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정보공유동향<나누셈> 2015.1.8

주간 정보공유동향 <나누셈>

2015. 1. 8. 정보공유연대IP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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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의 구글세 논란 ]

유럽에서 일명 구글세(Google Tax)를 둘러싼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스페인 정부는 (구글세라고 불리는) 구글 등 포털 사업자들에게 뉴스 사용료를 징수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르면, 검색포털 사업자들이 기사의 제목이나 기사 원문과 연결된 링크, 발췌된 기사를 게시할 경우 언론사에 기사 사용의 대가인 저작권료를 지불하도록 한 것이다. 이 법안은 2015년 1월부터 시행되며, 이를 어길경우 최대 60만 유로(약 8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구글은 구글의 뉴스 검색을 통해 언론사의 트래픽 증가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구글은 스페인에서 구글 뉴스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스페인 신문발행연합회(AEDE)는 구글뉴스 서비스의 재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섰다. 이는 이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구글세 논란은 단지 스페인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다. 유럽의 “디지털 의제”를 담당하고 있는 유럽 위원회 위원인 외팅거(Guenther Oettinger)는 “부수적 저작권 비용” 도입의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독일 해적당 출신의 유럽의회 의원인 줄리아 레다는 독일과 스페인에서의 실패 사례를 들며 그러한 구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의 정보인권 네트워크인 EDRI는 “구글세”는 잘못된 용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독일이나 스페인의 사례와 같이 실제로 시장지배적인 사업자인 구글은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중소 뉴스중개업체들만이 부담을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금은 수입이나 수익의 대가로 정부에 납부하는 것인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구글세는 저작권 단체에 내는 것으로 이는 사기업간의 지불일 뿐이라는 것이다.

- 한국경제: 스페인, 구글稅 통과…온라인 뉴스 저작권, 도마 위에 올랐다

- 전자신문: 스페인 신문들, `구글뉴스 재개해 달라`

- EDRI:  The “Google tax” that is not a Google tax

- Julia Reda: Oettinger seeks EU copyright expansion for press publishers in spite of its abject failure in Germany and Spain

 

 

 

[ 토렌트 사이트 차단을 우회하는 브라우져 “파이럿스누프(PirateSnoop)” ]

전 세계적으로 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토렌트에 대한 차단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러한 차단을 우회하여 자유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브라우져인 “PirateSnoop”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토렌트 사이트인 RARBG(이 사이트는 7번째로 대중적인 토렌트 사이트라고 한다)의 팀이 개발한 것인데, 겉모습은 검색창 옆에 해적 버튼이 있는 것만 빼고는 크롬 브라우져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 브라우져는 구글 크롬의 타협적인 프라이버시 기능을 제거한 자유소프트웨어 브라우져인 SRWare Iron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웹차단 기능 측면에서는 파이럿베이가 만든 파이럿 브라우져와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파이럿 브라우져는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TOR 네트워크를 이용하지만, 토렌트 사이트들이 점차 TOR IP를 막고 있기 때문에 파이럿스누프는 이러한 방식은 문제라고 보고 있다. 대신 파이럿스누프는 완전한 HTTPS (웹접근 보안 프로토콜)를 사용하는 고유한 프록시 네트워크를 사용한다고 한다.

파이럿스누프 개발팀은 “나치 독일에서보다 더 심한 검열이 오늘날 인터넷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 TorrentFreak: PIRATESNOOP BROWSER UNBLOCKS TORRENT SITES

- 파이럿스누프 홈페이지

 

 

 

[ 인도대법원, 항암제 넥사바 강제실시에 대해 바이엘 패소 판결 ]

2014년 12월 12일 인도대법원은 바이엘의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파기해달라는 소송에 대해 기각했다. 2011년 7월에 인도제약사 낫코가 인도특허법 84(1)조에 따라 강제실시를 청구한 이래 3년이 넘는 법적공방이 이제야 끝났다.

