작권 체제를 비판한다. 즉, 정보는 초기 생산비용은 많이 들지만, 한번 생산된 정보를 재생산하는 비용은 매우 작으며, 특히 디지털화된 정보의 경우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러나, 저작권은 매 복제물마다 사용료를 받도록 함으로써, 초기 생산비용을 초과한 이후에도 계속적인 수익을 보장하게 된다. 이러한 초과수익을 통하여 정보시대의 자산계급이 된 세력을 그는 사이버군주(Cyberlords)라고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표적인 사이버군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IPO 신조약은 이러한 사이버군주들의 권력을 강화한다. 그리고, 사이버군주들의 대부분은 제1세계에 집중되어있다. WIPO 신조약은 \’디지털 시대에도 저작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인이지만, 이것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그 이상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이 늦은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앞으로도 계속 제1세계 국가들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 아래에 종속되도록 강요하는 족쇄나 마찬가지다.

4. 지적재산권의 민중적 재편이 필요하다.

지적재산권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오늘날 지적재산권의 사회적 의미는 남다르다. 정보화의 진전이 \’정보의 상품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지적재산권은 \’정보의 상품화\’를 보증하기 위한 법체계로서 기능-정보는 그 속성상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다. 공기와 같이 누구나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정보가 상품이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적재산권과 같은 법 체계로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 강화되고 있다. 생각해 보라. 문화, 서비스, 정보 산업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 지적재산권 체제에 의한 보장 없이 강대국으로서의 현재 위치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전세계적인 지적재산권 체제의 강화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은 \’현실정보사회\’의 토대가 되는 핵심적인 법-제도이다. 따라서, 정보화 방향에 대한 비판은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한 비판 없이는 완전하지 않다. 또한 대안적인 정보사회의 건설 역시 \’지적재산권의 민중적 재편\’ 혹은 지적재산권을 넘어선 다른 시스템을 고민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민사회운동 차원에서는 무엇보다도 지적재산권의 현실적 영향력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적재산권 제도 자체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해당 시기의 현실적 역관계 속에서 형성이 되는 만큼, 그것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다. 또한 일국적인 문제인 동시에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문제는 현실 지적재산권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지적재산권 체제를 상정하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바람직한 정보의 생산, 유통 시스템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보공유에 입각한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창출하려고 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은 하나의 모델로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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