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의 개념과 보호법제 / 양희진

2005 전국정보운동포럼 자료집 "지적재산권의 재구성을 시작하자! 발제문

지식재산권의 개념과 보호법제

 

양 희 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이 강의는 정보운동포럼의 다른 워크샵을 위해 준비된 것이므로, 지적재산권 제도의 법률적 차원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지적재산권제도를 사회운동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몇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중 첫 번째 관문은 지적재산권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허권이나 저작권 등이 보호하려는 대상은 무엇이고 그 권리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해가 있다면 저작재산권이 우리 생활의 어떠한 영역과 관련되어 있는가를 보다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은 이러한 권리들이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지적인 산물에 대한 보호는 특허법이나 저작권법 등 소위 지적재산권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법체계상 지적재산권법에 의하지 않고도 지적인 노력의 대가를 법으로 보호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개인들 (법인을 포함) 간의 거래 관계를 규율하는 일반법인 민법에 의하더라도 지적산물에 대해 법률적 보호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지적재산권법이 특히 제정된 이유는 지적산물의 특성에 맞게 더 실효적이고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민법이 아니라 지적재산권법을 제정한다고 해도 보호 방식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3자에게 그 이용의 대가를 후불식으로 보상할 의무를 지우는 채권적 방식과 사전 허락 없이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물권적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지적재산권법은 대체로 후자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제도들은 국내법에 규정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으나, 국내법은 다시 국제조약 등에 의해 강제되어 국제적으로 통일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국내 법제도에 대한 이해는 다시 국제조약에 대한 이해와 맞물리게 된다.

이러한 제도를 대강 살펴본다면 현재 지적재산권 제도가 어떻게 변화해 할 것인지, 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I. 생활 속의 지적재산권

 

어제 나는 아침에 일어나 ‘ \"\" ’ ‘콘프레이크’와 남양유업의 ‘불가리스 요구르트’를 마시고, 현대 ‘소나타’ II를 타고 출근을 해서, 점심 때는 후식으로 ‘코카콜라’를 마시고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이천쌀’로 밥을 지어먹고 ‘다빈치코드’를 읽고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를 들으며 ‘하이트’ 한 캔을 마신 뒤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낸 ‘나’는 특허나 저작권에 대해 얼마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걸까. 상품의 가격에 지적재산권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비용을 정확하게 산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낸 하루에 얼마나 많은 지적재산권이 관계되어 있는지 따져 볼 수는 있을 것이다.

 

\"\" 는 미국 켈로그사가 97년 특허청에 등록한 상표로서, 국내에서 상표권으로 보호받고 있다. 캘로그사는 콘프레이크 제조 방법에 대해서도 특허청에 10여건 특허출원을 하였으나 아직 특허등록된 것은 아니다. 남양유업의 불가리스는 등록된 상표이며, 남양유업은 “위장내 헬리코박터 피로리 감염균의 감소 및 증식억제능이 있는 요구르트 조성물”에 대해 특허권을 갖고 있다. 현대 소나타는 상표등록되어 있고, 그 차의 타이어 휠이나 자동차 문짝 등은 의장등록이 되어 있으며, 그 안에 수많은 부품들은 특허등록되어 있을 것이다. 차 전체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의장등록이 가능하나, 소나타 II의 경우 의장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듯하다. 코카콜라는 콜라병의 형태나 그 제조 기법에 대해 말이 많은 상품인데, 그 콜라병의 디자인은 의장등록의 대상이 되고, 그 제조 기법은 본래 특허등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의장등록이 되었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기간이 만료되었을 것이므로 병에 대하여 의장권으로 보호받지는 못한다(저작권은 논외). 코카콜라의 제조 방법은 특허권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으나, 코카콜라회사는 이를 특허로 보호받기 위해 이를 공개하는 대신,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하여 이를 비밀로 유지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등록상표이다. 이천쌀은 계량된 품종으로서 종자산업법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천’은 지리적 표시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 만약 이천쌀이 유전자조작된 쌀인 경우 이는 특허권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다. 다빈치코드의 책 내용은 출원이나 등록을 받지 않았지만 존 그레이가 미국에서 그 글을 완성했을 때 존 그레이는 저작권으로 그의 작품을 보호받는다. 다빈치코드의 한국어판은 그의 저작권 중 2차저작물 작성권 (그 중에서도 번역할 권리)과 한국에서의 출판할 권리를 라이센싱계약을 통해 인정받아서 국내 출판사가 출판한 것이다. 아틀란티스 소녀는 그 작사가인 태훈과 작곡가 황성제가 저작권을 가지며, 보아는 실연자로서 그의 노래를 복제, 배포, 전송, 방송할 권리를, SM인터테인먼트는 음반제작자로서 음반의 복제, 배포, 전송할 권리 등 저작인접권을 갖는다. ‘하이트’는 역시 상표권으로, 그 캔은 실용신안권과 의장권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하이트 맥주병에는 온도감응잉크로 인쇄된 암반천연수 마크가 부착되어 있었다. “가장 맛있는 온도가 되면 암반천연수 마크가 나타나는 하이트, 눈으로 확인하세요”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이런 아이디어는 특별히 지적재산권법에 의하여 보호되지는 않으나 이러한 영업 아이디어는 타인에 의해 도용된 경우 민법의 일반원리에 의해 보호될 수는 있다. 다만 하이트의 경우에는 타사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 준 적이 있다.

