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을 가리지 않는 미국의 일방주의
오병일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설사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그것에 비할 수 있겠냐만은, 전쟁의 명분이 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우리가 이라크를 해방시켰다\’고 오히려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치가 떨릴 따름이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며칠 전에 미선이, 효순이가 저 세상으로 떠나간지 1년이 되었지만, 불평등한 소파협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지적재산권 영역도 미국의 일방주의는 예외가 아니다. 아니, 지적재산권 분야는 정보·문화 산업 비중이 큰 미국의 공격성이 더욱 심화되는 영역 중 하나이다.
지난 5월 1일 미 무역대표부(USTR)가 내놓은 스페셜 301(Special 301)조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등급을 감시대상국(Watch List, WL)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미 무역법의 스페셜 301조는 지적재산권 영역에서 미국 기업에 불리한 관행을 조사하고, 이에 대해 보복 조치를 포함한 일정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무역대표부는 매년 각 국가의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우선협상대상국(Priority Foreign Country, PFC), 우선감시대상국(Priority Watch List, PWL), 감시대상국으로 등급 분류를 한다. PFC로 지정되면 미국과 일정 기간동안 협상을 거치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 보복 조치가 결정되게 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적 질서 자체가, 특히 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 미국의 이해관계가 관철된 것임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슈퍼 301조(Super 301)와 스페셜 301조와 같은 일방적 통상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2001년에는 우선감시대상국으로 분류되었으나, 작년과 올해에는 감시대상국으로 분류되었다. 아마도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충정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올해 9월 비정기 점검을 통해 재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즉,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여러 법안과 정부의 지적재산권 단속 의지를 지켜보겠다는 압력인 셈이다.
실제로 현재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률은 쉽게 말해서 정통부 공무원에게 불법 소프트웨어를 단속할 사법 경찰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와 경찰 국가로의 후퇴를 야기할 이 법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민변, 변협 등이 반대의견을 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해에 충실한 한국의 정부와 국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또한, 창작성없는 데이터베이스의 보호 등 저작권 보호를 한층 강화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4월 29일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음반제작자 및 실연자 등 저작인접권자에게 \’전송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을 또 다시 준비중이라고 한다.
국내의 지적재산권 관련 법률이 이와 같이 미국의 통상 압력에 의해 개정되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86년 미국과의 통상협상에 따라 저작권법을 전면 개정한 이후, 올해처럼 일년에 한두번씩 저작권법을 개정하고 있다. 우리의 자체적인 필요성과 토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물론 \’순전히\’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의 강화를 요구하는 국내 자본들의 요구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때로는 미국의 압력에 불만을 표시하며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속도 조절이 되기를 바라지만, 결국 미국이 요구하는 법과 제도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꼬마 제국주의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들은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 그리고 우리도 힘을 키워야하지 않냐고 자신들을 합리화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압력이 결국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제도가 \’선진화\’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미국이 자기 기업들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하는 제도가 어째서 \’선진화\’인가?
미국이 \’우리가 이라크를 해방시켰다\’고 한 것처럼,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지적재산권 제도가 결국 제3세계를 비롯한 전 세계에 이익을 줄 것이라고 주장해도, 민중들은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설사 100번 양보해서 그것이 올바른 방향일지라도, 민중들은 자신의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