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노동자-농민의 민주적 통제만이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한 해답이다. (2004.6.7)

노동자-농민의 민주적 통제만이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한 해답이다.
– 베네수엘라 유전자 조작 작물 재배 금지의 의미

김해민

지난 4월 21일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유전자 조작 작물(이하 GMO)에 대해 재배 금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우선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와의 진행 중인 협상을 즉각 중단한다고 선언하였다. 얼마 전 수도 카라카스에 열린 볼리비아 혁명 기념집회에서도 차베스 대통령은 GMO는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의 필요와 이익에 배치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고 6억 평 규모의 토지에 유전자 조작 콩을 경작하려는 몬산토 계획을 백지화 시켰다.

GMO 기술
농업에서 생명과학 기술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8,000년 동안 인간은 빵 맥주 포도주 등을 만들기 위해 교잡(hybridization)으로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를 조작해왔다. 단지 이 기술은 수년의 기간을 필요로 하고, 재배 혹은 사육할 면적을 필요로 할 뿐이다. 현대 유전자 조작 기술은 소수의 과학기술자에 의해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며 새로운 유전자를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다. 시간과 공간이 필요 없고, 원하는 세포를 작은 유리 배양기에서 20분 만에 수배로 배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기술은 일부 학자들로부터 "조악하고 부정확한 기술" 또는 "무작정 한번 해보는 식의 기술"로 평가되기도 한다. 1975년에 시작된 이 기술은 낭포성 섬유증 (cystic fibrosis)이나 근이영양증 (Muscular Dystrophy) 등 유전자 질병의 치료를 위한 과학기술자들의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미국 다국적 기업(몬산토, 노바티스, 듀퐁 등)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와 다국적 기업은 유전자 조작 기술로 제3세계의 기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저렴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부시와 그 측근들도 유전자 조작 기술이 세계 기아문제 해결을 위한 일환이라고 주장하며 "유전자 조작 작물을 반대"하는 것은 "아프리카 기아문제를 해결할 최선책"을 가로막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인터네셔날 헤럴드 트리뷴지, 2003년 5월 29일자)

미국은 왜 GMO를 심는가?
기술적으로 GMO는 제초제를 대량 살포 가능하기 때문에 잡초로 뒤덥힌 휴경농지를 손쉽게 농지로 전환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기존 작물은 제초제를 뿌릴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되지만 GMO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기계화가 더욱 용이하여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GMO는 일반적으로 종자 값은 비싸지만 제초제 값과 노동력이 절감된다고 평가 받고 있다.

미국에서 GMO재배가 확산된 원인은 GMO가 생산성이 높은 첨단기술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의 농업정책과 경영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고 WTO이행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농산물 가격 인하시 보상을 해주는 \’부족불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생산품목 면적 등을 농민자율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이 과정에 다국적 기업이 로비도 무시할 수 없다. 그 결과 곡물 재배 면적이 증가하였으며 농산물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해 졌다. 미국 농민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은 GMO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으로 중소 농민의 몰락하고 있으며,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은 가속화 되고 있다.

이렇듯 GMO 도입의 배후에는 미국 정부와 WTO 그리고 GMO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이 있다. 이들이 제 3세계 기아와 빈곤 때문에 GMO를 개발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 종자산업 세계 2위이자 농화학산업 세계 3위 그리고 GMO 특허 70%를 보유하고 있는 몬산토(Monsanto)의 다음 예는 GMO의 위상을 잘 설명해 준다.

