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복제 소프트웨어 단속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
–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과 재산권 제도를 중심으로 -
강성룡
1. 들어가며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2001)에 따르면, 2001년 소프트웨어 산업은 전년 대비 18.4%정도 성장을 하면서 약 8조 8천억 원의 시장규모가 형성되고, 2002년에는 25.4%정도의 성장이 이루어져 11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2001년 예상 GDP성장률이 3.0%임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이라 하겠다. 이러한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의 성장률은 2002년 예상치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의 평균 성장률 13.3%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의 규모는 2000년을 기준으로 세계 시장의 1.1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에 따라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한 관심 역시 증대하고 있다. 지난 2002년 4월 초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2002년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한국을 전년도에 이어 2년째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우선감시대상국(PWL)\’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한국 정부는 이에 반발, 한·미 통상협상 테이블에서 이 부분에 대한 우리 정부의 피나는(?) 노력을 강조하고 우선감시대상국으로의 지정 철회를 요구하여 결국 우선감시대상국에서 \’감시대상국(WL)\’으로 한 단계 낮추어지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민의 정부는 미국의 압력과 국내외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로비에 밀려 대대적인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을 실시해왔다. 이러한 단속의 바람은 해를 거듭할수록 도를 더해 가는데, 대표적인 예가 2002년 올해부터 시행되는 정보통신부 주관의 \’상시단속반\’ 운영이라고 하겠다. 이 상시단속반은 올 3월부터 한달 간 단속을 벌인 결과 44개 업체, 금액으로는 약 13억 원 정도의 불법적인 프로그램 복제 사실을 적발한 개가(?)를 올리기도 하였다.
분명 불법적인 소프트웨어 복제는 현행법을 어기는 불법행위이며, 이에 대해 단속을 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임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단속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경제적 차원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왜 경제문제인가?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상품의 생산, 유통, 분배가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이다. 봉건제의 태내에서 성장하여 종국에는 구 질서를 대체하게된 서구 자본주의는 기계화·공업화를 통한 생산력의 눈부신 발전과 제국주의적 확장 등을 통해 현실 지배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20세기 말,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더 이상의 경쟁체제가 없어진 자본주의는 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기술의 발전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논리로 무장하며, 터보 자본주의(Turbo Capitalism)라는 금융자본 중심의 심화된 형태의 자본축적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미국의 장기호황은 디지털 기술혁명 및 인터넷의 성장과 밀접하게 결부된 기업 및 경제부문의 급속한 성장이 다른 사회부문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면서, 세계적으로 \’신경제(New Economy)\’ 열풍을 몰고 왔다. 최근 미국경제의 하락으로 열기는 다소 식었지만, 여전히 \’신경제\’라는 말은 우리시대를 특징짓는 신조어로 \’세계화(globalization)\’와 앞을 다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제는 그것이 여타 사회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류경제학자들과 같은 이데올로그들(ideologues)과 월가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전 방위적 로비, IMF·WTO와 같은 국제 기구를 통해,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에 대항하여 시장의 자율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급기야는 경제 논리가 사회의 지배논리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처럼 경제가 다른 부문들을 압도하고 있는 사회 현실에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수준의 문제들에 대해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다. 이는 현재의 주류 경제논리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 방법은 경제중심주의나 경제가 다른 부문과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의 범위를 좁혀 분석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3. 지식 정보재의 등장과 재산권 개념의 변화
산업사회에서 경제문제는 희소성의 문제이다. 즉, 사람들의 욕망은 무한한데, 그것을 충족시켜줄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학이란 한 사회가 희소한 자원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생산하고,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인 것이다. 희소성이 핵심인 사회에서는 자원을 누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의 문제가 관건이 되며, 이 효율성은 시장을 통한 경쟁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믿어진다. 이러한 경제논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사적 소유권 제도이다.
