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재산권과 민주주의
박성호(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I. 실마리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법률들의 제정 과정이나 개정 과정은 외견상 합법성과 정당성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행정청에 의한 입법의 경우 관보를 통해 입법예고가 이루어지고 이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또한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고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의 법안 심사를 거쳐 국회 의결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관보를 통한 입법예고의 거의 대부분은 그 취지와 주요내용만이 공고될 뿐이고 입법안 전문이 예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한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입법예고 자체를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규정하고, 공청회의 개최도 행정청의 재량사항일 뿐이다. 더구나 입법예고나 공청회에 관한 행정절차법의 규정들은 행정청의 입법안만을 적용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의원 입법안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의원 입법안의 경우에는 국회법의 규정에 따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개최하는 공청회나 청문회를 활용할 수 있으나 제정법률안 및 전문개정법률안의 경우가 아닌 한 그 개최는 위원회의 재량사항일 뿐이다(국회법 제64조, 제65조, 제58조 5항). 또한 국회 상임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주의를 취하고 있어서 법안 심사의 밀실화를 부채질한다(국회법 제55조). 따라서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 과정에서의 민주적 정당성 내지 절차적 정당성이 구현되는지 여부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편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전개된 지적재산권 제도에 관한 비판적 논의의 대부분은 거시적 관점에서 추상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법률 자체에 관한 분석은 다분히 도식적이고 소략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비판적 문제제기가 계몽 차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구체적 실천이라는 대안 제시의 측면에서는 논의의 속성상 일정한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법해석론 중심의 미시적 연구가 주류를 형성하는 법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비판적 논의에 대부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더구나 지적재산권과 같은 법분야는 과학과 기술의 문제를 단순히 \’첨단기술\’의 문제로만 보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능적인 법해석이나 입법론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 차이와 상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설계도라도 현장에서 집을 짓는데 소용되지 않는다면 눈요기감 외에는 별반 쓸모를 찾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해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실천을 지향하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듯 싶다. 흔히 말하듯이 대(大)는 소(小)를 포섭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법률 내부로 뛰어드는 것도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현행 입법절차에서 문제되는 민주적 정당성 내지 절차적 정당성의 위기를 고려한다면, \’법률 내부로 뛰어드는 행위\’는 입법과정에의 시민참여행위로 구체화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지적재산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II. 지적재산권과 참여민주주의
1.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민주주의와 시장은 근본적으로 모순관계에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 현재 우리가 땅을 딛고 사는 자본주의 세상을 움직이는 양 축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이루어져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의적 개념이기 때문에 일의적(一義的)인 개념 규정이 곤란하다. 민주주의는 그 어원이 보여주듯이 1인이나 소수에 의한 통치와는 반대되는 다수 인민에 의한 통치를 말한다. 다만 정치권력의 행사방식의 변화에 따라 직접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로 이행되어 왔을 따름이다. 현재는 특정의 정치원리로 민주주의를 이해하여 정치형태 또는 정치이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원리는 공공성이란 이념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시장경제 속에서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다하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공공성\’ 내지 \’공공영역(public sphere, ffentlichkeit)\’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영역이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성을 가지며 복수(複數)의 가치나 의견들 사이에 생성되는 공간으로서, 공통의 세계에 각자의 방법으로 관심을 다하고 상호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복수의 집단이나 조직에 다원적으로 관계되는 담론의 공간을 말한다. 이를테면, NPO(비영리단체), NGO(비정부단체), 자원봉사단체 등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형성하는 조직이나 단체, 모임, 그리고 개인들로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국가나 시장 양자와는 구별되는 그 독자적 의의가 강조된다. 여기서는 불특정인들이 사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공적인 문제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데, 이러한 아렌트=하버마스적 공간의 생성·전개로 요약되는 일련의 움직임의 총체를 공공영역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공영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민주주의 정치원리의 실천이 요구된다. 이것은 "사적인 문제를 공적인 쟁점으로 바꾸는데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공론의 장(공공영역)에 밑으로부터의 투입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하버마스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의사형성·의사결정의 공간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여 공공영역을 활성화하고 이러한 활성화를 통해 시장경제 속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하여 공공영역을 매개로 하여 작동되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시민의 정치참여라는 참여민주주의의 문제와 연관을 가지게 된다.
