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정보 영역(Public Domain)의 사회적 의미

공유 정보 영역(Public Domain)의 사회적 의미

오 병 일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공유정보영역(Public Domain)은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지식․정보를 의미한다. 공유정보영역에 속하는 정보들은, 1)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정보, 2) 공공 자금의 지원을 받아 공적 영역(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생산된 정보, 3) 저자가 저작권을 포기한 정보 4) GPL과 같이 다른 사람의 이용을 허용한 정보 등이 있을 수 있겠다. 물론 2)의 경우는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에서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을 부여하고, 이용을 제한한다든가, 혹은 공공 자금의 지원을 받아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유화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정보는 그 특성상 유체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정되어 왔다. 여타 유체물에는 통상 ‘소유권’이 부여되는 반면, 지식․정보의 생산자에게는 특허나 저작권과 같은 지적재산권이 부여된다. 그런데, 지적재산권은 – 지적재산권을 소유권과 유사하게 인식하는 일반적인 오해에도 불구하고 – 소유권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호 기간이 일정하게 제한되어 있으며, 창작자에게 부여되는 권리도 소유권과 같은 일반적인 통제 권한이 아니라, (저작권의 경우) 복제권, 배포권 등, 혹은 (특허권의 경우)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와 같은 몇 가지 특정한 행위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그 권리는 공공의 목적 등을 위해 때로 제한되기도 한다. 결국 저작권이나 특허권이 부여된 지식․정보조차도 언젠가는 공유정보영역으로 귀속될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지식․정보는 궁극적으로 공적인 자산이라는 점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다시 \’공유정보영역\’이 문제가 되고 있는가?

우선 현재 정보화 과정의 가장 큰 위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정보불평등’ 현상이다. 이러한 정보불평등(Digital Divide)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 정보․시민사회가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인데, 이러한 정보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올해 12월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 이하 WSIS)’의 주된 의제이기도 하다. 정보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히 최빈국과 개도국에 있어서) 네트워크 인프라의 확충,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평등한 접근 보장, ICT 활용에 대한 교육, 공동체의 컨텐츠 생산 활성화 등 다양한 측면의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지만, ‘공유정보영역’의 확대와 접근 역시 필수적인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보격차를 해소하기위한 방안으로,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지식에 대한 접근은 공공의 일반 이익에 열려있어야 한다. (2003년 7월 18일자 WSIS 선언문 초안 4A항)
공유정보영역에 대한 접근 : 활발하고 풍부한 ‘공유정보영역’은 정보사회의 성장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정보사회를 지지하기 위해 공유영역의 정보는 쉽게 접근 가능해야하고, 투명해야 하며, 남용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도서관이나 아카이브와 같은 공공기관은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신뢰성있는 정보 매개자로 기능할 수 있다. (2003년 7월 18일자 WSIS 선언문 초안 23항)

이러한 공통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에 대해서는 특히, 현행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국가․업계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커다란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앞서 언급했던 선언문 초안 4A 뒷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미합의로 되어있다. (미합의된 부분은 [ ] 로 묶여져있다.)

만일 완전히 시장의 영향력 하에 남겨진다면, ICT는 국내적인 사회적 불평등을 사실상 심화시킬 것이며,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를 확대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개도국이 다자무역시스템 하의 지구화의 이익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근본적인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상세한 분석, 새로운 사고,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국제적 차원의 실천이 요구된다. (2003년 7월 18일자 WSIS 선언문 초안 4A항)