산업사회의 재산권은 배제성과 경합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성격은 재화의 물질성에 기반하고 있는 데, 내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거나 사용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동시에 가지거나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러한 재산권 체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소위 지식정보사회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질서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지식정보는 산업경제의 상품과 달리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그 특성으로 한다. 즉, 지식정보는 나의 소유나 사용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소유나 사용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많이 확산되고 나눌수록 더 많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네트워크 효과). 그리고 근본적으로 지식정보는 경제학적 재화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주류 경제학에서는 상품이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희소성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지식정보는 그 자체로 희소성의 성격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자본주의는 희소성이 없는 지식정보에 저작권, 특허 등과 같은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지식정보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정보재화에 대한 권리부여는 자유방임 경제를 주장하는 시장주의자들의 견해와는 모순되게도 권리의 설정과 유지에 있어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에서의 핵심 자원인 지식정보재화는 산업사회의 사적재화가 유형적인 것과는 달리 무형적이며, 이론적으로 원본의 손상 없는 무한 복제, 무한 배포가 가능하다. 사회적 생산에서 핵심 요소가 유형적 생산요소에서 무형적 생산요소로 바뀐다는 사실은 단순히 생산요소의 구성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구성 및 운영원리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최배근, 2000: 557) 결국 희소성과 경쟁의 논리에 기반한 산업사회의 재산권은 풍부성, 더 나아가 무한성의 성격을 갖는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새로운 사회의 핵심 키워드는 \’배제와 경쟁\’이 아닌 \’공유와 협력\’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시장-배제와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체제인-을 배제한 경제\’를 어떻게 사고하고, 실천해 낼 수 있느냐이다.
4. 불법복제 문제와 관련한 경제학적 접근
일반적인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많이 다루어 졌다. 여기서는 경제적 차원의 문제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에 대해 접근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 앞서 제기했듯이 지식정보란 기본적으로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식이란 인류전체의 자산이며,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할 수 없다. 더구나 OS를 비롯한 몇몇 핵심 프로그램들은 정보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 소프트웨어이다(오병일, 2001). 산업사회에서 전력, 상하수도 등이 필수적 공공재였듯이 지식정보사회에서도 이들에 대한 접근을 공공성의 관점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 Windows와 같은 독점적 OS의 경우 불법복제 이전에 소프트웨어 가격 책정의 구조와 정당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은 독특한 생산비용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소프트웨어의 생산은 높은 초기개발비용이 들지만 추가적인 재생산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아래 <그림 1>과 같이 경제학적으로 평균비용(AC: Average Cost)곡선이 한계비용(MC: Marginal cost)곡선과 만나지 않고 더 높이 있(AC>MC)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균형가격 조건인 \’한계비용=가격(MC=P)\’의
<그림 1> 소프트웨어 산업의 비용곡선
책정방식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산비용 구조 하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져(독점의 가능성)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유경쟁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고, 결국 시장에서의 가격이 독점시장에서 책정되는 것과 같이 임의적으로 결정되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 2>에서와 같이 소프트웨어 시장이 독점적 환경에 놓여 있다면, 한계비용(MC)곡선과 한계수입(MR: Marginal Revenue)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생산량(Q1)이 결정되고, 가격(P)은 생산량이 Q1일 때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불하려는 금액수준인 P1에서 결정이 된다. 이때 가격 P1은 독점가격이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쟁시장에서는 기업 간의 경쟁으로 인해 시장가격이 한계비용과 같은 수준(P(=P*)=MC)에서 결정되는데 비해, 독점시장에서는 시장가격이 한계비용보다 높은 수준(P(=P1)>MC)에서 책정되기 때문이다.