2. 지적재산권의 입법과정에 시민의 참여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에 입각한 의회입법의 원칙은 입법절차나 그 결과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원리가 제대로 실천되는 곳이라면 시민의 여론이 입법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통로가 보장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법과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요구된다.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책으로서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 중의 하나도 참여민주주의가 시민의 입법참여에 대한 원리적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입법과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는 시민단체의 입법감시활동을 통하여 활성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반 입법 관련 활동은 공공영역의 구축 및 강화에 기여하게 된다. 국내적 차원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이 벌이는 입법청원이나 법안 심의 과정에서의 의견제출 활동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가령 WTO 뉴라운드 출범의 저지를 위해 벌이는 세계 여러 나라 NGO들의 각종 연대활동도 시민(단체)의 입법참여라는 범주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지적재산권의 입법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공공영역의 특징과, 정보가 갖는 공공재(public goods)로서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III. 정보접근권, 문화적 권리, 그리고 지식민주주의 사회
1. 공공영역의 법적 근거지 = 공익(public interest) 관련 규정
공공영역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는 공통의 세계에 각자의 방법으로 관심을 다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공통의 관심사란 다름 아닌 공익, 공공복지 등을 말한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사익, 사권(私權)이다. 법률의 제정 내지 개정과정, 특히 지적재산권의 입법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요구되는 것은 공공성의 실현이 공익으로 구체화되는 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민의 입법참여를 통해 지적재산권 관련 법 분야에 공공영역의 법적 근거지, 즉 공익 규정을 구축·구체화하고 이를 확대하는 길이 될 것이다.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는 이미 국제협약을 비롯하여 각종 법률에 공익에 관한 규정들이 마련되어 있다. 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17조는 재산권 일반에 관하여, 제27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제2항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각 규정한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2항이 지적재산에 관한 권리를 선언한 것이라면 제1항은 공익에 관해 규정한 것이다. 1966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 제15조 제1항(a)는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b)는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c)는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를 각 규정한다. 제15조(a)(b)(c)에는 문화적 참여와 저작권, 과학의 발달에 대한 숭상과 특허권의 보호 등으로 혼재되어 있는데, 제15조 제1항(a)(b)가 각 규정한 문화적 생활에의 의의 있는 참가 및 과학적 진보에 의한 이익의 응용이 공익에 관한 것이고, 제15조 제1항(c)가 지적재산의 효과적인 보호를 규정한 것이다. 우리 현행 법률의 경우에도, 사적 권리와 공공의 이익의 조화를 도모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들을 마련하고 있다. 가령, 특허법, 상표법, 저작권법 등의 제한규정들이다. 특허법은 특허제도의 취지와 산업정책을 고려한 특허권의 제한(특허법 제96조), 법정실시권에 의한 특허권의 제한(특허법 제39조 1항, 제103조, 제104조, 제105조, 제122조, 제182조, 제183조), 강제실시권에 의한 특허권의 제한(특허법 제106조, 제107조) 규정들을 두고 있다. 상표법은 공익적 견지 및 그 보호목적에 비추어 특정인에게 상표권을 독점시키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 제한하고 있다(상표법 제51조). 저작권법은 제22조 내지 제34조에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대상이 되는 저작물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목적 및 방식에 따른 경우에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이용하는 것이 허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표된 저작물의 이용(저작권법 제25조)나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저작권법 제27조) 등이 대표적 예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한규정들 중에는 특허법상의 법정실시권이나 강제실시권 등과 같이 권리로서 개념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나, 나머지 대부분의 것들은 공익적 견지에서 부과된 제한의 반사적 효과로서 주어지는 이익에 불과한 것이다. 즉, 권리가 아닌 일종의 \’반사적 이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반사적 이익의 집합체들을 하나의 권리로 개념화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2. 정보접근권과 문화적 권리
