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재단의 창립자 미셸 바우웬스와 그곳의 핵심 멤버인 바실리스 코스타키스가 저술한 짤막한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작년에 번역 출간된 이들의 책 제목은 《네트워크 사회와 협력 경제를 위한 미래 시나리오 Network Society and Future Scenarios for a Collaborative Economy》(갈무리, 2018)입니다. 두 저자는 우리가 정보통신기술이 주도하는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점에 와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환점이란 2000년의 나스닥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 즈음을 가리킵니다. 두 저자는 이러한 전환의 시기에 산업 자본주의 가치 모델, 인지 자본주의 가치 모델, P2P 생산 가치 모델이 각자 지배적인 모델이 되기 위해 경쟁 중이며, 현재의 기술-경제 패러다임이 가진 충만한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P2P 생산 가치 모델을 뒷받침해줄 새로운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바우웬스와 코스타키스는 소유권 관계와 노동가치에 기반한 전통적인 독점 자본주의 가치 모델이 이제는 쇠락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가치 모델에서는 산업 자본이 노동자가 창조한 가치를 포획해 이윤을 얻고, 임금 형태로 부분적인 재분배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제는 노동자가 아닌 디지털 플랫폼의 사용자들이 벌이는 무보수 활동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지대’ 형태의 플랫폼 이용료를 받는 신봉건적 인지 자본주의 가치 모델이 지배적인 모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플랫폼 상의 ‘무급노동’으로부터 이윤을 빨아 먹는 인지 자본주의 가치 모델은 가치의 창조자들이 구매력을 갖출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가치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두 저자는 주장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페이스북에서 클릭하는 ‘좋아요’나 유투브 광고를 통해 플랫폼 기업은 수익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런 플랫폼 기업들은 매우 적은 수의 직원만을 고용할 뿐이고, 기업의 가치 창조에 도움을 준 사용자들에게는 아무런 보수도 지불하지 않으므로 산업 자본주의에서 임금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지던 재분배마저 이루어지지 않게 되지요.
책에서는 IBM, 구글,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우버, 킥스타터, 비트코인 등 IT기업과 암호화폐 등이 신봉건적 인지 자본주의 가치 모델의 사례로서 언급됩니다. IBM은 리눅스 개발자들을 고용해 투자한 돈보다 훨씬 많은 가치를 뽑아가고, 에어비앤비나 우버는 사용자들의 공유 활동에서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며, 수많은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들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양산합니다. 비트코인이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나 바우웬스와 코스타키스는 이러한 인지 자본주의 가치 모델 내에서 발생한 P2P 생산 활동을 자본주의 내부에서 발생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강력한 대안으로서 주목합니다. 즉 공유지에 기반한 성숙한 P2P 생산 가치 모델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내부에서 떠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P2P 생산이란 자유로운 협력 활동에 참여하는 서로 동등한 생산자들이 새로운 공동 소유권 체제에 기반해 보편적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사용 가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공유지(Commons)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지요. 사실 우리가 자본주의 플랫폼 위에서 벌이는 토론이나 사회적 활동들도 어느 순간에는 정보 공유지처럼 작동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사기업의 플랫폼 위에 만들어진 공유지는 언제든지 사적으로 전유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P2P 생산은 지식이나 소프트웨어 같은 ‘비물질’ 영역뿐만 아니라 분산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영역, 예컨대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며 이를 적절하게 구축된 공유지적 거버넌스로 관리한다면 정보통신기술이 주도하는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우웬스와 코스타키스는 P2P 생산에 의해 창출된 공유지가 사적으로 전유되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 있도록 하면서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여로 풍부해지도록 하려면 새로운 소유권 제도, 즉 피어 생산 라이선스(Peer Production License, PPL)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원래 PPL은 존 메가르와 드미트리 클라이너가 카피파레프트 라이선스 모델로서 CCL을 각색해 만든 것입니다. 메가르와 클라이너의 PPL은 노동자 소유 기업 혹은 노동자 소유 단체, 모든 이익이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기업이나 단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리기업이 저작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라이선스입니다. 그러나 바우웬스와 코스타키스가 말하는 PPL은 공유지에 기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식과 정보, 디자인의 공유지를 열어두는 반면, 기여하지 않고 사용만 하려는 영리추구 기업에게는 사용 요금을 부과하여 공유지를 지속시키는 방편입니다. 공유지에 기여하는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사용가치를 생산함에도 그러한 활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바우웬스는 예전부터 ‘보편적 기본소득’을 언급하기도 하고, 영리기업에게서 사용료를 받는 라이선스를 구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책에서 IBM과 리눅스 개발자들의 협력을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공유지에 기여하는 기업을 강조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호혜주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P2P 생산 라이선스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의 지적재산권 제도가 아닌 공유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정보와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에 대한 대안적인 사회 시스템”을 지향하는 정보공유연대의 활동에 이제 막 끼어들려는 저는 바우웬스와 코스타키스의 책에서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정보공유연대는 이미 저작권과 특허를 포함하는 지적재산권의 문제에 오랜 기간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연구와 실천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피파레프트의 모델로서 제기되었지만 아직 논쟁거리인 PPL에 대해서도 좀 더 탐구해보고, 앞으로의 정보공유연대 활동을 통해 차츰 논의를 확장시켜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CL은 콘텐츠의 제작자가 대기업이든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독립 제작자이든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영리기업이 개인 창작자의 작업물로 큰 이윤을 얻어도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PPL은 콘텐츠를 사용할 주체가 영리기업인지, 개인인지, 노동자 소유의 기업인지 등을 구별하기 때문에 창작자에게는 더 넓은 선택지를 주는 라이선스입니다. 2002년에 공개되어 전세계의 공유와 창작 문화에 기여해온 CCL이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개인의 창작물을 이용하여 이윤을 늘릴 수 있는 ‘자본의 코뮤니즘’ 대신 개인의 커머닝 활동에 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커먼즈의 지속에 기여할 수 있는, ‘커먼즈를 위한 자본’을 만드는 PPL 개념이 필요해진 것 같습니다.
ipleft 운영위원 윤자형
[관련 읽을거리]
<Peer to Peer : The Commons Manifesto> Michel Bauwens,Vasilis Kostakis, Alex Pazaitis https://www.uwestminsterpress.co.uk/site/books/10.16997/book33/
Decentralized Sustainability https://medium.com/@daviddao/decentralized-sustainability-9a53223d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