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주소자원정책을 기대하며 / 남희섭

인터넷 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주소자원정책을 기대하며

남 희 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인터넷주소자원의 안정적인 관리체계를 정립한다는 목적으로 2004년에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정보통신부가 2002년부터 입법을 추진해 오던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과 그 동안 인터넷주소자원을 운영해 온 기구(한국인터넷정보센터 KRNIC)에서 반대와 우려를 표명했고, 정부 부처 내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입법을 반대한 이유는 민간자율 중심으로 운영되어 오던 주소자원 관리를 정부 주도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고, 정부부처 중 산업자원부에서도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업무는 정부의 업무가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업무이며 인터넷주소 관리체계의 모든 부문을 정보통신부가 관장하겠다는 것은 민간의 역할을 중시하는 국제흐름과 인터넷주소 관리체계의 특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반대하였다.  입법 추진 과정에서 이러한 반대의견들이 일부 수용되기도 하였지만, 법이 제정된 지금도 법 시행 주무부처에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법 제3조에서 국가의 책무로 “인터넷주소자원 관련정책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수립시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선언적 규정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인터넷주소자원과 관련된 기본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투명성과 민주성을 담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행정행위의 절차적 투명성과 민주성은 누구나 얘기하는 교과서적 원칙이지만, 이 법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터넷주소자원, 더 넓게는 인터넷의 특성을 생각하면 인터넷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폭넓게 수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TCP/IP를 만든 빈튼 써프(Vinton G. Cerf)가 얘기한 것처럼, 인터넷은 계층 구조로 되어 있고 서로 다른 그룹들이 각각의 계층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네트워크의 서로 다른 분야의 작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  서로 다른 계층 간의 소통은 약속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 약속은 바로 기술표준 즉, 프로토콜이다. 전통적으로 프로토콜을 정하는 방식은 관심이 있는 자는 누구에게나 참여를 보장하고 참여자들의 총의(consensus)에 기반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어떠한 중앙집권적 통제나 권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네트워크 워킹 그룹(NWG)에서 시작된 이러한 전통은 “의견을 바랍니다”는 뜻의 RFC (Request for Comments) 문서로 축적되어 유일한 권위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러한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며 협동적인 문화를 반영한 RFC-KR을 운영해 왔다.  인터넷주소자원의 관리 권한을 자임해 온 정보통신부가 법에 의한 권위에만 기대지 않고, RFC의 전통을 존중하고 절차적 투명성과 민주성에 기반하여 정책 결정을 할 때에야 비로소 기존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주소자원에 대한 정책은 기본적으로 기술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한 번 정해진 기술 방식이나 프로토콜은 그 후의 구조를 결정짓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거나 실패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여러 공동체의 총의에 기반한 정책결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는 그 동안 인터넷주소자원과 지적재산권 사이의 분쟁에 관심을 둔 터라, 지적재산권 분쟁을 중심으로 한 바람직한 주소자원 정책 방향을 얘기하고자 한다.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은 인터넷주소자원의 안정적인 관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3가지 큰 틀을 가지고 있는데, (1) 정보통신부에 인터넷주소정책심의위원회를 두고 여기서 기본 계획 수립과 심의를 하도록 하고, (2) 정부시책의 추진 기관으로 한국인터넷진흥원을 두며, (3) 인터넷주소자원의 분쟁을 해결할 규정과 분쟁조정위원회를 마련한 것이 그것이다.