(1) 우리 헌법재판소는 "정보에의 접근·수집·처리의 자유, 즉 \’알 권리\’는 헌법 제21조 소정의 표현의 자유와 표리의 관계에 있으며 자유권적 성질과 청구권적 성질을 공유하는 것"이라 하고 이러한 \’알 권리(right to know)\’로부터 정보공개청구권이 도출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러한 알 권리(정보의 자유)로부터는 정보공개 뿐만 아니라 이른바 \’정보공유\’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만 \’정보공유\’를 매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리내용에 관한 구체적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여기서는 정보공개 외에 정보공유라는 개념을 포괄하는 \’정보접근권\’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정보공유\’의 구체적인 권리내용과 그 법적 근거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우선 \’정보접근권\’의 국제인권법적 배경을 찾아보자. 전술한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과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 제15조 제1항(a)(b)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규정들로부터 후술하는 \’문화적 권리\’라는 개념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전술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알 권리는 헌법 제21조 소정의 표현의 자유에서 나온다는 것인데, \’정보접근권\’과 관련해서는 헌법 제21조 외에 인격의 형성 및 그 자유로운 전개와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를 함께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헌법적 근거의 가능성 외에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헌법은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헌법 제22조 제2항, 제23조 제1항), 이에 관한 제한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23조 제1항 단서). 그러므로 지적재산권의 포괄적 제한을 전제로 하여 \’정보공유\’의 실현을 권리의 내용으로 삼는 \’정보접근권\’이 법률의 근거 없이 헌법 조항만으로 바로 창설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정보공유\’를 지향하는 개념으로 \’정보접근권\’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한, 이 \’권리\’는 현재로서는 미완성의 권리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권리로서 그 내용도 아래에서 보듯이 층위를 달리하는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하나의 권리가 명실상부한 권리로서 \’시민권\’을 획득하여 권리장전에 이름을 올리기까지는 많은 단계적 변천을 거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비록 현재로는 미완성이고 발전 도상(途上)에 있을지라도 그 권리의 요소를 구성하게 되는 내용물을 살펴보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보접근권\’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다음의 것들을 열거해 볼 수 있다. ① 저작권제한사유 등, ② 정보공개법을 통해 공개된 일정한 정보, ③ 국가나 공공단체 보유의 저작권 중 공공성 있는 저작물, ④ 공공재원의 지원을 통해 창작된 저작물로서 국가나 공공단체가 보유한 저작물, ⑤ 카피레프트된 저작물 등이다. 시민이 지적재산권에 관한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열거 사항들을 고려하면서, 관련 법안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별도의 법안 제출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저작권제한사유 등과 관련해서는 이것이 반사적 이익을 부여하는 차원을 넘어 \’정보접근권\’의 핵심 내용을 구성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나 여기에서 도출되는 \’알 권리\’가 이를 뒷받침하는 헌법적 근거가 된다는 점은 전술한 바와 같다. 정보공개의 대상이 되는 정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국가나 공공단체 보유의 공공성 있는 저작물의 경우에는 공익적인 관점에서 당연히 정보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재원의 지원을 통해 창작되는 저작물의 경우에는 시민의 세금이나 각종 준조세(準租稅)로 형성되는 기금을 통해 그 지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국가나 공공기관이 그 저작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공익적인 관점에서 마땅히 시민들에게 정보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단체는 정보공개제도 등을 통하여 공공성 있는 저작물이나 공공재원의 지원을 통해 국가 등이 보유하게된 저작물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정보공유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정보접근권\’이란 것도 결국은 \’문화적 빈곤\’을 타개하는데 그 역할이 집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문화적 빈곤의 타개라는 관점에서 \’문화에 관한 기본권\'(문화권) 혹은 \’문화적 권리\’로의 전화(轉化)가 요구되기도 한다. 정보접근권을 포괄하는 \’문화적 권리\’의 근거로서는 전술한 것처럼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과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 제15조 제1항(a)(b)이 거론된다. 정보접근권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권리는 법적 내용과 집행가능성이란 측면에서 아직 발전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미완성의 권리이다. 그 원인으로 이 권리를 둘러싼 정치적·이념적 긴장, 문화라는 용어의 다의성, 그리고 인권의 보편성과 문화적 상대주의 개념간의 갈등 등이 거론된다. 