 

\"\" \"\" \"\" \"\"

 

 

그렇다면 특허권과 저작권은 어떻게 다르고, 디자인은 저작권에 의하여 보호받는 것인지 의장권(디자인권)을 통해 보호받는 것인지, 식물품종은 특허의 보호대상인지, 종자산업법의 보호대상일까? 이렇게 각종 지적인 산물이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나가 볼 것이다.

 

 

II. 지적재산권의 내용

 

1. 소유권과의 차이

 

지적산물이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이디어나 정보와 같은 지적재산은 이른바 무체재산이기 때문에 토지나 금은보화 같은 물적 재산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토지나 건물에 대한 소유권은 그 토지나 건물을 배타적으로 점유하여 사용수익하고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쉽게 말하면 소유자 맘대로 그 ‘물건’을 팔거나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이디어나 정보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공원’과 같은 공공재에 더 가까운 속성을 가진다. 제3자가 사용한다고 해서 아이디어나 정보의 창작자 또는 보유자가 가진 지적재산이 양적으로 줄어든다거나 그 효용이 감소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정보를 이용할수록 사회전체의 후생과 이익은 더 커진다. 또한 금은보화와 같은 유체물은 추가적으로 하나 더 생산하는 데에 소요되는 한계비용이 상당히 되지만, 아이디어나 정보의 추가적 생산에 소요되는 한계비용은 거의 0에 가깝다. 복제나 모방이 매우 용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디어와 정보의 자유로운 복제나 모방을 특별한 법적 규제없이(또는 법적 보호없이) 놓아두면 어떻게 될까? 이 지점은 우리의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그러나 흔히들 사람들은, 많은 노력과 자본이 그 생산에 투입되어야 함에도 공공재와 마찬가지로 그 사용이나 복제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이상의 아이디어와 정보의 생산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시장실패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 근거하면 복제나 모방을 직간접적으로 금지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초창기에는 관련된 당사자간에 개인적인 합의의 형태도 있었던 듯하다. 17세기 영국의 출판업자들은 길드조합을 결성해서 무단출판금지 등에 관한 규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 누군가 그 규약을 위반하게 되면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민법상 기본 원리에 따라 계약 위반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은 사적 합의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하다. 나아가 그러한 사적 합의에 의해서는 사후적인 손해배상만이 가능하여 그 보호가 실효적이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이제 국가가 나서게 된다. 물론 국가가 나선다는 말은 국가가 의회를 통해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된 어떤 행위를 하려면 근대입헌국가에서는 법률의 근거를 두기를 헌법에서 강제하고 있다.

아이디어나 정보에 대한 복제나 모방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은 금은보화의 법적 보호와 같을 수 있을까? 금은보화와 같이 개인이 울타리를 처서 아이디어나 정보과 관련된 재산적 이익을 보호할 수는 없다. 민법이 소유권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 전제는 울타리의 가능성이다. 즉, 소유권의 대상이 되는 물건은 특정인이 점유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물건을 점유할 수 없다. 소유권은 앞서 말했듯이 어떤 물건에 대해 배타적 지배가 물리적 차원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배타적 지배권의 귀속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이다. 타인의 소유에 속한 (그가 그의 울타리 안에 둔) 물건을 무단으로 점유이전하거나 파괴하여 소유권을 침해하면 절도죄나 손괴죄로 되어 형법상 처벌되며 민법상으로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소유권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나 정보는 본래 울타리의 개념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이디어나 정보는 창작자나 발명자와 제3자가 동시에 동일한 아이디어나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리적 지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배타적인 사용이나 처분을 생각하기 어렵다. 일단 사용되어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 제3자는 모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3자의 모방이나 복제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이디어나 정보에 대한 모방이나 복제의 규제는 채권적 방식이나 물권적 방식으로 가능할 수 있다. 채권적 방식이란 사용대가를 후불로 지불하도록 하는 방법이니만큼 지적재산권법이 특별히 없는 상태에서 민법에 의해 부당이득이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보장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 경우에 지적재산권법을 특별히 둔다면 배상해야 할 손해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한다거나 보상을 청구할 절차를 간소화하여 보상청구를 용이하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저작권법에서는 실연자 및 음반제작자의 판매용음반의 방송에 대한 보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채권적 방식이다. 방송사업자가 판매용음반을 방송할 때는 실연자나 음반제작자에게 사전허락을 받지 않고 일단 방송하여도 그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며 다만 사후적으로 실연자나 음반제작자에게 보상을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적재산권법은 채권적 방식보다는 물권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소유권의 관념과 유사하게 ‘배타적으로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권리’로 규정하고 허락받지 않거나 허락의 범위를 넘은 제3자의 사용, 수익, 처분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되면 지적재산권자는 자기에게 속한 아이디어나 정보를 허락없이 ‘사용’하는 제3자에게 그 행위를 중단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허락없이 사용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형법적 처벌규정까지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가는 형사소추권을 발동하여 그 제3자를 처벌할 수도 있다. 지적재산권법은 대체로 형법적 규제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소유권과 아주 유사한 방식의 규제를 하고 있으나, 소유권에 의해 금지되는 ‘사용’은 특정의 구체적 물건에 한정되지만, 지적재산권에 의해 금지되는 ‘사용’이란 그 지적재산을 토대로 해서 물건을 생산, 배포하는 행위의 금지를 의미하게 되므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예컨대, ‘에탄올의 3단계 제조 방법’이라는 발명에 특허권이 등록되어 있다고 해 보자. 이 방법을 특허권자의 허락없이 ‘업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특허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에탄올을 생산하는 행위가 1차적으로 금지되며, 그러한 방법에 의하여 생산한 에탄올을 사용, 양도, 대여 또는 수입하는 행위도 업으로써 할 수는 없게 된다. ‘업으로’라는 의미는 일정한 사회생활상 지위에 기하여 계속적, 반복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히 1회적으로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에탄올을 특허된 방법으로 제조하여 이렇게 생산된 에탄올을 사용하는 행위는 특허법이 금지한 행위는 아니다. 또한 그 특허된 방법으로 무단 생산된 에탄올을 구입한 개인이 그 에탄올을 사용하는 행위는 영업적 방식이 아니면 규제되지 않는다. 특허권자가 생산하여 판매한 에탄올을 구입하면 에탄올을 소유권은 그 개인에게 귀속되므로 그 소유권에 기하여 에탄올을 마음대로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다른 방법에 의하여 생산된 에탄올에 대해서는 그 특허권이 미치지 않는다.

