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작장애인 위한 ‘꿈속의 도서관’ 열릴 전망

[ 시각장애인 위한 ‘꿈 속의 도서관’ 열릴 전망 ]

 구태우(정보공유연대IPLeft 활동가)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 ‘축복의 시’ 중 한 구절이다. 보르헤스는 불운의 작가다. 평생 20여 권 안팎의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작품이 20세기 사상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했던 파블로 네루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은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보르헤스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불행하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80만 권의 책을 관리하게 됐지만, 시력을 잃어 한 권도 읽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난달 27일은 축복의 날이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저작물 접근권 개선을 위한 마라케시 조약’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160개 회원국과 600여 명의 NGO 활동가가 참석한 가운데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진통 끝에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IE001596061_STD                    ▲ 국제시각장애인연맹 국제시각장애인연맹이 마라케시 조약 체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튜브캡쳐  ⓒ

지난달 17일부터 28일까지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개최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외교회의에서 기적과 같은 합의가 이루어졌다. 약 5년 동안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었다.

마라케시 조약은 시각장애 및 기타 장애 때문에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이 정당한 정보 접근권을 보장받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마라케시 조약을 승인한 국가와 기관은 큰활자책, 오디오 북, 점자도서 등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형식의 저작물을 저작권에 관계없이 만들고 복제, 배포하고, 다른 회원국의 승인된 기관과 공유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 전문 언론 <IP-WATCH>는 이번 조약 체결의 성과를 “기적이자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마라케시 조약 체결을 위해 수 년 동안 노력한 국제시각장애인연맹 등 시민사회단체 참가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날 축하 행사에 참석한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는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에게 마라케시 조약은 (시각장애인들의 독서환경을 보장할)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 동안 시각장애인들이 느꼈던 독서에 대한 갈증이 끝나가는 것 같다”며 “세계 각국의 정부가 이번 조약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관련법 개정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IE001596062_STD                    ▲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지난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모로코 마라케쉬에서 개최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외교회의에서 마라케시 조약이 체결됐다  ⓒ 유튜브캡쳐

 

마라케시 조약, 유의미한 성과지만 숙제 또한 남아있어

조약의 세부 조항을 보면, 출판 인쇄물에 대한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독서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포맷의 저작물을 만들고 이를 복제, 배포, 공중송신할 수 있다 (4조) ▲ 승인된 기관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독서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포맷의 저작물을 다른 회원국의 승인된 기관이나 수혜자 (독서 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 배포하거나 접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5조) ▲ 수혜자나 승인된 기관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독서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포맷의 저작물을 수입할 수 있다 (6조)

조약의 효력은 조약문에 서명한 후 국내 비준 절차를 거쳐 비준서 또는 가입서를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총장에게 기탁한 때로부터 3개월 후에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 조약과 저작권법상 관련 규정을 추가로 검토한 후 가입 시기 등에 대한 진단 및 국내 절차 점검 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이미 저작권법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제한과 예외 규정을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한글 사용 인구가 많지 않아 조약에 가입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내 저작권 전문가들은 마라케시 조약 체결을 저작권 분야의 유의미한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우선 마라케시 조약은 저작권 제한을 의무화한 최초의 국제 조약이다. 또한 향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제한을 넘어 다른 영역에서도 공정이용 영역을 만들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오병일 정보공유연대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의 양이 전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조약이나 법제 자체가 장애인의 도서접근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정부는 독서장애인의 도서접근권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마라케시 조약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받는 도서에만 대상을 국한하고 있다. 앞으로 화면해설이나 폐쇄회로자막이 삽입된 영상물 등 디지털 멀티미디어 저작물들과 같은 저작권 보호 대상에 관해서도 예외규정 마련하도록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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