어쨌든 문화적 권리는 표현의 자유, 정보의 자유 등 다른 개인적 권리나 기본적 인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에 따라 문화생활에의 참여와 과학적 진보에 의한 이익의 향유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전통문화지식과 생물다양성의 보전이라는 관점에서, 문화적 권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지식민주주의 사회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아무리 현란하게 논의되어도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 규정이 부재하다면, 이론적 흥미를 끄는 것은 별도로 치더라도 생활 세계에서 구체적 실천을 확보해 나가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보접근권\’이나 \’문화적 권리\’라는 용어를 통하여 돌파해 나가고자 하는 현실의 장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험난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비약\’을 상상하기 어려운 법률 세계에서 우리가 밀고 나가야 할 방향은 참여민주주의에서 원리적으로 도출되는, 시민의 입법과정에의 참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전술한 것처럼 공공영역을 구축·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보접근권으로 상징되는 \’정보공유\’를 현실 세계에서 하나 하나씩 실천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각각의 실천이 가져오는 누적적 효과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격차로 말미암아 정보의 접근·수집의 기회가 상실되는 일이 지속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식의 공유를 요구하고 이를 기초로 형성되는 지식민주주의 사회는 경제적 차이로 인해 야기된 정보격차의 해소를 지향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법적 불평등\’이 부르주아 혁명을 불러왔고, \’경제적 불평등\’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초래하였다. 각자의 혁명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면 디지털 시대가 직면한 \’정보 불평등(information inequality)\’의 문제도 이러한 \’비약\’으로 해결을 시도해야 할 것인가. 아마 그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약\’은 정보의 평등이 아니라 \’정보의 세계 이전\’으로, 다시 말해 인터넷 세계 \’이전\’의 상황으로 세상을 돌려놓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 법률과 같은 규범적 세계에 문제의 해결을 위탁한다면, \’비약\’이 아닌 단계적 실천을 통해서 그 해결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체적 실천을 담보하는 해결책, 즉 대안의 제시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안의 하나로서 참여민주주의를 통하여 지식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전술한 것처럼 시민의 입법참여를 통해 지적재산권 관련 법 분야에 공공영역의 법적 근거지, 즉 공익 규정을 구축·구체화하고 이를 확대하는 길이 될 것이다.
IV 맺음말 : 지적재산권에 관한 단계적 실천 과제
결론적으로 입법과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행위가 입법의사형성 및 결정과정에서 영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보공유\’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게끔 그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것은 곧 지적재산권에 관한 입법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이 작동되도록 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단계적 실천 과제 혹은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관심을 두어야 것은 정보접근권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추상적 이론이 아닌 계량적인 실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법률 세계의 언어\'(규범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지배적 언어)를 사용하여 법해석 및 입법론의 분야에서 문제제기를 계속함으로써 \’정보공유\’라는 문제의 인식과 공유를 요구해 나가는 자세가 요망된다. 국제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문화적 권리에 대해서는 그 논의의 현황을 연구·검토함과 아울러 국제적 논의과정에 우리의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적 권리의 연구를 통하여 지적재산권의 제한에 관한 실정법상의 논의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제한사유의 추가 리스트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물론 정보접근권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작업과 맞물려서 진행될 것이다. 둘째, 문화적 권리의 헌법적 근거와 기본적 인권으로서의 지위 내지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 학자들의 문제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요구된다. 셋째,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보접근권의 근거가 확대되어 갈 것이고 시민의 권리로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이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문화적 권리에 기반하여 지식의 공유를 요구하는 지식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규범적 영역에서의 단계적 실천(미시적 실천)을 통해 거시적 실천을 이루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적재산권과 민주주의\’는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