인터넷주소자원의 분쟁과 관련하여 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도메인 이름 등의 등록을 방해하거나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도메인 이름 등을 등록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구제 수단으로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등록말소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분쟁해결을 위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법 제16~24조에 규정되어 있는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gTLD 도메인 이름에 적용되는 UDRP(Uniform Domain Name Dispute Resolution)나 .kr 도메인 이름에 대해 그 동안 적용해 왔던 도메인분쟁조정규정과 비교할 때,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분쟁조정 규정이나 절차는 도메인 이름의 말소나 이전 이외의 다양한 방식의 분쟁조정이 가능하도록 하고, 상표권 등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분쟁만으로 조정의 대상을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분쟁조정위원회가 합의를 먼저 권고하도록 하였다는 점 등은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다만,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 명확하지 아니하여 예컨대, 성명권이나 지리적 표시, 등록되지 않은 미주지(未周知) 상표를 근거로 한 분쟁을 제기할 수도 있어서 이에 대한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고, 다른 법률 예컨대, 상표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과 상충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터넷주소자원의 분쟁은 주로 상표권자과 도메인 이름 등록인 사이의 분쟁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어왔는데, 도메인 이름과 상표권 등 사이에 분쟁이 생기는 이유를 도메인 이름의 특성으로 살펴본다면, 2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도메인 이름은 전지구적이고 유일하여야 한다. 즉, 기술적인 이유로 하나의 문자열은 하나의 사이트로 링크되어야 한다. 둘째, 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직관에 따라 도메인 이름을 짐작하기 때문에,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에게 도메인 이름이 재산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즉, 도메인 이름이 그 사용형태에 따라서는 상표와 같은 식별표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이 주로 분쟁의 발생 측면에서 도메인 이름의 특성을 얘기한 것이라면, 정반대로 분쟁의 해소 관점에서는, 첫째 도메인 이름도 상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임의로 먼저 선택하였기 때문에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점과, 둘째 혼동이 생기지 않는 영역(예컨대, 지정상품이 유사하지 않은 영역이나, 서로 다른 국가)에서 동일한 또는 유사한 상표가 공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도메인 공간(예컨대, co.kr과 or.kr)에서 동일한 문자를 도메인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2가지 점에서 상표와 도메인 이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상표와 도메인 이름 사이의 충돌 문제를 상표권자를 축으로 하는 지적재산권자와 가상공간의 무법자들 사이의 분쟁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인터넷 주소자원의 관리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라 할 것이다.  좀 오래된 데이터이기는 하지만, .kr 도메인 이름 중 상표권자 등에 의해 제기된 법적 분쟁은 도메인 이름처분금지가처분 사건까지 포함해서 2001년 10월 당시 모두 25개였고 이 가운데 co.kr이 24건, ne.kr이 1건이었다. 2001년 9월 .kr 도메인 수 446,043개에서 법적 분쟁이 있었던 도메인 이름은 0.0056%에 불과하고 co.kr만 고려하더라도 0.0061%에 지나지 않는 매우 적은 수의 도메인 이름이 분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메인 이름 분쟁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인터넷주소 자원에서 상표권자의 이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식별자의 기능을 하는 단어나 이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정책의 영역으로 논의의 중심을 옮겨서 문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업상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에 반하는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권리인 상표권이 가상공간에서 단어나 이름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러한 점은 도메인 이름 분쟁 해결 방식이 지적재산권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동체의 이익(예컨대, 표현의 자유, 주소자원의 확장성, 공평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로부터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법에서는 인터넷주소자원 분쟁을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규정은 마련하고 있으나, 앞에서 본 것처럼 도메인분쟁 해결의 필요성은 상표권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측면보다, 인터넷 주소자원을 좀 더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서비스하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에, 사후적 해결 못지 않게 분쟁을 미리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도메인 분쟁을 예방하는 방법은 분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문자를 도메인으로 등록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방법보다는 도메인 이름과 상표 사이의 긴장 관계를 완화하는 것이 주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기술적 측면에서 gTLD를 확장하는 것이 인터넷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포스텔 Jon Postel은 생전에 150개의 새로운 gTLD를 제안했다), ICANN의 new gTLD 논쟁에서 가능하면 새로운 gTLD의 수를 줄이려는 상업적 이해 그룹의 주장은 희소화를 통해 자신들의 상표 가치를 높이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주장이었다.  상표와 도메인 이름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자가 서로 다른 도메인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조치와 정책적인 고려가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첨부 파일http://www.ipleft.or.kr/bbs/data/ipleft_5/6/인터넷_공동체의_다양한_의견을_반영하는_주소자원정책을_기대하며_남희섭.pdf과거 URL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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