시장에 기반한 지식․정보의 생산, 즉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해 시민사회는 보다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난 7월에 파리에서 있었던 WSIS 임시준비회의(Intersessional Meeting) 때,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은 공통의 입장 문서를 마련하여 사무국에 제출하였는데, 이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지구적인 지적재산권 체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함을 주장하고 있다.
저작권, 특허, 상표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사유화는 창조적 노력에 보상하고 혁신을 장려하는 더 이상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불평등을 확대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공동체를 착취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실천 계획은 지식과 정보의 공유를 위한 공공 커뮤니케이션 기반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공공정책과 오픈 소스 및 오픈 컨텐츠에 대한 투자(응용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인력개발을 포함하여)를 통해 지구적 지식 공유지(knowledge commons)를 수호하고 확대해야만 한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작업과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의 기능을 포함하여, 사적 소유화된 지식과 정보의 국제적 승인과 거버넌스를 위한 현재 질서가 가난과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함이 실천 계획에 담겨야 한다. (2003년 8월 3일자, 시민사회 입장 문서 2P)

시민사회단체들이 현재의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지적재산권 강화 경향 때문이다. 첫째, 지적재산권 보호 대상의 확대로 인한 공유정보 영역의 축소. 저작권 보호 대상이 소프트웨어,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 등으로 확대되고, 특허 대상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사업 모델과 같은 아이디어, 동식물과 같은 생명체 등 기존에는 특허 대상이 아니었던 것을 포함하게 되며, 상표권이 도메인 네임에 대한 소유권으로까지 확대되는 등, 기존에는 공유정보 영역이었던 것이 갈수록 사유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원주민 공동체의 경험과 역사적 축적에 기반한 토착지식들이 (특히, 식량․제약 기업에 의해) 특허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는 공동체의 지식을 해적질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둘째, 지적재산권 체제의 공공성 축소. 최근 강제실시권 범위을 둘러싼 TRIPS에서의 논란처럼, 미국 등의 선진국은 의약품이나 실시할 수 있는 국가의 범위를 축소하려 하고 있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와 개도국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 영역에서도 냅스터나 소리바다의 경우처럼, 디지털 환경에서 사적 이용을 공정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부여된 정보는 그 자체로 ‘공유정보영역’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공정이용’을 통해 공공성을 보장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러한 조건이 갈수록 협소화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지적재산권 권리의 강화 측면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저작권 보호 기간을 개인의 경우에는 사후 70년, 기업의 경우에는 95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또한, 디지털 환경의 발전에 따라 저작권 내에 ‘전송권’을 신설하거나, 암호화와 같은 기술적보호장치를 해킹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넷째는 국제적 차원에서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 조약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무역과 연계되면서 각 국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게 되고 있다. 특히, 지식․정보는 단지 ‘상품’이 아니라, 각 사회의 독특한 역사적․지적․문화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성을 인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같이, 지적재산권이 공유정보영역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인권(예를 들어, 의약품 특허가 건강권을 침해한다든가, 저작권이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것과 같이)을 침해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나 업계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공식 선언문 초안은 기존의 지적재산권 체제에 여전한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권리와 이용의 균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에 머물러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는 정보사회에 필수적이다. 기존의 지적재산권 체제와 국제적인 협정은 이러한 보호를 계속적으로 제공해야하며, 지적재산권 권리자와 이용자의 필요한 균형을 증진시켜야 한다. (2003년 7월 18일자 WSIS 선언문 초안 40C 항)

