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발명의 강제실시
– 공익을 위한 통상실시권 설정의 재정을 중심으로 -
남희섭 (변리사/IPLeft회원)
Ⅰ. 서론
특허권은 특허발명을 특허권자만 독점적으로 실시하고 특허권자의 허락없는 타인의 실시를 특허권자가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특허권의 내용을 이처럼 독점 배타적인 권리로 구성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반드시 타당하거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특허기술을 \’물건\’으로 파악하고 특허권자를 그 물건의 \’소유자\’로 규정하는 독점 배타적인 방식보다는, 기술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즉, 특허권자와 특허기술의 이용자(이용자에는 소비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특허권자와 대등한 또는 더 우수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다른 기술자들도 포함된다)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특허권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특허제도가 등장할 무렵인 15세기 중세 유럽에서는 군주가 영주나 길드 조직에게 각종 특권을 부여하여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길드에 대해 제조와 무역의 독점을 인정하였고, 그 후 절대왕정이 타도되어 산업자본이 국정을 지배하면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진행되었던 중상주의 시대에는 초기 산업자본을 위해 국내시장을 확보할 목적으로 외국 기술을 국내에 유입하기 위한 반대 급부로 독점적 특허권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르네상스 시기에 자기의 발명을 공개하기 꺼려하는 기술자들의 인식이 기술 발전에 장애가 되어 발명자에 대한 독점적 보호라는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특허제도가 출발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특허권이 독점배타권으로 규정된 것은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확산을 위해 필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나 정책적 고려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는 있다. 법을 이데올로기적 기능에서 보면, 법이 비록 사회 구성원 중 어느 일방의 이익을 옹호하고 타방의 이익을 배제하는 것이라도 법조문이 강자의 이해관계를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사회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는 듯한 외관을 갖추도록 조치함으로써 법의 원만한 집행을 도모한다. 따라서, 독점배타권 형태의 특허권이 기술혁신과 사회적 확산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부의 집중과 부의 회전,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 질서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이 자산 소유 중심의 물권법이고, 그러한 측면에서 특허법도 자본주의 법질서의 근간인 물권법 형식을 따르도록 독점배타권으로 규정하게 되었다고 새기는 것이 더 솔직할 것이다. 특허권의 본질을 어떻게 규명하는가에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을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그 범위와 한계가 달라진다. 여하튼 특허권의 독점적 성질로 인해 특허제도는 초기부터 그 유용성과 권리남용으로 인한 폐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특허권의 독점에 의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는 특허권의 효력을 제한하거나 특허권을 취소하는 것이 있는데, 특허발명의 강제실시제도도 특허권의 독점에 의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는 특허권의 국제적 보호 논의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한데, 특히 의약 발명을 둘러싸고 가장 많은 논란이 있다. 의약 발명에서 강제실시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신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일단 개발된 약은 모방하기가 매우 쉽고 카피 의약품을 생산하는 데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둘째, 다른 분야와 달리 의약분야에서는 특허권의 독점적 성격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의약 분야에서는 하나의 특허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독점이 크게 부각되지만, 전자 산업이나 기계 분야에서는 하나의 제품에 여러 특허가 존재하여 어느 한 기업이 하나의 제품에 대해 기술을 독점하는 것이 어려우며 오히려 특허권은 다른 특허권자와 관계를 맺는 수단 예컨대 상호실시 허락(cross-licensing)의 도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이러한 사실은 의약분야의 특허분쟁 양상의 특징으로부터도 엿볼 수 있는데, 제약 분야의 특허분쟁은 전자나 기계 산업의 특허분쟁과 달리 화해의 방식으로 종결되지 않고, 어느 한쪽의 승소나 패소로 시장진입 성공 또는 시장 축출로 결론이 난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조약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강제실시 제도가 현실적으로 불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를 법으로는 규정하고 있으나 이것이 시행된 적이 없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강제실시에 대한 논의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심지어 강제실시 제도가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제도라는 무용론까지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만성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Gleevec 또는 Glivec)\’에 부여된 국내특허에 대한 강제실시청구가 있었고, 국내 제약회사인 보령제약이 미국 화이자사의 물질특허 \’암로디핀 베실레이트\’에 대한 통상실시권(강제실시권) 허여 심판을 청구하는 등 강제실시 제도가 현실로 적용되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강제실시 제도의 좀 더 구체적인 해석론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2001년 11월 \’TRIPs 협정과 건강권에 대한 WTO 각료선언문\’은 (1) 회원국이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TRIPs 협정이 \’방해하지 않으며 방해할 수 없다(does not and should not prevent)\’는 점과, (2)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특히,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기 위한 WTO 회원국의 권리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협정이 해석되고 이행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를 이해하는 자세에도 기존의 특허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만 강제실시를 조망하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 글은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 특히, 특허법 제107조1항3호에 규정되어 있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를 현실로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해석론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법개정론을 전개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국제조약의 내용과 외국의 강제실시 제도와 사례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Ⅱ. 국제조약의 내용과 강제실시 해외사례
1. 파리협약
특허를 비롯한 산업재산권 제도의 국제화에 시초가 된 1883년의 파리협약은 특허권자가 자신의 독점적 권리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제재의 형태로 강제실시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즉, 파리협약 5조A는 특허권자에게 특허발명을 실시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타인이 특허발명을 실시할 수 있도록 강제하거나 특허권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허권의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예컨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실시와 같은 내용은 파리협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파리협약 논의 과정에서 강제실시 제도를 두고 가장 격렬한 논의가 있었던 부분은 특허를 취득한 나라로 특허권자가 특허에 관계된 물건을 단순히 수입하는 것이 강제실시의 요건이 되는 지였다. 파리협약 5조A(1)항은 \’특허는 특허권자가 어느 동맹국내에서 제조된 상품을 그 특허를 부여한 국가로 수입함으로 인하여 몰수되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수입\’에 의한 실시가 강제실시 발동의 요건이 되지 않도록 하였다.
