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재산권을 향한 거침없는 수다, <이달의 토크> 3 : 이광석 매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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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봐도 안 본 것 같은 저작권법, 특허법, 기타 등등 법법.
열어도 열어도 열기 힘든 각종 ‘오픈(open) OOOO’ 프로젝트 등등.
그 외, 저작권/특허/상표/컴퓨터프로그램 등등과 관련된 수많은 쟁점과 대안적 시도들.

때로는 살 떨리는, 때로는 흥미진진한, 때로는 두 팔 걷어 올리고픈 현장의 목소리와 발걸음을 따라가는 야심찬 기획, 정보공유연대IPLeft 2009년 정례 세미나 <이달의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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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30일 목요일 저녁 7시,
세 번째 토크가 여러분께 묻습니다. “저작권을 믿습니까?”
세 번째 토크의 주인공은 매체연구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광석님입니다.

 

지난 4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저작권법 개정안(강승규 의원 발의)을 보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저작권 보호\’는 이제 그 통제와 규제의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지경까지 다다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승규 의원의 개정안이 통과된 다음 날 상정된 또 다른 저작권법 개정안이 있고, 이 법안에는 문화 자본에 편향된 저작권법의 균형을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 법안도 발의된 직후부터 다양한 권리자 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이에 정보공유연대IPLeft는 저작권과 저작권자를 둘러싼 뿌리깊은 믿음의 면면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갈 것인지는 궁금하시다면, 아래 이광석님의 발제문을 일독(一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달의 토크에 오시기 전에 꼭~ 한번 읽어봐 주세요^^

 

장소 관계상 선착순으로 접수 받으니, 매일 매일이 마감 임박입니다요~^^
참, 세미나 전에 이광석님께 질문 보따리를 던져 볼 수도 있습니다. 질문하고픈 이야기들이 있다면 4월 30일 전에 여기에 덧글을 남겨주시거나 idiot@jinbo.net으로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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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의 신화: 그릇된 가정들

- 이광석 (매체연구가)

 

저작권이라는 저자에 대한 최소 보상 권리는 인류에 공헌할 지식의 저장고로써 기능함을 원칙으로 삼아 발전했으나, 현실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 재산권 행사의 장이 되고 있다. 저작물 이용자들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마련한, ‘공정 이용’ 혹은 ‘저작권의 제한’ 조항도 실제 법적 소송이나 분쟁에서 항상 수세적 위치에 놓여 왔다. 저작권은 새로운 기업의 논리와 결합하면서 그 힘을 배가하는 반면, 이를 재창작에 이용하는 이들의 이용권을 위축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반면, 저작물 창작자와 저작권 소유자 중심의 저작권 논리를 뒤흔드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이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그 하나는, 공유 분산형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다. 2천년대초 각광을 받던 미국의 냅스터나 한국의 소리바다 등 중앙 서버의 중개없이 음악파일을 이용자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개인 파일교환(P2P) 방식이 그 대표적 모델이다. 이에 대해 음반ㆍ영화 저작권자들은, 법적 소송과 온라인 비지니스 모델 개발, 이 양자 모두를 통해 저작물 공급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웹2.0의 확산을 들 수 있다. 90년대 중반 이래 시작된 인터넷의 대중화는 2천년대 들어오면서 이용자들의 정보이용 패턴을 확실히 바꿔놓았다. 단순 저작물의 파일 교환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생산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공유하는 생산자의 위치로 상승했다. 즉 이용자 스스로 UCC, 블로그, 미니 홈피를 통해 수많은 글, 이미지, 동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누리꾼들의 이같은 자유로운 공유 흐름과 아마츄어리즘에 기반한 창작에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창작물들이 쓰이면서 저작권 문제가 다시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동시에 저작권자에 의한 법적 기소로부터 이를 방어할 이용자들의 권리보호 기제가 없는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작권 옹호 진영으로부터의 배타적 재산권 옹호 논리는 계속해서 누리꾼들을 \’범죄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저작권을 마치 실물의 재산권처럼 포장하고, 창작자의 권리\’만\’을 절대화하는 저작권의 신화들이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발제자는, 아직까지 저작권을 옹호하는 논리가 작가 혹은 저자와 작품의 특수 관계, 그리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독창의 창작 행위를 강조하는 \’낭만적 저자\'(romantic authorship)의 개념에 근거해 유통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저작권 옹호 논리는 사실상 \’전자복제\’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혁명에 의해, 한 때 확고한 듯 보였던 저작권의 신화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대중매체의 시대를 넘어 인터넷 혁명은, 이러한 창작자의 원본 이미지가 지닌 고유의 \’아우라\’ (aura)를 철저하게 소멸시키고, 무한히 복제되어 자유롭게 이용되고 누구나가 정보 생산의 주체로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저작권이 지녔던 가정들을 약화시키고 있다. 나는 \’낭만적 저자\’를 축으로 아직도 저작권자들에 의해 스스럼없이 차용되는 방어 기제로 그들의 몇 가지 수사학적 오류들을 토론하려 한다.

