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유럽 의회는 348대 274로 논란이 많았던 저작권 지침을 통과시켰다. 이번 저작권 지침은 원래 유럽의 저작권 체제를 현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2016년 9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저작권 개혁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유럽 시민사회의 분석 참조) 이후, 유럽의회 법사위(JURI)의 검토를 거쳐, 유럽의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연합 이사회(Council of the European Union)의 3자 협의를 거쳐, 올해 2월에 최종 합의안이 도출되었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쟁점은 17조(기존 초안에서는 13조)인데, 온라인 콘텐츠 공유 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저작권자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저작권 침해물의 접근을 차단하도록 한 조항이다. 유럽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는 ‘업로드 필터’ 도입을 의무화한 것으로 이용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검열 기계(Censorship Machine)’라고 비판해왔다. 표결 직전인 3월 23일에는 유럽 전역에서 저작권 지침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온라인 콘텐츠 공유 서비스 제공자(online content-sharing service provider)’ 개념은 이번 지침에서 새롭게 도입되었는데, 영리를 목적으로 이용자가 업로드한 (저작권 보호를 받는) 저작물을 저장하고 공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관리, 홍보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즉,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다. 지침에서는 위키피디어와 같은 비영리 온라인 사전, 비영리 교육/과학 저장소, 깃허브와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플랫폼, 온라인 장터, B2B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자가 자체 용도로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웹하드 서비스 등은 제외된다고 설명하는데,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 자체가 이 지침의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다수의 인터넷 서비스가 이용자가 올리는 콘텐츠를 저장,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의 계속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새 저작권 지침에 따르면, ‘온라인 콘텐츠 공유 서비스 제공자’는 저작권자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이용허락을 받아야 한다.(제17조 1항) 만일 라이선스 계약 체결에 실패하여 이용허락을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a) 허가받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음을 입증해야 하며, (b) 권리자가 정보를 제공한 특정 저작물이 접근 가능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며, (c) 권리자의 고지를 받고 해당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거나 삭제하고 향후에도 업로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제17조 4항), 그렇지 않으면 허가받지 않은 저작물 이용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게된다.
제17조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콘텐츠 공유 서비스 제공자’의 사이트에 이용자가 동영상과 같은 저작물을 업로드할 때, 저작권 권리자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허락받지 않은 저작물은 업로드되지 않도록 자동 차단해야할 것이다. 법문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저작권 지침 17조에 따른 조치를 ‘업로드 필터’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미 유튜브는 이와 같은 필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를 ‘콘텐츠 ID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유튜브는 권리자의 저작물을 식별하기 위한 콘텐츠 ID를 부여하며, 이는 이용자가 올리는 모든 동영상과 대조되게 된다. 만일 저작권을 침해한 동영상이 업로드되면, 권리자의 의사에 따라 차단되거나 혹은 이 동영상으로 인한 광고 수익을 배분받게 된다.
저작권 침해를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이용자가 온라인 플랫폼에 저작물을 올릴 때 사전에 이를 기계적으로 필터링하는 것은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인용, 패러디, 패스티쉬 등 저작권 침해가 아닌 저작물마저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EC는 저작물의 공정이용까지 차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새 저작권 지침 17조 4항은 (a) 인용, 비판, 평가 (b) 캐리커쳐, 패러디, 패스티쉬 목적의 이용 등 저작권 보호의 예외 및 제한에 해당하는 저작물의 업로드는 보장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저작물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기 때문에, 기계적인 필터링 시스템 하에서 이러한 이용자의 권리가 적절하게 보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부당하게 차단되거나 삭제되었을 경우에 이용자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이용자들은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절차를 감내하거나 아예 불만제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유럽의 전자상거래 지침(Directive 2000/31/EC) 15조는 이용자들의 불법행위를 적극적으로 적극적으로 감시할 의무를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부과하지 않고 있다. 새 저작권 지침 역시 이러한 일반적 감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업로드 필터의 요구와 모순된다. 결국 온라인 콘텐츠 공유 서비스 제공자는 이용자들이 업로드하는 저작물이 저작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일일히 모니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C는 새 저작권 지침이 업로드 필터를 의무화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저작권자와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을 경우, 허락받지 않은 저작물이 웹사이트에서 접근 가능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best effort)’을 기울여야 하지만, 이것이 특정한 방법이나 기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단지 권리자가 요구한 특정 저작물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감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최선의 노력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권리자의 요청에 따라 특정 저작물을 차단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고지 후 삭제(notice and take down) 방식이 아니라면, 권리자가 요청한 특정 저작물을 차단하기 위해 그리고 향후에도 업로드를 방지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하고, 해당 저작물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전체 저작물을 모니터링할 수 밖에 없을텐데, 이것이 일반적인 감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EC는 새 저작권 지침은 사업자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업로드 필터 등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 세계의 권리자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미 이러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유튜브 등 거대 사업자의 독점을 강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새 저작권 지침은 일부 긍정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는 최소 수준을 강제하는 반면 공정 이용은 각 국의 재량에 맡겨 놓았던 상황에서, 이번 저작권 지침이 최소한의 저작권 제한과 예외를 설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과학적 연구 목적의 데이터 마이닝 허용(3조), 문화유산 보존 목적의 저작물 복제 허용(6조) 등이다. 원 창작자가 저작물 이용 계약을 체결한 후에도 향후에 해당 저작물이 큰 수익을 얻었을 경우 원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긍정적이다.
유럽연합 규정(Regulation)과 달리 지침(Directive)은 바로 적용되지 않으며, 지침에 따라 유럽연합 회원국이 각 국의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지침을 각 국의 법률로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는 각 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침이 통과된 만큼, 이제 각 국의 이행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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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Censorship machine takes over EU’s internet https://edri.org/censorship-machine-takes-over-eu-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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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링크세’ 도입 저작권법 최종 승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092&aid=0002158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