2. WTO/TRIPs 협정
WTO/TRIPs 협정 논의과정에서도 \’수입에 의한 실시\’ 문제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브뤼셀 각료회의(1990년 12월 3일)에 제출된 개도국의 제안에는 \’특허권자는 (a) 특허발명을 실시하고 (b) 라이센스 계약에 관련된 기술이전을 저해하는 남용적인 행위나 반경쟁적인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동항 a호에는 \’실시란 통상 특허제품의 제조 또는 방법특허의 산업적 적용을 의미하고, 수입은 제외되는 것으로 한다\’라는 정의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유럽연합은 반대안을 내었고, 결국 \’수입\’ 문제에 대해서는 양자 사이에 합의가 되지 않아, 현행 TRIPs 31조에는 \’수입 실시\’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들어가 있지 않다.
한편, 강제실시를 규정하고 있는 TRIPs 협정 31조에는 파리협약과 달리 특허권이 남용된 경우 뿐만 아니라, 국가긴급사태나 공적인 비상업적 사용을 위한 강제실시가 가능하도록 하여 파리협약에 비해 더 넓게 강제실시를 허용하고 있다. TRIPs 협상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최대의 쟁점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하는 이유를 한정할 것인지의 여부였다. 선진국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하는 이유를 한정적으로 열거할 것을 주장한 반면, 개도국은 이유를 한정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구체적으로 강제실시를 명하는 경우의 요건에 관해, (1) 강제실시를 명할 수 있는 경우를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기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제실시를 명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선진국의 grounds approach), (2) 어떠한 이유에 의하더라도 강제실시를 명할 수 있으나 명하는 경우에 강제실시권 부여의 조건을 다수 열거하고 부여의 적정화를 도모하는 방법(개도국의 condition approach)가 대립하였으나, 결국 TRIPs 협정에서는 개도국의 입장이 채택되어 제31조에서 강제실시를 명하는 조건을 정하게 되었다.
WTO/TRIPs 협정 제31조에 규정된 강제실시는, (1) 강제실시의 승인은 개별적으로 비교 형량하여 심사하여야 하고(개별성 원칙), (2) 특허권의 강제실시를 요청하는 자가 특허실시 이전에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하여 특허실시권 제의를 하였음에도 합리적인 기간 안에 특허실시권을 얻지 못한 경우에 보충적으로만 허용되며(보충성 원칙), (3) 다만, 국가 긴급사태나 그밖에 극도의 위기 상황, 또는 공공·비영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보충성의 존재가 의제되고, (4) 강제실시가 승인되는 경우 그 범위와 기간은 목적 달성을 하는 데에 한정되어야 하고 (최소실시 원칙), (5) 강제실시되는 권리는 통상실시권에 한정되며 (통상실시원칙), (6) 강제실시권은 이를 이용하는 기업이나 영업권(goodwill)과 함께 양도하지 않는 한 양도가 금지되고(양도금지의 원칙), (7) 강제실시권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하는 체약국 내의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야 하며(국내실시의 원칙), (8) 강제실시를 정당화하는 상황이 소멸하거나 그러한 상황이 재발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때에는 강제실시권을 부여받은 이해관계인의 적법한 이익을 충분히 보장하는 조건 하에 강제실시권을 취소할 수 있는 제도 마련과 권한있는 기관이 신청에 따라 강제실시를 정당화하는 상황의 존속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한시적 적용의 원칙)는 등 많은 요건과 절차가 필요하다.