 

프로작이라는 유명한 우울증치료제가 있다. 일라이릴리라는 미국 제약회사가 우리나라에서도 특허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제3자는 일라이릴리의 허락없이는 프로작을 생산, 판매, 수입, 양도, 대여를 할 수 없다. 일라리릴리의 허락없이 제3자가 생산한 경우, 그 제품을 판매하거나 수입하거나 양도, 대여하는 행위는 그 행위가 업으로써 행하여지는 한 일라이릴리의 특허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일단 일라이릴리가 생산하여 판매한 다음에는 개개의 프로작은 이를 구입한 사람의 소유가 되고 그 프로작을 재판매하는 행위는 특허권 침해가 아니다. 프로작을 먹거나 폐기하는 행위도 소유권자의 처분행위에 불과하여 규제되지 않는다.

즉, 특허권을 침해하여 생산된 물건의 경우에는 그 물건의 소유권이 제3자에 귀속되더라도 그 제3자가 업으로써 판매하는 등의 처분행위는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이 경우에는 특허권에 의하여 제3자의 소유권이 제한당하게 되는 것이다.

 

저작권법에서는 사전허락없이 저작물을 복제, 배포, 전시, 공연, 방송, 전송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어떤 저작물을 토대로 번역이나 각색을 하여 2차 저작물을 작성하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따라서 ‘다빈치코드’라는 책을 구입한 경우에는 저자인 존그레이의 허락없이 그것을 읽거나 책을 폐기할 수도 있지만, ‘다빈치코드’ 내용을 복사 등의 방법으로 복제하거나 그 복제한 것을 배포하거나 전송할 수 없다. 그 작품을 기초하여 영화시나리오를 쓰거나 번역을 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이는 반드시 영업으로 하는 행위만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개인적인 사용의 경우에도 전송이나 복제, 배포 등이 금지될 수 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은 소유권과 달리 구체적인 물건 하나에 국한된 권리가 아니고 그 아이디어나 표현 그 자체의 사용행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것이 실린 매체 (책이나 발명을 이용한 제품)를 사용, 수익, 처분하는 행위까지도 규제할 수 있게 되어 제3자의 소유권도 제한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2. 권리의 한계

 

아이디어나 정보가 보호대상이 된다고 하여 어떠한 것이든지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특허권의 보호를 받으려면 그 발명이 새로운 것이고 종래 기술에 비하여 진보된 것이어야 하며, 특허발명의 내용은 일정기간 내에 일반 공중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따라서 특허권으로 보호받으려면 영업비밀로서는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려면 새로운 것일 필요는 없지만 창작성이 있는 표현이어야 한다. 또한 지적재산권은 소유권과 같이 영구무한의 권리가 아니라 일정한 보호기간이 종료되면 그 권리가 소멸한다. 특허권의 경우 출원일로부터 20년이 경과하면 특허권은 소멸한다.