독점의 가장 큰 문제는 독점기업이 사회적 최적 생산량보다 낮은 수준에서 생산함으로써 경제적 총잉여가 극대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저생산의 문제).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으로 효율성을 달성하는 생산량은 한계비용(MC)곡선과 수요곡선(D: Demand curve)이 만나는 Q*수준이 된다. 그러나 실제 생산은 Q1만큼 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 차이(Q*-Q1)가 바로 독점으로 인해 저생산된 부분이다. 따라서 실현되지 않은 사회적 효용은 그래프 상에서 ABC로 나타나는 부분이며, 이 만큼 사회적 후생이 감소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가격설정과 관련하여, 실제로 MS가 윈도우즈95의 개발에 쏟아 부은 비용(초기비용)은 무려 5천만 달러였다. 그러나 첫 제품이 나온 후부터 윈도우즈95 CD롬 한 장에
<그림 2>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격 결정 모형
들어간 제작비는 고작 3∼4달러에 불과한데, 윈도우즈95 CD롬 한 장의 시중 판매가격이 약 100달러(한국에서는 당시 약 300달러)였으니까 제작비용의 25배 이상에 판매하였다. 윈도우즈95 CD롬 한 장 생산에 4달러씩 계산해도 502만 개의 매출이 손익 분기점이 되고 그 후부터는 막대한 수익을 거두게 된다.(최배근 2000: 559) 셋째, 여기에 더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외부성(externality)과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s)의 특성으로 인하여 시장이라는 가격기구에 의한 자원배분은 효율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19세기 말 2차 산업혁명 이래 현실화되었다.(중공업화) 단지, 그것은 의도적으로 회피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새로운 기술혁신은 총비용 중 고정비용의 비용을 증대시켰고 이는 수확체증을 일반화시켰고 독과점 시장구조를 성립시켰다. 종래에는 독점의 문제(시장의 실패)를 독점금지법, 정부규제, 국유화 등으로 접근해 왔으나, 최근에는 정치실패를 이유로 다시 시장에 방임하는 경향이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무책임한 지적 경향은 \’시장을 배제한 경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무력감을 드러낸 것이다(최배근, 2000: 567).
넷째, 소프트웨어는 디지털 환경에서 얼마든지 원본과 같은 수준으로 복제가 가능하다. 이를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문제는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도, 해킹이나 사적 복제 등을 사전적으로나 사후적으로 막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낭비되는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한다면 사회적인 후생수준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피해를 입는 소프트웨어 생산자들에게 사회가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사용자, 생산자, 사회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냅스터나 소리바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들이 일부 기업이나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한다면 국민 중 다수가 범죄자가 되어야할 형편이지만, 정부도 이러한 결과에 부담을 느껴 실제 처벌은 P2P 파일 교환과정에 참여한 국민이 아니라, 이를 지원해준 기업에게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현행법상 불법적인 행위들이 다수의 시민들에 의해 행해질 때, 단순히 현행법만을 잣대로 처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검토하고 더 나아가서는 법 개정까지도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란 영원불변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다수의 국민을 범죄자로 모는 것은 법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최근의 실증분석(최봉현, 2000)에 의하면, 한국의 출판산업과 음반산업에서 사적복제는 사회총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왔다. 이 분석 모형에서 사적복제로 인해 저작물 생산자의 후생은 균형 수급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이러한 사적복제에 의한 후생분배의 왜곡을 치유하기 위해 생산자의 후생감소를 보상하는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므로 산업사회의 시장논리에 따른 자원의 배분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후생의 증가가 사회적 총후생의 감소를 가져오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총후생이 증가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된다면, 사적복제로 인해 감소된 저작권자와 저작인접권자에 대한 보상을 사회적으로 해주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새로운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하겠다. 여섯째, 불법복제 소프트웨어에 대한 단속으로 소프트웨어의 저이용 문제가 발생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사적복제를 용인함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효과가 사회후생의 증가 외에도 상품 혹은 기술의 사회적 사용 확대가 기대되는데, 단속은 이러한 이용의 확산을 저지하는, 즉 저이용의 가능성을 확대시킨다. 특허나 저작권 등에 대한 권리 강화는 그 목적이 창작적 활동을 보호·촉진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유용한 정보나 기술이 사회적으로 사장되게 하거나, 후속창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장경제의 무정부성에서 기인한 시장실패의 한 예이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로 인해, 시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공익이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보이지 않는 손\’이 유형재 중심의 산업사회가 아닌 무형재가 중심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더구나 최근 국회에 제출된 정부의 저작권법 개정안을 보면, 창작성이 없는 DB 등에 대해서도 보호가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창작물과 창작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인 