3. 해외 주요국의 강제실시 제도와 사례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는 미국이다. 특이한 점은 미국특허법에는 강제실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대신 \’식물신품종보호법\’에 의하면 농림부장관이 미국내 농산물의 적절한 공급을 위해 필요한 경우 특허된 신품종의 강제실시를 결정할 수 있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특허발명에 대해서 보건이나 안전 또는 기타의 공익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가능하며, \’공중보건 및 복지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오염물질배출규제 또는 원자력의 이용 등 공익을 위해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가능하다. 한편, 1994년 Jerrold Nadler 의원이 의약관련발명에 대한 강제실시 규정을 특허법에 두고자 하는 특허법 개정안을 연방의회에 제출하였으나 통과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는 법원이나 정부에 의해 독점을 규제하는 차원에서 주로 발동되었는데, 1997년 3월 미국 연방통상위원회가 시바-가이기(Ciba-Geigy)와 산도즈 (Sandoz)가 노바티스(Novartis)로 합병된 것이 미국내 유전공학 의약품 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합병 기업들의 몇가지 제품에 대해서는 권리 박탈을 요구했고, 다수의 보건관련 발명에 대해서는 지적재산권의 강제실시권 허용을 명령했다. 또한, Monsanto가 DeKalb Genetics를 인수하면서 생명공학 특허발명과 이와 관련된 정보의 실시 및 사용허락이 이루어진 예도 있다. 미국에서는 100건이 넘는 불공정거래 사건에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발동되었고, 정부에 의한 특허발명의 사용을 위해 강제실시 제도를 광범위하게 활용하였는데, 이로 인해 유럽연합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의약 분야의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는 위 표에서 보는 것처럼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예가 나타난다. 그 이유는 캐나다 구특허법에 의약품 특허에 대한 특별한 강제실시 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즉, 의약품의 조정(調整), 제조를 위해 특허의 실시권 부여를 청구하는 누구에 대해서도, 실시권을 허여하지 못할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한 실시권을 허락하지 않으면 안된다. 캐나다 특허법의 이 규정은 TRIPs 협정과 NAFTA 가입 등을 이유로 1993년 2월에 폐지되었다.
한편, 1883년부터 강제실시 제도를 두고 있는 영국의 1949년 특허법은 음식물이나 의약품 또는 의료장치 등에 관한 특허발명의 경우 시장 가격이 높다는 것만을 사유로 해서도 특허발명의 강제 실시가 가능했는데, 이 제도는 1977년 폐지되었다.
프랑스는 구특허법에서 의약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그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의약품 발명에 관한 특허권의 강제실시가 공중보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공중보건업무를 관장하는 부처의 장관의 신청에 의해 직권에 의한 강제실시를 결정할 수 있다. TRIPs 협정이 발효된 후에도 이 프랑스 특허법 제613조의 16에 규정되어 있는 공중위생을 위한 강제실시 제도는 존속되고 있다. 독일의 연방특허법원은 1991년 류마티스 치료약과 관련된 특허에 대해, 중대한 질병의 치료를 위한 특허발명 의약품을 환자들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자국민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의약품 특허발명에 강제실시를 적용하려다 실패한 사례는 AIDS 치료약 특허권을 둘러싸고 있었던 남아공과 태국, 브라질 등에서 볼 수 있다.
Ⅲ. 공익을 위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1. 강제실시 제도의 유형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를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타인이 특허발명을 실시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한다면,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는 법률 규정에 의한 강제실시와 행정기관의 결정에 의한 강제실시(ex officio license)로 대별해 볼 수 있다. 행정기관의 결정에 의한 강제실시에는 (1) 특허권의 남용에 대한 제재 조치로서 발동될 수 있는 강제실시, (2) 선후권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강제실시, (3)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실시 등이 있다.
(1) 특허권의 남용에 대한 제재 조치로서의 강제실시
가. 불실시
특허발명이 천재 지변 기타 불가항력 또는 정당한 이유없이 3년 이상 국내에서 실시되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당해 특허발명의 실시를 원하는 자는 특허청장에게 통상실시권 설정의 재정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재정을 청구하기 전에 실시를 원하는 자가 특허권자 또는 전용실시권자에게 협의를 구했으나 협의가 성립할 수 없거나 협의의 결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는 소위, \’보충성의 요건\’이 전제된다.
나. 불충분한 실시
특허발명이 국내에서 실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당한 이유없이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상당한 영업적 규모로 실시되지 아니하거나 적당한 정도와 조건으로 국내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실시를 원하는 자의 청구에 의해 특허청장이 통상실시권을 설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특허권자와 사접협의를 거쳐야 하는 보충성의 요건이 필요하다. 여기서, \’상당한 영업적 규모로 실시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발명의 기술파급 효과가 확산될 개연성이 없는 형태의 실시를 제재하기 위한 것이고, \’적당한 정도와 조건으로 국내수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특허권자가 특허물건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유통시킨다거나 타인의 실시를 배척하여 그 실시의 정도가 형편없는 경우 등을 말한다고 한다.
다. 불공정거래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사법적 절차 또는 행정적 절차에 의하여 불공정한 거래행위로 인정된 사항을 시정하기 위하여 특허발명을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 당해 특허발명을 실시하고자 하는 자가 특허청장에게 통상실시권 설정의 재정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규정은 TRIPs 협정을 반영하여 도입된 것인데, 우리 공정거래법에 의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가 없는 한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적용되는 어색한 규정으로 잘못 도입되었다.
