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소프트웨어가 특허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2003.9.25)

소프트웨어가 특허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박병길

유럽연합(EU)이 소프트웨어를 특허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이미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이에 더하여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나 아이디어에 대해 특허를 통한 독점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9월 3일 각종 언론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지난 6월에도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승인이 한차례 연기 된 바 있는 이 \’소프트웨어(SW) 특허 법안\’이 각계각층에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켜 논란을 빚고 있어 유럽의회는 이의 처리를 오는 22일 이후로 연기됐다고 한다.
 8월 27일에는 유로리눅스 등 유럽 오픈소스 진영을 비롯해 일부 컴퓨터 과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유럽의회 건물 앞에서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온·오프라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U 각국의 서로 다른 SW 관련 법안을 정비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법안은 컴퓨터로 작업한 SW에 대해 특허로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유사한 법안을 7년 전부터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데 법안 반대자들은 "유럽의 현실을 무시한 미국 스타일이며 중소 SW 업체와 오픈소스 진영의 위축을 가져온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또 "(IT산업의) 경쟁, 혁신, 성장 그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법안을 발의한 매카시 의원은 유럽의회의 의뢰를 받아 런던의 한 지적재산권 단체가 실시한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SW를 특허화 하는 것은 독립소프트웨어업체를 비롯해 IT산업의 발전을 가져온다"며 맞서고 있다.
유럽위원회의 이러한 소프트웨어 특허에 대한 방침은 소프트웨어 해적 행위에 대한 법적인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다. 위원회 위원들은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불법적으로 배포하거나 공개하는 것은 기존의 저작권법으로 금지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특허는 20년간 완전한 독점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으로, 특허 소유자는 그 권리를 상용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권리는 특허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보호되는 기간은 특허법보다 길다.
향후 유럽위원회의 법안은 유럽 의회의 검토를 거친 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9월 1일 표결 예정이었던 이 법안은 다행히 9월 말로 연기된 상태이지만, 아직 완전하게 결말이 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전 세계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 법안을 저지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프트웨어 특허이며 다른 하나는 저작권이다. \’특허\’는 소프트웨어에 사용되는 특정한 아이디어에 부여되는 반면 \’저작권\’은 아이디어의 표현에 부여된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에 자동 한/영 전환 기능을 넣고자 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자동 한/영 전환 기능\’을 구현한 아이디어에는 특허가 적용되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짜여진 프로그램에는 저작권이 적용될 것이다.

특허는 개발과 혁신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이나, 소프트웨어는 굳이 특허로 보호하지 않더라도 이미 빠른 혁신과 발전을 이뤄왔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개발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업체들이 특허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미 지배적인 시장 지위를 확보해온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데, 소프트웨어 특허는 독점을 조장함으로써 자유로운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저해할 것이다. 그리고 특허권 보호기간은 출원일로부터 20년인데 소프트웨어의 발전 속도로 볼 때, 20년 동안 보호해주는 것은 거의 \’영원히\’ 독점을 보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는 지식의 공유를 통해 산업의 발전을 유도하려는 특허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혹은 특허된 알고리즘을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소프트웨어 특허는 이를 금지시킬 수 있다. 이는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발전하고 있는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개발조차 위축시킬 것이어서, 그 위험성을 더한다.

자유소프트웨어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의 리차드 스톨만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나 기법들에 특허권을 부여하는 것은, 일련의 음악 선율이나 화음에 특허를 부여하고 작곡가들에게 "음악적 선율 라이센스"를 구매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소프트웨어 특허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어렵게 만든다.

요즘의 소프트웨어들은 그 기능과 규모가 커서 하나의 프로그램에 수백 개 이상의 알고리즘이 사용될 수 있는데 이 알고리즘에 특허가 부여되어 포괄적으로 적용하게 될 경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개발자는 아마도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는 시간보다는 자신이 쓰고 있는 프로그램의 소스코드가 특정 알고리즘의 특허와 관련이 있는지 검토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또한 특허를 부여하는 기관의 전문가 부족으로 인해 기존 특허에 대한 검색과 이와 중복되지 않는 새로운 특허 부여가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아이디어의 경우 표현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소프트웨어 특허가 유일한 것인지를 판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핵심 컴퓨터 프로그램의 경우 10만개에서 천만개의 라인으로 된 코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다른 산업은 기껏해야 몇 안되는 특허로 보호받는 기술을 포함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하나의 제품이 수천개의 발명을 포함할 수 있어서 이것 중 어느 것도 특허될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알고리즘이 특허화 되어 있다면,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기 이전에 어떤 알고리즘이 특허화되어 있든지, \’선행기술\’을 검색해야할 것이다. 컴퓨터 관련 문헌의 방대함과 너무나 명백하게 문서화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설사 선행기술의 검색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이를 피해 개발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에서 보통 몇 만 줄의 소스코드 가운데 창조적 아이디어가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은 많아봐야 수십줄을 초과하기 힘들다. 나머지 대부분은 기존에 개발된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구성되어 왔는데 특허가 부여된 알고리즘을 대체할 알고리즘을 다시 구성해야 하는데 그것이 최적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특허를 만들어내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훨씬 앞지른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특허라는 것이 특정 산업의 특정 제품을 겨냥해 일정기간 동안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다른 산업에서 특허는 매우 쉽고 구체적인 결과를 제공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실제로 아이디어의 경우 표현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소프트웨어 특허가 유일한 것인지를 판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추상성과 복합성 때문에, 검색이나 분석, 법정 공방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비용은 엄청난 사람의 노력과 몇 장에 몇백원하는 공CD(혹은 플로피디스크)와 조그만 설명서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프트웨어 가격이 몇만원에서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까지 나오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앞에서 밝힌 여타의 비용이 추가된다면 개발자에게는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족쇄가 될 수 있고, 가격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시장이 성공적 소프트웨어 기업에게 보답을 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제공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작 어렵고 힘든 부분은 어떤 아이디어를 선택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성공적 기업의 초점은 맨 먼저 하거나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다. 다른 기업에게 새로운 기술의 독점을 허락하게되면, 그 아이디어의 선택범위가 현격히 줄어들어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가능성이 그만큼 없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특허라는 것이 사고파는게 가능해서 이미 기존 거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산업구조를 더욱더 집중시킬 우려가 많다. 다시말해 MS, IBM, Adobe 등의 거대기업에 독점을 조장함으로써 여타의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을 저해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발전 속도로 볼 때, 20년 동안 보호해주는 것은 거의 \’영원히\’ 독점을 보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컨대, 문자 데이터 압축 분야에는 이제 너무 많은 특허가 존재하여 특허를 하나라도 침해하지 않는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2003년 9월 3일 현재 소프트웨어 특허법은 9월 말로 표결이 연기된 상태이지만 아직 완전히 결말이 난 것은 아니므로 그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소프트웨어 특허법이 처리되지 않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대표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항의서명을 받고있는 http://petition.eurolinux.org/ 와 http://aktiv.ffii.org/en 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리눅스다큐먼트프로젝트KLDP(http://doc.kldp.org/wiki.php/SoftwarePatent)와 GNU KOREA(http://www.gnu.or.kr)가 주도적으로 웹사이트상에서 소프트웨어 특허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는데 KLDP, 그놈한국(GNOME Korea), GpgStudy, Spirit3d, AHA Studio, chabrothers.com, 쥬스닷인포, 어셈러브 등의 사이트가 페이지 링크나 온라인 상의 시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특히 GpgStudy의 토론방에서는 소프트웨어 특허에 대한 열띤 논의가 있기도 했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www.freepatents.org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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