하지만, 현행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 없이, 권리자와 이용자의 균형, 혹은 공유정보영역 활성화만을 논의하는 것은, 마치 인권을 보장해야한다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말과 같이 공문구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지적재산권 체제와 공유정보영역이 그 자체로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지적했다시피 지적재산권이 공유정보영역을 위축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과 함께, 또한 지적재산권에 기반한 사회 시스템과 의식이 확산되면서 자발적인 정보공유의 흐름조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공유정보영역이 가지는 또 하나의 가치는 \’민주주의\’다. 이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유정보영역은 시민들이 적절한 정책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정보를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형성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레식의 지적처럼,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인터넷 주소자원 관리의 개념을 넘어서는, 인터넷을 규율하는 코드와 정책 결정의 메커니즘이라는 의미에서-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공개발전(Open-Evolution)의 가치- 즉 특정한 발전의 경로를 미리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발전 경로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와 보편적인 지위(Universal Standing)-어떠한 차별이나 제한 없이 누구나 소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를 인터넷 거버넌스의 두 가지 가치로 설명한다. 기간 인터넷 거버넌스의 관행은 이러한 두 가지 가치를 전제하고 있고, 이는 현실의 민주주의적 가치에 적용될 수 있으며, 자유/공개 소프트웨어 운동 등은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누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지적재산권은 권리자에게 어떠한 지식․정보를 생산할 것인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어떻게 유통시킬 것인지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한다. 그리고, 지적재산권 권리자, 즉 창작과 개발의 주체가 기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결국 기업이 사회의 지식문화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선진국이 후진국의 지식문화 기반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로렌스 레식은 그의 저서 <아이디어의 미래>The Future of Ideas : The Fate of the Commons in a Connected World)에서 이러한 지식기반에 대한 통제가 오히려 새로운 창조를 저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일정하게 지식의 이용․확산을 제한하는 대신에, 창작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를 통해 창작과 혁신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의 과도한 지적재산권 강화는 오히려 새로운 창작마저 저해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앞서 인용했던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도 표현되어있다.
레식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이것이 ‘(지식)시장의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공유물과 사적 재산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레식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가치’이다. 효율성이라는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가 존재할 때, 공유물과 사적 재산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차드 스톨만 역시 ‘자유’라는 가치를 가장 강조한다.
그런데, 우린 이러한 가치에서 한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레식의 주장, 혹은 인터넷 거버넌스의 가치는 독점과 배제의 틀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시장, 혹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가치의 한계는 실질적 불평등을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적주소자원관리기구인 ICANN의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다른 국제기구에 비해 시민사회의 참여를 많이 허용하고 있고, 열린 참여(Open Process)과 아래로부터의 결정(Bottom-up process)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정책 결정의 주도권은 ‘선진국의 기업’이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열려있다는 것은 소중한 가치이기는 하지만 불균등한 출발점이 고려되지 않으면 현실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사실상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또 하나 우리가 고려해야할 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정책(Affirmative Action)\’이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일정 비율의 자리를 보장해주는 정책, 혹은 최빈국에 대한 특별한 지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공유정보영역의 정보 생산․접근에 있어서도 이러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담보해야할 상당한 책임은 정부를 포함한 공공 영역에 있다.
다만, 공유정보영역과 국가 중심 정책의 딜레마가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 역시 지적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자국의 상황에 적합한 지식․문화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 일국의 정책은 통상 다른 나라의 배제를 동반하기 쉽다. 예를 들어, 국내의 공개 소프트웨어 활성화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정보라는 의미에서의 공개 소프트웨어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 국내적으로는 공개 소프트웨어이면서, 타국에는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딜레마가 여기 존재한다. 국가 중심적 사고는 효율성 중심의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유정보영역 확대를 위한 공공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국가중심적 사고 혹은 정책과 괴리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리하자면, ‘공유정보영역’은 정보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다. 하지만, 최근 지적재산권 강화 경향은 이러한 공유정보영역을 급속하게 위축시키고 있다. ‘공유정보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정책들이 고민되어야 한다.
첫째, 앞서 지적한 지적재산권 강화 경향에 대한 제어가 필요하다. 지적재산권과 공유정보영역의 공존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균형’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는 결국 서로 다른 가치 사이의 힘 관계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둘째, 국가를 포함한 공공 영역(국내적, 혹은 국제적 차원에서)이 공유정보영역 확대를 위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영역에서 생산된 공공정보에 대한 접근 확대, 시민사회 혹은 공동체의 정보 생산에 대한 지원,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지원 등이 그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적 자금을 이용해 개발된 지식을 사유화하는 최근 경향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째, 근본적으로는 공유정보영역 확대를 위한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기여, 이를 위한 다양한 모델의 개발 등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GNU/Linux 프로젝트라는 성공 모델을 가지고 있다. 첨부 파일 http://www.ipleft.or.kr/bbs/data/ipleft_5/1/공유정보영역의사회적의미.pdf 과거 URL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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