(2) 선후권리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강제실시
특허발명이 타인의 先특허발명 등을 이용하고 있는 경우, 후특허권자가 선특허권자로부터 정당한 이유없이 실시허락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후특허권자 등의 청구에 의하여 심판절차를 통해 통상실시권을 허여하는 것이다. 이 심판을 우리 특허법에서는 \’통상실시권허여심판\’이라고 하는데, 보령제약에서 미국 화이자사를 상대로 청구한 것이 바로 이것이며, TRIPs 협정에는 제31조(l)에 규정되어 있다.
(3)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실시
이에 대해서는 절을 바꾸어서 상세히 논의한다.
2.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 제도의 입법경위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와 관련된 우리 특허법의 입법 경과를 살펴보면, 1952년 4월 13일 법률 제238호 특허법(1946년 특허법) 제101조에는 적당한 조건부의 실시권 허락을 특허권자가 거부하는 것이 국내 사업에 부당한 손해를 가하고 실시권의 허락이 공익상 필요함이 명백한 때에 이것을 특허에 관한 권리의 남용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檢事 또는 이해관계인이 강제실시권의 허여 또는 특허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동법 제102조). 그 후, 1961년 12월 31일 법률 제950호 특허법 제44조1항은 특허권의 공용징수 형태로 \’특허발명이 국방상 또는 공익상 필요한 때에는 특허권을 정부에서 제한, 수용, 취소하거나 정부에서 특허발명을 실시하거나 또는 정부 이외의 자로 하여금 실시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한편, 특허권이 남용되는 경우의 제재 형태로 제45조(불실시의 경우의 강제실시 또는 특허취소)에서 \’특허권자가 특허를 받은 후에 계속하여 3년이상 정당한 이유없이 그 발명을 국내에서 실시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특허국장은 이해관계인의 청구에 의하여 그 실시권을 타인에 허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공용징수 형태의 규정은 1963년 3월 5일 법률 제1293호 특허법에도 동일하게 규정되었고, 동법에서는 45조의 2를 신설하여 1항에서 \’특허권자 기타 특허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는 그 권리를 남용하지 못한다.\’고 하고, 2항에서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때에는 특허에 관한 권리를 남용한 것으로 본다. 3호: 특허권자가 실시권의 허락을 부당하게 거부하여 산업이나 국가 또는 국내거주자의 사업에 손해를 가하였을 때. 4. 방법발명에 의한 특허의 경우에 그 권리의 범위에 속하지 아니하는 방법에 의하여 물건을 생산하여 타인에게 부당하게 손해를 가하였을 때\’를 추가하였다.
공용수용의 형태 또는 특허권 남용의 제재조치에 대한 부가적 요건으로 \’공익\’을 요구하던 이러한 태도는 1978년 2월 8일 법률 제2505호 특허법 제50조 및 1986년 12월 31일 법률 제3891호 특허법 제50조에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오다가, 1990년 1월 13일 법률 제4207호 특허법에서는 국가에 의한 특허권의 수용으로 규정하던 종전과는 달리 제107조에서 \’통상실시권 설정의 재정\’ 규정을 마련하면서, 제1항제3호에 \’特許發明의 실시가 公益상 特히 필요한 경우\’에 특허발명을 실시하고자 하는 자가 통상실시권의 재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기에 이른다. 1995년 국내에 TRIPs 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개정된 1995년 12월 29일 법률 제5080호 특허법 제107조에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特히 필요한 경우\’에서 \’特히\’를 삭제하는 대신 \’비상업적 실시\’ 요건을 추가하였다. 1995년 법은 이 외에도 불공정거래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강제실시의 재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고, 반도체 기술에 대해서는 강제실시 발동 요건을 달리 정하였다.