 

3. 지적재산권의 종류

 

지적재산권은 발명, 고안, 의장, 상표, 창작물 등의 지적재산에 대한 권리인데, 연혁적으로 살펴보면, 발명, 고안, 의장, 상표 등에 대한 권리는 공업을 비롯한 산업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권리라는 의미에서 산업재산권이라고 부르고, 창작적 표현물은 저작자의 권리 또는 저작권으로서 보호되는 것이므로 소설이나 음악과 같이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기술집약적 산업의 발달, 생명공학의 발전, 컴퓨터, 디지털 산업의 발전과 지식, 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 산업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자본간 경쟁의 결과 지적재산권의 보호영역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현재의 지적재산권법은 인간의 지적 창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편집물, 데이터베이스, 컴퓨터프로그램, 생명공학, 전기․기계공학, 화학, 디자인, 생명체의 신품종, 반도체집적회로, 상품의 심볼, 디지털콘텐츠, 영업비밀 등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발휘되는 모든 분야를 그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

 

<> 산업재산권

- 특허(Patent) : 물건발명(물질 포함), 방법발명

- 실용신안(Utility Model) : 특허보다는 간단한 물건발명

- 디자인(Design) : 산업 디자인

- 상표(Trademark) : 상품이나 서비스의 표장

 

<> 저작권(Copyright)

- 일반저작권(general copyright)

- 컴퓨터프로그램저작권(computer program copyright)

 

<> 기타 지적재산권

- 반도체회로배치설계권(semiconductor circuit layout design right)

- 영업비밀(trade secret)

- 지리적 표시

- 디지털콘테츠

- 유전자자원

- 식물신품종

 

우리나라의 경우 지적재산권법은 크게 산업재산권과 저작권법으로 대별될 수 있다. 산업재산권법에는 현행 특허법, 실용신안법, 의장법(디자인보호법으로 개칭), 상표법 등이 이에 속하고, 저작권법의 경우 저작권법 외에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제도는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이라는 대강의 이분법적 체계에 따라서, 산업재산권은 특허청에서 관장하여 출원과 심사절차를 요구하고 등록이 됨으로써 비로소 권리가 발생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비하여 저작권법은 문화관광부에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정보통신부에서 관장하고 출원이나 심사 및 등록절차 없이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방식주의).

기타 영업비밀이나 지리적 표시는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하여 그 침해행위를 규제하며, 온라인디지털콘텐츠에 대하여는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이 있고, 식물신품종에 대하여는 종자산업법이 있다. 종자산업법은 농림부에서 관장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특허법은 특허출원된 특정의 발명이 신규성과 진보성 및 산업상 이용가능성이라고 하는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심사하여 등록삼으로써 특허권이 발생하도록 함으로써 출원, 심사, 등록을 통하여 기술적 아이디어 자체를 보하하는 법 제도이다. 이와 가장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저작권법은 창작적인 표현이 완성됨과 동시에 아무런 출원, 심사, 등록의 절차를 거침이 없이 즉시 저작권이 발생하도록 하지만 그 보호범위는 표현에만 한정되고 그 표현의 대상이 되는 아이디어나 사실 또는 절차 등에까지는 미치지 않는 제도이다. 한편 종자산업법은 유성번식에 의한 새로운 종자의 발명을 보호하면서 소위 농부특권을 허용해 주기 위한 특별법으로 제정된 것으로 특허법에 유사한 법제도에 해당된다. 실용신안법은 특허발명보다는 진보성이 낮다고 보여지는 소위 작은 발명에 대한 소유모 특허권을 부여해 주는 제도로서 특허법과 유사한 보호방식을 채택한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컴퓨터프로그램이라고 하는 산업상 이용되는 특징을 가진 저작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저작권법과 유사한 보호를 부여하는 법제도이다.

 

의장법(디자인보호법)은 그 보호대상이 심미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미술저작물과 유사하지만 그 보호방식에 있어서는 직물의장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특허법과 마찬가지로 출원, 심사, 등록을 요구하고 있고, 반도체집적회로배치설계에관한법률은 그 보호대상은 산업상 이용되는 기능적 디자인이지만 출원이나 심사절차를 규정하지 않고 창작성 있는 배치설계를 등록함으로써 권리가 발생한다. 의장법과 저작권법의 중간적 보호형태이다.

 

상표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은 상품을 표시하는 표장의 창작이라고 하는 지적산물 자체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상품의 출처나 영업의 주체의 혼동을 방지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고 소비자를 보호해 주는 기능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과 지리적 표시에 대해 보호규정을 두어 부정한 방법으로 영업비밀을 지득하여 사용하는 행위나 지리적 표시를 허위로 붙이는 행위를 금지한다.

 

 

III. 지적재산권 규범의 세계화 과정

 

지적재산권 규범의 세계화 과정은 3단계로 거칠게 구분할 수 있다. 제1단계는 파리협약이나 베른협약 등 국제조약이 성립한 후 1백년 정도의 기간이다. 제2단계는 다자간 조약인 트립스협정(TRIPs: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이 성립한 1995년 전후의 기간이며, 제3 단계는 트립스 이후 지역 또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하여 트립스협정 이상으로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단계이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제2단계부터이다. 제2단계부터는 지적재산권 질서가 무역규범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제1단계와는 질적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또한 제3단계는 미국 자본의 패권 확장이라는 점에서 제2단계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고 협상테이블만을 달리한다.

