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기본법, 그 위험한 상상력

지난 16일 정부에서는 지식재산기본법(안)을 입법 예고 했다. 이 법은 특허, 상표, 저작권 등으로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관리되던 지적재산의 영역을 포괄하여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되고 나면 지적재산과 관련된 “타 법률의 재,개정시 이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목적과 기본이념”에 준거해야 한다.(법안 제 6조) 정부에서 제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법은 “지식재산 중심의 국가경쟁력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반영함으로써 지식재산강국 실현을 위한 정책적 추동력 및 상징성을 뒷받침”하는데 의의를 둔 법이다. 즉 이것은 지식기반 경제를 체계적으로 재구조화하려는 정책적 시도의 일환인 것이다.

지식기반 경제와 관련된 담론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 등이 자본 축적의 기반이 된다는 생각은 극히 최근에 발생한 관념 체계이다. 그럼에도 이 관념 체계는 무서운 속도로 일상의 영역까지 퍼져나갔으며, 이제 경제에 대해 말하는 누구에게나 이것은 상식이 되었다. 지식기반경제라는 경제적 담론의 일상적 지평까지 확장되어 보편화 된 것이다. 이는 하나의 말의 모듬으로써의 담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경제 활동에서 주어지는 특정한 상황에 대처하고 판단하는 합리성의 준거로 기능한다. 경제적 현실이 이 담론을 매개로 재구축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담론은 김영삼 정권이 영화 <쥬라기 공원>을 현대자동차 매출과 비교할 때 이미 시작되었으며,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존의 자본 축적 체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형태로 자리잡았다. 물론 지식기반 경제와 관련된 담론은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탈산업사회론이나 정보사회론과 같이 서구사회에서 시작된 학술적 논의나 미국식 구조조정 모델을 경제 개혁 모델로 제시하는 경영학의 논의를 비롯해, IMF, OECD, WTO 등의 국제 기구가 제시한 경제 행로 등을 통해 예비되고 있었다.

서동진은 이와 같은 경제적 담론의 변화는 단순히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으로 축소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시장의 상품 가격부터 기업의 자산과 투자가치에 대한 평가와 노동주체의 경제적인 활동을 가치화하고 보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영역의 변동을 촉발시키며, “매우 세부적인 담론들과 그것과 연결된 테크놀로지들을 통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식기반 경제에서 유행하는 ‘기업가정신’을 둘러싼 캠페인은 이 담론이 만들어낸 경제 주체 형성의 세부 테크놀로지 중 하나이다. 그것은 ‘경영 마인드’나 ‘벤처 정신’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여기서 단적인 문제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 기업가 정신과 같은 것이 기업과 직장 안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사와 부하, 감독자와 노동자, 경영자와 사원처럼 위계화된 형식적 구분을 초월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업의 경영자”라는 주장인데, 이런 주장은 “기존에 노사관계라는 이름으로 자본과 노동 사이에 존재하던 대립 관계가 불가항력적으로 표현되던 것을 넘어서려는 경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이 새로운 경제 담론은 착취나 계급 불평등이 제거된 경제 분석을 단순한 사회적 사실로 환원해 버리고 있다. 또한 지식 기반 경제라는 경제적 가상은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 요청되는 수많은 물질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다시 지식재산기본법(안)으로 돌아가보자. 이 법은 지금 지적한 것처럼 지식기반 경제라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경제적 가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도자료에서 이 법안의 제정이유를 직접 거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 제정안에서도 기존의 ‘지적재산’으로 불리던 관련 법의 용어들을 모두 ‘지식재산’으로 교체할 것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부칙 2조 1항부터 20조까지) 그 동안 지적재산으로 불리던 법률 용어들을 애써 하나씩 거론하며 ‘지식’재산으로 바꾸는 것은 그 동안 논의 되어 왔던 지식기반경제라는 경제적 가상에서 자신의 정당성의 근거를 찾고 싶어 하는 노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추상적인 수준의 문제 이외에 다른 문제도 있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법 제정안에서 이 법의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 1조의 내용이다. 법안에 따르면 이 법의 목적은 “관련 산업의 육성 및 문화, 예술의 진흥”에 있다. 일반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는 작년에 개정된 저작권법의 영향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 1986년 1차 전부 개정 이후 2009년의 17차 개정 이전까지 1조(목적)는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었다. 작년 저작권법 개정 이전에 저작권법 1조는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개정을 통해 1조의 ‘문화의 향상발전’이라는 문구가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으로 바뀌었다. 이는 저작권법이 존재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증상적인 변화로 보인다.

실제로 저작권법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개인 창작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문화는 그러한 극소수의 개인들의 창작물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 수많은 창작자들과 그들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이용자들, 그리고 창작물들을 활용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발견하는 패러디 작가들(겸 이용자들)등 모두의 노력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그나마 있는 개인 창작자에게 돌아 가야할 권리마저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하에 특정 기업이나 조직으로 전환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재산기본법의 1조(목적) 역시 이러한 변화의 자장 안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내용은 지적재산권자의 권리‘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는 “지식재산이 권리로서 신속, 정확하게 확정되고 효과적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추진”하고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집행 활동이 충실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침해행위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 시행”하기 위해 집행을 강화하는 내용만 채워져 있다. 상식적으로 이 법안이 목적대로 문화와 예술의 진흥을 추구한다면, 즉 지적 창작물이 그 가치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이용자의 권리도 함께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안 어디에도 이용자의 권리나 향유권을 진작시키기 위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다시 이 법안이 문화와 예술의 진흥과는 관계없이, 소위 문화 ‘산업’만을 위한 법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우리 삶에서 경제적 가치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의 유일한 가치라거나, 나아가 그것만을 위해 다른 가치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그렇게 주장하는 듯하다. 지적인 생산물에 관한 법률이 일반적인 재산권과 다른 지점은 명확하다. 법은 단순히 하나의 규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을 구조짓는 것이다. 특히 지적인 생산물과 관련된 법률은 우리의 창조적 능력과 문화적 삶을 구조짓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 가치로 완전히 환원될 수도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는 어떤 것이다. 지식재산기본법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혹은 과연 이런식으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할 시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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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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