이와 같은 입법의 경위를 정리하면, 우리 특허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 제도는 청구인의 범위가 \’검사나 이해관계인, 정부\’에서 \’특허발명을 실시하고자 하는 자\’로 확대되고 공익상의 필요가 \’특히 필요한 경우\’로 제한되지 않는 등 그 한계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강제실시의 형태가 \’비상업적\’인 것으로 제한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3. 공익을 위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의 요건과 해석
(1) 청구인 적격과 비상업적 실시
특허법 제107조제1항 본문은 \’특허발명을 실시하고자 하는 자는 … 재정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청구인 자격에 대한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공익상 필요한 때에 정부에서 특허발명을 실시하거나 정부 이외의 자로 하여금 실시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했던 구특허법의 규정과 비교하거나, 청구인을 검사, 정부, 이해관계인으로 한정했던 구특허법의 규정과 비교할 때, 특허발명을 실시할 의사가 있는 자는 누구나 특허법 제107조 소정의 재정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
다만, 107조에서, 공익을 위한 비상업적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자는 특허발명을 \’실시\’하고자 하는 자에 해당하여야 하므로, 청구인은 소정의 실시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실시능력과 관련하여 애매한 문제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실시의 형태가 \’비상업적\’일 것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비상업적 실시\’의 요건은 TRIPs 협정 제31조의 \’공적인 비영리적 사용(public non-commercial use)\’ 규정을 도입한 것인데, 이것은 TRIPs 규정을 잘못 해석하고 우리 법문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TRIPs 협정의 논의과정에서 \’공적인 비영리적 사용\’의 표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는데, 정부에 의한 사용(governmental use)으로 하자는 제안과, 단순히 공적인 목적의 사용(public purpose use)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논의의 방향은 가급적 적용범위를 축소하자는 쪽으로 진행되어, 정부에 의한 사용 등으로 할 경우 정부가 영리적 목적으로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가능성(그 예로는 \’우정사업\’을 든다)이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현재의 규정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특허법 제107조의 요건에는 \’정부의 영리적 실시\’를 배제하는 형태로 규정되어야 마땅한데, 현재 규정은 모든 실시 형태가 비상업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상업적으로 특허발명을 실시\’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특허법상 특허권자는 \’특허발명을 業으로서 실시할 권리를 독점\’하는데, 여기서 \’業으로서 실시\’란 개인적·가정적 실시를 제외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통설이다. 따라서, 영리를 직접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공공사업·의료업· 변호사업 등에서 행해지는 실시도 업으로서의 실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특허법 제107조제1항제3호 소정의 \’비상업적 실시\’란 \’業으로서 실시\’ 중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실시\’를 제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재정에 의한 통상실시권의 이전(移轉)을 규정하고 있는 특허법 제102조제3항의 \’제107조 규정에 의한 통상실시권은 실시사업과 같이 이전하는 경우에 한하여 이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강제실시 형태에 \’실시사업\’을 이미 예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특허발명의 비상업적 실시\’란 \’고도의 영리적 목적을 위한 실시\’만을 제외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비상업적 실시 요건과 실시능력을 결부시켜 고려할 때, 청구인 적격의 문제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 이외의 누가 강제실시를 청구할 수 있을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스스로 강제실시권을 발동하여 특허발명을 실시하는 경우에는 실시능력과 비상업 실시 요건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특허발명과 경쟁관계에 있는 영리기업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단체 등에서 공익을 위해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영리기업에서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여도 그 실시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인 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정상조 교수의 주장을 참조할 수 있겠다. 한편, 특허발명을 직접 생산할 능력이 없는 공익기관에서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청구인 적격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실시능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능력이 있는 영리기업과 그렇지 못한 비영리단체가 공동으로 청구인이 되는 것은 역시 \’비상업적 실시\’ 요건에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요컨대, 우리 특허법 107조1항 본문에는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를 청구할 수 있는 자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지만, 실시능력이나 비상업적 실시 요건으로 인해 정부 스스로 강제실시를 발동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청구주체에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 \’글리벡\’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 청구는 국내의 임의단체 2곳과 사단법인에서 청구를 하였는데, 이 단체들이 특허청으로부터 \’글리벡\’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허락받았다 하더라도 특허발명 \’글리벡\’을 실시를 하기 위해서는, \’글리벡\’을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이나 기술력을 갖춘 국내의 제약회사를 통해 제조를 하거나 외국으로부터 \’글리벡\’ 의약품을 수입하여야 한다. 국내 제약회사를 통해 글리벡을 강제실시하는 경우, 위 제약회사는 강제실시를 직접 허락받은 자가 아니므로, \’글리벡\’ 특허권자로부터 특허침해 금지의 대항을 받을 수 있다. 강제실시권은 그 성질상 통상실시권이 될 수 밖에 없고, 특허권자는 통상실시권자에게 침해금지의 소를 제기하지 않을 부작위 의무만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에, 통상실시권자인 강제실시권자가 제3자인 국내 제약회사에게 그 실시를 재허락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허권 침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특허발명을 \’비상업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경우란 어떤 상황을 말하는까?
특허권의 공유(公有)에 관한 이론에는 이를 유추해 볼만한 것이 있다. 즉, 특허권이 공유인 경우, 공유자 스스로가 실시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공유자 1인이 제3자에게 하청을 주는 경우에 그것을 공유자의 실시로 간주할 것인지 실시허락으로 볼 것인지 하는 문제점이 있다. 만일, 이것을 실시허락으로 본다면, 다른 공유자의 허락이 없는 한, 하청받은 자의 실시는 특허권의 침해가 된다. 실제로 실용신안권 공유자 중 1인의 하청인이 타공유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한 제조 행위에 대해 이것이 실시허락에 해당하는가의 여부에 대한 분쟁이 일본에서 있었다. 공유자가 금형을 제작하고 기술지도를 하여 재료 품질 제조기계의 성능에 대한 지시를 하고, 제품은 오로지 공유자에게 납품되어 공유자가 제품을 면밀하게 검사하고, 제조량이나 제품단가도 공유자가 결정하였는데, 설비는 하청인의 소유였던 사례에서, 仙臺 고등법원은 하청인은 공유자의 하나의 기관으로서 제조한 것이며, 공유자가 자기의 계산으로 그 지배관리하에 실시한 것이라고 하여 특허권의 침해를 부정하였다. 일본에는 이와 유사한 판례가 몇 개 더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과 같은 공유특허권의 사례가 없지만, 우리 특허법에 따르면, 특허권이 공유인 경우 공유자 1인이 다른 공유자의 동의없이 통상실시권을 허여하는 것은 무효이므로, 공유자 1인이 공유특허발명을 스스로 실시하지 아니하고 그 실시의 일환으로 물건의 제작 등에 관하여 제3자에게 의뢰한 경우 제3자의 실시행위를 공유자의 실시로 볼 것인지가 문제이나, 제3자가 공유자의 지휘감독하에서 공유자의 사업의 일환으로 단순히 특허품의 제작 등을 한 경우라면 제3자의 실시는 공유자 본인의 실시로 보아도 될 것이므로 다른 공유자의 동의사항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듯하다. 이 경우, 제3자는 공유자의 일기관(一機關)에 다름없다고 이론을 구성하거나, 하청인을 공유자의 이행보조자로 본다.