 

1. 국제조약의 탄생과 국제기구의 출범: 제1 단계 세계화 과정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제적인 지적재산권제도의 기원은 1883년 공업소유권보호에관한파리협약과 1886년 저작권보호에 관한 베른협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협약이 18세기 이후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여 지적재산권에서 국제적 협력시대를 열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유럽대륙에서의 민주주의 발전과 산업발전의 결과 국제적 교류가 증대하고 이에 따라 표절과 모방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당시 저작권법이나 특허법이 각 국별로 제정되어 있었지만 효력범위가 자국민이나 자국거주자에게만 미치고 외국인 또는 적어도 타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또한 값싼 해적판(?)들이 역수입되면서 지적재산권에 관한 조약체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유럽에서는 파리협약이나 베른협약의 협상이 진행되는 기간에 특허에 대한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이 논쟁은 특히 1850년과 1857년 사이에 최고조에 달했는데, 이 기간 동안 반특허운동은 단지 제도의 개선을 넘어서 폐지 자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특허는 당시 독점적 특권으로 ‘올바르게’ 이해되었다. 그러나, 특허옹호운동의 확산과 유럽에서 자유거래움직임의 약화, 1870년대 초반의 심각한 경기침체, 미국의 자국민 보호압력, 독일과 오스트리아 특허변호사들의 로비와 같은 여러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특허반대운동은 사라지게 된다. 이로 인해 파리협약의 협상은 탄력을 받고 실제로 체택되기에 이른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 (WIPO)가 설립된 것은 그 후 1백여년쯤 후이다. 베른협약과 파리협약을 관장하던 사무국이 1893년에 통합되어 BIRPI (Bureaux Internationaux reunis pour la protection de la propriete intellectuelle)가 출범하고 다시 다자간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70년 제네바에 WIPO가 설립되었다. 이후 WIPO는 1974년 UN의 전문기관이 되었다.

 

2. WIPO 체계에서 GATT체제로의 변화: 제2단계 세계화 과정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컴퓨터, 전자, 화학, 제약 및 과학적 설비 등 과학기술 집약적인 산업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구축해 갔다. 미국 기업들은 그들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새로운 시장을 찾았다. 해외에 생산공장을 세우고 특히 유럽으로 확장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른바 한국 등 아시아타이거가 고성장하면서 미국 기업들 듀폰(DuPont), 다우(Dow), 몬산토(Monsanto), 유니온카바이드(Union Carbide)가 주로 장악하고 있던 화학시장이 흔들리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제약업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카피약을 생산하는 개도국 기업들과의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컨대,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Pfizer)의 경우 2차세계 대전 이후 미국내 페니실린 시장에서 심각한 경쟁에 직면했다. 2차 대전 중 수요량을 맞추기 위해 다른 기업에게 기술을 이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화이자는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시장개척에 들어갔다. 50년대에 많은 국가들은 제약생산 설비가 없음은 물론 페니실린의 제조 기술을 모방할 능력도 없었다. 57년까지 화이자는 6억불의 해외매출액을 달성했다. 그런데 물질특허를 인정하지 않았던 인도가 70년대 들어 카피약을 생산․수출하기 시작하고 남반구 국가들이 필수의약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강제실시권을 활용하면서 화이자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개도국들의 기술적 성장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이 독점했던 제약시장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1980년대초 미국에서 달러의 심각한 평가절상 등으로 개도국이 생산한 제품의 수입이 급증한 것도 미국 기업들을 자극한 요인이었다. 이 시기에 맞춰 선진국에서 수출주도형 정책을 추진한 개도국쪽으로 기술유입도 증가했는데, 한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이 값싸고 믿을만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명성이 높아지면서, J.C. Penny, K-mart, Macy\’s, Bloomingdale\’s와 같은 미국의 거대유통업체들로부터 대량으로 주문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유지를 위하여 기술지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미국으로부터 한국으로 기술이전이 더욱 활발해졌다. 이 당시의 기술유입은 기술이전계약 등의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외국의 공장 또는 상품박람회 견학․복제․모방․역분석 등의 간접적인 방법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선진국 정부와 자본이 기술적 우위와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WIPO에서 관장하는 조약들은 조약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또한 WIPO 회원국이라도 해도 WIPO가 관장하는 모든 조약에 가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각 조약별로 가입국의 수가 많지 않았다. 파리조약이나 베른협약은 그 변경에 있어서 모든 회원의 동의를 원칙으로 하므로 보호수준을 높이기 위한 조약의 개정도 어려운 문제였다. 당시 WIPO 회원국의 2/3가 제3세계 국가였다. 선진국의 제안들이 개도국의 반발에 밀려 좌절되기 일수이었다. 80년 2월에 파리협약의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은 보호수준을 높이고 싶었지만, 되려 제3세계 국가들이 기술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밀려 기존의 파리협약의 보호수준을 방어해야 할 판이었다. 미국 정부나 업계는 WIPO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따라서 1980년대 미국 정부와 업계의 전략은 지적재산권 규율을 WIPO에서 다른 포럼으로의 이동, 즉 무역제재를 사용할 수 있는 가트(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 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체제로 전환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미국의 입장에서 가트체제로의 변화는 농업이나 섬유 등 다른 무역분야에서 양보하는 대신 지적재산권 보호수준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미국의 12개 다국적 기업들이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UR협상을 주도했던 Quad그룹 (미국, EC, 일본, 캐나다를 포함) 중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처음에는 무역과 지적재산권의 결합을 지지하지 않았었다. 이에 화이자 등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EU와 일본의 업계 대표들을 설득하여, 이들이 그들 정부에 UR협상 의제로 지적재산권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게 하였다. 이를 위해 1986년 9월 푼타델에스데 각료회의 6개월을 앞두고 화이자는 듀폰 등 미국 13개 다국적 기업과 지적재산권위원회 (Intellectual Property Committee: IPC)를 결성하였다. IPC의 미국 기업들은 유럽기업과 일본기업을 차례로 설득하여, 1988년 지적재산권 협정 초안을 제출하였고, 이에 대해 이들 정부간 입장이 일치하게 되면서 86년 9월 20일 지적재산권 협상 의제가 포함되었다.