저작권법이 창작자가 아닌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곱째, 보다 근본적으로 재산권 제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에서 재산권이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절대적 소유권 필요성의 근거로서 제시하는 \’공동지의 비극\’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다. Fenoaltea(1991)에 따르면 서유럽 중세의 공동경지(common fields)조차 대농장과 가족농의 이점들을 결합시킬 수 있도록 토지와 노동을 사용함으로써 토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소유제도가 장기간 소멸되지 않고 진화해온 이유는 그것이 자원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효율적인 제도 혹은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Lueck, 1993; 최배근, 2000에서 재인용) 이론적으로도 효율성이 보장되기 위해서 모든 사회에서 재산권이 명백하게 규정될 필요는 없다. 즉 이론적으로 권리를 명확히 하는 것은 비용을 수반하는데, 다양한 투입물의 사용에 대한 감독비용, 비회원을 배제시키는 비용, 산출물의 분할비용 등을 고려할 때 공동소유는 사적 소유에 대한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재산권의 중요성은 공식적인 규칙 없이 조직의 내부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위 \’용의자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 모형과 같은 이기적인 내쉬 균형의 결과는 협조적 결과보다 열등하다. 반면 비협조적 게임에서도 게임이 반복됨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데 그것들은 협조의 정도에 비례한다. 즉 상대적으로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규칙들이 없이는 효율적인 결과를 달성하기 어려운 반면, 협조주의 정신이나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경제성과를 손상시킬 수 있는 기회주의 태도나 게으름에 대한 유인이 작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동지 비극\’의 은유(metaphor)는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가정하듯 어떠한 사회, 문화적 상황 하에서도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고전파 경제 이론은 문화와 규범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최배근, 2000: 545-549)
5. 나가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와 관련하여, 이것이 엄연한 현행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근절이 되기 어려운 점과 이를 둘러싼 여러 배경들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지식정보사회가 근본적으로 과거의 산업사회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지식정보재화의 비배제적·비경합적 성격,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 외부성과 네트워크 효과 등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저작권은 언론의 자유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따라서 저작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다만, 현재의 저작권제도가 지식정보사회에서 또 다른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 볼 때, 사회 전체의 이익 증대를 위해서도 전향적으로 재고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법이란 사회적 행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시장경제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물물교환의 시대에서부터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시장경제론\’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이제 시장은 인류역사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보편적 제도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역사성과 사회성이 결여된 잘못된 관점이다. 크리스토프 애그뉴에 따르면, 시장(market)이란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으며, 시장이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데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이후부터(Rifkin, 2000에서 재인용)라고 한다. 시장경제란 보편적 역사가 아니라 인류사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같이 특정한 국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의 사회가 시장경제의 사회여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것은 하나의 시장 이데올로기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사회성과 관련해서도 시장은 최근의 전지구적 형태의 세계화에 이르기까지 사회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지녀왔다. 경제학은 우리가 배우는 경제이론이 서구사회의 산물이며, 시장이란 각 사회의 문화, 관습, 사고방식 등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에서 개인은 모두가 똑같이 합리적인 개인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합리적 개인을 발견하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재산권 제도 역시 사회적 역사적으로 상이하게 발전해 왔다. 남서태평양의 트로브리안드 제도에서 발견되는 쿨라(Kula)교역과 같은 선물경제(gift economy)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사회에서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소유권이 발생(해야만)했던 것은 아니다. 시장과 사적 소유권 중심의 Privatopia가 미래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고 인정한다면, 남은 과제는 \’시장을 배제한 경제\’를 어떻게 상상하고 실현해 내느냐이다. 이는 현재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비롯한 주류 이념과의 결별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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