 

광범위하게 인식을 하고는 있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저작권 진영의 오류들은, 첫째로, 아직까지 디지털이 물질 재화의 논리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다. 무한히 닮은 꼴을 만들어 추가 비용이 거의 없고 (0에 가까운 한계비용), 한 번 퍼지면 제어 불가능하고 (개방성) 타인의 이용이 자신의 이용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다는 (비경쟁적) 점 등은 정보가 지닌 특성 중 기본 사항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과거 물질재의 잣대로 정보재를 바라보고, 똑같이 물질재에서 써오던 방식으로 재산권을 행사한다. 저작권에는 보호기간이 있고 보호범위가 있고 그것의 제한 항목이 존재한다. 물질재처럼 영구적인 사적 점유와 다르게, 한시적 법의 규약을 통해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이다. 물론 그 기간이 만료된 저작물들은 공적 영역에 들어가 제2, 제3의 창작자에게 자유롭게 유통될 운명에 처한다. 아날로그의 물질재 시장에 존재할 수 있는 하딘(Garrett Hardin)의 \’공유지의 비극\’은 불가하다. 무한복제의 디지털 상품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공유지가 개인의 비윤리적 탐욕과 욕망에 의해 무너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의 공유지에서 퍼오고 퍼나르는 행위는 자멸의 비극을 낳기 보단, 미디어 2.0시대의 새로운 시장과 문화의 가능성을 낳는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현실과는 무척 다르다. 이 기본적 사실은 음반, 영화 등 온라인 콘텐츠 유통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무시된 채, 그저 이용자들을 양심없는 불법자 집단으로 몰고 간다.

 

둘 째, 창작은 \’백지 상태에서\’ (ex nihilo)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라는 \’낭만적 저자\’의 가정이다. 낭만적 저자의 가정은, 사실상 이용자들의 파일교환 행위를 막기위한 절대적인 신화로 기능했다. 일부 가수들과 배우들이 소속사들과 함께 \’불법\’ 근절 캠페인을 벌일 때, 흔히 창작자의 권리로 잘 내세우는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작권의 기본 전제는, 인류의 지적 자원으로부터 창작자의 저작물이 혜택과 영감을 얻듯, 그렇게 영감을 받아 만든 저작물을 다시 인류에 되돌려 주는데 있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있다면, 이는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서있기 때문”이라는 아이작 뉴튼의 겸손은 바로 이를 지칭한다. 즉 뉴튼은 인류의 지적 자원이자 공적 영역인 “거인의 어깨 위”로부터 스스로가 창작의 영감에 이르렀음을 스스로 본다. 이는 저작자와 인류의 지식간에 밀접히 주고받는 \’삼투 효과\'(seepage effects)가 존재함을 뜻한다. 뉴튼의 지식 또한 인류의 다음 세대에 영감을 줄 토대로 쓰여왔기에 문화적 상호작용 효과는 상호적이다. 이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이 원리를 통해 어떻게 인류가 현실의 창작자들과 소통했는지 그 사례들도 같이 논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될 것은, 많은 저작권 옹호론이 자본주의 생산과정 내 위치되는 저자의 위치를 외면한다는 점이다. 기계 복제시대의 예술을 바라보면서 아우라의 상실을 얘기했던 벤야민은, 예술가 등 창작자는 생산관계 속에 편입됨으로써 시장의 상품처럼 취급된다고 봤다. 예를 들어, 미국의 헐리우드 시스템의 생산과정은 대단위의 협업과 거대한 공장 시스템으로 이루어지고, 영화감독의 역할은 그저 전체를 디자인하는 구상 노동자 역할로 떨어진다. 감독의 위상이 노동자의 지위로 떨어지는 반면, 대부분의 권력은 투자사, 배급사, 제작사로부터 나온다. 이렇듯 자본주의의 생산과정내에 저작자를 놓는 이유는, 현실 저작권 실세 관계를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 문화 콘텐츠에 열광하는 후기자본주의 시장에서, 창작자와 저작권 소유자 혹은 저작 인접권자간에 이권의 분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누가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가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저자의 권리만을 옹호하는 측은, 주로 문화산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의해 저작권의 독점화 현상이 벌어진다는 점을 망각한다. 다시 말해 법률상 창작자의 작품이 원저자로부터 대리인(문화산업)으로 위탁, 양도되는 시장의 법칙을 간과한다. 그럼으로써 저작권의 효과로 인해 실제 부의 집중은 저자에서 저작권 실소유자인 기업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저자에게 적절한 보상이나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가 시장에서는 별로 신빙성이 없음을 말한다. 예컨대, 음원에 대한 권리 행사에 있는 이동통신사들(전체 이익의 40%)의 독식은 저작권의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다들 인정하지만 고쳐지지않고 통용되는 저작권의 오류들은, 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현재 저작권 강화 경향에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쌓는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즉 저작권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희뿌연 연막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본인은 발제를 통해 저작권의 수사학적 오류를 진단해 보고, 그것이 문제라면 그 대안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청중들과 함께 구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끝)

 

 \’이달의 토크\’  메타정보
• 일 시 : 2009년 4월 30일(목) 저녁 7시
• 장 소 : 문화연대 (아래 약도 참고)
• 토크 순서
  • 매체연구가 이광석님 발표 : 저작권의 신화, 그릇된 가정들
    (진행 : 오병일 정보공유연대IPLeft 운영위원)
• 문의 및 신청 : 정보공유연대IPLeft 홍지 (02-717-9551/idiot at jinbo.net)
• 주최 : 정보공유연대IPLeft (http://www.iplef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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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 5·6호선 공덕역 4번 출구에서 아현동 방면, 서부지방법원 뒤편
• 5호선 애오개역 4번 출구에서 공덕로터리 방면, 서부지방법원 뒤편
•  [버스]
• 10, 160, 260, 600, 605,631,7013,7611,1002

첨부 파일과거 URL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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