 

 

3. 트립스에서 자유무역협정으로의 협상테이블 이동

 

1) 트립스협정, 지적재산권 제도의 세계적 통일

 

트립스협정은 ‘WTO설립을위한마라케쉬협정’의 여러 부속서 중 하나이다. 따라서 WTO 회원국은 모두 트립스협정에 구속되어, 동 협정에 일치하도록 자국법을 개정할 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선진국은 트립스협정의 발효와 동시에, 개도국의 경우에는 2000년부터, 최빈국의 경우에는 2005년부터 전면 이행의무를 부담한다.

트립스협정은 기존의 지적재산권관련조약에서 나온 개념과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두 가지 점에서 기존 조약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트립스협정이 최소한의 보호기준을 규정한다는 것과, 조약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집행규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소보호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모든 회원국이 그 수준 이상으로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과, 지적재산권자의 권리 보호수준을 트립스 이후에는 더 끌어올리고 권리제한과 권리에 대한 예외의 범위는 차츰 축소시켜 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행규정을 둠으로써 회원국의 의무 이행을 강제하고 회원국이 의무에 위반한 경우 무역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또한 내국민대우 및 최혜국대우의 원칙(협정 제3조, 제4조)을 채택함으로써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동등한 수준으로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며, 한 회원국 국민에게 제공하는 특권이나 면제는 다른 회원국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강제되었다.

트립스협정은 저적재산권의 보호대상을 기존 조약보다 훨씬 확대했다. 트립스협정은 이전의 지적재산권조약 즉, 공업소유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1967), 어문및예술저작물 보호를 위한 베른협정, 실연자․음반제작자․방송사업자의 보호에 관한 로마협정, 집적회로에 대한 지적재산권협정 (IPIC 협약)을 포함하며, 여기에 기존의 지적재산권 조약이 다루지 않던 지리적표시, 영업비밀, 반경쟁관행의 통제 등 분야까지 보호범위를 확대하였다. 보호기간의 연장이나 권리제한의 요건을 강화하는 등 보호수준도 훨씬 강화하였다.

 

2) 자유무역협정으로의 이동

 

많은 개도국들이 UR협상에서 기재된 것과 달리 트립스협정은 지적재산권 세계화를 위한 미국 등의 다국적 기업들 노력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트립스협정이 체결된 후 이에 따른 특허권 보호를 통해 미국에 유입되는 순수 로열티가 연간 19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트립스협정이 지적재산권 보호에 있어서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화학, 의약품 관련 다국적 기업들은 트립스협정의 채택 이후 다각적으로 지적재산권 보호수준을 제고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1999년 3차 시애틀각료회의를 앞두고, 선진국은 기설정의제 (built-in agenda)인 지리적 표시 문제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디지털환경하에서의 지적재산권 보호, 비위반제소 등 새로운 지적재산권 의제들을 WTO 뉴라운드 협상범위에 포함시켜려고 했었다.

 

그러나, 99년 시애틀 각료회의는 결렬되었다. 대규모 반지구화 시위로 인하여 WTO 각료회의는 개막식도 치르지 못한 채 회기를 하루 더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제3세계 국가들은 "추가적인 자유화협상에 앞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의 이행문제 및 기존 협정 자체의 결함에 대한 검토,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트립스이사회도 미국의 의도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트립스협정 채택 후 트립스이사회 내에서 미국은 NGO의 지원을 받는 다른 회원국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예컨대, 아프리카 국가들은 2001년 6월 트립스이사회에서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에 있어서 지적재산권의 역할을 검토하자고 제안하였고,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는 ‘트립스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이 채택되었다. 1999년 개시된 트립스협정 제27(3)(b)조의 검토도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2001년 도하개발아젠다(DDA)는 트립스협정과 관련하여 지리적 표시만을 주된 협상의제로서 포함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WTO의 다자적 포럼에서 FTA의 양자적 포럼으로 협상 테이블을 옮겨가고 있다.

 

 

4. 자유무역협정과 지적재산권 관련 쟁점

 

미국이 주도하는 FTA에서 나타나는 지적재산권 쟁점들은 WTO 뉴라운드의 의제로 미국 등 선진국이 포함시키려고 했던 사안들이 많다.

 

1) 생명공학분야의 특허

 

현재 트립스협정 제27(3)조는 각 회원국이 식물과 동물, 치료나 진단 방법을 특허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식물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며, 치료나 진단방법에 관하여는 명백한 법적 근거없이 실무상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특허를 부여하지 않는다. 미국은 불특허 대상을 축소하려고 한다. 미국-싱가포르 FTA에서는 불특허대상을 축소하여, 동식물을 특허대상으로 포함시켰다.

