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애국가는 우리 모두의 재산이다. (2004.1.16)

애국가는 우리 모두의 재산이다.

홍성태

2003년이 저물던 무렵, 뜻밖의 소식이 보도되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축구장에서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 애국가를 틀었다는 이유로 두 곳의 축구구단을 경찰에 고소한 것이다. 경건하게 애국가를 들으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야, 돈 내\’하는 소리와 함께 뒷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불문곡직하고 돈을 내야 옳단 말인가?
2000년에 국립극단은 50주년 기념공연으로 <마르고 닳도록>(이강백 원작희곡, 이상우 개작연출)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공연했다. 그리고 2002년에 이 연극을 좀더 빠르게 개작연출해서 다시 한번 공연했다. 이 연극은 안익태 선생이 살던 스페인 마요르카의 마피아가 1965년에 선생이 별세한 뒤 \’애국가 저작권\’을 노리고 한국으로 와서 음모를 꾸민다는 이야기를 줄기로 해서 1965년 이후의 한국사를 펼쳐놓는 내용이라고 한다. 2002년에 이 연극을 보도한 기사에서는 \’애국가 저작권\’을 \’기상천외한 소재\’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상천외한 상황이 불과 1년 여만에 우리의 생생한 현실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주역이 스페인의 마피아가 아니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라는 것은 커다란 차이이지만.
잘 알다시피 애국가는 우리나라의 국가다. 다른 모든 노래와 마찬가지로 이 노래도 노랫말과 곡조로 되어 있다. 노랫말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지만, 곡조는 안익태 선생이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안익태 선생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노랫말에 곡을 붙여서 \’애국가\’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애국가라는 제목의 노래는 구한말부터 여러 종류가 나타나서 널리 불렸다. 안익태 선생은 그 중에서 영국 민요인 \’올드랭싸인\’ 곡조에 붙여서 불리던 애국가에 새 곡조를 만들어 붙였다. 오늘날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그 까닭은 1948년에 수립된 남한정부에서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를 국가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래 애국가는 국가로 작곡되었던 것은 아니고 안익태 선생의 개인 창작곡인 \’한국 환상곡\’의 마지막 부분으로 작곡되었다. 안익태 선생은 미국에 머물던 1930년대 초부터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독일로 옮겨가 있던 1936년 6월에 애국가를 작곡해서 \’한국 환상곡\’을 완성했다. 같은 해 8월에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던 바로 그 올림픽이다. 히틀러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열었던 이 올림픽에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야 했던 조선 선수들은 모두 7명이었다. 안익태 선생은 이들을 찾아가 애국가 악보를 보여주며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나의 응원가\’라고 하며 함께 불렀다고 한다. 안익태 기념재단은 이것을 애국가의 첫연주로 기록하고 있다.
애국가를 작곡한 배경이나 그 뒤에 이것이 국가로 채택되어 사용되고 있는 과정을 보면, 안익태 선생은 애국가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안익태 선생은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울분과 희망을 드러내기 위해 애국가를 작곡했고, 그렇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 애국가가 국가로 채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애국가는 분명히 안인태 선생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선생은 이것을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로 작곡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애국가를 연주한 댓가로 안익태 선생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분명히 선생을 모욕하는 짓이다.
그런데 왜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애국가를 연주한 댓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축구 구단들을 고소했을까?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자신의 역할을 기능적으로 아주 잘 수행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기능적으로 그 역할을 잘 수행해서 안익태 선생을 크게 욕보이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심지어 안익태 기념재단조차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애국가에 대한 저작권 적용에 대한 질문에 재단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똑같이 \’상업성 측면에서 저작권료를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 프로축구경기에서의 애국가 연주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것이 과연 \’애국가의 상업적 사용\’인가? 그렇다면 이런 경기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애국가 연주를 포함한 국가 의례를 행하도록 한 것부터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참에 국가를 연주해야 하는 경우에 대해 사회적으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도 있다. 국가와 국기는 시민을 \’국민\’으로 만들고 \’동원\’하는 대표적인 국가주의적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국가에도 저작권을 적용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많은 사람들이 안익태 선생과 그 가족들에게 욕을 퍼붓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안익태 선생과 그 가족들에게 욕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 정녕 욕을 먹을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저작권뿐이다. 저작권은 어떤 저작물을 이용할 권리를 저자가 죽은 뒤 50년까지 인정한다. 안익태 선생은 1965년에 별세하셨으니, 애국가의 저작권은 2015년까지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적 논리일 뿐이다. 애국가가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과 안익태 선생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이 작곡했으되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해야 하는 공공재다. 애국가를 연주했다고 해서 저작권료를 받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안익태 선생을 \’두번 죽이는 짓\’이다. 저작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이번의 애국가 논란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저작권은 인터넷의 이용을 제약할 수도 있고, 애국자를 두번 죽일 수도 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빚어진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애국가의 저작권은 분명히 안익태 선생의 가족들에게 있다. 예전에는 지적재산권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지적재산권이 우리를 본격적으로 옥죄어오기 시작한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관련된 법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어야 옳을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애국가를 안익태 선생의 가족으로부터 공공재산으로 기증받도록 애써야 한다. 그것만이 안익태 선생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정부가 올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에서는 애국가를 공공재로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펼쳐야 할 것 같다. 여기에는 안익태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활동이나 사업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두가지 문제에도 시민사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나는 국가의 제정과 연주 자체와 관련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의 폐해와 관련된 문제이다. 애국가를 둘러싼 논란은 일시적인 사안이 아니다. 황당한 일로 여기고 화를 내며 지나치지 말고, 이 논란의 뿌리를 확실하게 부여잡고 뽑아내도록 하자.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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