인도에서는 처음으로 2012년 3월에 의약품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가 허락되었다.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는 신장암. 간암 치료제이고 바이엘이 특허권을 갖고 있다. 인도특허청은 인도제약사 낫코에게 강제실시를 허락하여 바이엘에 비해 1/32의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바이엘은 2012년 5월에 지적재산항소위원회(IPAB)에 항소하였다. 2013년 3월  인도 지적재산항소위원회(IPAB)가 인도제약사 낫코에게 허락된 강제실시를 유지하기로 평결을 내렸지만 낫코가 바이엘에 지급해야할 로열티 비율이 6%에서 7%로 상향되었다. 바이엘이 뭄바이고등법원에 항소했고, 2014년 7월 뭄바이고등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대법원에 항고했었다.

-인도대법원 판결문

-정보공유연대: 인도, 의약품특허에 첫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

 

 

 

[ 미대법원의 유전자특허 취소 판결 후 ]

2013년 6월 1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유전자특허에 대한 역사적 판결을 하였다. ‘미리어드 지네틱스(이하 미리어드)’가 보유하고 있는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률을 높이는 돌연변이 유전자 BRCA1, BRCA2에 대한 특허권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만으로 다른 회사나 대학들이 같은 진단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지는 불명확했다. 대법원 판결로 특허권이 취소된 것은 미리어드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의 매우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7월부터 미리어드는 같은 유전자 검사제품을 값싸게 출시하겠다는 회사들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당한 회사는 Ambry Genetics를 비롯해 Laboratory Corporation of America, Quest Diagnostics, GeneDx, InVitae, Gene by Gene이다.

2014년 3월 유타지방법원은 Ambry Genetics가 BRCA진단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미리어드의 판매금지 가처분을 거절하는 판결을 했다. 2014년 12월 17일 미연방항소법원도 미리어드에 대해 패소판결을 하였다.

-genome web: Federal Appeals Court Upholds BRCA1/2 Decision Against Myriad Genetics

 

 

 

[ 읽을거리] 세상에서 가장 경쾌했던 저항의 기록 <파티51>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간사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영화는 칼국수 집 두리반이 있던 건물이 철거되며 시작된다. 마지막 남았던 건물 한 채가 푸석푸석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세 음악가가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받은 기타를 치며 “아~ 두리반~ 두리반~”을 연거푸 부르짖고 박다함은 먹먹한 마음에 철거현장 주변을 서성인다. 하헌진은 “오늘은 있었는데 내일은 없잖아요”라고 내뱉고는 이내 울먹인다. 이 탄식 한 마디에 재개발이라는 말의 기만과 폭력성이 명확해진다. ‘토지나 자원을 다시금 유용(有用)하게’ 한다는 의미의 재개발은 현재 존재하는 것의 소멸이 전제가 된다. 무용(無用)한 것이 소멸되고 유용한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유용과 무용의 기준은 뭘까? 누가 유용과 무용을 결정할까? 그러면 그들은 유용한가? 또 우리는 무용한가?

<파티 51>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잠시 2009년의 상황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 재개발에 저항하기 위해 전기마저 끊긴 채로 반 폐허가 된 건물을 점거해 농성하는 것은 결코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다. 재개발은 오랜(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사회적인 문제였지만 저항은 주로 철거민 당사자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009년은 무거운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2009년을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로 시작했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극단적인 경우에 저항의 결말이 어느 정도까지 끔찍한 지경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용산참사로 인해 재개발의 모순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시 환기되고 보편화된 것이다.

용산의 슬픔과 공포가 채 가시지도 않았던 2009년 연말. 홍대 앞 두리반에서는 용산과 전혀 다른 방식의 철거 저항이 홍대 앞에서 시작 되었다. 두리반은 당시에 홍대입구역에서 동교동 삼거리 방향(현재 홍대입구역 4번출구 앞 대로변)에 위치한 칼국수 집이었다. 사장인 안종려와 그녀의 남편인 소설가 유채림이 전재산 8500 만원 가량과 대출금 2500 만원 가량을 합쳐 겨우 임대해 마련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생계의 터전이 마련된 지 2년 만에 홍대입구역에 공항철도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두리반은 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공사를 맡은 GS건설과 철거 시행사 남전디앤씨가 그들 부부에게 내민 보상금은 이사비용 300 만원 가량이 전부였다.