트립스협정 제27조(3)(b)은 식물변종에 대해 단순히 효과적이고 독자적인(sui generis) 보호 규정만을 두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수단이나 제도에 관한 정의가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은 뉴라운스의 의제로서 트립스협정내로 식물신품종보호에 관한 국제동맹인 UPOV (\’91)을 편입시키자고 제안한 바 있었다. 우리나라는 2001년 UPOV에 가입하였으나, 현재는 종자산업법 및 그 시행규칙을 통해 27개 품종만을 보호하며, 가입 후 10년 후부터는 모든 식물품종을 보호해야 한다. 현재 일본과의 FTA협상이 진행 중인데,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UPOV 조기 전면이행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2) 미공개정보의 보호

 

다국적 제약업계는 미공개 임상시험 정보의 보호에 관한 트립스협정 제39조(3)의 이행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의약품의 시판허가를 위해 제출되는 임상시험 결과를 타인 즉, 카피약을 생산하는 개도국의 제네릭제약사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질특허 부여가 2005년부터 준수되는 국가에서 제네릭회사의 의약품 허가를 연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는 결국 시판허가시 비용상승으로 이어져 약값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87년 이후 물질특허를 인정하고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전자상거래관련 지적재산권 문제

 

WTO에서는 전자상거래와 관련해서는 제2차 WTO 각료회의 결정에 따라 일반이사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99년 시애틀 각료회의가 결렬되고 2001년 카타르도하에서도 전자상거래의 중요성만 재확인하였고, 도하개발아젠다에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지리적표시만 포함되었을 뿐이다.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서는 ① 인터넷상 저작권의 보호 및 집행 ② 인터넷상 상표권의 보호 및 집행 ③ 신기술 및 기술에의 접근 문제가 핵심이다. ①과 관련하여 WIPO에서 \’96. 12월 외교회의에서 채택된 WIPO 저작권 조약(WCT : WIPO Copyright Treaty)과 WIPO 실연․음반조약(WPPT : WIPO Performances, Phonograms Treaty)의 조기이행 문제, ②와 관련하여 인터넷 도메인네임과 상표권, 지리적 표시, 국제정부간 기구명과의 충돌문제 등이 쟁점이다. ③과 관련하여 디지털기술에 따른 새로운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의 규범설정 문제, 재판관할권 및 준거법의 문제, 인터넷상에서의 영업방법(business method)과 같은 인터넷과 관련된 기본 S/W 특허문제가 거론된다.

현재 유럽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저작권만 아니라 특허에 의하여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상 영업방법 특허는 허용하지만 소프트웨어 특허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발명’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4) WIPO 저작권조약(WCT) 및 WIPO실연․음반조약(WPPT)의 조기 이행

 

선진국들은 \’96년 12월 WIPO 외교회의에서 채택된 바 있는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기존의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관련 조약을 수정한 WIPO 저작권 조약과 실연․음반조약을 트립스협정 내로 편입하자는 제안을 트립스이사회 내에서 제기한 바 있으나, 개도국은 아직 인터넷 등의 기반 기술이 확산되지도 않았으며, 컴퓨터, 네트워크 등 인터넷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는 상황하에서 이러한 조약을 조기 이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표명하였었다.

두 조약에서는 트립스협정이 고려하지 못했던 인터넷 환경에서의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강화를 다루고 있어서, 지식에 대한 정당한 접근의 권리를 제약한다는 지적이 많다. 두 조약에서는 특히 문제되는 사항은 공중전달권 (Right of Communication to the public), 기술적 보호조치, 권리관리정보, 일시적 복제 문제, 배포권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 WCT에 가입했고, WPPT에는 올해 가입예정이다. 가입에 앞서 2003년과 2004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두 조약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저작권과 인접한 권리의 보호수준을 끌어올렸으므로 두 조약의 조기 이행으로 강요되더라도 직접적인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은 한국의 저작권법이 일시적 복제의 보호, 기술적 보호조치,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 문제 등에 있어서 미흡하다고 보고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5) 데이터베이스의 보호

 

현재 트립스협정 제10.2조에 의하면 창작성이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보호되지만 데이터 자체는 보호대상이 아니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만을 보호대상으로 하며, 저작물은 본질적으로 창작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EU와 우리나라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도 보호하고 있다.

 

6) 보호기간의 문제

 

저작권 보호기간은 베른협약과 트립스협정에서는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우리 현행 저작권법도 같다. 그러나 미국은 소위 일명 미키마우스법을 통해 사후 70년으로 연장하였으며, 주요 유럽국가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 미국-호주 FTA, 전미 FTA인 FTAA안에서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70년으로 규정한다. 상표권의 경우 트립스협정에서는 7년의 보호기간을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10년으로 하고 있다. 저작권의 보호기간 연장은 지식과 정보의 공적 영역 (public domain)이 축소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7) 권리소진과 대여권의 문제

 