재정에 의한 통상실시권자와 특허권자 사이의 관계와 공유 특허권자들 사이의 관계가, 재실시 허락의 가능 문제에서는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공유특허권자 사이에 적용되는 위 이론이 그대로 통용된다고 보면, 공익단체들이 강제실시권을 허락받고 실시능력이 있는 영리기업을 자신의 일기관 또는 이행보조자가 되도록 관계를 맺어 실시한다면, 실시 능력과 결부된 청구인 적격 문제와 \’비상업적 실시\’ 요건과 특허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2) 피청구인과 강제 실시 청구의 대상
특허법 제94조는 \’특허권자는 업으로서 그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한다. 다만, 그 특허권에 관하여 전용실시권을 설정한 때에는 제100조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전용실시권자가 그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하는 범위 안에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특허법 제100조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전용실시권의 설정을 받은 전용실시권자는 그 설정행위로 정한 범위 안에서 업으로서 그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등록 특허권자 및/또는 전용실시권자가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의 피청구인이 된다. 또한,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의 청구대상으로 되는 것은 위 특허권자가 적법하게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이다. 한편, 특허권은 등록이 효력 발생 요건이어서, 특허청에 등록되지 않은 것(예컨대, 아직 특허출원이 진행 중에 있는 발명)에 대해서도 강제실시의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
강제실시 제도에서 피청구인과 청구대상을 특정하는 문제는 별다른 난점없이 명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것이 절차상의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글리벡\’과 같은 의약품에 대해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경우, 실시하고자 하는 대상 물건과 특허권자는 쉽게 특정이 가능하지만, 청구대상으로서의 특허권을 제3자가 명확하게 특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제약 특허의 경우, 해당 의약품에 어떤 특허가 분포되어 있는지는 권리자 이외의 자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2001년 TRIPs 이사회에서 의약의 접근권과 특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때, 제3세계 네트워크에서 낸 제안에 따르면, 개도국이 강제실시와 관련하여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로 강제실시를 허락받는 과정이나 그 전단계에서 요구되는 절차와 조건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제실시권의 발동을 실질적으로 억제하는 절차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서,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자가 피청구인과 청구대상 권리를 빠짐없이 모두 특정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강제실시를 하고자 하는 물건(예컨대, 의약품)을 특정하고 이와 관계된 특허권자를 청구인이 특정하면, 특허권자가 의약품에 설정된 특허권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다.
(3) \’공공의 이익\’
TRIPs 협정 31조 b와 c에는 국가 긴급사태 및 공적인 비상업적 사용(public non- commercial use)을 위한 강제실시가 규정되어 있는데, \’공적인 비상업적 사용\’의 구체적인 예는 협정에 나타나 있지 않으나, TRIPs 협정 제1조1항 및 제8조1항에 기초하면, 가맹국은 \’공중의 건강과 영양을 보호하고\’ 또는 \’사회경제적 및 기술적 발전에 극히 중요한 분야에서 공공의 이익을 촉진하기\’ 위한 강제실시를 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때\’인지에 대해 국내에서는 이를 판단한 법원이나 특허청의 선례가 아직 없다. 한편, 우리나라의 舊특허법과 동일하게 \’특허발명의 실시가 공익상 特히 필요한 경우\’ 재정에 의한 통상실시권을 허용하는 일본 특허청의 \’재정제도의 운영요령\’에는 ① 국민의 생명·재산의 보전, 공공시설의 건설 등 국민생활에 직접 관계된 분야에서 특히 필요한 경우, ② 당해 특허발명의 통상실시권의 허락을 하지 않음으로써 당해 산업 전반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그 결과 국민생활에 실질적 폐해가 인정되는 경우를 예시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特히 필요한 경우란 국민의 생명, 건강, 재산의 보전, 공공시설의 건축 등 국민생활에 직접관계가 있는 소위 공공적 산업부문에 속하고 해당 발명을 긴급하고 널리 실시할 필요가 높은 경우(예컨대, 악성전염병이 전국적으로 만연하고 이에 대한 특효약인 특허발명품을 신속하고 대량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공익을 위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에 대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실시는 국가적 비상사태의 경우가 특히 적합한 예라고 설명하면서, 의료 장비를 예로 들면, 갑작스런 유행병이 발생한 경우 의료 장비를 빨리 수입할 필요가 있고, 의료 장비 특허권자가 합리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의료장비를 수입하려 하지 않거나 제3자에게 라이센스를 주지 않을 때 정부는 제3자 또는 정부 스스로 의료 장비를 수입할 수 있다. 그러나, 유행병이 통제 가능한 상태로 된 다음에는 강제실시 조치를 유지할 이유가 없고 특허권자는 자신의 특허에 부여된 권리를 전부 회복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WIPO의 설명은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실시는 비상사태의 경우 발동되는 강제실시와는 별개의 것이고, 도하 각료선언문에서도 에이즈나 말라리아와 같은 국민 건강의 위기상황(public health crises)을 국가 비상사태의 하나로 한정하였고,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인 국가의 비상사태나 극도의 위기상황이 HIV/AIDS, 결핵, 말라리아와 같은 유행병(pandemic)에 적용되고,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권리를 가지고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으며,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에는 특허권자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요건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 