터무니없는 보상금과 강제철거라는 벼랑 끝에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안종려 유채림 부부는 결국 두리반에서 농성을 시작한다. 용산 남일당 건물과 같은 처절한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를 두리반. 이런 두리반에 어느 날 한받, 밤섬해적단, 박다함, 회기동 단편선, 하헌진 등의 음악가들이 찾아온다. 이들 음악가와 밴드들이 두리반 농성에 합류하면서 두리반은 처절함과 비장한 저항이 아닌 경쾌한 저항의 장이 된다. 정용택 감독은 이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두리반에 모여든 음악가와 주인 부부, 그들의 경쾌한 저항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두리반에 모인 음악가와 밴드들은 강제철거 위기 속에서 두리반에서 라이브 공연을 시작했다. 두리반의 공연들이 곧 점거였고 농성수단은 음악이었다. 주말을 중심으로 매주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급기야 폭염 속에서 단전까지 되는 악조건에서도 공연은 멈추지 않았다. 두리반은 재개발이라는 보편적인 사회문제 외에도 자립음악가들이 펼치는 실험적이고 재치와 조롱이 가득한 공연들을 펼쳤고 이런 두리반만의 매력은 온 사회의 기대와 관심을 집중시켰다. 급기야 이들 음악가들은 2010년 5월 1일 노동절 120주년을 맞아 두리반에서 60 밴드가 넘게 공연한 ‘뉴타운컬쳐파티 51+’를 개최하고 여기에는 공식적으로 25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1년 반에 이르는 531일 간의 농성기간 동안 50회가 넘는 공연과 두 번의 ‘뉴타운컬쳐파티 51+’이 개최되었고,  <파티 51>은 이 공연 현장의 열기와 두리반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이 펼치는 무대 위에서의 재치와 광기를 고스란히 2014년의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대로 두리반의 저항은 이런 노력들로 인해 큰 성과를 거뒀다. 결국 두리반은 오랜 농성 끝에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금을 받았으며 홍대 주변을 떠나지 않고 저항의 공간에서 칼국수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재개발 농성장에 음악가들이 결합한 두리반은 무척이나 독특한 상황이었다. 만약 <파티 51>이 두리반을 통해 재개발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승리를 기념하는데 머물었다면 이 영화는 무척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한데 <파티 51>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파티51>은 생활 영역들을 재배치하고 변질시키는 자본주의의 도시학 속의 홍대, 즉 이제는 음악만으로 음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홍대 앞과 마주한 음악가들의 삶과 두리반을 포개어 보여준다. 실제로 음악가들은 자신들과 두리반의 동질감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두리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음악가 중 한 명인 한받은 “홍대 앞에서 밀려나는 음악가의 처지와 철거민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오랜 동안 인디음악의 창조적 활동의 장이었던 ‘홍대 앞’이라는 영역의 변질에 대한 증언이다. 실제로 두리반에 모인 음악가들은 두리반의 저항과정에서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의 연대하고 분업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성장하게 된다. 급기야 이들은 변질된 홍대 앞이 음악가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인디’라는 수식어 보다 훨씬 급진적인 ‘자립음악가’로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자신들만의 조합을 만들어 낸다. <파티51>에는 이러한 과정들 역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파티51>이 단순히 재개발 투쟁을 다루는 영상운동으로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두리반이라는 상황이 연결된 일종의 성장 다큐멘터리로 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끝으로 <파티 51>에 대해 반드시 알려져야 할 부분이 또 있다. 지금은 보다 널리 시도되고 있는 ‘사회적 제작’ 방식을 <파티 51>이 가장 최초로 실험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제작은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개인 및 단체들이 소액후원을 통해 영화제작에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강정마을에 관한 다큐멘터리 <Jam Docu 강정>과 삼성 반도체 노동자 故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제작한 <또 하나의 약속>도 이와 비슷한 ‘제작두레’를 통해 제작되었다.

또한 <파티 51>은 영화의 저작권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 개봉 후 3년 뒤(저작권법은 영상 저작물에 대해 공표 후 70년의 보호기간을 두고 있다)에 영리 및 수정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누구든 <파티 51>을 소장하고 공유할 수 있다. 일부 영화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극장에서 상영 종료되며 대중들과의 접촉면은 사라진 채 저작권을 통해 재산으로써 보호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 한다면 <파티 51>은 실효성 없는 저작권의 보호를 스스로 해체함으로 대중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공익으로써의 영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들 역시 현 저작권 체제에 대한 경쾌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파티51>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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