저작권에 의해 금지되는 것은 구입한 책이나 비디어테이프 자체의 대여나 판매 등이 아니라 책이나 비디오테이프의 복제나 전송, 공연, 방송 등이다. 따라서 한번 구입한 책 등은 다시 팔거나 대여할 수 있다. 특허품도 권리자가 정당하게 처분한 경우에는 구매자가 이를 어떤 식으로 처분하는 즉, 수출입하더라도 특허권 침해로 되지 않는다. 이를 소위 권리소진이라고 한다. 헌책방이나 도서대여점이 현행법상 합법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음반의 경우에는 저작권법에서 대여권이 가수 등 실연자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권리소진의 예외로서, 음반대여점은 실연자의 허락이 없다면 불법이 된다. 권리소진에 관하여 트립스협정은 복제권을 침해하는 정도의 영상저작물 대여 및 프로그램 대여의 경우에 한정하여 예외를 인정하여 대여권을 인정하고 있다(제11조). 일본은 2005년부터 모든 저작물에 대해 대여권을 인정하였다. 이는 일본과의 FTA에서 문제될 여지가 있다. 미국-싱가포르 FTA에서는 특허권자에게 그와 실시권자와의 계약관계를 교란시키는 제3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 부여하는 규정을 두었는데 (1607.2), 이는 특허품의 병행수입을 금지할 수 있는 권리를 특허권자에게 부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8) 권리 침해에 대한 민형사 처벌의 강화

 

미국과 일본이 우리 정부에게 요구하는 사항이다. 특히 대학에서의 도서 불법복제, 불법복제 DVD나 위조 상표품 거래, 의약품 특허 침해 등에 대하여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친고죄 조항을 폐지하여 비친고죄화하려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는 비친고죄로 하면 권리자가 권리보호 의사가 없는 경우까지 국가가 수사는 물론 공소를 제기할 수도 있어 사적 이익을 보장하는 지적재산권 제도의 본질상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9) 국경조치

 

위조상품의 세관통과를 막기위한 조치로서 트립스협정은 상표권 또는 저작권 침해상품의 수입이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할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 권리자가 통관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를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다만 특허권 등 그 외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동 절차를 둘 것인가는 각 회원국의 재량에 맡겨놓고 있다(트립스협정 제51조). 저작권이나 상표권 침해는 비교적 쉽게 판별가능하지만, 다른 지적재산권 침해의 경우 침해여부를 판별하기 곤란하여 각국 사정에 맡긴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허권 침해 상품의 통관보류에 관한 규정이 없으나, 일본법은 특허권, 의장권에 대한 통관보류 조항을 두고 있다. 현재 FTA협상과정에서 일본측이 한국 정부에 특허권 위반에 대해 통관보류규정을 둘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저작권 침해의 경우 통관당국에서 직권으로 보류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된 바가 있다.

 

10) 지적재산권 분야에서의 비위반제소의 적용 문제

 

비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s)란 GATT 분쟁해결절차상 GATT 규범을 명백히 위반한 체약국의 조치에 제기하는 위반제소와는 달리 어떤 체약국의 무역관련 조치나 상황이 GATT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이로써 다른 체약국의 이익을 침해하였을 경우에 제기하는 소를 의미한다.

트립스협정에 대한 비위반상황제소의 문제는 현재 답보상태에 있다. 미국은 트립스협정에 위반되지는 않지만 이를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뉴라운드의 의제로 포함시키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캐나다, 홍콩, 쿠바, 헝가리 등 대다수 회원국은 비위반제소가 GATT체제하의 비관세장벽에 의한 상호적인 관세양허를 무효화하는 조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최소보호기준에 기초하고 있는 트립스협정의 성격과는 맞지않으며, 비위반제소를 지적재산권에 적용할 경우 불확실성을 제고시킬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비위반제소는 불분명한 분쟁해결방식으로서 자칫 지적재산권에 관한 분쟁을 다발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 경우 비위반제소에 응소하게 될 개도국은 열악한 전문성과 대응능력 부재로 큰 부담과 경제적 손실을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미국-칠레 FTA(2003), 중앙아메리카 FTA (CAFTA), 미국-호주 FTA는 지재권 부분에 비위반상황제소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WTO DSU 26(1)에 규정된 비위반제소는 그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비위반제소하는 회원국이 이유를 밝혀야 하고, WTO 규범에 일치하지만 관련협정의 이익을 무효 또는 침해하는 것으로 판정된 조치가 철회될 필요는 없으나, 위 FTA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

 

결론적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FTA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WTO 가입시와 같은 급격한 법제도 상의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WTO에 가입하면서 한국의 지적재산권 법제는 트립스협정을 수용한 골격을 갖추고 트립스 이후의 이슈들도 권리 범위나 효력에 관하여는 계속된 법제 개정을 통해 이미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FTA 상대국이 조약의 보호수준 이상으로 권리범위를 확장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및 국경조치나 비위반제소 등과 민형사처벌 강화 등 집행규정과 관련하여 문제될 여지가 크다.

한편 법제도 상으로는 이미 수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법이 집행되는가에 따라 실제 체감적으로 달라지는 영향이 점차 커질 가능성도 높다.

 

첨부 파일 http://www.ipleft.or.kr/bbs/data/ipleft_5/14/지식재산권의개념과보호법제.pdf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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