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생산자도 이용자도 배제된 지식유통산업의 현실과 오픈 엑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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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지식이 ‘돈’이 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은 물질적 재화와는 속성이 다르다. 정보와 지식에 대한 사유와 독점은 우리가 가진 사유의 힘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기본적인 사실 하나만 확인하자. 정보와 지식은 누군가에 의해 전유될 수도 없고(전유불가능성) 타인과 공유한다고 해도 그 가치가 줄어들지도 않으며(무한재생산성, 무한가치성), 오히려 공유될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누적효과성). 어렵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옛날 사람들도 잘 알고 있던 이야기다. 다음의 말을 들어보자.

“내게서 어떤 생각을 전달받는 사람은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지식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는 내 촛불에서 자기 초에 불을 붙여 간 사람은 빛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내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 토마스 제퍼슨

“당신과 내가 사과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서로 교환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나와 당신은 각각 하나의 사과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과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서로 교환 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조지 버나드 쇼

정보와 지식은 자유롭게 유통, 공유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토양이 되는 문화를 향유할 권리이기도 하다. 세계인권선언과 사회권 규약에 포함된 과학기술과 문화에 대한 권리에는 지식과 정보, 문화 콘텐츠에 대한 접근과 이용의 자유, 그리고 그러한 접근과 이용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개인의 청구권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 정보와 지식을 사유하고 통제할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그걸로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학술논문과 같은 지식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학술지식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소위 말하는 특허의 자본주의적 변형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지는 말자. 더 가까이는 미국에서 레이건 정부가 등장하고 정보와 지식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된다. 정보와 지식은 원래 상업적 수단이었던게 아니라, 특정 시기 특정한 과정을 거쳐서 상업적 수단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그 과정의 핵심에 레이건 정부부터 시작된 정보 상품화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반발해 학술지식만이라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하자는 흐름이 생겨났고, 우리는 그것을 오픈 액세스(open access)라 부른다. 오픈 액세스라는 흐름이 생겨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학자들이 연구를 하기 위해 타 학자들의 학술논문에 접근하기 위한 장벽들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대학이나 공공도서관에서 제공하던 학술 자료들이 80년대 이후 갑자기 급상승하게 된 학술지 구독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충분한 학술자료를 갖출 수 없게 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자들과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오픈액세스라는 흐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최근 오픈 액세스에 동참하려는 흐름들이 생겨났다. 도서관학을 전공한 연구자들과 학술정보 공유에 관심있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연구와 정책 제안들이 나오게 됐고, 지금은 국립중앙도서관을 주도로 2009년부터 Open Acess Korea(일명 OAK)라는 지식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 3월 11일에도 OAK에서 주관하는 관련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OAK 홈페이지
<http://oak.go.kr/>

[데일리그리드] “오픈액세스와 국내 공공저작물의 공유확산” <http://www.dailygrid.net/news/articleView.html?idxno=40134>

[뉴시스] “오픈액세스와 국내 공공저작물의 공유 확산 공론화”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07_0013940677&cID=10701&pID=10700

문제는 소극적인 도서관 정책 개선과 워크숍 같은 형태로는 학술지식의 공유를 확산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저작권과 특허에 기반한 지식 독점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오픈 액세스는 해당 제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학술지식의 공유라도 확산시켜 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독점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공유의 영역을 확산시키는 것은 당연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원론적인 문제제기는 지금 상황에서 별 도움이 안되겠지만 이런 원론을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한계를 설정한 대안은 언제나 협소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매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오픈액세스 운동의 관점에서는 혁신적이라 할만한 사건 하나가 있었다. 2015년 11월에 있었다. 학자들이 나서서 높은 학술 저널 출판 및 판매 비용을 낮추려고 시도했던 사건이다. 네덜란드의 출판사 엘제비어에서 출판하고 있는 저명한 학술지인 <링구아> 편집위원장인 요한 루릭과 편집위원들이 출판사측에 투고료를 낮추고 출판권을 편집위원회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이후 협상이 결렬되면서 학자들이 편집위원직을 사임하고 <글로사>라는 새로운 학술지를 창간했다.

[블러터] “링구아 구독료 너무 비싸… 오픈 액세스 선택한 언어학자들” <http://www.bloter.net/archives/243076>

[블로터] “점유에서 합리적 공유로 … 오픈액세스와 출판 패러다임 변화”  <http://www.bloter.net/archives/248904>

이 사건은 학술지식을 판매하는 장사가 학자들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식 생산자조차 원하지 않는 지식 장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연구재단은 2012년 9월부터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수록된 일부 논문의 원문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학술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해 장사를 하는 민간 업체들(DBPIA를 운영하는 누리미디어, KISS를 운영하는 한국학술정보 등)이 반발했다.

[오마이뉴스] “학술논문도 이젠 공짜? 오픈액세스의 딜레마”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7165&CMPT_CD=P0001>

그러나 이걸 한국학술재단과 민간 학술데이터베이스 운영 업체간의 논란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 논란에서 빠져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학술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도 그것을 이용해 연구하는 이들도 이 논란에서 빠져 있다. 문제는 확실해 보인다. 생산자도 이용자도 제외된 상태에서 유통 업체들의 이익만 챙겨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오픈액세스 운동이 주목해야 할 것은 논문과 학술지에 어떤 라이센스를 부여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보를 오픈할 것인지, 그 비용은 어느 정도 수준이 적당한지 등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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