재정제도 운영요령에 나와 있는 설명은 공공의 이익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면이 있고, 교과서적인 사례에만 치중하고 있어서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실증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특허권의 경쟁제도적 측면을 부정하지 않는 입장에서 공공의 이익을 검토한다면, 특허권이 특정인에 대한 관계에서 남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영역에 속하는 모든 개인 또는 특정한 상황에 있는 모든 개인에 대하여 남용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공공의 이익\’ 요건이 충족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회복에 필수적인 의약품과 특허권의 행사가 직접 관계되어 있는 경우나,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의 건강한 생활에 관계된 환경 문제의 해결과 특허권의 행사가 직접 관계된 경우라면 구체적으로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권 발동의 예가 될 수 있다.
한편,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공익을 위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가능한지에 대해 독일의 사례 중 참작할만한 것이 있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특허권자의 배타적인 권리의 보호가 특허발명의 실시에 관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한 바 있는데, 구 특허법하의 독일판례에는, 예컨대 독일의 국내시장에 대한 특허발명제품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경우, 대규모 실업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 안전성의 증가나 일반 공중의 보건향상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에 특허발명의 실시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1991년 독일연방특허법원은 \’공공의 이익\’에 대하여 "구체적 개별적 이익상황에 대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개념, 특허권자의 이익과 특허권자 이외의 공중이 받는 이익의 비교 고려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판단할 것, 특허권자의 이익을 희생하여 실현하고자 하는 이익이 다른 대체적인 수단에 의해 실현할 수 있는 이익인가 아닌가를 중요하게 고려할 것 등"을 지적하면서, 독일에 존재하는 100만 내지 200만의 류마티스성 관절염 환자에 의해, 독일에서 제조승인된 유일한 유효성분 W를 갖는 의약품이 원고(특허권자)의 것 하나뿐인 상황에서, 환자가 안정적 계속적으로 본 의약품을 입수할 수 있다고 하는 공중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이라고 인정하였다. 독일연방특허법원의 이 판결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피고의 의약제품보다 원고의 제품이 효능이 더 뛰어나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고, 피고가 의약제품을 전혀 공급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원고의 의약제품의 제조를 위해서 피고의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이루어져야만 공공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여 특허법원의 결론을 유지하지 않았다.
한편,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를 발동하기 위한 요건으로서 \’공공의 이익\’을 해석하는 데에는 우리 헌법의 재산권에 관한 이념으로부터 특허법의 강제실시 제도의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재산권을 보장하면서도 재산권의 사회적 제약 내지 사회적 기속성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사회복지국가의 이념과 재산권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즉, 헌법 제23조제1항은 \’모든 국민의 財産權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재산권의 보장을 천명하면서 그 내용과 한계는 입법권자의 입법형성권에 의해 법률로 정해질 뿐만 아니라, 동조제2항에서 \’재산권의 행사는 公共福利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여 재산권의 사회기속성을 단순한 윤리적 의무 차원을 넘어서 재산권행사의 헌법적 한계로 설정하고 있다. 나아가, 동조제3항에서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하여 공익상 긴절히 필요한 경우에는 보상을 전제로 한 재산권의 침해가 허용되고 있다. 특허권과 같은 소위 \’정신적 재산권\’도 헌법상 재산권의 범주에 포함된다 할 것인데, 이러한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특허법 제94조는 \’특허권자는 업으로서 그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한다\’고 하여, 특허발명에 대한 일정한 행위를 특허권자의 허락없이는 할 수 없도록 하면서도, 특허에 의한 독점으로 생길 수 있는 폐해를 막기 위해 특허권의 취소(특허법 제116조), 수용(제106조), 효력의 제한 규정(제96조)을 두고 있는데, 특허법 제107조(통상실시권 설정의 재정) 규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성을 달성하기 위해 특허권의 남용에 대한 제한(제1항 제1호, 제2호 및 제4호)에 더하여, 공익을 위한 제한(제3호)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다른 유형의 강제실시 제도와 비교했을 때, 공익을 위한 특허권의 제한은 특허권 남용에 대한 제한과 달리, (1) 특허발명이 적당하게 실시되고 있는 경우에도 공공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불충분한 경우가 있다는 점과, (2) 특허발명이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는 그 발명이 특허권자에 의해 실시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3) 특허권자의 \’정당한 이유\’에 의한 항변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구별이 된다. 