몬산토는 제초제인 \’라운드업\’에만 저항성을 갖도록 유전자 조작된 \’라운드업 레디\’라는 콩을 특허화 해서, 이를 제초제와 한 세트로 팔고 있다. 몬산토는 유전자 조작콩을 판매할 때 특허로 특정 계약을 강제하는데, 몬산토의 유전자 조작 콩으로 다음해 씨앗을 마련해서도, 팔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서 몬산토는 이 계약에 따라 3년 동안 농민들이 재배하는 작물을 감시할 권리를 갖게 된다. 이로서 몬산토는 해마다 종자와 농약 둘 다를 판매하여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일반 농민은 재배한 식물에서 종자를 얻어 파종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 계약은 종자를 구할 자금이 없는 가난한 제 3세계 농민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이다. 또 제 3세계 국가는 식량산업이 다국적 기업과 미 제국주의의 통제아래 놓이게 하므로 식량주권을 위협받아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농업시장은 세계 경제의 65%를 차지하며 유전자 조작 식품의 시장규모는 2005년에는 200억 달러, 2020년에는 7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과 다국적기업은 이 시장을 노리고 있다. 미국은 농업 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WTO협상에서 농산물 무역 자유화와 지적재산권 보호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내 다국적기업의 로비도 대단한데 일부에서는 군수-산업 복합체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제는 바이오-제약-농기업 복합체로 바뀌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남미의 교훈
GMO도입과 관련해서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보다 명확하게 그 의미를 전해준다. 올해(2004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약 420억 평(경작지의 약 54%)에서 3천 4백5십만 톤의 유전자 조작 콩(전체 곡류의 50%)을 생산한다. 그리고 1인당 3톤으로 식량 생산량은 세계 최대이며 7천만 톤의 곡식과 5천 6백 마리의 소와 이와 비슷한 수의 양과 돼지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3천8백만의 인구 중에서 2천만의 사람들이 최저생계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6백만 명의 사람들이 가난에 의해 극단적 기아에 고통 받고 있으며, 매일 55명의 아이들, 35명의 성인과 15명의 노인들이 기아관련 원인으로 죽어가고 있다. GMO도입으로 식량 생산량은 증가했으나 아르헨티나에서는 기아와 가난문제는 해결될 실마리는 커녕 오히려 더욱 비참해 지고 있다. 브라질의 룰라 정부도 몬산토와 미국으로부터 GMO에 대한 금지를 철회하라고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작년(2003년) 브라질은 한시적으로 GMO를 허용하였다. 그러자 몬산토는 라운드 업 면역성 콩의 유전자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농민의 민주적 통제만이 해답이다.
GMO기술 개발을 영원히 중단하자라고 주장하면 매우 간단한 것 같다. 지금과 같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 주도된다면 이 주장은 타당하겠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 사회에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GMO기술에는 상당한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안정성면에서도 비단 GMO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식량산업에 의해 첨가된 각종 화학 생산물에도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 오히려 GMO 개발의 전면 중단은 과학기술을 부정하고 과거로의 회기를 주장하는 일부 생태주의자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학기술의 내용 성격 방향을 판단해야 하는 주체는 노동자-민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농민들은 \’가방 끈이 짧기 때문에\’ GMO와 같은 과학기술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문제를 전문가 그룹의 판단에 맡겨 버린다. 일반적으로 과학 기술은 생산에 적용되어 생산력을 발전시키지만, 그 \’현상\’은 과학 기술을 조정 통제하고 다시 과학기술 내용과 발전방향을 규제하는 \’본질\’로서의 사회경제적 관계로 규정된다. 즉 과학기술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 경제적 관계이며, 이 것들을 상호 연관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과학기술을 내용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노동자-농민은 그 과학 기술이 어떻게 결정되고 통제/배분되는지, 그리고 각 주체의 특성과 권력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 내용까지 더 잘 규명할 수 있다. 한국에서 부안을 보라. 핵 폐기장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대학에서 핵관련 전공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핵 폐기장 건설이 어떤 절차로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그 일을 맡고 있는 정부 관료들과 과학자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를 통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간단하게 따져 보자. 현재 GMO를 배포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이 이미 GMO 농산물을 사용해서 전 세계 농산물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으며, 또 제 3세계 소농들에게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종자를 구입하기 위해 IMF 대출을 강제한 자라면, 또 자신들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자원을 통제하기 원하는 제국주의 국가라면 이들의 GMO를 믿을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몬산토는 1920년대에 논란이 많은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을 도입하여 제조 판매 하였고, 1960년대에는 발암성 물질인 PCB를 전자 장비에 도입하였고, 베트남 전에서는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고엽제를 생산하였다. 1980년대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다이옥신과 기타 유해 화학물질에 자사 노동자들이 노출된 사실을 숨기기는 등 악명 높은 기업이다. 그들이 생산한 GMO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 즉 그 생산물을 직접 먹어야 하는 일반 노동자-농민들을 믿어야 한다. 만약 GMO의 개발을 모두 이윤 동기에 사로잡힌 정부와 자본이 통제한다면 믿을 수 없겠지만 그 식품을 직접 먹어야 하는 노동자-농민이 민주적으로 엄격하게 통제한다면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오직 거대 다국적 기업을 사회화해서 노동자 농민들의 통제와 경영하에 운영해야지만 가능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GMO 재배 금지의 의미
1970년대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은 농업을 농약, 화학비료, 농기계 등의 석유화학산업에 의존하게끔 재편하였고, 점점 더 다국적기업들의 통제 속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3세계 국가들에게 농지 황폐화와 흉작 그리고 기아만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은 생명공학과 GMO를 매개로 종자 농화학 제약 식품 곡물유통 동물약품 분야를 하나의 기업으로, 또는 제휴의 형식으로 수직 통합하여 독점을 더욱 강화하고 재편하는 과정에 있다.

이번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의 GMO금지 조치는 안전하지 않은 식량 생산을 금지했다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우리(좌파)에게는 가난한 농민들이 자신의 고유한 권리(와 지식)를 다국적 기업에 특허로 빼앗기는 것을 차단하고, 제 3세계 식량주권을 통재하려는 자본의 음모에 반대하며 특히 미 제국주의의 세계지배에 대항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게 와 닿는다. 특히 이번 조치는 작년 GMO관련 다국적 기업에 굴복한 브라질 룰라 정부와 비교해 볼 때,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의 면모를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GMO를 비롯한 농업정책과 과학기술이 어떤 절차를 통해, 누구에 의해 통제되는지가 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기관지 [노동자의 힘] 55호에 실린 글을 약간 수정한 글입니다 */ 첨부 파일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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