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왠만해선 정보통신부를 막을 수 없다? (2002.9.26)

왠만해선 정보통신부를 막을 수 없다?

김인수(정보공유연대 IPLeft 사무국장)

얼마전 \’소프트웨어불법복제 상시단속을 위해 정보통신부공무원도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범죄 등에 대해 사법경찰권(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아직 입법예고 단계이긴 하지만 무척 당혹스러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
법무부의 입법 예고에 따르면, \’사법경찰관리의직무를행할자와그직무범위에관한법률(이하 \’사법경찰관리법률)\’이라는 법을 개정하여 정보통신부 및 체신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에 규정된 소프트웨어 저작권보호업무(단속 등)에 종사하게끔 수사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 개정 배경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니, 즉 불법복제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공무원들에게 단속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간의 민사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는 소프트웨어 저작권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국가기관이 한쪽의 재산보호를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개정안은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 침해행위는 거리나 공공장소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장이나 가정처럼 비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 것을 생각하면,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한 수사는 거의 필연적으로 압수나 수색을 수반하게될 것이므로, 어느 범죄수사보다도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서 국민들에 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통부의‘수사권확보’시도는 이미 예견되어진 것이었다. 지난 2001년 정통부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단속 업무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부터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수사권이 없는 공무원들이 강압적인 자세로 불법복제 단속활동을 하자, \’누구를 위한 단속이냐\’라는 비난과 함께, 단속행위 자체가 \’불법단속\’이라는 질타가 각계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고자 소위 \’정통부 짱구들\’에서 나온 생각이 \’수사권 확보\’인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부는 그 동안 심심찮게 \’공무원에게 단속권이 필요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흘렸으며, 최근 1년 사이 발표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을 2001년도 상반기에 9.5%에서 2002년도 상반기에 64.4%로 부풀렸다. 공식적인 통계까지 조작한 이 엉성한 작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들을 기만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보통신부는 이러한 무리수를 써가면서까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권에 연연해하는 것일까. 선진국(특히 미국)의 통상압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소프트웨어 저작권사들의 로비설도 있다. 일면 모두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정보통신부의 행동을 보면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고자 하는 부처이기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지난 2001년 제정된 디지털콘텐츠육성법의 입법과정이나, 현재 국회에서 심의하고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 그리고 지난 9월 25일 입법예고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법\’의 개정안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보통신부가 얼마나 부처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권한과 이익을 확대하려고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물론 저작권자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정보통신부의 부처이기주의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문제는 최근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이 정당한 권리 보호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가장 큰 모티브는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이다. 정부와 업계가 인용하는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맹주로 한 미국의 소프트웨어 이익단체인 BSA가 발표한 수치이다. BSA에 따르면, 2001년 한국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약 50% 정도이다. 이 불법복제율은 정확한 통계적 계산에 의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생산된 하드웨어 대비 판매된 소프트웨어를 계산하여 산출한 수치일 뿐이다. 이 불법복제율에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되지 않았고(예를 들면, �글과 같은 독자적인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형성), 사적복제 등과 같은 법률적인 특성도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신뢰성에 많은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정통부가 모르는 것도 아니며, 일반 소프트웨어 저작권사나 유통회사가 모르는 바도 아닐 것이다. 이것은 눈멀지 않은 국민도 마찬가지이다. 생각해 보시라. 우리나라 기업에서 두 명중에 한 명이 온통 불법복제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 한편으로 과도한 단속상황을 만들어내는 데는 불법복제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프트웨어 제작사의 \’징징거림\’과 자신의 고객을 범죄자 취급을 하는 이중적 작태 역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이들은 때가 되면 매일 약속이나 한 듯 언론에 대고 국민을 \’불법복제자\’로 몰아댄다. 그러고도 모자라 각종매체에 불법복제에 대한 엽기적인 광고를 내는 등 국민들에 거의 협박까지 한다. 믿기 힘들지만 일부 저작권사에서는 자신들의 잠재적인 고객을 \’밀고\’하여 단속 후 제품을 강매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몇몇 저작권사의 법률 담당자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자동차 등(유체생산품)과 비교하며 \’이게 자동차라면 집에서 비영리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냥 갖다 써도 됩니까?\’라고 거품을 물며 \’사적복제\’를 폐기하자는 주장과 함께 단속강화를 외치는 이들도 보았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소프트웨어가 디지털이라는 특성상 생산방식이나 희소가치가 일반 생산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공익과 사익의 절묘한 조화라는 저작권법의 목적을 위하여 이미 현행법에서 저작권자의 권리제한 조항을 두고 있다(물론 필자가 생각하기엔 이것 역시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만무하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정부는 이제라도 이 개정안을 폐기해야 한다. 공공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사의 편의를 위해서 수사인원을 보충하겠다는 이유로 정보통신부 공무원에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한 수사권을 부여하려는 것이라면, 모든 범죄에 대하여 행정부에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로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경찰국가로의 후퇴이며, 국제적으로도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또 소프트웨어 저작권사들에게도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의 제품은 당신들만 전적으로 개발한 제품이 아니다. 지금의 훌륭한 소프트웨어가 되기까지 그 소프트웨어를 위해 기꺼이 노고를 아끼지 않은 수많은 베타테스터(시험판 사용자)와 고객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시라. 그리고 이제 불법복제 단속에 의지한 영업정책을 버리고, 기술개발에 힘쓰고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늘리라는 지극히 당연한 부탁을 해본다. 이것이 진정으로 당신들의 소프트웨어를 지키는 지름길이며 바른길일 것이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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