또한, 특허권 남용에 대한 제한과는 달리 \’공익을 위한 특허권의 제한\’에는 (4) 특허권자와 사전협의를 거쳐야 하는 \’보충성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 특허법에서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 제도\’에 이러한 차이점을 둔 이유는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 제도가 특정인의 관계에 대한 특허권의 남용 등에 대한 제재 조치가 아니라, 특허권자의 이익 이외의 더 큰 이익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의 행사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고도의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공익을 위한 강제실시는 특허권의 남용에 대한 제재나, 제3자와 형평성 고려 또는 특허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도 내에서만 고찰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특허권에 의해 보장되는 재산권의 행사가 악용, 남용됨으로써 사회 여러 계층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재산권의 행사가 사회적인 권력형성의 이기적인 수단으로 오용되는 상황 속에서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사회공동체의 동화적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헌법정책적 고려가 특허법 제107조에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면, 정당한 대가의 지급을 전제로 특허권을 부분적으로 제한하여, 예컨대 특허권에 의해 시장독점권이 형성된 의약품을 적절한 가격에 환자들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환자들을 질병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공공 필요에 의해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정신에 합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대가의 지급
공익을 위한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권자는 특허권자에게 대가를 지급하여야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TRIPs 협정 제31조h에는 특허권자는 각 사안에 따라 강제실시에 의한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특허법은 특허권이 수용되었을 때에는 \’정당한 보상금\’이라고 되어 있고(특허법 106조3항) 강제실시인 경우에는 단순히 \’대가\’라고만 되어 있다. 국제법상 특허권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시장가치를 통해 산출하되, 이것이 적절치 않은 경우, 기대이익을 포함하는 영업가치, 대체비용 등이 주로 거론되는데, 강제실시의 경우 특허권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대가도 \’시장가치에 가까운 충분한 보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의 경우 강제실시료에 대해서는, 순판매가격의 4%로 하여야 한다는 견해와 순가격의 10~15%라는 견해가 있다. 우리 법에서는 1999. 7. 1. 폐지된 \’국유특허권의처분·관리규정\’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인데, 예컨대 총판매수량을 미리 예측할 수 없을 때에는 \’제품의 판매단가×점유율×기본율\’에 의한 제품단위당 실시료를 \’대가\’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가의 지급과 관련된 것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Ⅳ. 법개정론 – 결론을 대신하여
앞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특허법 제107조1항3호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실시제도\’는 TRIPs 협정의 발효에 따라 도입된 것이지만, 국내 법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협정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규정된 것도 있으며,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곳도 보인다. 강제실시제도를 둘러싸고 국내의 논의를 촉발시킨 \’글리벡\’ 사안은 글리벡 약값의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특허권이 환자의 생명이나 건강보다 우선할 수 있느냐 하는 인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특허권이 인간의 생명이나 건강권보다 우월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우리나라에서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법개정을 위한 짧은 견해를 피력한다.
(1) 특허법 제107조1항3호에서 \’비상업적\’ 요건은 삭제되어야 한다. \’비상업적\’ 요건은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주체가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실질적인 제약이 될 뿐만 아니라, \’정부에 의한 영리적 실시\’를 배척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TRIPs 협정의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영리적 목적의 주체가 강제실시를 청구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2) 특허법 제107조1항4호(사법적 절차 또는 행정적 절차에 의하여 불공정거래행위로 판정된 사항을 시정하기 위하여 특허발명을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서 관련법(예컨대, 공정거래법)를 참조하여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수정하거나 시행령을 통해 절차적 규정들을 만들어야 한다.
(3) 강제실시권의 발동을 위하여 장애가 되는 절차적 요소에 대해 검토하여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강제실시의 청구대상이 되는 특허권의 존재에 대해 일정한 조건을 청구인이 충족하면, 피청구인(특허권자)가 그것을 확인하는 소극적 수준의 의무를 부담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
(4) 강제실시권이란 권리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또는 권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제3자에게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면 공익 달성을 위해 필요한 범위 안에서 권리자에게 일정 정도의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도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특허권자가 강제실시권자에게 실시에 필요한 정보 예컨대, 의약품을 제조하기 위한 공정 조건이나 특허 이외의 노하우 정보 등을 제공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강제실시권을 통상실시권(non-exclusive license)의 한 형태로만 파악하는 기존 개념에 수정이 필요하다. 즉, 순수한 통상실시권이 아니라 의무부담형 통상실시권으로 강제실시권의 성질을 달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